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_26
올해 '교육기사돋보기'에서 주장해온 것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신문에 실린 교육기사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으니, 속지 말자.”
이를 다시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교사는 교육 전문가인 만큼 최소한 활자에 속지 말고 한번쯤 의심하는 태도를 갖자. 이를 통해 잘못된 교육기사에 휘둘리지 않는 교사가 되자.”
엊그제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아나운서가 시작 멘트를 다음처럼 하더라. 기억나는 대로 적어본다.
“사람을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요? 돈일까요, 아니면 권력일까요? 사람을 만드는 것은 돈도 권력도 아닌 책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은 고 신용호 교보문고 창시자가 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말했다.
아무튼 라디오를 들으면서 신문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을 만드는 것이 책이라면, 사람의 생각을 만드는 것은 바로 신문이라고 말이다. 그 사람의 사상을 검증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 사람이 보고 있는 신문을 조사해보라.
<조선일보>를 오래 본 사람은 <조선일보>스럽게 된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보는 사람은 나름 열린 의식이 있다고 판단해도 좋다.
너무 속 좁은 규정 아니냐고 타박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위의 말은 특정 사실을 일반화시키는 ‘일반화의 오류’라는 비판을 받을지 몰라도 경험으로 보면 대개 맞다.
예컨대 소년신문 집단구독에 일삼아 매진하는 교장님들은 보라. 이들은 소년신문을 거의 읽어보지 않는다. 소년신문 아버지뻘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수십 년째 즐겨봤을 뿐이다. 그것도 자기 돈이 아닌 학교 돈으로 그렇게 했다. 이 교장님들의 머릿속엔 보수신문이 던져놓은 떡밥들이 가득 차 있다. 이것들은 훈화와 ‘말씀’ 등의 형식을 거쳐 아이들과 교사들의 머릿속에 파고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위의 신문결정론에도 허점이 있으니, 바로 사람의 자주성을 너무 낮게 봤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정한다. 비판의식 없이 <조선일보>를 보게 되면 ‘<조선일보>가 <조선일보>스러운 사람을 만든다’는 것으로 말이다.
문제는 비판의식이다. 기자들의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의식은 특종을 만들고, 독자들의 신문에 대한 비판의식은 깨어있는 인격체를 만든다.
앞으로 예로 들 기사들은 잘못된 교육보도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와 관계있는 내용들이다. 오보의 구조를 안다면 비판의식은 저절로 높아질 것이다. 한 해를 정리하며 이 내용들 가운데 상당수는 ‘교육기사돋보기’에서 다뤘던 것을 새로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데이터 마사지’ 보도
언론계 통념이 있다. 통계를 활용하면 여론 조작이 쉽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데이터는 겨울철 눈꽃 날리듯 무수히 많다. 온갖 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여론조사다. 선택은 어디까지나 신문사의 몫이다. 어떤 결과를 선택할 것인가? 대개 자신들의 속마음과 일치하는 결과를 뽑는다. 이것이 여론조사를 보도한 기사의 특징이다.
불순한 여론 조사자와 불순한 여론 보도의 만남. 이런 만남이 성사되는 순간 여론조사는 여론조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교사 63% 교원평가제 도입 찬성” (동아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3월 24일치)
위 기사 제목이 보여주듯 대부분의 신문들은 올해 3월 23일 교과부가 뿌린 ‘교원능력개발평가 여론조사 결과’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쓰기’했다.
이 보도자료에서 이상한 점은 교사들까지 교원평가제 도입에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80%이상이 반대하던 지난날의 태도를 정반대로 뒤집은 내용이었다.
이런 기사가 나온 뒤 보름쯤이 흐른 4월 6일에서야 정치정당인 진보신당이 분석결과를 내놨다.
이 정당이 공개한 결과를 보면 교과부의 표본설계가 잘못됐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조사 대상 513명 가운데 교장과 교감이 20.4%인 105명이나 차지했다. 구성비 5.3%를 4배 부풀린 것이다. 이 조사에서 교장들의 교원평가 찬성률은 90.6%로 몰표였다.
이번 조사는 각 학교 교무실로 전화를 걸어 진행했다. 교무실에서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이는 뻔하다. 초등의 경우 교감 아니면 부장이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교과부의 해괴한 설문에 대한 언론들의 논평이 가관이다.
“교원 중에서도 무려 63%가 교원평가제 도입을 찬성하고 있거든요. …교사들은 평가를 안 받겠다는 것, 이거 좀 모순이 있지 않나, 이런 의견입니다.”(MBC, 3월 23일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이것이 우리나라 언론사의 교육보도 수준이다.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그저 받아쓰기만 하는 것이다. 문제는 위처럼 데이터 잘못이 드러났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울신문> 8월 31일치 사설과 같은 기사를 줄줄이 써댄다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교원평가제는 교원의 63%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강경파 ‘정치교사’들에 휘둘려 발목이 잡혀 온 것이다.”
이 정도면 그래도 봐줄만하다. 문제는 데이터에 손을 댄다는 것이다. 이른바 데이터 마사지를 하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조선일보> 양아무개 기자가 쓴 기사를 보자. 06년 10월 9일치에 나온 이 기사의 제목은 “전교조 교사 적으면… 서울대 입학 많아진다?”였다.
그는 이 기사에서 “전교조 교사가 적은 고교의 서울대 입학 성적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그 근거로 “전교조 비율이 16%인 서울 강남교육청 관내 학교의 서울대 입학자 수는 353명인 데 비해, 전교조 교사 비율이 27%로 가장 높은 남부교육청은 38명이었다”는 사실을 앞세웠다.
물론 이 기사를 보고 교육기자들은 많이 웃었다. 기사의 ABC도 갖추지 못한 섣부른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합법 전교조가 탄생된 때는 1999년이다. 그렇다면 전교조 조합원이 없던 그 이전엔 남부교육청 소속 학생들이 강남교육청 학생들보다 서울대를 더 많이 갔을까?
지방 중소도시엔 한국교총 소속 회원이 올백(100%)을 자랑하는 곳도 많다. 양 기자의 논리대로라면 전교조 교사가 단 한 명도 없는 이런 학교들은 ‘서울대 입학 대박’을 내야 맞다. 정말 그럴까?
하지만 양 기자의 보도 이후 그를 따라 배운 기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일제고사 결과, 서울대 입학률 등의 통계 수치가 나올 때마다 전교조를 들먹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기자들이 대부분 ‘조중동’ 기자이기에 그러려니 해야 하는 것일까?
위와 같은 기사들은 눈에 보이는 데이터만 갖고 ‘마사지’를 한 것이다.
이런 식의 기사는 올해 <동아일보> 2월 18일치 1면 기사 “'교원평가제' 실시 학교가 학력 높았다”는 식으로도 확대 재생산됐다.
이처럼 데이터를 갖고 제멋대로 가공해 보도하는 ‘데이터 마사지식 보도’는 수없이 찾아낼 수 있다. 문제는 데이터에 약한 독자들이 통계나 여론조사 내용이 나오면 믿어버리기 때문에 너무 쉽게 속아 넘어간다는 것이다.
손바닥 뒤집기, 카멜레온 보도
카멜레온은 온도에 따라 색깔을 자꾸 바꾸는 동물이다. <조선>과 <조선>스러운 신문들은 이 카멜레온을 닮은 보도를 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내가 찾아낸 것은 일제고사와 평준화, 그리고 학생 선발방식을 다룬 기사다.
먼저 일제고사를 놓고 벌인 그들의 태도변화를 살펴보자.
<조선>스러운 신문들은 죄다 일제고사를 찬성한다. 하지만 그들의 본류인 <조선>이 2002년에 쓴 기사를 한 번 읽어보자.
“‘기초학력 부진아를 찾아내는 데 왜 굳이 중앙정부가 나서고, 70만 학생이 하루에 일제히 시험을 쳐야 합니까?’ 한 일선 교사는 이메일로 이 같은 불만을 표출했다. …난데없는 일제 시험을 앞두고 초등학생들은 '시험 열풍'에 휘말리고 있다.…아직도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어야겠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이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 교육부는 한 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조선> 2002년 9월 27일치 기자수첩 '중앙집권적 교육')
이 신문은 이 당시 일제고사에 대해 반대했다. 이 신문은 비슷한 시기 대입 본고사도 반대했다. 그러던 것이 정권이 바뀌자 다음처럼 태도가 돌변했다.
“전교조는 영악하게도 일제고사에 대한 학부모들의 나쁜 기억을 이용해 '학력 평가'에 '일제고사'라는 엉뚱한 옷을 입히고 학생들의 시험 거부를 유도했다. …학력 평가는 교사와 학교 입장에서 학생들 실력이 어느 수준인지를 파악해 효율적인 교육방법을 개발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다.”(<조선> 2008년 12월 22일치 사설)
<조선>보도의 ‘카멜레온’식 변신은 이것만이 아니다. 박정희 시절에는 평준화에 대찬성하더니 노무현 시대에는 ‘좌파교육’으로 몰아세웠다. 김영삼 시절에는 대학 본고사를 사교육의 주범(93년 4월 11일치 사설)으로 몰아세우더니 노무현 시대에는 ‘제비뽑기로 신입생 뽑자는 입시강령’(07년 4월 9일치 사설 제목)이라고 돌변한다.
<조선>이 입버릇처럼 말해온 ‘학생선발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대입 본고사, 고교등급제 등을 반대하는 발언을 내놓자 “그건 입시가 아니라 제비뽑기일 따름”이라면서 다음처럼 주장했다. 겨우 2년 전의 일이다.
“3불이란 평등의 정치 구호를 그냥 끌고 가겠다는 것은 교육의 수준 향상, 국가 수준의 업그레이드를 포기하겠다는 것일 뿐이다.”(07년 4월 9일치 사설)
이러던 <조선>이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형국이다. 이명박 정부의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부금입학제 유지 방침에 변변한 비판을 내놓지 않았다.
교과부가 올해 내놓은 자율형사립고 방안도 마찬가지다. 사교육 망국론에 위축된 교과부는 자율형사립고를 내신으로 응시하게 한 뒤, 전원 추첨으로 선발하는 방식을 발표했다. 사학의 선발권은 깡그리 무시되는 것이다.
이런 학생선발권 ‘무시’에 대해 제일 먼저 가장 강력하게 봉기해야 할 곳은 바로 <조선>이었다. 내신 위주 학생선발을 추진한 노무현 정부를 겨냥해 ‘눈 멀고 귀 먼 정권’(07년 7월 6일 사설)이라고 막말을 퍼붓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신문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자사 돈벌이에 충실한 보도
우리나라 신문사는 돈벌이를 우선하는 사기업일 뿐이다.
최근 '외국어고(외고) 확대'를 주장하는 사설을 쓴 <조선일보>가 외고 입시를 활용한 사교육 사업 역시 확대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조선일보>가 최근 '더 많은 외고 만들고…'란 제목의 사설(10월 20일치)을 쓰는 등 '외고 구하기'에 올인하고 있다는 지적과 맞물려 눈길을 끌고 있다.
신문사 법인인 ㈜조선일보교육미디어는 올해 8월 '특목고·대학 입시 정보' 등의 제공을 내세운 <조선일보> 교육포털 '맛있는 교육(edu.chosun.com)'을 추가로 열었다. 조선일보교육미디어는 외고, 국제중, 자립형사립고(자사고) 대비 유료 강좌 15개를 운영하는 한편, 외고/자사고 입학 대비 실전 모의평가를 지난 10월 11일 등 올해 들어서만 세 차례 치러 사교육 열풍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조선일보교육미디어의 유료 강좌는 이 법인의 자사인 인터넷 학원 '에듀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중 외고 관련 강좌는 '외고 실전 대비 모의고사 특강', '외고 대비 영어듣기' 등 6개다. 입시생들은 외고 관련 강좌 1개당 4만원~6만원의 수강료를 내야 한다.
<조선일보>는 외고/자사고 입학 대비 실전 모의평가도 치르고 있다. 전국 중학교 1~3학년생을 대상으로 지난 10월 11일 시험을 본 것을 비롯해 올해만 모두 세 차례다. 이 시험에 대해 조선일보교육미디어 한 과장은 "정확한 참여인원과 수익에 대해서는 전화상으로 답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응시료 2만5000원을 받는 이 모의평가에는 H 학원을 비롯 40여 개의 특목고 학원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원서 또한 이들 학원에서 받고 있다.
이 신문의 국제중 관련 행동도 도의적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신문은 지난 8월 10일 교육포털 맛있는 교육(edu.chosun.com)에서 초·중학생을 위한 국제중 대비 강좌를 비롯해 경시대회·올림피아드 대비 강좌, 영재교육원·특목고 대비 강좌 등을 펼쳐놓고 있다.
국제중 특강은 모두 3개가 있는데 과학, 사회 특강은 각각 6만원, 수학은 8만원을 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사교육 줄이기 운동을 펼치자 이를 맨 앞에서 홍보하고 나선 곳이 바로 <조선일보>다. 이런 그들이 뒤에서는 그 사교육 업체들과 손을 잡고 국제중 동업을 펼치는 셈이다.
한 손으로는 국제중 홍보를, 또 다른 손으로는 국제중 장사를. <조선일보>와 특권학교들, 그리고 학원업체들의 3각 복합체는 반칙왕들이 펼치는 막장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조폭은 의리도 없다
이밖에도 먹잇감을 만나면 달려드는 토끼몰이 식 보도와 조직폭력배(조폭)다운 보도가 <조선>과 <조선>스러운 신문들의 주특기다. 이들이 즐겨온 먹잇감은 평준화와 전교조 등이다.
이들은 벌써 10여 년째 평준화를 ‘사회주의 붕어빵 교육’이라는 식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전교조에 대한 폭력도 상상을 초월한다. 다음은 몇 해 전 조중동의 사설 내용과 제목이다.
“전교조는 가짜선생님, 선생님으로 위장한 싸움꾼의 집단이다. 북한의 선전물을 베끼고 거기에 무릎 꿇고 절하는…”(2006년 7월 27일 <조선>
“전교조는 북한역사관 세뇌기구인가”(같은 날 중앙)
“전교조는 우리 아이들을 ‘북한 인민’ 만들 셈인가”(같은 날 동아)
언제부터인가 조중동에는 ‘조폭신문’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요즘 조폭들은 의리도 정정당당함도 없다.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무조건 달려들고 본다. 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월간<우리아이들> 200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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