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4일 화요일

아이들한테 맡기니 되더라

2009년 11월 24일 오후 6시 29분 날씨 맑음

 

오늘 날씨도 맑지만 내 마음도 맑다. 그 동안 끙끙 대던 원고가 거의 마감단계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한 교육잡지에 120매와 30매를 써야 하고, 또 다른 교육주간지에는 7매를 써야 한다.

 

시험 벼락치기 하듯 내 벼락치기식 글쓰기 버릇은 항상 나를 힘들게 한다. 스트레스를 곱절로 받기 때문이다. 미리 미리 해놓으면 될 것을.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솔직히 학생시절 벼락치기 시험 공부하던 버릇이 지금도 남아 있는 탓이리라.

 

암튼 내 마음이 맑은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우리 반 아이들 때문이다. 이놈들한테 나름 자율권을 주려고 해왔다. 학급회의가 우리반 사실상 최고 의사결정기구가 되도록 노력했다. 이 인간들이 아침자습을 조별 자율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을 통과시킨 때는 한 두어달 전이었다.

 

나는 이걸 그냥 놔둬야 하나, 아니면 교사의 특권으로 강제 진압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어차피 내가 해봤자 책 읽는 것 이상 못하고 있으니, 그래 니들 결정대로 해보라고 했다. 방치 결정인 셈이다.

 

그런데 난 요즘 아침마다 기분이 좋다. 이놈들이 어느 날은 집단으로 전체 축구를 하거나 다른 날은 티볼을 하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교실에 들어온다. 우리 반 아이들끼리 모두 체육 종목 하나를 정해서 스스로 하는 모습이 여간 대견스러운 게 아니다.

 

또 어느 날 아침자습으론 독서와 공부를 죄다 적어놓기도 한다. 우리 반이 모두 4개 조인데 이들이 아침자습하는 모습을 보니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용을 지키는 모습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내가 계획을 짜서 해도 이것 이상 아침자습을 멋있게 하지는 못하리라.

 

저번 주 토요일 학급회의에서는 생활목표로 '교실에서 공놀이 하지 말자'라는 것을 결정한 뒤 실천사향으로는 '교실에선 공을 모아두자'로 정했다. 나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 월요일 부랴부랴 공 모으는 함을 반장에게 구해주었다. 당연히 공놀이 문제는 해결되었다. 내가 유도한 것은 거의 없다. 이것이 교사인 나로선 큰 약점일 정도다.

 

자신들이 결정한 것을 스스로 지키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런 자치와 자율의 모습을 계속 이어가길 바란다. 어른이 되서도. 그러면 립서비스식 '학교 자율화'를 내세운 현 정부의 잘못된 자율화 정치 구호도 그 때서야 깨닫게 되겠지.

 

나는 이들에게 정치발언을 하지 않는다. 어느 한 녀석이 어느날 '명바기, 쥐박이'라고 하길래 '국민이 뽑은 대통령한테 그런 말을 해서야 되겠지'하고 말한 이후론 아이들은 나를 이명박 팬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ㅎㅎ. 싫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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