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 특별상] 머리기사만 316개, '불곰' 윤근혁 기자 | |||||||||||||||||||||||||||||||||||||||||||||||||||||||||||||||||||||||||||||||||||||
10승만 올려도 에이스의 요건은 갖추는 셈이기에 20승 투수를 똑같이 에이스라고만 부르기에는 허전한 구석이 있다. 그리고 한 해 20개만 담장을 넘겨도 홈런타자라고 하기에 50개를 때리는 선수를 표현하고자 할 때 우리는 뭔가 새로운 단어를 찾으려 호들갑을 떨게 된다. 마찬가지로 머리기사를 100개 넘게 쓴 시민기자들을 위해 '명예의 전당'이라는 거창한 찬사를 준비한 <오마이뉴스>에서 머리기사 300개를 넘긴 시민기자는 각별하게 거론되고, 조명돼야 한다. 물론 20승과 50홈런이 아니라도 한 개의 몸에 맞는 공, 한 개의 희생번트, 혹은 무너져 내리는 팀을 수습할 한 호흡을 벌어준 한두 이닝의 패전 처리 투구 역시 빛나는 것임을 발견하는 것이 야구 보는 즐거움이듯, 잉걸이든 버금이든 으뜸이나 오름이든, 아니면 생나무든 편집기자들이 갖다 붙이는 '등급'이 기사와 기자의 가치를 재는 절대적인 척도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승엽의 56홈런과 장명부의 30승이 야구를 보는 수많은 관점과 가치관의 차이를 넘어서는 '전설'이듯, '윤근혁'이라는 남자가 써온 머리기사의 수 '316'(2008년 12월 26일 현재) 역시 <오마이뉴스>에 단 한 꼭지의 글이라도 써본 시민기자라면 누구나 숙연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는 숫자다. 그 많은 특종, 다 어떻게 했어요? 만 8년 반이 넘는 세월 동안 668개의 기사와 316개의 머리기사(오름, 으뜸), 그것도 <오마이뉴스>의 틀을 넘어 각종 포털과 다시 기성언론들의 후속보도들을 통해 파문을 만들어온, 말하자면 그냥 홈런도 아닌 장외홈런쯤에 해당한다고 할 수많은 특종들. 인터넷 아이디인 '불곰(bulgom)'보다는 '쿵푸팬더'쯤에 더 어울릴 듯한 몸매와 눈매를 가진 그를 만났을 때 누구나 궁금한 것은 아마도 그런 특종의 '비결'일 것이다. "글쎄…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 나름대로는 제가 써온 기사들은 모두 특종이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 또 어떤 맥락에서 확장되느냐에 따라 특종상을 받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만, 저 자신에게 있어서는 다 독특하고 새롭고 나름의 의미를 가진 기사들이니까요." 혹시 오만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을까, 꽤나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그는 말을 이었다. "우선 다른 어떤 기자가 발굴하고 보도한 것과 똑같은 관점, 똑같은 내용과 방식으로 다룬 기사를 제가 또 쓸 필요는 전혀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항상 남과 다른 관점과 방식으로, 새로운 내용을 찾아서 쓰려고 노력할 뿐이에요. 이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텐데…, 다만 제가 학교 선생님이고, 또 교육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가장 잘 아는 교육문제에 대한 기사만 쓰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두드러지는 성과를 내게 된 것 같습니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문제에 대해, 남들과 다른 관점과 방식으로, 깊이 생각하고 다각적으로 검토해서 쓰기. 결국 그가 반복해서 이야기한 '비결'을 정리하자면 이 정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반대로 그가 반복해서 경계한 것은 섣부른 접근, 섣부른 판단, 섣부른 추론이었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그가 꿈꾸어왔던 것은 '선생님'이 아니라 '기자'였다. KBS TV 아홉시 뉴스에 나오는 박성범 앵커가 그렇게 멋있게 보였기 때문이다. 가정형편상 '싸고 취직 잘 되는' 대학이 아니면 선택하기 어려웠기에 교대에 들어가서도 '상식백과'를 사서 읽어가면서 홀로 '열공'한 끝에 미달에 가까운 경쟁률을 뚫고 학보사 기자가 되었고, 졸업 후에도 학교로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월간 <우리교육>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우리교육> 기자를 몇 년 하다가, 군대 문제도 있고 해서 임용고사를 봤어요. 그때 원래 서울은 경쟁률이 좀 있었고 지방은 미달인 곳이 많았는데, 저는 합격한다는 기대를 못했기 때문에 굳이 지방까지 원정을 가겠다는 계획도 못하고 그냥 서울에 지원을 했죠. 그런데 그 해 다른 지원자들이 대거 경쟁률이 낮은 곳을 찾아 지방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오히려 서울이 미달에 가깝게 되어 버렸는데, 그 덕분에 제가 합격을 한 거죠. 그때는 시험 등수대로 임명장을 받았는데, 저까지 임명장을 주고 나서 보건교사 임명장 수여식을 시작하더라고요." 그는 그 해 서울지역에서 꼴찌로 임용고사를 통과해 선생님이 되었고, 양천구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형편에 밀려 들어서긴 했지만, 크게 계획도 고민도 없던 첫발이었다. 그러나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이 그에게 또 다른 이정표를 만들어 주었다. "그 동네가 꽤 부자 동네였는데, 그래도 집마다 경제수준에 좀 차이가 있는 편이었어요. 동네가 아파트촌과 다세대 주택촌으로 나뉘었는데, 그 두 부류 가정의 경제적 차이가 그대로 아이들 표정이나 행동에 나타나더라고요. 다세대주택에 사는 아이들은 무슨 일을 해도 좀 주눅들어 있고, 소극적이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학교에서만큼은 집안 형편이나 부모 직업이나, 이런 모든 것을 떠나서 똑같은 기회를 가지고 똑같이 어울리면서 공부하고 운동하고 놀 수 있도록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죠." 기사는 객관적인 글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어떤 대상을 다룰 것인가를 선택하는 과정에는 기자의 가치관이 전제된다. 윤근혁 기자의 '교육관'이 뼈대를 만든 것은 그 무렵이었다. 촌지,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특목고와 사교육업체의 유착관계, 그리고 일제고사와 국제중 문제에 이르기까지. 불공정한 게임을 부추기는, 그리고 교실 안의 아이들을 가르고 주눅들게 하고 괴롭히는 수많은 현상들과 그는 교실 안에서 싸웠고, 또 세상에 알렸다. 꼴찌로 통과한 임용고사, 학교에서도 배울 게 많았지만 물론 때로는 섣부르게 흥분하고 섣부르게 판단하고 섣부르게 추론하는 '오류'를 저지르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그토록 경계하는 이야기들은, 몇 해 동안의 자기반성에서 얻어진 결론들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제가 쓴 기사가 발단이 돼서 결국 교직을 떠나야 했던 어떤 교장 선생님이 계셨어요. 그분이 했던 어떤 잘못된 일을 제가 <오마이뉴스>를 통해 처음으로 터뜨렸고, 다른 기성언론들이 받아서 쓰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는데, 보도 나가고 나서 그 교장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한두 다리만 건너면 교육대와 사범대 선후배의 인연으로 묶이는 좁은 바닥이 교육계다. 따라서 그가 기사를 통해 누군가를 고발하는 것도 그래서 대개는 괴롭고 주저하게 되는 일이다. 그날도 으레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는 하소연이리라 생각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윤 기자님, 저 지금 … 감사 받고 있는 중이에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딱히 무엇을 잘못해서는 아니지만, 이 한 번의 잘못으로 평생 교실에서 쌓아온 공덕을 허물어뜨리게 된 선배에 대한 위로의 마음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던진 순간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뜻밖의 말이 수화기 저편에서 건너왔다. "아니에요. 윤 기자님. 나, 고맙다는 인사 하려고 전화했어요." "예? 무슨…" "사건 터지고 나서 기자들이 수도 없이 다녀갔는데 말이오, 내 해명까지 실어준 건 윤 기자님밖에 없더라고. 어쨌든 끝까지 내 말 들어줘서 고마워요." 공정한 기회를 가져야 하는 것은 학생들만이 아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방적으로 휘두른 붓끝으로 애먼 사람들을 상하게 하는 기자들이 취재 대상에 대해서도 가져야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반론에 대한 편견 없는 보도 자세를, 덧붙여 강조했다. "그 전화 받고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람과 그 사람이 한 일은 구분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도 새삼 중요하게 여겨지고, 또 그 사람의 해명과 반론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기사를 쓰면 참 엄청난 폭력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죠." 100개 넘는 머리기사가 나왔던 2008년, 그 씁쓸한 교육계 그가 8년 넘는 시간 동안 썼던 300개가 넘는 대문기사 중 무려 100여 개가 올해(2008년) 쏟아져 나왔다. 올 한 해 그의 기사는 거의 사흘에 한 번 꼴로 <오마이뉴스> 대문에 올라 있었던 셈인데, 기자로서 그런 대단한 전성기가 사실 그와 나를 씁쓸하게 했다. "그만큼 교육 관련 이슈가 많았다는 얘기죠. 교육감 선거와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문제들, 일제고사, 교과서 수정, 역사특강, 국제중 등등. 앞으로도 적어도 한 삼사년은 더 그럴 것 같은데…, 걱정입니다." 지금은 학교에 휴직계를 내고 교육전문지인 <교육희망> 보도부장으로 일하고 있지만, 공립학교에 '매인 몸'인데다가 고향에 계신 부모님 걱정 같은 삶의 문제들까지 겹쳐 앞으로의 계획은 유동적이다. 다시 몇 해를 지난 뒤 그의 자리가 교실과 운동장일지, 취재현장일지, 혹은 서울일지 어느 지방일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평생 안고 가기로 마음먹은 교육문제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글을 써갈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은 마음껏 취재하고 기사 쓰고 하는 중이지만, 혹시 여건이 안 된다면 취재가 어려워질 수는 있겠죠. 그렇지만 앞으로도 칼럼이라든가, 언론보도비평이라든가 하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교육문제에 대한 글을 계속 써갈 겁니다." 그래서 다시 몇 해 지나서 그를 만난다면 그는 <오마이뉴스> 대문기사 1000개를 돌파해서 다른 '명예의 전당' 입성자들마저 많이 민망하게 할지도 모른다. 어지간한 홈런타자도 통산 300개쯤 때리면 내리막길에 접어들지만, 기자의 필력과 내공은 오히려 점점 높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그 속도가 늦춰졌으면 좋겠다. 경제도, 정치도, 문화도, 스포츠도 모두 모두 중요하지만, 교육은 정말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고, 윤근혁 기자의 특기인 고발과 비판은 절망이 깊을수록 두드러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만날 고만고만한 미담 일색인' 교육 관련 기사가 사는 이야기 섹션과 통합되어야 하지 않을까, 편집부가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윤근혁 기자가 무료함을 못 이겨 야구장으로 취재영역을 옮겨볼까 고민하는 날도 올 수 있기를, 학원에서 밥 벌어 자식 가르치는 나 역시 함께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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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2008년 12월 29일치. | |||||||||||||||||||||||||||||||||||||||||||||||||||||||||||||||||||||||||||||||||||||
2009년 9월 9일 수요일
임용고사 꼴찌로 통과했다더니, 그 많은 특종, 다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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