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0일 목요일

“동안거 한 번 없이 앞에 섰네, …말을 앞세워 말 못 들었네”

 

고춘식 한성여중 전 교장, 졸업생 270명에게 맞춤식 시조 선물

 


“너희들 중학교 졸업할 때 나도 교사 생활 졸업하니까, 졸업 선물로 시조 한편씩을 써주겠다.”


서울 한성여중 선출직 교장을 마치고 다시 교단에 선 고춘식 교사(62, 한문). 시조작가이기도 한 그는 2007년 12월 이 같은 약속을 이 학교 중2 학생들에게 하게 된다.


이로부터 1년 2개월이 흐른 지난 2월 11일 그의 퇴임식 날. 학생들 274명에게는 ‘제자들에게 띄우는 시조 편지’가 일제히 전달됐다. 졸업식 이틀을 남겨둔 때였다.


이 고춘식판 시조편지는 시인 고은판 <만인보>와 닮았다. 학생 하나하나의 이름 뒤에 맞춤식 시조 한 편씩이 일제히 실려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조 편지를 쓰기 위해 개인 설문조사까지 벌였다고 한다.


“다혈질 성격이라 싸움 많이 했다구요/ 싸움이 아니로세 치열한 삶 아니겠나/ 뜨겁게 살아온 걸세 걱정 그리 말게나”(우리 흥으로 이 세상을)


“디자이너 되겠다면 마음의 눈 소중하지/ 남들이 볼 수 없는 아름다움 찾아내어/ 날이 선 따뜻함으로 ‘사랑’의 옷 만들기를”(아름다운 마음의 눈으로)


교사가 학생에게 책과 꽃 같은 졸업 선물을 준 사례는 있어도, 이처럼 개인별 시조를 써 준 경우는 유례없는 일이다.


270여 편의 시조 곳곳엔 39년 동안 교사생활을 한 고 교사의 ‘사랑과 영혼’이 스며있다. 그는 이 시조편지 마무리 글에서 “이 ‘시조 선물’은 교직 39년의 빚을 갚는 의미도 있다”면서 “돌이켜보니 스스로 얼굴이 붉어지는 후회되는 일도 참 많다. 그 반성해야 할 일들을 이 시조로 대신하려는 생각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같은 속마음은 시조편지에도 담겨 있다.


“교직 생활 삼심구 년 말을 참 많이 했다/ 침묵으로 가르치고 기다림도 필요한데/ 너무도 말을 앞세워 그대들 말 못 들었네”(선생님의 반성)


“그러나 선생님은 민망하고 부끄럽다/ 동안거 한 번 없이 너희들 앞에 섰고/ 무문관 한 번 들지 않고 많은 말을 쏟았지”(생각하니 부끄럽네)


한 해 내내 아이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속앓이를 하던 고 전 교사. 그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은 학생들의 마음 깊은 속에서 평생 밝게 빛나리라.

 

교육희망 2009년 4월 9일.

댓글 1개:

  1. 와우! 어찌 그런 엄청난 시조를 선물 하셨는지요! 참 다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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