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30일 일요일

‘황소 얼굴’ 이건 위원을 아시나요?

윤근혁이 만난 사람 <14>
 
윤근혁
 
 

▲이건 서울시교육위원.     ©윤근혁
그를 만난 날은 ‘스승의 날’ 다음 날이었다.

 

이건 서울시교육위원(63). 까무잡잡한 얼굴에 수줍게 웃는 웃음이 어쩐지 정이 간다. 쌀집 가게 아저씨 같은 모습을 보면 어느 자리에서건 툭 터놓고 말을 걸고 싶다.

 

그한테서 ‘서울시교육위원’이라는 직함에 베어있는 관료성과 정치성을 찾기는 무척 어렵다. 오히려 풀이 죽어 있는 듯한 그의 쓴 웃음을 볼 때마다 ‘고개 숙인 중년 교사들’이 떠오른다. 그렇다. 그의 얼굴은 바로 우리 시대 이 땅의 초등 교사들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100달리기를 해왔습니다”

 

“87년부터 올 해까지 100미터 달리기를 해왔습니다. 교육개혁과 참교육 하겠노라고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벌써 20년이 되었네요.”

 

그의 달리기 출발점은 87년 전국초등교육협의회 정책실장을 맡으면서부터다. 이듬해엔 전교조 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 관동지회장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89년 이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에 빠져들었다. 2000년엔 전교조 부위원장이란 직책까지 맡게 됐다.

 

“87년에 글쓰기 독서운동을 하고 있는 후배 이주영 선생이 나를 이런 길로 이끌었어요. 후배들이 ‘한번 앞장 서시지요’하고 권유를 한 것이죠. 그 때는 별 의식도 없었어요.”

 

나이 40줄을 넘긴 그는 이 당시부터 사회과학 책을 파고들었다고 한다. 그저 평범한 초등교사이던 그가 늦깎이 사회과학도가 된 셈이다. 평탄하지만은 않은 인생길이 시작된 것이다.

 

참 이상했다. 지난 난 고생길을 말로 풀어놓으면서부터 풀 죽은 듯한 그의 쓴 웃음은 어느 새 자취를 감췄다. 대신 ‘웃고 있는 힘센 황소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서울답십리초와 배봉초 등 7개 학교를 돌며 지낸 31년 교사 생활에서 일대 전환점이 생긴 때는 2002년이었다. 서울시교육위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것이다. 전교조 조직 후보 당선자 7명 가운데 유일한 초등교사 출신이었다. 현재 서울시교육위원 전체 15명 가운데 초등교사 출신은 고작 3명뿐이다.

 

‘대학교수는 교육위원을 할 수 있지만 초등교사는 할 수 없다’는 이상한 법 규정에 따라 그는 교단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일 서울시교육청으로 출근했다.

 

비록 교단에는 설 수 없지만 또 다른 형태의 교사인생이 시작된 셈이다. 그는 날마다 오전 9시 30분이면 서울시교육청 5층에 있는 서울시교육위윈회로 출근하고 저녁 6시 30분에 칼 퇴근했다. 서울교육혁신을 위한 자료를 살펴보고 교사들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의 교실은 서울시교육위원회 본회의장이 된 것이다.

 

상당수의 교육위원들이 주로 회기 때만 얼굴을 내미는 것에 비춰보면 이 위원의 ‘칼 같은’ 출퇴근 모습은 서울시교육청 관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4년 동안 정말 정신없이 보냈어요. 학교에 매일 출근하듯 나는 교육위원회에서 일을 했습니다.”


“칼 출근 칼 퇴근 생활 4년”

▲이건 서울시교육위원.     ©윤근혁

하지만 그는 4년 동안 월급을 받지 못했다. 한달에 활동비조로 150만원씩을 받은 게 전부다. 혼자 버는 몸이라 생활이 넉넉하지 않았음은 당연지사. 승용차를 타고 다니다가 ‘기름값을 줄일 생각’으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교육청을 오갔다.

 

그는 왜 남이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고지식하게 일해 왔을까. 감시하는 사람도 없고 상을 주는 사람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 깊은 뜻은 그가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보 4월호’에 적은 글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늘진 우리 아이들의 얼굴을 생각해보라. 외국인들은 한국인은 웃음이 없는 화난 사람 같다고 한다는데 이제는 유치원생들도 웃음을 잃게 되었으니 이게 정말 이렇게 되어야만 할까? …어릴 때부터 과외를 하게 되면 틀에 갇힌 교육이 되어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고 창의력도 잃게 된다. 그 원인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그의 교육위원 4년 활동은 웃음 잃은 아이들의 웃음을 찾아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다음처럼 굵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정활동 해보니까 아이들을 위해서는 초등교육이 참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문제가 곪아 터지는 곳이 바로 초등교육이었어요.”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들어서고 제일 먼저 한일이 있다. 바로 학력신장방안이다. 이에 대한 그의 비판은 매섭다. 지금 우리나라 아이들이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탈인지, 아니면 공부를 너무 적게 해서 탈인지 한 번 따져보라는 것이다.

 

이 교육위원은 공 교육감의 이 같은 생뚱맞기까지 한 학력신장방안을 겨냥해 ‘학원밀착형방안’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지금 학력신장방안이 사교육을 먹여 살리고 있어요. 학교마다 일제고사를 줄줄이 보게 되었으니 불안한 학부모들이 학원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학력제일주의 구호 속에 교육의 본질인 인성교육과 공동체교육은 꼬리를 내리고 있다는 게 이 위원의 분석이다. 그는 “공 교육감이 왜 이렇게 학원 돈 벌어주기에 나서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학원밀착형 교육관이 교육을 어지럽히고…

 

일종의 특수목적중학교인 국제중학교 신설 결정 또한 이 위원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사학재단인 영훈학원과 대원학원이 낸 국제중학교 설립계획을 승인하기로 지난 4월 결정한 바 있다.

 

“과외 받은 아이들이 무더기로 들어가고, 외국 갔다 온 아이들이 우대받고…. 국제중학교는 귀족학교란 사실이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그는 서울교육청의 이런 결정은 교육을 생각하지 않는 비뚤어진 교육관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이른바 ‘학원밀착형 교육관’이 공교육을 파괴하고 있다는 분석인 것이다.

 

“국제중학교가 생기면 중학교의 평준화를 깨는 것이 됩니다. 국제중학교가 서울에 생기면 전국에 다 생길 겁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교육이 되면서 학원만 돈 벌어주는 것이 되는 것이지요. 아이들의 웃음과 진정한 의미의 교육은 사그라지게 되어 있어요.”

 

6월 초 국제중 신설을 놓고 서울시교육위에서도 한판 대결이 벌어진다. 교육청이 신설안을 교육위에 올릴 계획이기 때문이다.

 

4년 교육위원 임기 동안 그가 앞장서서 해놓은 일은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소년조선, 소년한국, 어린이동아 등 소년신문의 집단 강제구독에 대해 제동을 건 것이다.

 

그는 두 달에 한번씩 교육감을 불러다가 질문을 하는 시정 질의에서 빠짐없이 소년신문 구독에 대한 문제를 따졌다. 다음은 지난 4월 18일에 진행된 191회 임시회 회의록이다.

 

“이건 위원입니다. 국가청렴위원회에서 소년신문을 구독시키고 받는 발전기금을 불법찬조금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공정택 교육감께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전 회의에서 ‘걱정하지 마라, 내가 지도를 철저히 하겠다’ 했는데 아직도 초등학교에서 소년신문 댓가성 기부금을 받고 있습니다. 3월 27일 공 교육감은 교장연수에서 정부 방침에 정면 배치되는 지시를 했습니다. ‘소년신문 단체구독을 교장에게 맡겨놓지 신문 구독한 것까지 난리다. 국가청렴위원회에서도 유권해석을 내려 나에게 고통을 준다. 학교에서 신문 보는 것이 뭐가 그리 나쁘냐, 교장선생님들이 알아서 하라’라고 말해서 박수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사실입니까?”

 

올해 소년신문을 학교에서 집단 구독하지 않는 학교는 서울에서 200여 개 학교로 늘어났다. 4년 전에 540개 전 학교가 일제 구독하던 것에 견줘보면 많이 줄어든 수치다. 이런 성과 뒤엔 이 위원의 활동이 숨어 있었다.

 

4월 중순께 나는 소년신문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이 위원을 만난 일이 있다. 그는 학교장들이 보낸 신문 구독을 종용하는 가정통신문 문서 한 뭉텅이를 30여 분에 걸쳐 손수 복사하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컸다.


그 배후엔 초등교장협의회가 있다

 

이 위원은 소년신문 집단 구독 등 수십 년 묵은 관행의 배후엔 교육청 말고도 교장협의회라는 임의단체가 있다고 강조한다. 교장협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산하단체다. 지난해까지 아이들에게 써야 할 학교운영비를 빼내 조직운영비로 써서 언론의 도마에 오르내린 단체다.

 

“소년신문은 교장 한사람 구워삶으면 1000명의 독자를 확보할 수 있어요. 내용을 좋게 만들기보다는 교장에 대한 로비가 훨씬 이득인 것이지요. 이렇게 되니 신문 내용이 엉망진창이 된 것입니다.”

 

초등학교의 시대에 뒤 떨어진 행정 또한 교장협이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교육청 관리들은 그래도 시대의 변화를 따라 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정작 초등학교 개혁의 장벽은 교장들의 이권 모임인 교장협입니다. 이 단체는 아래에서 올라오는 의견을 가로막고 위에서 내리는 개혁 조치도 막아서는 장벽입니다. 장벽!”

 

이 교장협은 총회를 열 때마다 교장 책임경영제를 주장하고 학교운영위원회 의결기구화를 반대해왔다. 교원평가제를 찬성하는 대신 교장공모제와 보직제엔 정면으로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밖에도 이 위원 등 전교조 출신 교원위원들의 문제제기로 없어진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지난해엔 해방 이후 각 학교에서 진행하던 ‘애국조회’란 명칭도 사라졌다. 학교 돈을 빼돌려 자체 활동비로 써오던 교장회비 지출 관행 또한 철퇴를 맞았다.

 

또 올 5월엔 ‘좋은학교만들기사업’이란 이벤트성 사업비를 절반으로 잘라내 학생 수업준비물 자료지원비로 쓰도록 했다. 이에 따라 당장 올해 2학기부터 서울 전체 초등학교 학생들 한 명마다 8천원씩의 지원금을 받게 됐다.


그는 유심히 보아야 엿볼 수 있는 사람

 

이 같은 일은 해온 이 위원은 오는 8월 31일 임기를 앞두고 아쉬운 게 많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우선 사립복마전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 그 첫 번째란다. 인권학원과 동일학원 해직교사 복직을 실현하려고 노력했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 탓이다.

 

학력신장방안이라는 엉뚱한 서울교육지표를 완전히 막지 못한 것 또한 아쉽다고 덧붙였다. “이 해괴한 방안에 따라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가신 대신 학원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오는 9월 1일부터는 서울시교육위원회에서 이 위원을 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재출마를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교조 서울지부 소속 전체 분회장들이 조직 후보 7명을 새로 뽑았는데 이 위원은 고배를 마셨다. 뜻밖의 결과에 이 위원은 낙담하기도 했단다.

 

“사실 난 의정활동을 열심히 해왔고 유일하게 나선 초등 출신이기 때문에 분회장님들이 1등으로 뽑아주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헛웃음만 지을 뿐.

 

“달리기를 하다가 딱 멈추니까 지금은 조금 숨이 찬 상태에요. 막막하다고 할까요.”

그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이 위원은 곧 후배들을 위해 새로운 교육운동의 ‘아이템’을 내놓을 것이리라.

 

‘후배 초등교사들한테 하고픈 말을 해 달라’는 말을 던져봤다. 이내 돌아오는 반응은 “특별히 할말도 없는데…”하는 조심스런 태도다. 이럴 줄 알았다. 이 위원은 사람들 앞에서 멋있게 말하지 못한다. 후배 교사들 앞에서도 이른바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관심을 갖은 이들이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보이는 그 모습이 있을 뿐.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앞으로 나가는….

 

“학교개혁 없는 교육개혁은 헛구호입니다. 그럼 학교개혁은 누가 하느냐. 교사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 혼자보다는 열사람 이상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아이들을 위해 나서주었으면 합니다. 무관심은 죄악입니다.”

 

월간<우리아이들> 2006년 6월호에 쓴 것입니다.


 
2006/06/04 [18:08] ⓒ 윤근혁의 교육돋보기
 
늘~건강하세요. 이해옥 06/06/28 [11:05] 수정 삭제
  위원활동 하시느라 많이 수척해 지셨네요. 그렇게 고생하셨는데 "사실 난 의정활동을 열심히 해왔고 유일하게 나선 초등교사 출신이기 때문에 분회장님 들이 1등으로 뽑아 주실줄 알았어요" 그런데...라는 마지막 멘트가 전교조에게 배신 당했다는 심정을 담고있는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이 위원님 다시는 그러한 조직에서 일하지 마세요. 늘~건강하시고 가내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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