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운동이 한창 진행될 때인 2007년 11월 30일. 이주호 현 교육과학기술부 차관과 야당 국회의원 등이 맞붙는 교원정책토론회 사회를 본 적이 있다.
이 차관의 당시 직함은 이명박 후보 일류국가비전위 교육분과위원장. 교육공약을 책임진 사람이었다. 이 토론회를 지켜본 한 지인은 나한테 다음처럼 말했다.
“대단하네요. 이주호가 상당히 전문적이고 많이 알고 있네요. 무책임한 명문고 전도사인줄만 알았더니 그의 말이 모두 맞는 말 같아요. 야당의원은 그 앞에선 새 발의 피군요.”
그는 “국민들도 이런 이주호 말을 직접 듣는다면 그의 미사여구에 금방 빠져들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로부터 2년이 흐른 현재, 이주호는 교육 소통령 노릇을 하고 있다. 얼굴 마담 장관 위 실세 차관인 셈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교육현장을 ‘현지 지도’해 쏟아내는 말이 곧 교육정책이 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교육정책들은 모두 멋있는 이름뿐이다. 하지만 너무 잦은 정책 발표에 헷갈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다음은 이 차관의 야심작인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 관련 기사를 다룬 <위클리경향> 8월 25일치 “고교 신조어, 학부모들 ‘헷갈려’” 내용이다.
“이명박 정부가 만든 자율형 사립고, 기숙형 공립고, 마이스터고 등과 기존의 특목고 및 일반계 고교를 합하면 선택할 수 있는 학교는 10여 가지. 고교 다양화는 학부모에게 구분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신문을 통해 자율고에 대해 알게 됐다는 학부모 성모씨는 어떤 신문은 ‘자립형 사립고’를 자사고라 지칭하고, 어떤 신문은 ‘자율형 사립고’를 자사고라 표현한다. 그래서 두 학교가 같은 학교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고교체제만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자립형사립고, 외국어고, 과학고, 특수목적고, 자율형사립고, 개방형자율학교, 자율형공립고, 기숙형공립고, 마이스터고….
이 가운데 이명박 정부 들어 생겨난 학교 형태는 자율형사립고와 자율형공립고, 기숙형공립고, 마이스터고다. 주로 자율이란 말이 많이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앞의 <위클리경향> 기사와 비슷한 형태의 기사 하나만 더 살펴보자. “학교 '자율 바람' 부모들 헷갈려”란 제목의 <부산일보> 7월 17일치 기사다.
“최근 새로운 형태의 고교가 잇따라 생겨나면서 학부모들은 ‘도대체 뭐가 다른지 모르겠고 헷갈리기만 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자율형 공립고의 경우 기존 '개방형 자율학교'와 차별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부산의 한 공립고 교장은 ‘개방형 자율학교가 참여정부의 작품이다 보니 자율형 사립고와 유사한 개념의 자율형 공립고로 정체성을 새로 세우려는 시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부모들은 헷갈려할 지 몰라도 뭔가 좋은 학교가 자꾸 생겨난다는 프레임은 형성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들의 노림수는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교원정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해 4월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이 나왔고, 이후 학교자율화 계획은 잊혀질 만 하면 반복 발표된다. 수업전문성 제고 방안은 9월 2일 나왔고, 사교육 없는 학교도 2학기 들어 본격화되고 있다. 대입 자율화 방안은 이미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위에서 나온 정책 이름을 전달하는 노릇을 하는 곳이 바론 언론이다. 그런데 언론들이 학교자율화, 사교육 없는 학교, 수업전문성 제고 방안, 대입자율화 따위의 정책을 보도하면 보도할수록 현 정부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
‘자 보시라. 자율과 수업전문성, 사교육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 이런 정책이 얼마나 좋은가!’
반대로 위와 같은 정책에 반대운동을 펼쳐야 하는 단체로선 여간 곤혹스런 일이 아니다.
‘사교육 없는 학교를 왜 반대하는가’, ‘수업전문성을 제고 해야지 왜 반대하는가’, ‘자율화를 하겠다는 데 반대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란 질문에 금방 부딪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이 같이 고도로 계산된 작명법은 정권차원에서 진행되는 느낌이다. 권위주의에 빠진 정권일수록 이를 감추기 위해 빼드는 무기가 언어 훔쳐오기다. 최근 청와대가 벌이고 있는 ‘서민 놀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선거전술에서 많이 쓰인 상징조작인 셈이다.
이와 더불어 그들은 뭔가 새로운 교육정책의 활로를 찾고 있는 모습을 국민의 머릿속에 새겨나가고 있다. 이런 형편에서 운동단체가 반대운동을 하면 할수록 발목 잡기로 비치게 되어있다.
이처럼 현 정부와 이를 받아쓰기하는 언론이 계속 교육의제를 끌고 나가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교육운동단체가 의제를 선점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다.
월간<우리아이들> 2009년 10월호 교육기사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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