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난사람16] 춘천 H초 김경호 분회장 |
|
지난 8월 7일 교육부 홈페이지 민원실에는 초등학교 ‘학력우수상’에 관한 학부모 질문이 올라왔다. 초등 2학년과 5학년 두 자녀를 둔 강원도 춘천에 있는 한 학부모가 올린 글이었다. “학교는 시험 평균 90점이 넘는 아이들에게 학력우수상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시험을 보고 와서는 ‘우리 반 1등은 평균이 몇 점이다. 옆 반은 몇 명이 받았다’면서 시무룩해합니다. 시험점수로 상을 주는 일을 보고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보니 안쓰럽습니다. 90점 넘는 서너 명의 아이들을 위해 30명이 넘는 아이들이 스스로 ‘나는 공부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습니다.” 이런 글에 대한 교육부 답변은 어땠을까. 교육부 초중등교육정책과에서 평가 업무를 맡고 있는 남 아무개 연구관 명의로 올라있는 대답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초등학교의 경우 성적 산출은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평가도) 과목별로 서술식으로 나타내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학력우수상을 주는 것은 학생들이 공부를 하도록 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는 이와 같은 경우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들며 이 내용은 강원도교육청 초등교육과에 진정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교육부 관리의 답변치곤 제법 괜찮은 내용이었다. 7차 교육과정의 긍정 요소나마 따르려고 하는 노력이 곳곳에서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 명령을 따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학부모가 자녀를 보낸 학교는 바로 강원도 춘천에 있는 어느 학교다. 이 학교와 비슷한 형편인 춘천 H초는 지난 7월 20일 여름방학식 날 학생들에게 학력우수상을 줬다. 그런데 이 상은 반의반쪽짜리 상이었다. 전체 18학급 가운데 1학년과 대상자 없는 학급을 빼고 다섯 학급학생만 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학력우수상에 반대하는 나머지 대다수 담임교사들은 학교장에게 학력우수 학생들의 이름을 내지 않은 것이다. 사실 교사들의 명단 제출거부는 지시불이행에 따른 징계까지 감수해야 할 정도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교사로선 쉽지 않은 결정이었던 것이다. 이 학교 교사들은 학력우수상을 주는 날에 맞춰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치고 고치면서 조심스럽게 작성해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강원도교육감에게도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2006년 학교교육계획 수립 시 전체 교사가 시험점수에 따른 학력상을 없애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그러나 7월 3일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부모 3명의 발의로 학력상 부활 안건이 통과되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학력상을 시상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이번 교장선생님의 결정은 정해진 법령에 따라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하는 초중등교육법과 7차 교육과정 운영 지침에 어긋난다고 봅니다. 때문에 교사인 우리들은 그 명을 따라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이 학교의 학력우수상 반대운동에 뛰어든 김경호(33, 4학년 1반 담임) 분회장. 그를 지난 8월 14일 춘천 H초에서 만났다. 그는 “선생님들이 학력상 반대운동에 앞장섰고 자신은 그저 이 분들과 함께 했을 뿐”이라면서 수줍게 웃었다. 허여멀건 얼굴, 선한 눈매, 신세대다운 옷차림…. 김 교사는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여느 젊은 청년처럼 밝고 명랑해보였다. 하지만 그는 일제고사와 학력상 얘기가 나오자 눈에 빛이 났다. -요즘 방학인데도 골이 아프지 않나. “요즘 괴롭다. 마치 교장선생님과 일부 학부모를 한편으로 하고 서로 대립하는 것 같아 더 그렇다. 마음 졸이는 동료 선생님을 볼 때마다 불안하기도 하다.” “학력상은 학원 영향력상이다” -왜 눈 딱 감고 ‘학력상’ 주지 않고 이렇게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나. “학력상 자체가 반교육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두 번 사설 일제고사 시험지로 치른 실력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학력인가. 이것은 학력이 아니라 학원 영향력을 판가름하는 상일뿐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제대로 된 평가를 통해 학력을 높여야지 외부 시험지 내용을 갖고 학력상을 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래도 안 주는 것보다는 학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게 학부모와 교장의 주장이 아닌가. “아이들이 학원 족보를 들고 다니면서 공부하도록 하는 게 무슨 학력과 인연이 있는가. 수업시간에 학원숙제를 하고 있는 아이, 일제고사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학원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슬프다. 교사는 아이들 누구에게나 햇볕을 비춰주듯 관심과 사랑을 줘야 한다. 아이들에 대한 보상도 마찬가지다. 저마다의 소질에 따른 칭찬과 상이 필요하다. 그런데 일제고사 시험지를 갖고 학력상만 주려고 하니 이게 말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학력상을 주면 어떤 문제가 생기리라 보는가. “행복한 교실이 깨진다고 본다. 학급운영 결과와 아이들의 발전이 시험 한번으로 가려질 수 있는 문제인가. 그런데 일제고사를 통해 학력상을 주는 한 한 학기 동안의 학급 농사는 공염불이 된다. 오로지 90점이 그 반에서 몇 명이 나왔느냐가 평가의 기본이 된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교육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전체 담임교사들 18명 가운데 14명이 학력상에 반대 뜻을 나타냈다. 정말로 높은 참여율인데…. “올해 2월 전체 교사들은 학력상을 주지 않기로 합의하고 학교운영계획서도 그렇게 만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3월 새로 오신 교장 선생님이 상황을 뒤집은 것이다. 7월 3일엔 학부모가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력상 부활을 발의하고 교장 선생님도 찬성 발언을 했다. 학교운영위원회가 학력상 부활이라는 학교교육과정과 관련된 의결을 할 수 없는데도 교장 선생님께서 학운위 결정을 집행해야 한다면서 학력상을 강행한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 어떻게 교사들이 반대하지 않을 수 있겠나.” -학부모들이 학력상을 줘야 한다면서 학운위 안건으로 올린 것도 처음 듣는 얘기고, 전체 교사들이 학력상을 주지 않기로 합의한 사실을 알면서도 새로운 교장이 학부모들이 낸 안건에 찬성한 것 또한 해괴한 일로 보인다. “사실 교장 선생님이 학력우수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 게 화근이었다. 심의기관인 학교운영위원회가 학교 교육과정을 새로 바꿀 수 없는 것인데도 학운위 안건이 통과되자마자 이를 따라야 한다면서 학력상을 득달같이 준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 같은 학부모들의 사상 초유 행위에 대해 교육부 중견 관리에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물어봤다. 그는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면서 “법령 검토를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심의기관인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시상 방식까지 결정한다면 제대로 된 교육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해 문제가 있음을 시사했다. 이 학교 교사들은 7월 14일 학교장에게 학력상의 부당함과 절차상의 잘못을 지적하는 소명서를 보냈다. 교사 대부분이 동참한 14명이 서명한 소명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학력상 부활 결정에서 안타까운 점은 일부 학부모들의 학력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지도하고 설득하셔야 할 교장 선생님께서 그 1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교사와 일부 학부모와의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했습니다. 교육과정 운영과 평가의 주체인 교사들의 사기를 꺾어 버리는 사태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강원도교육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는 이때부터 H초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공방이 오갔다. 그 숫자만 8월 초까지 수십 건에 이르렀다. 일부 학부모는 교사들의 사생활과 관계된 내용과 함께 <조선일보>식 전교조 교사 몰매 때리기 성 글을 올리기도 했다. 나는 이 같은 모습을 지켜보면서 학력상 논란의 배후엔 지역 교장협의회에서 담합 형태로 치루고 있는 사설 일제고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내용을 인터넷신문에 쓴 글을 여기에 일부 옮기면 다음과 같다. 초등학교에서도 사설 업체 일제고사…교육청은 뒷짐만 고등학교에 이어 초등학교에서도 특정 사설업체에서 시험지를 일괄 구입, 일제고사를 치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7월 강원도 춘천지역 상당수의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더구나 지역 교장협의회(교장협)까지 나서서 특정업체의 상호를 들먹이며 공동시험 일자를 각 학교에 통보하는 등 편의까지 제공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예상된다. 이는 사설업체의 시험(사설 모의고사)을 전면 금지한 교육부 2001년 지침과 올해 초 공문을 정면으로 거스른 것이라는 지적이다. 사설업체가 만든 시험지로 초등학교에서 일제고사를 공식 시행한 사실이 광범위하게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원교원단체총연합회(강원교총) 산하 임의단체인 춘천시 교장협은 지난 6월 22일 이 지역 38개 공립초등학교에 전자 메신저를 보냈다. 기자가 입수한 메신저 갈무리 화면에 따르면 교장협은 전자문서에서 "교장협의회에서 결정된 1학기말 평가일정에 대해 알려드린다"면서 7월 5·6일 이틀간에 걸쳐 시험을 치를 것을 각 학교에 권고했다. 저학년과 고학년을 나눠 과목까지 배정했다. 이어 교장협은 "○○평가사에서 시험지를 구입하여 (시험을) 실시할 예정인 학교에서는 가능하면 위 일정에 따라 평가계획을 세우기 바란다"고 적어 놨다. 특정업체가 제작한 시험지 구입을 기정사실화한 셈이다. 교장협 권고에 따라 이 지역 H초 등 상당수의 초등학교들은 실제로 사설업체의 시험지로 일제고사를 치른 것으로 확인됐다. 전교조 강원지부 초등위원회가 이 지역 38개 초등학교 가운데 21개 학교를 무작위로 뽑아 조사한 결과 16개 학교가 사설업체 시험 또는 자체 시험으로 일제고사를 치렀다. 이는 교육부 고시 제 1997-15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거스른 행위라는 지적이다. 이 7차 교육과정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같은 일제식 시험을 사실상 금지하는 대신 교과활동 평가는 학생의 활동 등을 파악하여 서술적으로 기록토록 했다. 더구나 H초 교장이 이같은 사설 일제고사 결과를 갖고 90점 이상 학생을 뽑아 학력 우등상 수여를 강행했다. 이에 대해 이 학교 담임교사 18명 가운데 9명이 대상 학생 명단 제출을 거부하는 등 잡음이 일고 있다. 이 학교는 올해 2월 학교교육과정과 학교교육계획서를 작성하면서 학력우등상을 주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배희철 전교조 강원지부 초등위원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초등 일제고사가 강원도 초등 교장협의회의 결의로 다시 부활하고 있어 걱정"이라면서 "교육청은 불법 사설 일제고사에 대해 조사에 나서고, 교장협은 일제고사 시행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허아무개 춘천 교장협 회장(ㅇ초 교장)은 "교장협에서는 특정업체 시험지를 구입토록 결정한 바도 없고 결정할 수도 없다"고 관련 사실을 부인하면서 "○○평가사 시험일을 맞추도록 한 것은 사전 시험지 유출에 따른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교육당국은 초등학교의 사설 시험에 대해 "2001년 교육부 지침은 고교 모의고사를 겨냥했던 것"이라면서 대응을 하지 않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교육부와 강원도교육청 중견관리는 18일 전화통화에서 "사설 모의고사를 금지토록 한 지침은 고교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초등 사설 시험이 불법인지 여부는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기등교(0교시) 금지 관련 교육부 지침도 고교생을 대상으로 했지만 이후 '초등생 0교시 수업'에도 확대 적용한 전례가 있다. -이번 학력상 반대운동을 하면서 힘도 들었지만 힘도 많이 받은 것 같다. “아무래도 주변 교사들이 대부분 동참해 준 것이 가장 큰 힘이었다. 전교조 분회 모임도 수차례 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모은 뒤 일을 진행하니까 대부분 바른 판단이 내려졌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전교조 분회를 중심으로 아이들과 교육을 위해 힘을 모으니 마음도 뿌듯해지더라.” 그대들은 무엇 때문에 힘이 부쩍부쩍 솟는가 지난 8월 18일 이 학교 교사들과 학부모는 이른바 대타협에 성공했다. 교사 학부모 토론회에서 학부모들이 ‘시상방식에 대해서는 교사들의 의견에 따르도록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 이 학교 최 아무개 교장은 전화통화에서 “2학기 학력상에 대해서는 교사들에게 공이 넘어 온만큼 방법상의 문제에 대해 다시 논의할 것”이라고 말해 학력상을 철회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최 교장은 이번 논란과 관련 “내가 학부모를 충동질해서 학력상을 부활시키려고 한 것은 절대 아니다”면서 “표결에서는 개인적으로 찬성했지만 선생님들이 학력상 부활에 반대한다면 따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학력상을 놓고 벌어진 한 여름의 설전은 이렇게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 뽀빠이는 당근을 먹으면 힘이 솟는다. 교사들은 무엇을 보면 힘이 솟을까. 아이들을 우선한 참교육을 위해 발 벗고 나선 H초 교사들의 모습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월간<우리아이들> 2006년 9월호에 쓴 글입니다. |
2009년 8월 30일 일요일
“학력상 반대 힘 모으니 뿌듯하더라”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