| [윤근혁이 만난 사람15] 6․15 광주 찾은 북쪽 교원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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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가 맨날 퍼주기만 하니까, 북한 놈들이 미사일 만들잖아. 이거” “맞아. 저놈들은 겉으로는 웃어도 뒤에서는 다 꿍꿍이가 있다구. 꿍꿍이가.” 학교 목공실 안에서 벌어진 대화 ‘북한 개놈들!’ 학교 본관 건물 뒤쪽에 있는 목공실. 먼지와 담배 연기가 쌍을 이뤄 풀풀 올라오는 이곳에서 이야기 구름도 뭉게뭉게 핀다. 이런 자리에선 기사와 교사는 서로 질세라 맞장구를 쳐주는 게 일이다. 요즘엔 단연 ‘미사일을 만든 북쪽의 행태’가 이곳의 가장 큰 화두다. 14인치 먼지 낀 텔레비전 속 YTN 뉴스가 30분마다 이 소식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 나는 못들은 척하고 이곳에 온 목적에 맞게 소파에서 졸다 말다 하면서 담배 구름만 연신 만들지만, 어제는 한마디 했다. “그것 미국이 제일 성질 내는 건 미국에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래요. 언젠가는 일본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 땅을 넘어 공해상에 떨어졌지요. 일본 놈들 기겁을 했다고 합니다. 히히.” 어느 기사가 맞장구를 쳐준다. “그러게요. 북한이 자기들도 살길 찾으려고 미국하고 일본 겁주려고 만드는 거지 뭐. 미사일 왜 만들겠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영화에서는 남한 하고 북한 하고 손잡고 일본에 원자폭탄을 날리잖아요.” 나도 맞장구를 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남쪽인 우리야 미사일도 미국이 만들지 못하게 해서 못 만들잖아요. 북쪽이 걸핏하면 무기를 갖고 겁주는 것 같아 기분은 안 좋지만 이들도 기본 생각은 하고 있겠죠. 모든 세계전쟁엔 꼭 미국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이 미국은 자기 땅에서 전쟁한 것은 자기네 남북전쟁 말고는 없었다고 하는데… 북쪽하고 미국하고 붙으면 우리나라는 개박살이 날 것이니 참 걱정이네요.” 이날 목공실 대화는 ‘퍼주기 반대’, ‘북한 개놈들!’이란 내용에서 그나마 ‘남북이 힘을 합쳐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란 소설마냥 일본과 미국을 혼내주면 좋겠다’란 상당히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보통 나는 뒤에 벌어질 일을 계산하면서 말하는 성격이 아니다. 이날도 그랬다.
“통일이 안 되도 우리 마음은 통일이 되어 있어” 이날보다 며칠 앞서 나는 5.18민주항쟁의 성지, 광주를 찾았다.
6.15남북통일대축전이 벌어진 6월 15일이었다. 남쪽을 방문한 북쪽 교원들 여덟 명을 만나보기 위해서다.
대축전 부문 행사로 열린 남북교육자 상봉행사. 장소는 광주 남구 월산동에 있는 무진중학교였다. 이날 오후 3시 27분. 양복과 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북쪽의 남녀 교직원 8명이 버스에서 내렸다. 남북이 분단된 다음 북쪽 교사들이 남쪽 학교를 공식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말 그대로 ‘사상 최초’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대부분 전교조 회원인 남쪽 교사들 200여 명이 양쪽으로 늘어서서 단일기를 신나게 흔들었다. “반갑습니다”라고 환영하는 남쪽 교사의 합창에 북쪽 교사들은 “매년 만나니 반갑습니다”라고 화답했다. 이들 가운데 낯이 익은 교원도 한 명 끼어 있었다. 2004년 7월 금강산에서 연 남북교육자통일대회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는 척을 했다. “얼굴이 더 좋아졌네요.” “내레 남조선 사람인디 안다구. 남조선 동무들 닮았지 않어? 맞디요?” 북쪽 교원이 이날 내게 처음 던진 말이다. 머릿기름을 반질반질하게 발라 올린 머리에 허연 얼굴을 가진 그는 서울 명동거리 어디에 내놔도 될 성 싶었다. 사실 배부른 인민군 하사관처럼 생긴 나로선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그렇게도 듣기 싫어하던 별명이 바로 날더러 ‘인민군’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날 북쪽 교사들의 방문 직전, 무진중은 술렁였다. 정문엔 ‘환영, 남북공동수업.남북교육자 통일행사’라고 적힌 세로 10M 정도의 플래카드가 걸렸다. 본관 건물엔 6.15 공동선언 글귀를 적은 대형 걸게도 내려졌다. 그 크기가 두 개 층을 막을 정도였다. 단일기가 찍힌 애드벌룬도 학교 운동장 위에 떴다. 학생들은 쉬는 시간마다 창문에 고개를 내밀고 밖을 내다봤다. 현관 앞에는 학생들이 직접 그린 37개의 단일기가 펄럭였다. 교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선생님들께 알려드립니다. 오늘 외부에서 손님들이 오시는데 밖으로 나오셔서 환영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중학교에 초등학생들도 와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광주 월산초 민지를 비롯 3명이 그들이다. 이들의 손엔 남북 단일기와 북쪽 교사들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학원 가방이 들려 있었다. “어제 뉴스를 보고 왔어요. 우리끼리 그냥 짜고 왔어요.” ‘선생님이 시켜서 이곳에 왔느냐’는 물음에 아이들이 던진 답변이다. 이들은 북쪽 교사들이 버스에서 내리자 주춤주춤하더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편지를 전달한 뒤, 학교 밖으로 내뺐다. 이 편지엔 다음처럼 적혀 있었다. “북한 아이들에게. 통일이 안 되니까 편지로 보내는 거야. …통일이 안 되도 우리 마음은 통일이 되어 있어. 그러니까 너도 힘내. 2006년 6월 13일 민지가.” 남북공동수업이 ‘친북수업’이라고? 이날 남북 공동수업은 이 학교 본관 4층 도서관에서 펼쳤다. 오후 3시 33분, 북쪽 교사들이 도서관 뒤쪽 자리에 앉았다. 수업이 한창 진행되는 중이었다. 권수희 교사가 2학년 4반 학생 36명 앞에 섰다. 6·15 공동선언의 5개 항을 하나하나 같이 읽으면서 그 뜻을 살핀다. 그리고 합의 이후 변화된 남북관계에 대해 학생들이 발표를 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이어졌다. 이 광경을 남북 교사와 기자들 200여 명이 지켜봤다. 남쪽에서는 차상철 전교조 수석 부위원장과 윤종건 한국교총 회장이 참석했다. 북쪽에서는 김성철 조선교육문화직업총동맹(교직동) 위원장과 김정애 6.15북측위원회 교직원분과위원, 김영식 모란제1중 교장 등이 지켜봤다. 헤드마이크를 쓰고 또랑또랑한 말투로 수업을 진행하는 권 교사는 다음처럼 말했다. “6.15남북 공동선언 때문에 이런 공동수업도 남북이 함께 하게 되었죠.” 이 모습을 바라보는 북쪽 교사 대표들의 눈빛이 빛났다. 이들의 얼굴 표정은 묵직했다. 웃지도 않았다. “오늘 수업이 통일의 길로 한 발짝 다가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는 권 교사의 말을 끝으로 수업이 끝났다. 오후 3시 51분이었다. 북쪽 방문단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김영식 모란제1중 교장은 “꼭 우리 학교 애들을 보는 것 같다”면서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조국통일을 위해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면서 “남북 공동수업이 계속 이어져 조국통일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북쪽 중학교 교원출신인 김정애 위원도 기자들에게 한마디 했다. “남쪽 학생들의 수업 모습을 보니 머지않아 통일의 길이 가까워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날 수업 내용은 6.15 공동선언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부 보수신문은 이를 두고 어김없이 몰매를 때렸다. <동아일보>는 6월 17일치 사설에서 “이날 수업은 ‘북한과 남측의 일부 세력’이 외치는 ‘친북(親北) 반(反)외세’ 교육에 지나지 않았다”고 최고의 악담을 퍼부었다. 북쪽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으니 ‘친북’이며,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을 강조했다고 해서 ‘반외세’라는 논리다. 그럼 북쪽을 보면 잡아 죽일 듯 욕을 해야 하고 외세를 끌어들여 통일을 해야 정상이라는 예기일까. 비뚤어진 펜대가 통일교육을 또 가로막고 나선 셈이다. 한국교총 대표도 ‘자주통일’을 결의하고… 공동수업을 참관한 남북 방문단 인사들은 남북교육자 상봉행사장인 이 학교 체육관으로 바삐 발길을 옮겼다. 오후 3시 56분 방문단이 체육관 앞에 도착하자 “와”하는 함성소리가 터져 올랐다. 손에 단일기를 든 교사들 300여 명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북쪽 교사들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달려온 이들이었다. 김성철 북쪽 교직동위원장 등 일행은 먼저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6.15의 기치 아래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을 이룩합시다.”(김성철) “학생들에게 6.15의 기본 리념인 우리민족끼리 교육 잘 가르쳐 통일조국의 미래가 되기를 바랍니다.”(김철주 사범대학 학장 류윤화) 장인권 전교조 사무처장의 사회로 행사가 시작됐다. 먼저 윤종건 한국교총 회장이 환영사를 하기 위해 연단에 섰다. 윤 회장은 “말주변이 뛰어나지 않아 자칫하면 혼란이나 화해, 엉뚱한 소리가 나올까봐 적어왔다”면서 미리 써놓은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이어 김성철 교직동 위원장이 연대사를 시작했다. 조선직업총동맹 산하기구인 교직동엔 6만여 명의 북쪽 소학교·중학교·대학 교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전임 김영도 위원장과 달리 상당히 소탈한 사람처럼 보였다. 남쪽 교사들을 만날 때마다 털털한 웃음이 그의 입가에 계속 맴돌았다. 그는 원고 없이 즉석에서 말을 토해냈다. 목소리 또한 얼마나 쩌렁쩌렁한지 귀에 콕콕 박혔다. 연설가이자 웅변가였다. “먼 훗날 후대들이 우리 교육자에게 물을 것입니다. 선생님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우리는 역사와 민족 앞에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정의와 애국을 가르치는 성스러운 애국자입니다. 우리 후대들을 무수한 애국의 씨알을 뿌리는 통일조국의 거목으로 키워야 합니다.” 연설 중간 중간에 대여섯 차례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물론 남쪽 교사들 가운데 박수를 치지 않고 굳은 얼굴로 앉아 있는 10여 명의 교원도 끼어 있었다. 검정색 양복을 입은 이들은 뭐가 그리 불안한지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한 채 앉아 있었다. 이 글에서 누구라고 밝히지는 않으련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김정애 북측위원회 교직원분과위원도 연단에 섰다. 그는 남북 교육자 행사 때마다 얼굴을 볼 수 있는 단골 인사다. 얼굴 모습은 인상 좋은 50대 남쪽 중견 여교사와 다를 바 없었다. “6.15교육이야말로 민족교육입니다. 우리 선구자들을 따라 학부형들이 따라 나서게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통일을 이룩하는 선구자가 됩시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남쪽 교원단체는 전교조와 한국교총이었다. ‘남북해외동포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결의문을 낭독하는 자리엔 한영만 한국교총 집행위원장과 김영식 북측 모란제1중 교장이 나섰다. 한국교총 김 집행위원장은 다음과 같은 다소 과격한(?) 결의문 내용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민족자주로 통일의 길을 열어나가자. 자주 없는 통일은 분열이고 투철한 민족의식으로…….” 이 단체도 통일의 길 앞에서 ‘자주’의 중요함을 깨닫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날 결의문은 통일축전 준비단에서 미리 만든 것이었지만 아무튼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무렵 아까 스스로 ‘남쪽 사람들 닮았다’고 자신을 소개한 그 북쪽 교원한테 몇 마디 물어봤다. 그는 남쪽 교사들과 섞여 의자에 앉은 채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북쪽에서는 6.15 공동수업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네요. “우리야 60년 동안 통일수업 해왔디 않습니까. 6.15 수업 당연히 하디요. 이때만 되면 독보사업이나 글쓰기 뭐든지 다 하고 있시요.” 이 인사한테 다른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무진중 학생들 수업하는 모습 보시니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나는 솔직히 말하면 좀 그랬습네다. 그 중요한 6.15 선언을 어떻게 외지 못하고 적어온 것을 읽을 수 있습니까? 통일의식의 부족이야요. 이건 좀 아쉬움이 있었시요.”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이 북쪽 인사에 대한 일화를 더 들을 수 있었다. 한 교육잡지사 여기자가 내가 이 인사와 말을 하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내서 그한테 아는 척을 했다고 한다. 다음은 교육기자 일을 시작한 지 서너 달 정도 된 이 기자의 말이다. “북쪽 교사들 만난다고 하니 정말로 떨리더라고요. 아무튼 선배가 말을 하던 그 사람한테 접근해서 뭐라도 들어볼 요량으로 ‘반갑습니다’ 하고 말을 걸었어요. 그랬더니 뭐라고 했는 줄 알아요. 그 사람이? ‘앞에 보시라요’ 이렇게 퉁명스럽게 딱 한마디 하는 겁니다. 나 참 기가 막혀서…….”
이 기자가 북쪽 인사한테 질문을 던진 때는 바로 김성철 교직동 위원장이 발언한 시각. 아마도 그는 김 위원장의 ‘중요한 발언을 들으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남쪽 사람들도 개성이 있듯이 북쪽 사람들도 개성이 만점이었다. “어느새 성큼 다가오는 날, 피어 만발한 꽃묶음 드려요” 이날 행사의 절정은 이 학교 남녀 학생 60여 명이 교복을 입고 나와 벌인 공연이었다. 이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겨레 하나’, ‘통일의 꽃을 피워요’란 통일 노래를 불렀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우리의 땀을 바치어서 예쁘게 피워요. 겨레의 가슴마다에 민족의 가슴마다에 뜨거운 눈물 뿌리어 활짝 피워요. …폭풍우 막아요. 우리의 힘으로. 통일의 그 날이 어느새 성큼 다가오는 날, 피어 만발한 꽃묶음 드려요.” 학생들에게 노래를 가르친 교사의 손길이 학생들 입을 통해 참석자들한테 다가가는 듯 했다.
요즘 미사일인지 인공위성인지 몰라도 이 문제 때문에 다시 우리 겨레는 ‘전쟁’이라는 소름끼치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 글을 쓰는 6월 22일 현재, 북한의 대화 제의에 미국이 딱 잘라 거절했다는 보도다. 부시 대통령은 “핵탄두 보유를 선언한 불투명한 정권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사람들은 위기감을 느끼게 마련”이라면서 이 같이 선언했다는 것이다. 이럴 때마다 남북교육자 상봉행사에 참석한 교사들은 혹시 다음과 같은 노래가사를 떠올리지는 않을 런지. “폭풍우 막아요. 우리의 힘으로. 통일의 그 날이 어느새 성큼 다가오는 날, 피어 만발한 꽃묶음 드려요.” | |||||||||
2009년 8월 30일 일요일
“내레 남조선 동무들 닮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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