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30일 일요일

머리 쓰다듬어 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발로 차나요?

[학사모를 위한 변명] 나는 학사모입니다
 
윤근혁
 

나는 학사모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이라는 단체의 ‘선량’입니다. 사람의 마음도 선과 악이 싸우듯 같은 단체 속에서도 선과 악이 다투는 법입니다. 학사모의 선과 악 가운데 선을 추구하는 사람, 즉 ‘선량’이랍니다.

▲학사모의 비위 의혹을 제기한 문화일보 2월 23일치 1면 기사.     ©윤근혁
요즘 제가 그렇게 의지해왔던 조동문(조선․동아․문화일보)이 발로 찰 때마다 많이 아픕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가 하는 일을 그렇게 친절하게 보도해주시면서 머리 쓰다듬어 준 때가 엊그제인데, 이제 와서 내동댕이치면 어떡합니까?

지난 2월 23일치 <문화> 보도는 학사모를 ‘학교만 사랑하는 학부모 단체’인 줄만 알았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을 겁니다.

이해합니다. 우리가 교복업체 3곳에 ‘사회 환원 기금’과 ‘기부금’을 요구했다는 보도를 보고 어찌 기겁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앞에서는 값 비싼 교복을 비판하던 단체가 뒤로는 딴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겁니다.

예전에도 그랬듯 또 고발했습니다

일단은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하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도 우리를 ‘음해(!)’하는 ‘마이너 언론사’ 기자들한테 그렇게 했듯 <문화> 기자를 고발 조치했습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치는 법이라고 정말로 ‘재수가 없는 일’이 사흘 터울로 또 터졌습니다. 하필 그곳 식당 옆자리에서 <문화> 기자가 밥을 먹을 게 또 뭐랍니까. “학사모 서울대표 ‘다음 달 얼마 도와줄 건가’”란 제목으로 보도된 2월 27일치 기사를 한번 옮겨 보겠습니다.

“최근 교복업체에 수십억원의 기부금을 요구해 논란을 빚고 있는 학사모의 핵심 간부가 현직 서울시 교육위원을 상대로 지난해 교육위원 선거과정의 불법 선거운동 약점을 거론하며 돈을 요구하는 현장이 문화일보 취재팀에 포착됐다.

26일 낮 서울 종로구 교남동의 한 음식점에서 김유찬 학사모 조직위원장 겸 서울지역 공동대표는 지난해 7월 실시된 서울시 교육위원 선거의 불법행위 공소시효를 들먹이며 이상진 서울시 교육위원에게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했다.”

이 신문 기자의 말로는 그저 우연히 밥을 먹다가 큰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니 위와 같은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기자 쪽에서 보면 한마디로 ‘땡 잡은 것’이지요. 전직 한국교총 산하 초중고교장협의회 회장을 하다가 교육위원으로 말을 갈아 탄 이상진 씨와 김유찬 학사모 간부의 회합을 이런 식으로 취재하게 됐으니까요.

사실 우리는 김유찬 대표의 말처럼 이번 사태를 너무 안일하게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화>기자가 수첩에 옮겼다는 대화록을 한 번 더 옮겨 보겠습니다.

“▲김유찬=(문화일보가 보도한 교복업체 기부금 요구 논란과 관련, 학사모가) 공문 보낸 것 맞다. 또 전화도 걸었다. 그런데 여기서 물러나면 학사모는 끝나는 거다. 오늘 등록금연대 만든다고 하니까, 기자들 또다시 따라 붙더라. 이렇게 하면 된다.

▲이상진=기자들이 왔다면야(학사모가 궁지에 몰려 입지가 좁아지는 것이 아니네)”

김유찬 씨가 참 명석하더군요. 우리에 대한 ‘기부금’ 논란을 ‘등록금 연대’ 기자회견으로 덮어 버리겠다는 말이었으니까요.

‘덮기 전략’에 언론들은 춤췄다

실제로 같은 날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학사모 사무실에서 154개 시민단체가 ‘등록금 인상 저지 범국민연대’를 발족했다면서 기자회견을 벌였습니다. 김씨 말처럼 ‘기자들 따라 붙이기 위한 기자회견’을 언론들은 잘 받아 적더군요. 우리나라 신문 논조에 큰 영향을 주는 <연합 뉴스>와 <뉴시스>가 총대를 확실히 매 주더군요.

다만 <한겨레>만이 다음날 보도에서 “학사모, 돌연 ‘등록금 인상 저지 운동’”이란 제목으로 삐딱하게 보도했더군요. “154개 단체들과 연대를 결성했지만 참여 의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단체 가운데는 등록금을 결정하는 전국 사립 초·중·고·대학 법인들의 모임인 ‘한국사학법인연합회’도 끼여 있었기 때문이지요.

사실 나는 요즘 할 말이 많습니다. 그래서 다음처럼 성명을 내지 않을 수 없었지요.

“학사모는 이익단체가 아닌 비영리단체로 회원들 모두 급료 없이 일하는 자원 봉사자로 구성된 단체인 점 참고하시고 개인들의 사적인 사실까지 모두 밝혀 말씀드리지 못함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수익성 사업이 없었고 관여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투명성과 공정성을 위해 중립을 지키려 지원금도 받지 않고…”

이런 저의 호소를 대하는 국민들의 시선은 따갑더군요. 어떤 누리꾼은 제 홈페이지에 들어와 ‘뻔뻔하다’고 말하는가 하면 ‘차라리 돈사모로 이름을 바꾸라’고 막말을 하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여러분! 저는 억울합니다. 저를 이토록 유명하게 만들고 키워준 곳이 다름 아닌 이른바 ‘메이저 언론’이라는 <조중동문>(조선․중앙․동화․문화일보)이었는데, 나를 감싸 주던 그 펜대를 씻지도 않은 채 우리를 찌르다니요.

제 역사는 그렇게 길지도 않습니다. 2002년 3월에 태어났으니까 이제 다섯 살 걸음마를 갓 뗀 인생일 뿐이라고요.

저는 홈페이지에 다음처럼 우리 단체를 소개해 놨습니다.

“2003년 7월 15일 서울시교육청에 제24호로 단체등록을 받아 현재 전국 11개 지부에 12000여 명의 학부모회원들로만 구성, 회원의 회비로 운영되어온 순수 민간단체입니다.”

우리나라에 민간단체라면 정말 많은데 언론들이 저에 대해서는 유달리 관심과 사랑을 쏟아주니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단지 전교조 소속 노동자 교사들을 반대하고 연가투쟁에 앞장 선 교사들 명단을 발표했을 뿐인데, 그리고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운동에 나섰을 뿐인데 이렇게 환대를 받으니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더군요.

기자회견만 했다하면 <조중동문>이 다뤄주더니

기자회견만 했다하면 <조중동문>이 다뤄주니 이 아니 기쁠 수 있을까요. 하다못해 <조선>은 지난 해 11월 23일 보도에서 ‘연가투쟁 반대 분신 시도’까지 자세히 실어주더군요. 이날은 전교조 연가투쟁 옆에서 기자회견을 하다 학사모 부산대표가 분신을 하려던 것이었지요.

물론 이것 말고도 <조중동문>이 저에 대해서 눈을 질끈 감아 주거나 애써 숨겨 준 것으로 생각되는 사례들은 정말로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상사모’에 대한 것이었는데요. ‘돈사모’는 앞에서 들어서 알겠는데 ‘상사모’가 뭐냐고요? 그럼 <오마이뉴스> 2004년 7월 23일치 윤근혁 기자가 쓴 ‘學사모인가, 賞사모인가?’란 제목의 기사를 보시죠.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學사모)인가, 상장을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賞사모)인가. '안티 전교조' 활동 등 보수 목소리를 내 온 학사모 전·현직 중앙 상임대표, 서울상임대표, 사무국장, 시도지부장 등 핵심임원 13명의 자녀가 이 단체 창립 직후인 2002년부터 현재까지 대통령상 및 국무총리상·장관상 등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모두 현 학사모 고 아무개 상임대표가 총 책임을 맡은 '사랑의 일기 공모', '눈눈수월래' 등 경진대회에서다.”

이 기사는 몇 차례에 걸쳐 상 받은 간부들의 명단을 비롯하여 자세한 보도를 했는데도 일부 방송을 빼곤 일간 신문들이 침묵으로 일관을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가슴을 쓸어내렸지요. 이 기사를 쓴 윤 기자를 고발하는 한편, ‘그 놈의 기자’가 전교조 소속 신문사 기자라는 사실을 들어 성명서를 두서너 차례 내면서 반격을 시작했지요.

물론 윤 기자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지만 저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와 돌아보니 펜대가 흉기더군요

앞서 나온 김유찬 씨 건과 비슷한 일도 이미 2004년 3월에 있었습니다.

당시 학사모 공동대표를 맡은 황 아무개 씨가 투자를 미끼로 교장 부인 등 교육계 인사들로부터 30억여 원을 가로챈 뒤 미국으로 잠적한 사건이었는데요. 이때도 <조중동문> 등 중앙언론들은 대부분 ‘학사모’라는 제 이름 대신 ‘어느 학부모 단체’란 표현을 쓰는 방식 등으로 감춰주었습니다. 얼마나 고마운지.

우리는 그저 성명 등을 통해 ‘우리 단체는 몇 만 명이 모인 단체다. 이번 사건은 학사모와 관련 없는 개인들의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는 식으로 말하면 그만이었지요. 언론들도 이해를 했는지 눈 감아 주더군요. 전교조 소속 조합원이 조금이라도 잘못을 하면 대문짝만하게 보도하는 그런 행동은 우리에겐 없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저의 5년 삶은 질풍노도의 시기였습니다.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의 감시를 피해 살아온 역경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재수 없게 몇 건의 불상사가 생기긴 했지만 중앙 신문들이 제 사업을 잘 보도해주다보니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이렇게 유명하게 되었지요.

왜 저도 교육을 바로 세우겠다는 생각이 없었겠습니까. ‘사랑의 일기’ 사업을 시작한 초창기엔 바른 교육을 해보자는 의지로 들끓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어찌 어찌 하다 보니 참~ 이런 신세가 되었네요.

그런데 요즘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조중동문> 등 저와 가깝게 생각한 언론들이 참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몇 해 전 내가 잘못을 했을 때 그 뽀족한 펜대로 약침을 놓아주기만 했어도 지금과 같은 수십억대의 기부금 논란은 없었을 텐데요.

펜은 쓰기에 따라선 우리 사회의 병을 고치는 약침도 되지만, 어떤 때는 흉기도 되더군요.

월간<우리아이들> 2007년 3월호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1'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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