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지결정론’ 보도, 학교를 ‘불신지옥’으로~ | ||
‘촌지결정론’ 보도, 학교를 ‘불신지옥’으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은 5월 15일 오후 2시 30분.
스승의 날 아이들이 선물한 카네이션을 담은 종이가방을 들고 교문을 나서는 선생님들! 주변을 두리번거리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가방 속에 든 것은 아이들이 정성스레 보낸 편지와 꽃들뿐인데 왜 이리 주눅 든 모습들인지 모를 일이다.
마침, 여기까지 글을 썼는데……. 내가 근무하는 학교 교감이 교과실 문을 열고 눈을 크게 뜨면서 말한다.
“아까부터 교문 밖에서 검정색 차를 끌고 온 사람들이 차 속에서 계속 몰래 사진을 찍는데. 아무래도 기자 같아.”
교감 뒤를 따라 급하게 교문 쪽으로 나가보니 어느 새 그 ‘사진기 멘 사람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언론사 기자인지, 사정기관 사람들인지 알 도리도 없다. 내일 아침 신문에는 ‘선물 가방을 든 교사들’의 모습이 나올 지도 모르는 일. 입이 텁텁했다.
이처럼 스승의 날이 있는 5월이 요즘엔 서로를 의심하는 ‘불신의 달’이 되어 버렸다. 교육의 밑바탕이 사제 간의 믿음이란 점에 비춰보면, 학교 교육은 곧 ‘신뢰 천국, 불신 지옥’인데도 말이다.
사실 올해 4월 교장협의회(교장협)의 ‘스승의 날’ 휴업 결정은 부적절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99년 5월에도 교장협은 올해처럼 휴업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촌지 논란’에 기름을 끼얹은 채 제대로 뜻도 이루지 못했다.
임의단체에 지나지 않는 교장협이 학교장에게 지시한 형식은 아무리 ‘자율 휴업’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더라도 직권남용에 가깝다.
학사운영권한이 학교장에게 있다는 것은 학교장이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해 학사일정을 짜라는 것. 교장협의 지시를 따르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 그렇다.
더구나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47조 1항을 보면 ‘학교 휴업일은 학교장이 학년도가 시작되기 전에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학년도가 시작된 상태에서 학운위 심의도 빠뜨린 채 교장협이 대뜸 휴업일로 하라고 지시했으니 이는 법 위에 교장협이 있는 형국이다.
이 단체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산하조직이면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학교 돈을 빼돌려 사업비에 써왔다는 점을 되새겨보면 더더욱 입맛이 개운치 않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4월 28일, 서울지역 초중고에 ‘학사일정 임의 변경 금지’란 제목의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책임회피성으로 보이긴 하지만 교육청이 법에 따라 움직인 셈이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도 같은 달 15일, “스승의 날에 학교가 쉬는 것은 오히려 교사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부추기고 있다”면서 “내년부터는 휴업 폐지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는 보도다.
물론 교사들 대부분은 ‘스승의 날’에 차라리 쉬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교총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 같은 의견에 자그마치 91.8%의 응답자가 찬성 의견을 나타냈다. 오죽했으면 교사들이 ‘차라리 학교 문을 닫자’고 그랬을까. 이 같은 ‘교육자답지 않은 생각(?)’을 품게 된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푸르른 5월, 속으로만 푸르게 멍드는 선생님들. 5월 그날이 오기만 하면 촌지를 들먹이면서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 이들 누구였나? 몰매로 전국 40만 교사들을 기진맥진하게 만든 사람들은 누구였나?
이제 알만한 교사들은 자동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바로 우리나라 신문, 방송들이 앞장을 섰다고.
스승의 날 수업을 하면 ‘촌지 폭탄’ 때문에 큰일이라고 보도하고, 스승의 날 휴업을 하면 다시 ‘촌지 때문에 그랬다’고 입을 모아 합창한다.
촌지를 받는 일부 교사들의 못된 습성이야 비판을 넘어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전체 교사들이 이 같은 ‘촌지 결정론’식 보도 때문에 ‘불신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일까.
내년엔 교장협이 또 다시 이런 촌지 보도에 기름을 붓지 않았으면 한다. 한입 두 말하는 ‘내신’ 보도가 바다처럼 깊은데 대입 내신 반영 문제를 신문 사설에 매달아 놓고 흥분한 <동아일보>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다. 머리는 뒤틀렸어도 보도는 바로 해야 한다.” 사실 나는 이 신문의 사설을 무시하고 싶었다. 억지가 판을 쳐도 치우친 주장이나마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자유민주주의가 선물한 언론 자유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조그만 꼬투리만 보여도 여봐란 듯 내용을 비틀고 달려드는 수법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더구나 같은 사실을 놓고 한 입으로 두 말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란 참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이 신문이 잡은 꼬투리는 지난 5월 7일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교육상임위)이 내놓은 보도자료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3년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를 살펴봤더니 우리나라 고등학교 사이에 내신 편차가 컷다는 것이다.
이 의원이 내놓은 자료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국내에선 138개 고교를 대상으로 치러진 이 시험에서 어떤 학교는 응시 학생 전원이 전국 상위 40% 안에 들었지만, 상위 40% 안에 한 명도 들지 못한 학교도 있었다. 전체 학생의 95%가 2등급(상위 11%) 이내에 든 우수학교가 있는가 하면 상위 11% 이내에 든 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45곳이나 됐다.”(<동아> 5월 9일치 사설)
이 신문은 ‘학력격차 외면한 채 내신 입시 우기는 교육부’란 제목의 5월 9일치 사설에서 대입 내신 반영 확대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조선일보>도 같은 날 ‘고교간 학력 격차가 바다처럼 넓고 깊은데’란 제목으로 쌍둥이 주장을 펼쳤다.
사실 이날치 <동아>의 사설을 비판하기는 누워서 식은 죽 먹기다. 그들이 이전에 한 정반대의 말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신문의 최근 5월 9일치 사설에 대한 비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신문의 97년 1월 20일, 94년 1월 30일치 사설로 대신할 수 있다. 이 당시도 정부가 내신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내놓은 2008년 대입방안이나 1998년 대입방안은 모두 내신 강화란 점만 놓고 보면 일맥상통한다. 다만 정부의 실체가 ‘열린우리당 주도 참여정부이냐, 한나라당 주도 문민정부이냐’란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주장: “학력이 천차만별임에도 불구하고 내신 성적은 모든 고교에서 상위 4% 안에 들면 똑같이 1등급을 받는다. 이러니 ‘불공정하고 못 믿을 내신’인 것이다.”(06년 사설) 비판: “내신성적반영제도는 상당한 타당성을 갖고 있다. 우선 대학성적 예측도가 높다. 내신성적은 대입학력고사 성적보다 대학 전학년 성적을 두 배 이상 높게 정확히 예측하는 것으로 여러 조사결과 밝혀졌다. …수능시험과 본고사 성적이 좋은 학생보다 내신 성적이 좋은 학생이 대학에서 훨씬 더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다. 내신 성적 우수생들은 노트필기나 예습 복습 등 학습태도에 있어서도 양호하다. 내신 성적의 대학성적 예측도는 우리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에서도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바로 이런 면이 출신고교에 따라 성적편차가 큰데도 내신 성적을 반영하는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94년 사설) 주장: “그럼에도 주요 대학들은 2008학년도 입시에서 내신을 전형요소의 50% 이상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육 당국의 강요에 굴복한 것이지만 학력 격차가 이처럼 심하다면 ‘내신 입시’는 공정한 입시의 포기나 다름없다.”(06년 사설) 비판: “98학년도 대학입시에서 논술고사와 학교생활기록부의 내신 성적 반영비율을 더욱 높이겠다는 교육부 방침을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시 말해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가져올 수 있는 진일보한 방법으로 본다. …지금까지의 대학입시제도는 과열과외라는 사회적 폐단을 낳았다. 논술과 내신 성적 반영비율을 높여 고교교육이 정상화할 수 있다면 이는 획기적인 일이 될 것이다.”(97년 사설) 주장: “젊은이들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관문이 바로 입시이다. 이들이 흘리는 땀과 눈물을 생각해서라도 입시의 대(大)원칙은 누가 뭐래도 ‘학력 우선’이 돼야 한다. 정부는 대학입시에 개입해선 안 된다.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돌려줘 원하는 인재를 뽑을 수 있게 하고…”(06년 사설) 비판: “대학입시제도는 선발기능 외에 중요한 교육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수능시험과 본고사의 출제양식이 달라지자 전국고교의 수업방식이 대전환을 하고 있음이 이를 잘 증명해준다. 고교 내신성적의무반영제도를 폐지하면 고교교육 자체가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정상수업은 커녕 학생들을 교실에 잡아두기도 어렵게 될 것이다.”(94년 사설) 이주호 의원의 보도자료를 간추리면 ‘과학고와 외고 등 특수목적고와 자립형사립고 학생들의 성적은 무척 높은 대신 지방에 있는 일반고 학생들의 성적은 바닥이어서 하나의 잣대로 내신반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른바 <조선><중앙><동아> 등 족벌언론 삼총사와 이주호 의원 등 한나라당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것이 바로 특수목적고와 자립형사립고 확대가 아니었던가. 결과로만 보면 학력 격차를 계속 벌려놓는 운동을 해온 셈이다. 있는 집 자식들의 그 알량한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하던 이들이 이젠 학력 격차를 걱정하고 있다. 그리고 슬그머니 내신 확대 방안에 대한 반대 카드까지 내놨다. 병 주고 약을 만들기는커녕 훼방만 놀고 있는 꼴이다. “교육개방 조기유학 이거 장사 되네!” 우리는 지금 한 편의 미국 직배영화를 보고 있다. 한반도를 무대로 한 이 영화의 제목은 ‘공교육, FTA와 함께 사라지다’이다.
감독 한미 독점자본, 시나리오 <조중동> 삼형제, 주연 부시와 노무현, 조연 한국 학생과 교사들이다. 지난해부터 상영하기 시작해 1년여를 끌어온 이 영화는 이제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고 있다.
제목이 보여주듯 뻔 한 결론을 감추기 위해 여러 장치들이 개발됐다. 특수목적고와 자립형사립고를 놓고 혈투가 진행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특목중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학교도 등장했다.
시나리오 담당인 <조선><중앙><동아> 등 이른바 족벌신문 삼형제는 네거티브와 포지티브라는 양날의 칼을 빼들었다. 평준화와 전교조 깨부수기가 네거티브 전략이라면 자사고와 특목중․고 띠워주기는 포지티브 전략이다. ‘모든 교육은 상품이다’는 의식화 작업을 다각도로 벌이기 위해서다.
모든 영화가 그렇듯 관객인 국민들은 그저 구경만 할 뿐이다. 간혹 ‘스토리가 뻔 한 정략적인 영화를 당장 때려치우라’고 고함을 치는 이도 있지만 금세 영화관의 굉음소리에 묻혀 버린다. 어느새 수많은 관객들은 고도로 계산된 ‘세계화의 덫’에 빠져든다. 교육개방에 대해 국민의 72%가 찬성하고 있다고 한다. <한겨레신문>이 한국사회연구소와 함께 지난 4월 말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다. 영화시장 개방을 놓고서는 찬성 45%, 반대 43% 등으로 팽팽히 맞섰다. 또 농축산업 분야 개방에 대해선 반대가 67%나 되었다. 하지만 조사 대상 분야 가운데 가장 큰 공공 영역으로 분류되고 있는 교육에 대한 개방 의견이 제일 높았다.
이런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교육시민단체들은 “조중동의 끈질긴 공교육 때리기와 이에 편승한 노무현 정부 탓”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미FTA에서 공교육 기관까지 내놓는다면 세계 최초로 교육을 미국에 완전히 열어놓은 나라로 기록될 것이다. 보수언론의 평준화와 전교조 때리기 겸 교육개방 옹호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는 <동아>의 최근 사설에 잘 나와 있다.
“교육시장 개방은 2003년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협상에 포함됐지만 전교조가 가장 완강하게 반대해 왔다. …교사집단이 막무가내로 사회 변화에 강력히 저항할 수 있는 힘의 일부는 바로 참여정부의 ‘교육 코드’에서 나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평준화제도를 고집하는 교육정책은 전교조의 교육관과 일치한다.”(3월 8일치 <동아> 사설)
<조중동> 삼형제는 이 같은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그 대표 격이 바로 다음과 같은 특목중․고의 해외유학 대체논리다.
“조기유학 보내면 한 해 수천만원이, 방학 때 한 달짜리 단기 연수만 보내도 수백만원이 든다. 국제중학교는 1년에 1000만원이면 된다. …전교조는 부잣집 아이들은 수천만원 들여 조기 유학 보내도 되지만, 그보다 못한 집 아이가 더 적은 돈으로 국내에서 영어를 배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위선도 이런 위선이 없다.”(4월 10일치 <조선>사설) 얼핏 보면 맞는 얘기 같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특목중이나 특목고, 자사고가 조기 유학을 막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말짱 헛소리다. 오히려 이들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조기 유학이 판치고 있다.
올 3월 청심국제중학교 입학생 전체 100명 가운데 21명이 서울 강남에 있는 A학원 동창생 출신이었다. 이 학원은 현재 국제중 입학을 위한 캐나다 유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상은 초등 5학년생이고 기간은 1년이다.
실제로 <조선>은 4월 10일치 보도에서 “청심국제중에 특별전형은 ‘국제인재’ 30명과 ‘외국어우수자’ 20명으로 이루어진다. 현재 1기생 중 해외체류 경험자 비율은 60% 정도”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 청심국제중 교감도 전화통화에서 “정확히 조사해보지는 않았지만 전체 입학생의 30명 정도는 해외에 체류했던 학생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
대표적인 자사고인 민족사관고도 올해 입학생 가운데 어학연수와 유학으로 해외에 6개월 이상 머무른 학생은 전체의 37%나 됐다.
청심국제중과 같은 특목중과 민족사관고와 같은 자사고에 가기 위해 우리나라 어린 학생들은 해외유학을 위한 보따리를 싸야 하는 것이다. <조선> 등 보수 신문들은 이런 기막힌 현실을 못 보는 것일까, 아니면 안 보는 것일까.
족벌신문들은 현재 바쁘다. 코흘리개 초등학생부터 중고생까지 조기유학 장사를 하기 위해서다.
<조선>은 ‘국제교류센터’를 차려놓고 미국, 캐나다 조기유학생을 모으고 있다. 초3생 말레이시아 영어캠프도 3주간 여는데 이는 저소득층을 위한 눈물겨운 배려로 해석해야 할까. <동아>와 <중앙>도 각각 ‘동아유학’, ‘중앙일보 유학센터’란 사이트에서 초등생까지 겨냥한 장사판을 벌렸다.
<한겨레> 또한 덩달아 조기유학 장사에 뛰어들어 설치고 있다. 슬픈 일이다. 이 신문은 ‘교육과 미래’란 사이트에서 초등 4학년생 등을 대상으로 캐나다 등 영어권 나라 행 조기유학 광고전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 신문은 지금 장사의 재미에 한껏 빠져 있다. 교육이 미쳐 돌아가도 자기 주머니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심보다. 이 같은 잘못된 돈 계산속에서 영화 시나리오를 양산하는 신문들을 과연 누가 제어할 것인가.
월간<우리교육> 2006년 6월호에 쓴 글입니다. | ||
| 2006/06/04 [17:50] ⓒ 윤근혁의 교육돋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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