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부터 보여드릴 것은 경기 양평에 있는 산음휴양림. 그 곳 위로 더 올라가면 봉미산 등산로가 나옵니다. 산중턱 한 길이 나오는데요. 제 친구 꼴~은 탱크길이라고 했고, 또다른 친구 부엉이는 산림로라고 했습니다. 누구의 학설이 옳은 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 한길에 있는 들국화에 빠져봅시다. 사진은 지난 9월 26일 찍은 것이랍니다. 확대하면 크게 보입니다.



사진 못 찍어서 미안~

지금부터 보여드릴 것은 경기 양평에 있는 산음휴양림. 그 곳 위로 더 올라가면 봉미산 등산로가 나옵니다. 산중턱 한 길이 나오는데요. 제 친구 꼴~은 탱크길이라고 했고, 또다른 친구 부엉이는 산림로라고 했습니다. 누구의 학설이 옳은 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 한길에 있는 들국화에 빠져봅시다. 사진은 지난 9월 26일 찍은 것이랍니다. 확대하면 크게 보입니다.



사진 못 찍어서 미안~
큰 맘 먹고 알파인 텐트를 샀다. 가을과 초겨울용이다.
싸고 쓸만한 것을 고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정보도 부족한데다, 왜 이리 가격들이 높은 지. 왠만한 것들은 50만원을 훌쩍 넘겼다.
결국 고민 끝에 국산 코베아 알파인 큐빅을 샀다. 가격은 내가 찾은 인터넷 최저가 32만원 정도. 깔개까지 하면 34만원 들었다. 녹록치 않은 가격이다.

큰 것이 텐트이고 작은 것은 정품 깔개다.
암튼 이 텐트를 갖고 25일과 26일 저녁 경기도 양평에 있는 산음휴양림에서 야영을 했다. 새 텐트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날 저녁에 결합한 내 친구 꼴~이 갖고 온 텐트는 공교롭게도 코베아 알파인 나스카였다. 꼴이 갖고 있는 것은 2인용이고, 내가 갖고 있는 것은 3인용이다.

친구 꼴의 텐트 나스카.
허나 꼴의 것(위의 것)은 한 명이 잘만 하고 내 것은 두 명이 자면 그럭저럭 잘만한 크기였다.
아래 것이 내 텐트이다. 나스카보다는 약간 높고 길다. 하지만 넓이는 거의 비슷해 보였다. 나스카는 폴대가 3개이고 큐빅은 4개이다. 가격 차이는 8만원 가량 난다. 물론 큐빅이 더 비싸다.

큐빅 모습.

나스카와 큐빅은 일장일단이 있다. 일단 나스카의 장점은 가볍다는 것이고 앞뒤 통풍구가 있다는 것이다. 하기에 여름에도 바람이 잘 통할 것 같았다. 모양새도 큐빅보다 이쁘다.
큐빅의 장점은 무엇보다 넉넉한 공간. 혼자 쓴다면 편하게 잘 수 있다. 그리고 높이가 높다는 것. 무게도 나스카보다 0.5키로인가밖에 더 나가지 않는다. 가벼운 편이다.
이제 단점을 얘기해보자. 나스카는 공간이 협소하고 높이가 낮아 앉아있기도 버거울 정도였다. 텐트 속에서 책을 보려는, 앉은 키가 제법 큰 사람은 좀 어려움이 있겠다.
큐빅은 출입구가 앞쪽에만 있다는 게 단점이다. 따라서 여름엔 통풍이 잘 되지 않아 무척 더울 가능성이 있다. 결국 여름 해수욕장 용으로는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내가 갖고 있는 큐빅의 장점을 더 얘기하자. 무엇보다 좋은 것은 누워서 별을 볼 수 있다는 것. 물론 낮에는 푸른 하늘과 나무도 볼 수 있겠지.

신기하지 않은가. 외피는 비닐이고 안쪽텐트는 모기장 형태로 되어 있다. 그래서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수납 공간도 돋보였다.

역시 제값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니 밖에는 이슬이 많이 내렸는데 텐트 안은 물기가 없었다. 이 점 또한 좋았다. 다들 알고 계시듯 텐트 안에 물기가 축축해지는 것. 이 것 참 야영 생활에서 힘든 일 아니겠는가.
아무튼 난 준 산악용, 준 겨울용 텐트를 샀고 이것을 갖고 자연을 찾아 나설 참이다. 어디 같이 손 잡고 갈 사람 있으면 손 들어보길 바란다.
국제중의 큰형님은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다. 그럼 국제중 전도사는 누구일까? <조선일보>라고 할 수 있다.
이 신문이 지난 8월 31일 D5면 한 면을 할애해 국제중 교장 두 명의 인터뷰를 실었다. 9월 23일부터 26일까지 국제중 원서접수를 앞두고 때를 맞춘 것이다.
이 가운데 한 국제중의 K교장의 말을 옮겨보자.
“글로벌 인재를 키우기 위한 학교인 만큼 영어는 기본입니다. 학생들의 영어실력을 한 학기 만에 효율적으로 끌어냈기 때문에 영어를 제외한 다른 교육도 집중력 있게 지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인성 강조한 국제중 교장의 빗나간 인성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했던가. 이어진 기자의 설명은 더 솔깃하다.
“K교장은 특히 '글로벌 리더'에 대한 관심이 크다. 지식은 물론, 인성과 에티켓을 갖춘 리더가 진정한 인재이기 때문이다.”
인성과 에티켓을 갖춘 리더라? 좋은 말이다. 에티켓에 관심을 둔 K교장이 최근 궁지에 몰렸다. 지난 해 강남의 한 학원에서 학부모들에게 국제중 정보를 알려주다가 YTN에 들통 났기 때문이다.
이 당시 그는 상당히 다음처럼 말했다. 지난 9월 16일 YTN이 보도한 동영상 내용이다.
“영어를 뛰어나게 잘한다고 국제중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 내가볼 땐 '노'. 초등학교 잘 갔고 그 대신 반장을 한 다든지, 자기소개서 할 때 토플은 조금 감안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은 현직 교사가 ‘대치동 오 선생’으로 활동하며 국제중 학원 전문강사로 행동한 뒤 나온 것이어서 더 파문이 커졌다.
'학원의설립운영및과외교습에관한법률'은 교원의 과외교습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1년 이하의 금고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등 엄벌 규정도 2001년에 새로 생겼다.
이 K교장은 자신의 학원 교습 사실이 들통 나자 “그 때 아는 사람이 잠깐 어머님들 궁금해 한다 그래서 잠깐 이야기해달라고 그래서 들렸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이 말도 인성과 에티켓에 어긋나는 말이다.
그는 사설학원 주최 입시설명회 강사로 나섰다가 들통 나 2006년에도 서울시교육청 조사를 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그의 직책은 서울 D외고 교감이었다.
다음은 내가 2006년 5월 29일치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다.
“지난해 7월 7일 D외고 K교감도 L학원에서 연 '특목고 전략 설명회'에 참석해 27분간 강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강연 녹화 영상에 따르면 이 학교 교감은 ‘수학 하면 (이번(이번 행사를 주최한) L학원의 H원장님이다, 애한테 물어봤더니 그렇게 좋다더라’고 말하는 등 세세 차례에 걸쳐 학원홍보성 발언을 했다. K교감은 ‘입시설명회에 강사로 나가긴 했지만 교육자로서 부끄러운 말은 하지 않았다, 강의료는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선>, 국제중, 학원들의 3각 복합체 형성
이처럼 K교장의 빗나간 에티켓은 불법 행위다. 하지만 똑 같은 불법행위는 아니지만 <조선일보>의 국제중 관련 행동도 도의적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신문은 지난 8월 10일 교육포털 맛있는 교육(edu.chosun.com)을 열었다. “국제중과 특목고 정보 등을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지난 8월 10일 신문에서 보도했다. <조선일보> 교육미디어가 운영하는 '에듀원(edu1)'도 이 포털 안에 연결해놓고 있다. 초·중학생을 위한 이 사이트는 국제중 대비 강좌를 비롯해 경시대회·올림피아드 대비 강좌, 영재교육원·특목고 대비 강좌 등을 펼쳐놓고 있다.
국제중 특강은 모두 3개가 있는데 과학, 사회 특강은 각각 6만원, 수학은 8만원을 받고 있다.
이 사이트는 이 강좌의 특징으로 “국제중 입시 유형의 문제를 분석, 수록하여 입시준비에 날개를 달아드린다. 국제중 입시 출제위원을 역임한 강사진을 초빙, 입시에 희망을 드린다.”고 적어놓고 있다.
또한 이들은 무료이긴 하지만 다음과 같은 국제중 유사 상행위를 벌이고 나섰다. 다음은 <조선일보>가 ‘알립니다’ 등으로 보도한 내용이다.
“조선일보 교육미디어와 영재교육 전문기관 ㈜하늘교육은 유아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국제중 대비 사고력 수학, 실험과학 등의 방문교육을 한 달간 무료로 지도해드립니다. 신청과목은 영재교육원 대비 사고력 수학 등입니다.”(8월 23일치 보도)
“조선일보 교육미디어는 하늘교육 임성호 이사를 초청, '국제중 입시 준비전략'이라는 주제로 무료강연회를 개최한다. 올해 많은 변화가 예고된 2010학년도 국제중 입시 정보를 자세히 전하고, 학부모들의 궁금증을 낱낱이 풀어준다.”(8월 19일치 보도)
“조선일보 교육미디어는 아발론교육 김수영 평가원장과 하늘교육 임성호 이사를 초청, 무료강연회를 개최합니다. 26일에는 임성호 원장이 '국제중 입시 마무리 전략'에 대해 강연합니다.”(8월 9일치 보도)
이명박 정부가 사교육 줄이기 운동을 펼치자 이를 맨 앞에서 홍보하고 나선 곳이 바로 <조선일보>다. 이런 그들이 뒤에서는 그 사교육 업체들과 손을 잡고 국제중 동업을 펼치는 셈이다.
한 손으로는 국제중 홍보를, 또 다른 손으로는 국제중 장사를. <조선일보>와 국제중, 그리고 학원업체들의 3각 복합체는 반칙왕들이 펼치는 막장 드라마가 아니고 무엇이랴.
월간<우리아이들> 2009년 10월호
불곰은 여행 초보입니다.
대학 다닐 때는 학보사 일에 매달려 한두번 빼곤 여행 가본 적 없습니다. 미팅 횟수와 여행 횟수가 거의 같다는...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행다운 여행은 거의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이제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그곳엔 큰 길이 있다. 사람은 없는데 너무 큰 길이 있다.
불곰이 추구하는 여행은 값싼 여행입니다. 이건 주머니가 가벼운 불곰으로서 당연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돈 뿌리며 다니는 여행치고 허탈하지 않은 게 없더라는 경험칙상으로도 그렇습니다.
불곰이 추구하는 여행은 안전한 여행입니다. 자전거를 타더라도 자전거 전용도로를 이용하고, 산을 타더라도 뱀이 없는 넓은 길을 이용합니다. 야영을 하더라도 휴양림이나 국립공원 야영장을 이용할 것입니다. 너무 시시하지 않냐고요? 아직까지는 흥미진진합니다. 제가 가보지 못한 안전하고 신나는 여행 장소가 우리나라에서만도 철철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블로그에 쓰는 글들도 죄다 안전한 여행기일 것입니다. 진기명기 뭐 이런 것 바라는 분은 재미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저처럼 안전한 여행을 바라는 여행 초보들에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남의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하는 일.”(표준국어대사전)
‘자율’이란 말의 뜻이다. 그럼 ‘학습 자율’은 무엇일까? ‘배워서 익히는 행위가 남의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아니하고 교사와 학생 스스로의 교류에 따라 진행되는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학습 자율화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일제고사다. 한 날 한 시에 한 시험지로 일제히 치르는 일제 강점기에서나 어울릴만한 일제고사는 획일주의, 전체주의와 친구일 뿐 자율화에는 상극인 까닭이다.
어째서 그럴까? 최근 나온 신문들 제목만 훑어봐도 웬만큼은 이해가 될 듯하다.
“일제고사가 뭔지 … 초교생 밤까지 자율학습”(<강원일보> 9월 19일치)
“일제고사로 중간고사 대체?”(<한겨레> 9월 18일치)
“‘학력신장’ 앞세운 성과 올리기, 애들 잡는다”(<대전일보> 9월 18일치)
“예정 없던 일제고사로 교육현장은 쑥대밭, 대책은?”(<오마이뉴스> 9월 17일치)
“초등학교 교장 ‘성적 나쁘면 떠나라’...전학 권유”(<MBC>뉴스 9월 14일치)
“방과후 학교, 일제고사용 ‘강제 보충수업’ 변질”(<한국일보> 9월 4일치)
“일제고사가 빼앗아간 방학”(<한겨레21> 7월 24일치)
일제고사 원년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였고, 올해는 일제고사 첫돌이 된다. 이명박 정부는 한 손엔 학교 자율화 팻말을, 또 다른 손엔 일제고사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자율화와 일제고사. 이는 양복을 입은 남자가 일본 나막신인 ‘게다’를 질질 끌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이런 꼴불견에 많은 이들이 인상을 찌푸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게다’ 짝을 신은 남자의 행진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지난 3월 용역을 수행한 한 대학교수팀의 ‘새정부 교육정책 진단 및 대국민 인식조사’ 연구보고서를 보면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해 국민의 46.7%가 찬성 의사를 나타냈다. 성인 남녀 1000명을 전화 설문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0%이었다.(헤럴드경제)
다른 항목에 견줘 낮은 수치지만 그 숱한 말썽을 빚은 일제고사 여론 치곤 낮지 않은 수치다.
이런 배경엔 일제고사를 부추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있으니 그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더블Lee’가 만든 일제고사
이명박과 이주호. 한 명은 대한민국 대통령이고 한 명은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다. 이 ‘더블Lee’가 사실상 일제고사의 몸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24일 기숙형 고교인 충북 괴산고등학교를 찾았다. <연합뉴스> 보도를 보면 그는 이날 일제고사(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한 우려와 관련해선 “학생들이 차이가 나니 지원해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그의 생각에 막강한 영향을 준 이가 바로 이주호 현 교과부 차관이다. 이 차관은 대선 당시 교육공약을 총괄하는 일(이명박 후보 일류국가비전위 교육분과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이 차관은 지난 7월 7일 정부가 내는 <대한민국 정책포털>에 쓴 칼럼에서 다음처럼 일제고사에 대한 생각을 펼쳤다.
“전국 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하고 수능 성적을 지역별로 공개하는 것도 학교가 공교육을 책임지는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시험성적 결과 공개는 교사에게 교수·학습 방법을 피드백해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뿐 아니라 지역별, 학교별로 ‘잘 가르치기’ 경쟁을 유도하는 토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시험 결과를 공개해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문제는 어떤 경쟁이냐는 것이다. 전국 학생들이 한 날 한 시에 같은 시험지에 매달리게 되는 일제고사 문제 풀기 경쟁이 문제라는 것이다.
일제고사 박수 친 조중동과 한국교총
일제고사에 일제히 박수 친 언론들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나라 대표 보수신문들인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이다. 그리고 교원단체인 한국교총이다.
<조선> 등의 보수신문과 한국교총의 공통점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2년 표집으로 치른 초3 기초학력진단평가에 대해서도 ‘일제고사’라면서 반대한 전력이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정권이 바뀌자 전집 일제고사가 분명한 이명박 정부의 시험지 시리즈에 대해 찬성 모드로 돌변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이 또 있다. 오는 10월 13일 일제고사를 앞두고 벌어지는 반교육 행위에 대해 일제히 입을 닫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고사에 따른 부작용 보도를 쏟아내고 있는 <한겨레><경향><한국>과는 정반대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불리할 때는 입 꾹 닫고 무시전략을 쓰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이들의 일제고사 찬성은 정권 코드 맞추기 성격이 짙다. 일제고사를 놓고 펼쳐진 <조선일보>의 상반된 보도를 한번 보시라.
“‘기초학력 부진아를 찾아내는 데 왜 굳이 중앙정부가 나서고, 70만 학생이 하루에 일제히 시험을 쳐야 합니까?’ 기초학력 진단평가 시험에 대해 한 일선 교사는 이메일로 이 같은 불만을 표출했다. …난데없는 일제 시험을 앞두고 초등학생들은 '시험 열풍'에 휘말리고 있다.…아직도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어야겠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이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 교육부는 한 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조선> 2002년 9월 27일치 기자수첩 '중앙집권적 교육')
“전교조는 영악하게도 일제고사에 대한 학부모들의 나쁜 기억을 이용해 '학력 평가'에 '일제고사'라는 엉뚱한 옷을 입히고 학생들의 시험 거부를 유도했다. …학력 평가는 교사와 학교 입장에서 학생들 실력이 어느 수준인지를 파악해 효율적인 교육방법을 개발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다. 전교조가 이런 학력 평가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어떤 학교, 어떤 교사가 무능력하고 나태한지가 드러나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다.”(<조선> 2008년 12월 22일치 사설)
특히 교사들의 모임인 한국교총의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이중행동은 눈뜨고 보기 민망할 정도다. 이들은 올 초 ‘일제고사 불복종 교사를 중징계하라’고 이사회에서 결의했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엔 일제시험에 반대 태도를 나타냈다. 이 단체는 2002년 9월 25일치 성명에서 기초학력진단평가는 '일제 평가'라면서 "부진아 평가는 교사와 학교의 재량사항으로 국가가 획일적으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원하는 학교와 시도만 실시해야 한다"고 지금과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학원자본, 얼마나 맛있는 교육이겠는가
<조선일보>가 차린 교육기업 이름이 ‘맛있는 교육’이다. 이 업체는 외고, 자사고 실전모의평가 상행위로 언론에 오르내린 바 있다. 자기들이 만든 신문 보도에서는 외고와 자사고 설립을 부추기고, 같은 신문사가 차린 업체에서는 돈벌이에 나선 탓이다. 얼마나 맛있는 교육이겠는가?
일제고사도 이와 비슷한 레퍼토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학원자본으로선 일제고사는 제법 괜찮은 장사가 되는 모양이다. 포털사이트인 ‘네이버’ 책 검색에서 올해 6월 1일 이후 나온 일제고사 대비 문제집을 검색했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검색창에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라고 치고 살펴봤더니 48권이나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생용이 많았고, 중3, 고1 학생들 문제집도 눈에 보였다. 제목의 보기를 들어보면 ‘학업성취도평가 예상문제 6학년(국가수준)(2009)(2009년 10월 13~14일 시행) 편집부| 동아서적’. 이런 식이다.
내친 김에 학원사이트들도 검색해봤다. 스폰서링크, 파워링크 항목에 ‘학업성취도평가 북마니’, ‘학업성취도평가대비 족보닷컴’, ‘학업성취도평가 대교 공부와락’, ‘학업성취도평가 크레듀엠’ 등의 사이트가 즐비하게 나타났다.
이들로선 일제고사가 학원 활성화를 위한 활로가 되고 있었다. 사교육 잡기에 나선 이명박 정부. 그러나 사교육 줄이기를 막는 훼방꾼이 바로 일제고사를 만든 자신들이란 사실을 알까, 모를까.
일제고사 버팀목은 바로 학벌주의
보수인터넷신문인 <뉴데일리>는 지난 9월 16일치 기사에서 같은 날 진행된 ‘좋은학교 만들기 서울 학부모 모임’(대표 서인숙. 이하 조학모) 창립식 모습을 소개했다. 이 신문이 소개한 이 단체의 창립선언문은 다음과 같았다.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필수적인 교원평가와 학생 학업성취도 평가시험조차 전교조 교사에 의해 학교서열화 우려 명분으로 반대되고 선동되고 있는 실정이다. 학부모의 교육주권을 공고히 해 황폐화된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겠다.”
이 단체 참여인사들의 면면을 봤을 때 뉴라이트계열 인사들이었다. 반 전교조 친 정권 인사들이 이끌고 있는 단체라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들의 주장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이 내세운 ‘공교육 정상화=학업성취도 평가’라는 등식이 일반 학부모 사이에도 퍼져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교육이 무너져 있기 때문에 일제고사를 통해서 바로 세워야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좋은 대학을 가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하고, 공부를 많이 시키기 위해 학생들을 줄 세우는 시험이 무엇이 잘못된 것이냐는 얘기다.
이런 생각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학벌주의와 연결된다. 온갖 수단을 노력 동원해 명문대에 가면 좋은 직업을 차지하는 티켓을 얻게 된다는 논리다. 이런 논리 속에서 교육의 본질을 얘기하고 초등 교육과정의 목표를 얘기하는 것은 씨알이 먹히지 않는 것이다.
이 같은 학벌주의와 교묘하게 결탁한 정치세력이 있었고, 그 정치세력이 만든 작품이 바로 일제고사인 셈이다.
부진아 대책, 부지런히 내놔야 할 때
이제 왜 일제고사를 부추긴 세력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지 생각해볼 시간이다. 저들이 내세우는 일제고사 명분은 크게 ‘잘 가르치기 경쟁’ 조장과 ‘부진아 교육’ 활성화이다.
분명한 것은 대개의 학부모들이 나를 포함한 우리 현직 교사들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부진 학생 지도에 대해서도 믿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일부 학부모들이 현 정부의 일제고사 선전에 박수친 건 몇몇 교사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전교조 집행부는 올해 ‘부진아 교육’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학부모에게 내보일 책임 있는 선물은 나오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반성은 아무리 늦어도 빠르다고 했던가. 반대운동은 이겨야 본전이다. 이제 반대운동이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뭔가 ‘해보자’ 운동을 벌여야 할 때다. 이렇게 해야만 저들의 일제고사로부터 학습 자율성을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월간<우리아이들> 2009년 10월호.
대통령 선거 운동이 한창 진행될 때인 2007년 11월 30일. 이주호 현 교육과학기술부 차관과 야당 국회의원 등이 맞붙는 교원정책토론회 사회를 본 적이 있다.
이 차관의 당시 직함은 이명박 후보 일류국가비전위 교육분과위원장. 교육공약을 책임진 사람이었다. 이 토론회를 지켜본 한 지인은 나한테 다음처럼 말했다.
“대단하네요. 이주호가 상당히 전문적이고 많이 알고 있네요. 무책임한 명문고 전도사인줄만 알았더니 그의 말이 모두 맞는 말 같아요. 야당의원은 그 앞에선 새 발의 피군요.”
그는 “국민들도 이런 이주호 말을 직접 듣는다면 그의 미사여구에 금방 빠져들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로부터 2년이 흐른 현재, 이주호는 교육 소통령 노릇을 하고 있다. 얼굴 마담 장관 위 실세 차관인 셈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교육현장을 ‘현지 지도’해 쏟아내는 말이 곧 교육정책이 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교육정책들은 모두 멋있는 이름뿐이다. 하지만 너무 잦은 정책 발표에 헷갈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다음은 이 차관의 야심작인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 관련 기사를 다룬 <위클리경향> 8월 25일치 “고교 신조어, 학부모들 ‘헷갈려’” 내용이다.
“이명박 정부가 만든 자율형 사립고, 기숙형 공립고, 마이스터고 등과 기존의 특목고 및 일반계 고교를 합하면 선택할 수 있는 학교는 10여 가지. 고교 다양화는 학부모에게 구분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신문을 통해 자율고에 대해 알게 됐다는 학부모 성모씨는 어떤 신문은 ‘자립형 사립고’를 자사고라 지칭하고, 어떤 신문은 ‘자율형 사립고’를 자사고라 표현한다. 그래서 두 학교가 같은 학교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고교체제만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자립형사립고, 외국어고, 과학고, 특수목적고, 자율형사립고, 개방형자율학교, 자율형공립고, 기숙형공립고, 마이스터고….
이 가운데 이명박 정부 들어 생겨난 학교 형태는 자율형사립고와 자율형공립고, 기숙형공립고, 마이스터고다. 주로 자율이란 말이 많이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앞의 <위클리경향> 기사와 비슷한 형태의 기사 하나만 더 살펴보자. “학교 '자율 바람' 부모들 헷갈려”란 제목의 <부산일보> 7월 17일치 기사다.
“최근 새로운 형태의 고교가 잇따라 생겨나면서 학부모들은 ‘도대체 뭐가 다른지 모르겠고 헷갈리기만 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자율형 공립고의 경우 기존 '개방형 자율학교'와 차별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부산의 한 공립고 교장은 ‘개방형 자율학교가 참여정부의 작품이다 보니 자율형 사립고와 유사한 개념의 자율형 공립고로 정체성을 새로 세우려는 시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부모들은 헷갈려할 지 몰라도 뭔가 좋은 학교가 자꾸 생겨난다는 프레임은 형성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들의 노림수는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교원정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해 4월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이 나왔고, 이후 학교자율화 계획은 잊혀질 만 하면 반복 발표된다. 수업전문성 제고 방안은 9월 2일 나왔고, 사교육 없는 학교도 2학기 들어 본격화되고 있다. 대입 자율화 방안은 이미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위에서 나온 정책 이름을 전달하는 노릇을 하는 곳이 바론 언론이다. 그런데 언론들이 학교자율화, 사교육 없는 학교, 수업전문성 제고 방안, 대입자율화 따위의 정책을 보도하면 보도할수록 현 정부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
‘자 보시라. 자율과 수업전문성, 사교육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 이런 정책이 얼마나 좋은가!’
반대로 위와 같은 정책에 반대운동을 펼쳐야 하는 단체로선 여간 곤혹스런 일이 아니다.
‘사교육 없는 학교를 왜 반대하는가’, ‘수업전문성을 제고 해야지 왜 반대하는가’, ‘자율화를 하겠다는 데 반대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란 질문에 금방 부딪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이 같이 고도로 계산된 작명법은 정권차원에서 진행되는 느낌이다. 권위주의에 빠진 정권일수록 이를 감추기 위해 빼드는 무기가 언어 훔쳐오기다. 최근 청와대가 벌이고 있는 ‘서민 놀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선거전술에서 많이 쓰인 상징조작인 셈이다.
이와 더불어 그들은 뭔가 새로운 교육정책의 활로를 찾고 있는 모습을 국민의 머릿속에 새겨나가고 있다. 이런 형편에서 운동단체가 반대운동을 하면 할수록 발목 잡기로 비치게 되어있다.
이처럼 현 정부와 이를 받아쓰기하는 언론이 계속 교육의제를 끌고 나가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교육운동단체가 의제를 선점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다.
월간<우리아이들> 2009년 10월호 교육기사돋보기.
2009년 9월 22일 오후 8시 08분 갬
재미있는 글쓰기. 주말마다 우리 반 아이들한테 내주고 있는 숙제 이름이다. 보통 두 개의 주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쓰도록 하고 있다.
몸과 맘으로 겪은 것을 쓰는 게 지금 우리 아이들 단계에서는 제일 좋다는 생각에서 되도록 그런 주제를 잡고 있다. 이를테면 아버지나 어머니 손 자세히 관찰하고 글쓰기, 땀 흘려 일한 뒤에 글쓰기, 눈 감고 20분 생활한 뒤 글쓰기... 뭐 이런 식이다. 사실 이런 레퍼토리는 많은 뜻 있는 선배교사들이 이미 해오던 것을 내가 배워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두 가지가 생겼다. 하나는 매주 선택과제를 내줘야 하는데 주제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고, 나머지는 우리 아이들이 재미있는 글쓰기를 지긋지긋한 글쓰기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 좋은 주말에 글쓰기를 하려고 글쓰기 공책 앞에 앉아 있는 것은 곤혹스런 일이다. 그런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재미있는 글쓰기'라고 억지를 쓰는 교사가 있으니 얼마나 약이 오를까.
실제로 이번 주는 19명의 아이 가운데 2명이 재미있는 글쓰기를 해오지 않았다. 글쓰기를 해온 아이들 중에서도 3명은 글 쓰게 된 동기를 '우리의 그 이상한 선생이 지긋 지긋한 글쓰기를 잊어먹지도 않고 또 쓰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쓰게 되었다'는 식으로 글을 시작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난 이 재미있는 글쓰기만큼은 내년 종업식 전날까지 밀고 갈 생각이다.
나는 기자 일을 여러 해 하다보니 최소한 글쓰기 형식만큼은 얼추 알게 되었다. 잡지사와 신문사 일을 하면서 '멋있는 활동'을 하고 있는 교사들이 뜻밖에도 '엉터리 글'을 쓰는 것을 보고 그의 사상과 진정성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사실 글쓰기를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솔직히 나도 그렇다. 내가 둘러보건데 글쓰기를 잘 하는 사람들도 무척 드물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보다도 휠씬 적다는 게 내 판단이다.
대학을 가서 레포트를 쓰더라도, 회사에 가서 프로젝트 보고서를 쓰더라도, 교사가 되어 아이들 앞에서 글쓰기 지도를 하더라도 꼭 필요한 게 바로 글쓰기 실력이다.
앞으로 글 잘 쓰고 말 잘 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거야. 돈도 많이 벌고 다른 사람한테 봉사도 많이 할 수 있어. 이런 말을 아이들한테 수없이 해왔다.
이 말은 내 가슴 속에 담아둔 솔직한 생각이다. 그런데 이 말이 아이들한테 잘 먹히고 있지 않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어디 좋은 방법 없소?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910154645
위는 프레시안 기사다. 아니 동영상.
8월 28일 <프레시안>, 김영사, 예스24가 공동주최한 <괴짜 사회학> 출간 기념 공개 대담에 참석한 김규항, 진중권, 우석훈, 홍기빈 네 사람의 발언 내용이 화제다. <프레시안>이 이들의 대담 내용을 보도하자 독자들은 수백 개의 댓글을 다는 등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프레시안에서)
이 동영상을 보려고 오늘 프레시안을 헤멨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네이버에서 찾았다. 혹시 필요한 분 있을까봐 엿다 올린다.
우선 제 블로그에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오신 뒤 깜짝 놀라셨을 겁니다. 네이버와 다음 등 검색사이트에서 교육과 관계된 검색어로 오셨는데 엉뚱한 이름의 블로그 첫화면이 떡허니 나오니 말입니다.
이렇게 된 까닭은 제가 기존 사이트(edu.mygoodnews.com) 문을 닫고 위 사이트 운영자께 기존 사이트 주소를 이 블로그 주소와 연결토록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원래 오신 취지대로 검색을 하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이 블로그를 조금 내린 뒤 왼쪽 창을 보면 '검색'란이 있습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그 곳에 찾고 싶은 검색 내용을 치시면 됩니다.
기존 제가 쓴 기사 1500개 가량을 이곳에 고스란히 옮겨놓았으니 검색이 똑같이 잘 될 것입니다. 이중일을 하시도록 부담을 드린 것 같아 죄송하네요.
2009년 9월 16일 오후 3시 8분
어제 한 15년만에 고향 친구를 만났다. 지금은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이 친구는 대학시절 자신이 참여한 학생운동에 대해 지금도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했다. 그 초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친구는 관절염을 앓던 중학교 동창인데, 그 당시 말없이 공부만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이 친구 얼큰하게 술먹은 뒤 하는 말,
"비판만 하기는 쉽다. 하지만 대안을 갖고 있지 않으면 비판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비판하는 사람은 대안까지 빼놓지 않고 제시해야 한다. 먼저 일을 추진한 사람은 그 나름의 계산과 고민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친구의 말이 가슴에 다가왔다.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맞는 말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내가 해온 지금까지의 일이 대부분 어떤 일이나, 어떤 사람을 조지는 것이었다. 변변한 대안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 많았다.
현 정부는 자꾸 뭔가 새로운 것들을 내놓는다. 교육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율화, 사교육없는학교, 교원전문성향상방안... 얼마나 좋은 말인가. 이름으로만 봐서는 모두 찬성해야 할 것들이다. 속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참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저들은 자꾸 새롭고 멋있는 것을 작명하고 나서는데 운동세력은 반대하는 성명서나 기자회견을 하는 방식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반대하는 기사를 많이 썼을 뿐, 뭔가를 생산하는 일에 공을 많이 들이지 못한 게 부끄러운 모습이다.
이번 주 19일까지는 월간<우리아이들>에 '일제고사, 누가 부추기는가'란 주제의 글을 써야 한다. 나는 위 친구의 말을 듣고 내 피디에이폰에 다음과 같이 결론 부분을 적어놨다. 나도 어제 저녁 술을 먹었으니 횡성수설 적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가짐은 가져야하겠다는 생각이다.
"왜 일제고사를 부추긴 세력이 힘을 얻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볼 때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 교사들은 얼마나 부진 학생 지도에 대해 노력했나요? 학부모들이 그들의 선전에 박수친 건 이유가 있을 겁니다. 반성은 아무리 늦어도 빠릅니다. 저는 반성하겠습니다."
2009년 9월 14일 날씨 맑음
기운 빠지는 일들이 있다.
-교사들이 보는 주간신문과 월간지에 교육기사 비평을 연재하는데, 반응이 좋은 줄만 알았는데 한 곳 조사 결과 평가가 좋지 않게 나온 것.
-가평으로 온 뒤로 기사를 많이 쓰지 않아 내 펜끝이 무디어진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된 것.
-5학년 우리 반 아이들 가운데 몇몇이 공부시간에 잘 듣지 말자고 서로 쪽지를 보낸 것을 우연히 보게된 것. 그 나이 때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계속 되면 그것은 잘못된 일. 어떻게 할까? ㅋㅋ.
-우리교육이란 출판사에서 책을 내기로 했는데 원고 마감을 제대로 하지 못해 마음 속으로 끙끙 앓아온 것.
기운이 나는 일도 있다.
-내가 8년째 글을 많이 써온 <오마이뉴스>의 김 부장이 전화해서 '올해 너무 많이 놀았다. 기사를 이제 슬슬 써야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것.
-오늘 우리교육 전 팀장에게 전화해서 '제 성격상 글 다시 쓰기는 정말 어렵겠다. 그 동안 연락 못드려 죄송하다'고 했을 때, "마감시간 없이 넉넉하게 잡고 글쓰라'고 오히려 힘을 보태준 것.
-오늘 스스로 기운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한 것.
기뻐해야 할 일도 있다.
-우리 반 아이가 한명 더 늘었다. 발표도 열심히 하려고 하는 등 성실한 태도를 갖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교사로서 내가 아이들에게 할일은 무엇일까? 교육언론일꾼이라고 스스로 생각해온 지난 날을 등에 걸고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은 과연 어디일까?
윤근혁, 이 뭐꼬~

올 여름이 다 지나갈 무렵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산 9만원짜리 텐트. 난 이 가림막에 누워 숲을 봤다. 숲도 푸르고 텐트도 푸르지만 내 마음은 회색 빛.
아주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종종 텐트에 누워 숲을 봐야지. 그 푸르름이 나에게도 오길 바라면서.
-2009년 9월 13일 오대산 상원사 아래 동막골 야영장.

능경봉. 처음 들어보는 봉우리 이름이다. 이 봉우리가 있는 곳은 바로 그 유명한 대관령. 9월 13일 오후 12시쯤 이 봉우리를 올랐다.
출발한 곳은 대관령 휴게소. 한 5백미터쯤 가니 약수터(샘터)가 보였다. 물이 왜 이렇게 찬겨. 근래 약수 먹어본 기억으론 제일 차가웠다.
다시 능경봉을 향해 고고싱. 이름이 왜 능경봉일까. 혹시 능구렁이가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이런 유치한 생각을 하면서 올라가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뱀 꼬리가 보였다. 아직도 뱀이 동면에 들어가지 않았나보다.
나는 촌놈인데도 뱀을 무척 무서워한다. 한 다섯 살쯤이었던가? 밭에서 놀다가 무척 큰 뱀을 본 기억이 있다. 그 다음부터는 나무가 뱀처럼 보일 정도로 뱀을 무서워하면서 살았다.
아무튼 오늘 능경봉에 오르면서 뱀을 보았다. 밝은 회색 빛깔로 봐서는 꽃뱀은 아니고... 올라가는 내내 만난 사람은 대여섯명 정도다. 이 곳을 찾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듯.
수풀이 우거진 것이 장관이었다. 근래 보기 드문 늦여름의 모습이었다.

햇살이 나무 잎에 비추니 진녹색에 빛이 났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녹색 세상이 펼쳐졌다. 이상한 나무들도 많았다. 그 중에 하나가 아래 것이다. 뿌리인가? 줄기인가?

땀이 줄줄 쏟아졌다. 촌놈이면서도 변변한 산행도 안해본 86킬로의 몸무게를 끌고가야 하는 내 다리의 눈물인가? 살좀 빼야지.
한 시간남짓 뱀이 또 나올까 눈을 땅에 꽃은 채 올라갔다. 드디어 정상. 1123.2미터. 능경봉 정상을 알리는 비석이 보였다. 그래 정상에는 가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올라온 정상이다.


저 아래 보이는 마을은 어디일까? 강릉일까, 횡성일까? 횡성일 것 같다. 하늘엔 조각 구름이 떠 있고, 산 아래엔 큰 마을이 보였다.
올라왔으니 내려가야지. 내려가는 길은 더 쉬울거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산 선배들이 남겨놓은 리본들이 보였다.
나는 오늘 왜 산에 올랐을까? 저 사람들은 왜 산에 올랐을까? 그리고 왜 우리는 산에 오르려고 하는 것일까?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_41
옥상. 내가 중학생 시절 제일 무서워한 곳이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어느 날 그 곳으로 끌려간 적이 있다. 끌고 간 선배는 ‘선빵’(먼저 때려눕히는 싸움의 기술), ‘배 후려차기’의 명수였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나에게 선빵을 날리며 한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왜 난닝구 안 입고 다녀, 이 새꺄!”
얼마나 때리고 싶었으면 ‘러닝 속옷’ 핑계를 댔을까? 트집 중에도 제일 고약한 생트집이다. 전교조를 때리고 싶어 안달이 난 신문사의 생트집 현장은 이 못지않다.
[전교조 “내년 지방선거 개입”]
지난 8월 29일치 <동아일보> A2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전교조가 ‘내년 지방선거 개입’을 직접 밝혔다는 것이다.
이 기사의 밑천이 된 것은 같은 날 치른 전교조 제58차 대의원대회의 자료집. 이 자료집은 모두 108쪽이다. 그런데 내용을 뒤져봤지만 ‘지방선거 개입’이란 글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럼 이 신문이 직접 인용부호까지 쓰면서 내건 ‘지방선거 개입’의 근거는 무엇일까. 기사 내용을 살펴보자.
“전교조는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와 2012년 총선 및 대선에 개입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 …대의원대회장에서 배포될 자료집에는 ①‘이명박 정권의 전교조에 대한 공세 계기는 1차적으로 2010년 지방선거 시기, 최종적으론 2012년 대선이 될 것’이라며 ②‘이명박 교육정책을 심판하기 위한 풀뿌리 교육연대를 강화 한다’고 적혀 있다.”
다시 대의원대회 자료집을 펼쳐놓고 위 기사 ①,②글귀가 나와 있는 곳을 찾아봤다. 있었다! 선거의 중요함을 강조한 ①의 내용은 정세를 적은 ‘주객관적 조건 개요’ 항목에 있었다.
그런데 금방 뒤따라 나와야 하는 ②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있을까? 이 내용은 자그마치 6페이지를 넘긴 뒤 나오는 2009년 ‘하반기 사업기조’ 항목에 나와 있었다. 물론 이 항목에 선거 얘기는 전연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하반기에는 선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자료집 짜깁기치곤 너무 유치한 ‘생트집 기술’을 쓴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선거도 없는 올해의 엉뚱한 사업기조를 내보인 뒤 [전교조 “내년 지방선거 개입”]이란 제목을 붙일 수 있는 용기가 가상할 정도다.
이 신문 보도 뒤 나온 <연합><중앙><서울> 등의 엇비슷한 기사 내용은 <동아>를 받아쓰기 한 것으로 보인다. 전교조는 이들 신문사를 대상으로 지난 5일 언론중재위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청구서엔 ‘전교조의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주기 위한 잘못된 보도를 바로 잡아 달라’란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교육희망 2009년 9월 10일.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_40
사물을 규정하는 대표 언어는 바로 이름. 따라서 이름 짓기는 바로 꼬리표 붙이기라고 할 수 있다. 듣기 좋은 이름은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반면 나쁜 이름은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이다.
날마다 이름을 짓는 작명소가 있으니 다름 아닌 신문사다. 이들이 생산한 교육 관련 이름들이 우리교육을 만들기도 하고 망치기도 하고 있다.
어느덧 평준화교육은 붕어빵교육(<중앙일보> 7월 15일치 사설)이 되었고, 대입 3원칙(본고사․고교등급제․기부금입학제 금지 원칙)은 3불 정책(거의 모든 신문)이 되어 버렸다. 대한민국 역사교과서는 좌편향 교과서(<조선일보> 2008년 8월 5일치)로 전락했다.
참교육은 친북반미교육(<동아일보> 2008년 6월 19일치 사설)으로 매도됐고, 전교조에게는 좌파홍위병 교육 집단(같은 사설)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이 같은 작명법은 정권차원에서 진행되는 느낌이다. 대표 본보기가 대입자율화, 4.15학교자율화 추진계획, 자율형사립고 따위와 같은 ‘자율화 시리즈’다.
권위주의에 빠진 정권일수록 이를 감추기 위해 빼드는 무기가 바로 정반대 언어 훔쳐오기다. 최근 청와대가 벌이고 있는 ‘서민 놀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선거전술에서 많이 쓰인 상징조작인 셈이다.
나팔수를 자처한 것은 보수언론이다. 교육의 자율화 프레임을 퍼뜨리기 위한 언론보도는 끈질기고도 끊임없이 매일 아침 국민들의 뜰 앞에 배달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징조작을 이겨내기 위한 운동도 펼쳐지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학업성취도평가와 교과학습 진단평가 따위를 일제고사로 보도하는 언론들도 많다. <오마이뉴스><한겨레><경향신문><한국일보> 등이 그렇다.
더구나 <한겨레>는 자율형사립고의 줄임말을 ‘자사고’로 쓰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자율화 프레임을 견제하기 위한 숨은 노력의 결과다. 다들 아시듯 자율형사립고를 놓고 대부분의 언론은 ‘자율고’란 줄임말을 쓰고 있다.
“나이스에 성적 입력 다 했어요?”
“네, 네이스에 성적 입력 다 했습니다.”
지난 여름방학 전 상당수의 학교에서 벌어진 관리자와 교사들의 대화 내용일 것이다.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를 놓고 벌어진 2002년 논쟁의 결과다.
neis를 나이스(nice)로 이상하게 발음하는 교사들이 많아진 탓에 에듀파인(edufine)이 또 생길 판이다. 이 시스템은 교사들이 학교 돈 관리까지 해서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란다.
이런 데도 '파인(fine) 파인!' 만을 외쳐야 할 것인지. 제발 ‘제 이름 찾아주기 운동’에 나섰으면 좋겠다.
교육희망 2009년 9월 1일.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_23
여름방학 중이었지만 어제 학교에 갔다. 교무실 앞에 산처럼 쌓여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들춰보니 초등학교 2학기 교과서였다. 개학하면 담임교사들은 이 교과서를 학생들에게 나눠줘야 한다.
하지만 MB시대 저탄소 녹색성장 사명을 부여받은 교사들은 책을 나눠줄 때 주의할 점이 새로 생겼다.
교과서를 나눠줄 때 새로 생긴 주의할 점
담임교사가 절대 다음과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책에 자기 이름부터 쓰세요.”
물론 위와 같은 말을 듣더라도 학생들은 당황할 것이다. 책 뒷 표지에 박혀 있던 학생이름 쓰는 난이 사라진 탓이다. 저탄소 녹색성장에 앞장(?) 서기 위해 ‘교과서 대여제’를 선언한 교과부가 벌인 일이다.
교과부의 교과서기획과가 지난 5월 18일 작성한 ‘교과서 대여제 추진계획안’을 보면 “초중학교에서는 원칙적으로 교과서는 교육청(학교) 소유이며 학생들은 해당 학년 동안 학교로부터 빌려 쓴 후 반납”이라고 적혀 있다. 의무교육 과정인 초중학교에서는 책을 정부 예산으로 사서 준 것이기 때문에 그 소유권 또한 교육청에 있다는 얘기다. 이를 거꾸로 얘기하면 제 돈 내고 교과서를 산 고교생들은 교과서 대여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된다.
이어 교과부는 이 교과서 대여제의 기대효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들었다.
◦ 예산 절감은 물론, 검약 생활 교육 강화 및 저탄소 녹색성장에 기여
◦ 교과서 질 제고를 위한 가격상승 부담 절감
이에 따라 교과부는 이번 2학기 교과서부터 개인이름 쓰는 난을 없앤 대신 교과서 물려주기 기록표를 새겨 넣었다. 당초 2012년 전면 시행이라고 발표했지만, 당장 올해부터 시행되는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상당수의 학교는 최근 ‘저탄소 녹생성장 교육 사례’를 보고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이런 형편에서 학교는 없는 것도 짜내 모범사례를 보고했다. 교과서 대여제 용 교과서가 나온 판에 이것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한 명분이 있다는데 이를 거스를 학교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교과서 대여제는 2012년 시행이 아니라 2009년 2학기부터 시행된 것이다.
교과서 물려주기 기록표를 보면, 연도 아래에 다섯 칸이 있는 걸로 봐서 많게는 5년을 거치며 물려줄 예정인 것처럼 보였다. 맨 오른쪽 칸에는 교과서 상태를 적는 난이 생겼다. 매우 좋음, 좋음, 나쁨으로 표기해야 하는 것이다. 학생이 표시해야 하나, 아니면 교사가 표시해야 하나? 이건 나중에 공문으로 알려주겠지.
아무튼 이 교과서 대여제가 첫 보도된 날은 올해 5월 5일이었다. 학생 처지로선 어린이날 선물 치곤 썩 내키지 않는 것이었을 게다.
보도 내용은 보혁신문을 막론하고 대부분 찬성이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들은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 시절 졸업식장에서 흔히 불려지던 송별노래. 지금이야 듣기 어렵지만 졸업식장서 보편적이던 석별의 대표 레퍼토리였기에 여전히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떠나고 보내는 이들을 연결 짓는 소재 중에 하필 물려받은 책을 택한 건 왜일까.”(<서울신문> 5월 6일치 칼럼 ‘씨줄날줄’)
위 내용은 칼럼 시작부분이다. 책을 물려주는 미덕을 강조하기 위한 것. 결론 부분은 보지 않아도 가늠이 가능할 것이다.
그 많은 쓰기 내용, 스티커 부록은 어찌할까?
같은 날 나온 <조선일보> 논설위원 칼럼인 ‘만물상’도 교과서 대여제에 대해 힘을 얹어주고 있다. 이 칼럼이 나온 지 서너 달 만에 학교에 도착한 교과서 모습이 기사 내용과 너무 흡사해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미국 초·중·고 학생들이 쓰는 교과서 표지 안엔 도서 기록카드가 붙어있다. 언제 구입해 해마다 누가 썼는지 기록한다. 한 권에 60~150달러씩 하는 비싼 교과서라 학교가 구입해 5~7년간 물려 쓰게 하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책에 비닐 표지를 씌워 잘 보관하게 하고 낙서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학년말 반납 때 책 상태를 New(새책) Good(좋음) Fair(양호) Poor(나쁨) Bad(불량), 5단계로 분류해 파손이 심하거나 잃어버리면 책값을 물린다.”
이 신문의 내용으로 가늠해볼 때 우리나라 2학기 교과서 물려주기 기록표 내용은 미국 것을 베껴온 것 같다. 이 칼럼은 다음처럼 끝을 맺고 있다.
“교과서 품질을 높여 학교 교육을 충실히 하고 참고서 부담도 줄여주는 제도를 주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대여제라고 완벽할 수는 없다. 교과서에 줄 치고 메모하는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가 쉽지 않다. 교과서를 학교에 두고 다니면 집에서 예·복습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일본은 10여 년 전 대여제를 추진하려다 포기했다. 교과서를 갖고 다니게 하는 것을 비롯해 단점들을 보완할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대여제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교과서가 개인 책이 아니라 공동재산이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이 칼럼을 읽으면서 역시 <조선일보>의 자료 조사 실력은 대단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미국과 일본의 사례, 그리고 미국식을 차용해온 교과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우려를 담은 내용은 새겨볼만하다. 전교조와 한국교총, 그리고 이 단체들 속 연구소도 캐내지 못한 새로운 정보다.
하지만 이 칼럼은 교과서 대여제 찬성이라는 대전제 속에서 시행 상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기사라는 한계가 있다. 이를테면 “교과서에 줄 치고 메모하는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대목이 그렇다. 이런 주장은 교과서에 줄 치고 메모하는 습관이 잘못되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과연 그럴까?
중학교 교과서는 둘째치더라도 현 초등학교 교과서를 살펴보자. 그 형식이 어떻게 되어 있나? 국어와 수학, 영어 등 상당수의 책이 직접 줄 치고 메모하도록 되어 있다. 7차 교육과정은 이를 권장해왔고, 교사들도 책을 직접 거둬 학습 결과를 검사하는 데 활용했다.
하지만 교과서 대여제가 시행되면 이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교과서 대여제의 참 뜻이 아무리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거대담론과 연결된 중요한 것이라도 교육활동에 방해를 주는 것이라면 말짱 도루묵이 아닌가.
한 초등교사가 쓴 아까운 기사를 보니~
이에 대해 <오마이뉴스> 7월 31일치에 의미 있는 기사가 실렸다. 초등학교 교사인 신은희 교사가 쓴 것이었다. 하지만 이 기사의 제목은 “열심히 공부하면 ‘나쁨’?”으로 잡혀 있어 어떤 주장을 말하는 것이지 명확하지 않았다. 내용에 견줘 눈길을 끌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 기사가 된 것이다. 다음은 신 교사가 쓴 내용이다.
“지금 교과서는 직접 책에다 쓰게 되어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활용을 하자면 아이들에게 빈 칸에 손대지 말고 공책에 그걸 따로 쓰라고 해야 합니다. 아니면 교사가 복사라도 해야 할 판입니다.”
말하기․듣기․쓰기와 읽기 교과서가 있는 국어와 수학, 영어가 이에 해당한다. 교과서에 직접 쓰도록 만들어놓고 쓰지 못하도록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림의 떡’이 아닌가. 고육지책으로 교사가 책 내용을 복사해 나눠준다면 이것이야말로 이중 자원낭비란 비판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올해 처음 적용된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만든 교과서 뒤에 달린 부록의 양이 전에는 수학에 주사위나 숫자카드 정도 있었는데, 올해부터는 1, 2학년 모든 교과서에 학습자료가 있습니다. …내년에 쓸 4학년 국어교과서는 반 정도가 부록입니다.”
개정 교육과정 교과서는 한 술 더 떠 대부분의 교과서에 부록을 넣었다. 붙임딱지(스티커), 말판, 편지지 따위를 오려붙여 학습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교과서 대여제 취지를 따르자면 이것에 손댈 수 없게 된다. 붙임 딱지를 떼어서 쓰고 나면 다음 해부터는 쓸 수 없는 노릇이 되는 게 아닌가.
이런 것을 보고 한 해 앞도 못 내다보는 교과서 행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교과부 한 쪽에서는 부록과 직접 써야 하는 난을 늘려놓고 다른 쪽에서는 교과서 대여제를 시행하라고 으름장을 놓을 것이 뻔하다.
지역 교육청과 학교 교사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 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닐 듯하다.
초등교사인 나는 올 1학기 학생들에게 다음처럼 말했다.
“책 절대 깨끗하게 쓰려고 하지 마라. 놀려고 낙서를 해서는 안 되지만, 낙서처럼 자세히 적어야 한다.” 이런 말을 내년에 또 한다면 그것은 정부 정책에 역행하는 못된 교사가 될 것 같아 고민이다.
교과서 대여제 최대 장벽은 교과서 만든 교과부
이제 결론을 낼 때가 되었다.
교과서 대여제는 대부분의 언론 보도대로 그 뜻은 참 좋다. 하지만 교과서 대여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바로 교과부가 만든 교과서다.
이런 아이러니컬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내주어야 하는 곳은 기성 언론사가 아니다. 전문성을 띤 교사들과 교원단체가 이런 몫을 해내야 한다. 시국선언과 같은 정치투쟁도 필요하지만 학교와 학부모에게 파고드는 정책대안을 생산하는 것이 정말 소중한 일 아니겠는가.
오랜만에 악담을 퍼부어야 할 집단이 있다. 그 대상은 초등학교 교과서를 기획하는데 심부름꾼 노릇을 한 교대와 교원대 교수들이다. 자기들이 만든 교과서 체제를 엉망으로 만들 교과서 대여제에 대해 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 노릇을 하고 있다. 시키는 일만 하고 돈과 명성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심보인가. 그런 생활하려거든 차라리 학교를 떠나 장사꾼으로 나서든가, 심부름센터를 차려라.
노자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작은 생선을 굽듯 조심하라’고 했다. 하지만 MB정부 교과부는 책상머리 행정과 함께 청와대 청기와에 휘둘리는 정치꾼 집합소가 되어버렸다. 그 예가 바로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교과서 대여제가 아닌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하겠다는 데 웬 말이 그렇게도 많은가, 말 많으면 공산당!”이라는 불호령이라도 내릴 것 같은 기세다.
그런데 말이다. 교과부가 명심해야 할 말이 있다. 사회 간접자본의 핵심은 강물을 ‘삽질’로 파헤치는 운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생들을 생각하지 않는 교과서 대여제는 허망한 짓이다.
월간<우리아이들> 2009년 9월호.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_39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웠고, 이명박은 초중등과 싸운다고 했던가?
“명바기, 쥐바기….”
대통령을 향한 이런 거친 말이 내가 가르치는 시골 초등학생의 입에서도 더러 흘러나온다. 이럴 때 교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나는 그 아이들을 타이른다.
“대통령한테 그렇게 막말을 해서야 되겠니? 그런 말 쓰면 안 된단다.”
이런 소리를 엿들은 몇몇 학생들은 나에게 다음과 같은 딱지를 붙인다. ‘이명박 편, 이명박 팬’이라고…. 그들은 내가 ‘MB 대통령 구하기’에 나섰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뒷맛이 개운치 않은 시대다.
MB 대통령에게 ‘건의문’을 발표한 시국선언 교사들에 대한 대학살이 시작됐다. 총을 든 곳은 행동대장 교과부다.
새벽녘 들이닥친 경찰은 전교조 사무실을 뒤진 뒤 서버까지 들고 나갔다. 이를 지켜본 보수신문들은 쇠몽둥이를 더 세게, 더 확실히 휘두르라고 다음처럼 주문하고 나섰다.
“전교조의 상습적인 법위반 행위는 지난 10년의 좌파 정권에서 솜방망이 처벌을 하면서 비롯됐다. 엄중한 처리로 전교조의 잘못된 버릇을 고쳐 놓아야 한다.”(7월 4일치 <동아> 사설)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의 집행을 ‘부당한 공권력 행사’라고 반발한다면 법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전교조가 20년 역사에 처음으로 본부가 압수수색받기에 이른 것은 일탈의 수위가 그만큼 심각해졌음을 의미한다고 본다.”(7월 4일치 <문화> 사설)
최근 들어 전교조가 ‘일탈’의 수위가 심각해졌다는 주장은 누가 보더라도 엉뚱한 말이다. 그렇다면 ‘일탈’을 한 당사자는 혹시 이명박 정부라는 소리일까?
이런 친MB신문들이 합동 제작한 영화 제목이 진짜 ‘MB 일병 구하기’인 듯하다. ‘MB 대통령 구하기’에 나섰다는 소리를 듣는 시골교사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아무튼 탄압받는 전교조를 향한 응원 목소리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야당들과 시민단체들도 전교조를 거들고 나섰다. 상당수의 신문들도 ‘현 정부의 무리수’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눈치 빠른 <조선>이 7월 4일치 사설을 통해 ‘압수수색은 황당하고 치졸한 일’이라고 비난한 것은 눈여겨볼만 하다.
“경찰이 전교조를 압수수색까지 한 것도 황당한 일이다. …압수수색까지 하면서 들쑤시는 건 전교조가 ‘공안 권력’이라면서 비판하는 말의 증빙자료나 될 뿐이다. 검찰이 …치졸한 일이다.”
<조선>이 이렇게 보도할 정도라면 ‘MB 일병 구하기’란 영화는 망할 가능성이 크다고 봄이 옳겠다.
교육희망 2009년 7월 9일.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_38
현 정부 들어 어떤 일에나 끼어드는 단체가 있다. 이른바 ‘MB정부의 감초’인 셈이다. 이 단체의 이름은 바로 한국교총이다.
교사 시국선언에 대해 정부가 징계 으름장을 놓던 지난 6월 17일. 이 단체가 재빠르게 나섰다. ‘비난’ 성명서를 낸 것이다.
그런데 이 ‘성명서’란 것이 재미있다. 자신의 들보(beam)는 감춰둔 채 남 눈의 티만 탓하려 나선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명서 내용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끼어 있다.
“교사의 시국선언이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수차례 이루어져 왔음도 개탄스럽다. 그간 정부도 학교 현장에서 불법적 시국선언 서명이 이루어져왔는데도 확고한 대처를 하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단체는 이 ‘시의적절’(?)한 성명서 때문에 유명세를 탔다. 다음은 신문 보도 내용이다.
“한국교총은 ‘학교는 정치선전의 장이 아니다’며 전교조를 강력 비판했다. 전교조의 시국선언이 정부와 전교조에 이어 교원단체 간 갈등으로 번진 것이다.”(6월 19일치 <중앙일보>)
“한국교총도 이날 성명을 내고 ‘학교현장이 정치선전장으로 오염될 우려가 있고…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6월 18일치 <세계일보>)
하지만 이 보도자료 작성자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4년 10월 13일 자신들의 시국선언에 대해 ‘까마귀 고기’를 먹은 듯하다. 마치 일제고사에 반대하던 자신들의 과거를 까먹은 채 일제고사 찬성 성명서를 낸 지난해의 모습을 재연하는 모습이다.
현 교총회장인 이원희 당시 교총 부회장은 그날 교과부 앞에서 ‘교육 비상시국 선언’을 발표했다. ‘정부·여당의 사립학교법 개정 추진 등을 반대 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음은 이를 보도한 <동아일보> 2004년 10월 13일치 기사다.
“한국교총이 본고사 시행을 비롯해 학생 선발은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 당시 참여정부 교과부는 물론 어떤 신문도 교총의 시국선언에 대해 정치행위니 집단행위니 하는 꼬리표를 붙이지 않았다. 징계 엄포 또한 당연히 없었다. 물론 지금의 전교조 시국선언을 비난하고 나선 신문들도 입을 꽉 다물었다.
전교조의 시국선언은 서명운동 결과를 발표한 행위다. 이에 대해 교총은 성명에서 “교사의 불법적인 집단적 행위 자체까지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해 11월 25일, 이 단체는 교원 22만 명의 서명을 받았다고 기자회견을 벌인 바 있다. 그런데 자신들이 겨우 7개월 전에 벌인 행동이 불법이라고 자인하는 꼴이 되었으니 이 어찌 가소롭지 아니한가.
교육희망 2009년 7월 1일.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_22
“우리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심한 당혹감과 자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1. 정부는 공권력의 남용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고 국정을 쇄신하라.
1. 미디어법 등 반민주 악법 강행 중단하고, 한반도 대운하 재추진 의혹 해소하라.
1. 자사고 설립 등 경쟁만능 학교정책 중단하고, 학교운영의 민주화 보장하라.
1. 빈곤층 학생 지원 교육복지 확대하고, 학생 인권 보장 강화하라.”
전교조 소속 교사 1만 7189명은 지난 6월 18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교사 시국선언을 내놨다. 이를 놓고 보수, 혁신 신문들이 드잡이를 벌이고 있다.
교사 시국선언에 보혁신문 드잡이
이 신문 사이의 싸움을 지켜보는 교과부와 청와대는 저절로 ‘콧노래’가 나올 것이다.
어차피 교육계 신문 지형은 8(보수):2(진보). 신문들이 보도하면 할수록 그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를 지켜보는 교사들의 속마음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먼저 신문들의 ‘교사 멱살 잡기’ 현장을 살펴보자.
친MB 신문의 대명사로 통칭되는 <동아일보> 19일치 사설 제목은 “전교조, 아이들도 ‘억지 시국선언’ 식으로 가르치나”였다.
“전교조가 어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정치활동을 금지한 교원노조법에 위배되는 행위다.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탕으로 한 내용이어서 아이들에게 미칠 나쁜 영향이 더 걱정스럽다. …전교조는 ‘국민이 선택한 정부가 국민의 버림을 받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대선 불복종을 선동하는 듯 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국민이 선택한 정부가 국민의 버림을 받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글귀에 대해 ‘대선 불복종 선동’이란 꼬리표를 붙이는 표현이 재미있다. 우짜둔동 선거와 연결해야 ‘공무원과 교원노조의 정치활동 금지’라는 법 그물에 옭아맬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말이다. 위와 같은 류의 말은 아마 도덕 교과서에도 나와 있을 것이란 걸 알아주길 바란다.
<중앙일보>도 충성 경쟁에서 뒤쳐질 수야 없었겠지. 이 신문도 <동아일보> 사설 하루 뒤 인 6월 20일치 신문에 사설을 썼다. 제목은 <동아일보>와 거의 같은 “‘시국선언 교사’에게 아이 맡겨도 될까”였다.
“초·중·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시각이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쳐도 되는가. 치우친 정치적 견해를 이런 방식으로 표출하는 게 온당한 일인가. 과연 내 아이를 그들에게 맡겨도 되겠는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그제 발표한 ‘교사 시국선언’은 그나마 남아있던 전교조에 대한 기대를 접게 만든다.”
이어 전교조의 약한 고리를 파고든다. 논리보다는 흠집잡기인 셈이다.
“정부는 시국선언 교사들을 징계할 방침이고, 전교조는 ‘불법이 아니다’며 맞서고 있다. 그러나 합법·불법 여부보다 이런 비뚤어진 인식을 가진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끼칠 악영향이 훨씬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전교조 교사의 교생실습 여대생 성추행 사건 등을 생각하면 지금 전교조에 어울리는 것은 시국선언보다는 자정선언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학부모들을 불안하게 만들 참인가.”
교과부의 자가당착에 <조선일보>는 잠잠
애석하게도 6월 21일 현재 <조선일보>는 교사 시국선언에 대한 사설을 쓰지 않았다. 조중동 삼총사의 공동 행보에서 한발 물러난 모습이다. 교육언론비평을 하면서 느낀 점을 사족으로 달면 <조선일보>는 나름 영리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트집 잡힐만한 상황에서는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재주가 있다. 이번에도 그런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교사 시국선언을 진압하기 위해 정부가 몽둥이를 들고 나서는 행위에 대해 <조선일보> 나름대로 보조를 맞추면 모양새가 우습게 된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아무튼 MB정부 속 교과부는 이번 시국선언 참여 교사를 향해 징계 엄포를 놓고 있다. 교육공무원법과 교원노조법에서 규정한 정치활동 금지, 복종의 의무, 집단행위 금지 조항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교과부의 이런 행동은 상황 반전을 위한 MB 청와대의 고육책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전교조를 물고 늘어지는 ‘물귀신 작전’으로 벼랑에 몰린 전세를 바꿔보겠다는 것 아니겠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국선언 징계 움직임에 나선 교과부는 ‘자가당착’이란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 치고 장구 친 곳은 다름 아닌 교과부인 탓이다.
언론들은 교과부 교원단체협력팀이 지난 6월 12일 작성한 다음과 같은 글귀가 담긴 문건을 공개했다.
“전교조의 서명운동은 헌법에서 보장한 의사표현의 자유 범위 안에 있어 국가공무원법과 교원노조법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 성실·복종 의무를 지는 직무수행과 연관성이 멀고 서명에 걸리는 시간도 몇 분에 불과해 직무 전념성을 훼손한다고 보기 힘들다.”
교원단체협력팀은 전교조와 한국교총 등 교원단체 업무를 관할하는 부서다. 이들의 문건은 몇몇 실무진의 의견이 아니다. 교과부 자문 변호사와 법무사 등의 의견수렴과 판례를 분석한 결과인 것이다. 유권해석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 무게감이 크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런데도 교과부는 자신들의 내부 결정을 5일 만에 뒤집었다. 유권해석을 무시한 동력이야말로 바로 MB에게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려는 계산된 정치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은 이런 모습을 비판한 지난 20일치 <한겨레신문> 사설 “교과부의 비상식적인 시국선언 교사 징계 추진”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원 1만7000여명이 시국선언을 한 것과 관련해 교육과학기술부가 주동자와 적극가담자를 중징계하고 위법 행위자에 대해서는 검찰 고발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먼저 교과부의 이런 조처는 전례도 근거도 없는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교조가 합법화된 이래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교사들의 집단성명이나 시국선언을 이유로 징계를 추진한 적이 없다. 시국선언이란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의 범위 안에 속하는 것으로, 이를 징계한다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어 이 신문은 교과부의 교과부가 만든 위의 문건을 인용한 뒤, “교과부 상층부가 정권안보의 들러리를 자임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억지를 부릴 까닭이 없다”면서 “미래세대 교육을 책임지는 부서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몰아붙였다.
같은 날 <경향신문>도 “시국선언 교사들이 공안사범이라도 되는가”란 제목의 사설에서 교과부의 행위를 비판했다.
“(교과부의 징계 운운은) 지난해 촛불정국 때 학교 대표자 8692명이 검역주권 회복 시국선언을 한 것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과도 모순된다. 교사들은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이자 시민으로서 양심에 따라 헌법에 보장된 의사표현을 했다. 이를 막는 교과부의 태도는 시국선언이 왜 필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MB정부의 감초 한국교총 나타나셨네
시국선언을 놓고 극과 극을 이룬 신문들의 보도를 살펴봤다. 이제 MB 정부의 감초 노릇을 자처하고 나선 한 교원단체를 살펴봐야 할 때다. 그 이름은 바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다.
이 단체는 요즘 전교조의 시국선언 때문에 유명세를 탔다. 다음은 신문보도 내용이다.
“(전교조의 시국선언에 대해) 한국교총은 ‘학교는 정치선전의 장이 아니다’며 전교조를 강력 비판했다. 전교조의 시국선언이 정부와 전교조에 이어 교원단체 간 갈등으로 번진 것이다.”(6월 19일치 <중앙일보>)
“한국교총도 이날 성명을 내고 ‘정치적으로 중립성을 유지해야 할 학교현장이 정치선전장으로 오염될 우려가 있고, 교육혼선, 학습권 침해를 조장할 개연성이 높으므로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6월 18일치 <세계일보>)
전교조의 시국선언에 왜 자꾸 한국교총이 등장하고 있을까? 그 까닭은 이들이 MB 친위대를 자처했기 때문이다. 이 단체는 17일 성명서 ‘학교가 정치선전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를 재빠르게 내놨다.
이 단체가 내놓은 성명서 줄거리를 훑어가면서 이 단체의 과거 행태를 짚어보자. 성명서는 다음처럼 시작된다.
“전교조가 시국선언을 발표하기로 한 데 대해, 한국교총은 정치적으로 중립성을 유지해야 할 학교현장이 정치선전장화로 오염될 우려가 있고, 교육혼선, 학습권 침해를 조장할 개연성이 높으므로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시국선언이 정치중립성을 오염시키고 교육혼선을 조장한다는 주장이다. 좋다. 어느 단체나 주장은 할 수 있으니 인정하고 넘어가자.
하지만 다음 내용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법률적․교육적으로 옳지 못한 교사의 시국선언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수차례 이루어져 왔음도 개탄스럽다. 그간 정부와 시․도교육청도 학교 현장에서 불법적 시국선언 서명이 이루어져왔음에도 불구하고 확고한 대처를 하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보도자료 작성자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4년 10월 13일 자신들의 시국선언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것 같다. 마치 일제고사에 반대하던 자신들의 과거를 까먹은 채 일제고사 찬성 성명서를 낸 지난해의 모습을 재연하는 꼴이다.
현 교총회장인 이원희 당시 교총 부회장과 윤종건 당시 회장은 이날 교과부 앞에서 ‘교육 비상시국 선언’을 발표했다. ‘학생선발권을 대학자율에 맡기고 정부·여당의 사립학교법 개정 추진을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음은 이를 보도한 <문화일보> 2004년 10월 13일치 기사다.
“교총은 13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교육비상 시국선언을 갖고 ‘고교
등급제 및 사립학교법 개정 등을 둘러싼 갈등이 교육계를 넘어 사회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현 상황은 교육 비상시국’이라며…”
이 당시 참여정부 교과부는 물론 어떤 신문도 교총의 시국선언에 대해 정치행위니 집단행위니 하는 꼬리표를 붙이지 않았다. 물론 지금의 전교조 시국선언 비판에 혈안이 된 신문들도 입을 꽉 다물었다.
더 말해 무엇하랴. 아무튼 교총은 자신들의 시국선언을 5년 뒤 ‘불법’으로 규정하는 우를 범했으니 이 어찌 코미디가 아니겠는가. 이 때 참여정부가 징계의 칼날을 휘두르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개탄하는 성명서를 내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보수언론과 교총이여, 제 눈의 beam부터 빼라
교총이 낸 ‘시국선언 비판’ 성명서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도 들어가 있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든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육과 관련한 내용이 아닌 정치적․사회적 사안에 대해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유․초․중등 교사의 불법적인 정치적 의사 표현과 집단적 행위 자체까지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이 단체는 전교조 교사가 시국선언을 위해 서명한 것에 대해 불법적인 정치행위와 집단행위로 규정했다. 이어 이 두 행위를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어쩌랴. 불과 7개월 전인 지난 해 11월 25일 자신들은 교원 22만 명의 서명을 받았다면서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던가. 물론 이 당시 주장이 교육세 폐지 반대와 연금법 문제였으니 이해하고 넘어가자.
하지만 이 단체 이원희 회장 등은 대선 기간 이명박 후보가 1위인 자체 조사 결과를 만들어 돌리는가 하면 대선 후보 등을 초청해 군중집회 등을 열었다가 선관위로부터 검찰에 고발당하기도 했다.
사실 공무원의 정치활동 금지 규정 위반이라는 것은 대법원 판례 등을 볼 때 특정인의 당선이나 낙선을 위한 행위를 벌였을 때 해당된다. 정책에 반대하는 시국선언은 의사표현일 뿐이지, 법으로 금지한 정치행위는 아닌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행위의 진수는 2005년 11월 12일 서울역 광장에서 펼쳐진 한국교총의 교육파탄 규탄 전국교원총궐기대회에서 엿볼 수 있다. 이날 한국교총 산하 경기도교원단체총연합회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힌 펼침막을 들고 대회에 참석했다.
“김진표 장관은 사퇴하고 경기지사 출마 포기하라.”
물론 이런 한국교총의 ‘정치행위’에 대해 보수신문들은 자기 식구 챙기듯 따뜻하게 보도해줬다. 한국교총이든 보수신문이든 제 눈에 들보(beam)부터 뺄 생각하지 않고 남 눈의 티만 탓하는 꼴이니 이 어찌 가소롭지 아니한가.
월간<우리아이들> 2009년 7월호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_37
주간<교육희망> 지난 호 이 난의 제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조선일보>여 봉기하라.”
참여정부 시절엔 ‘학생선발권 보장하라’고 펜대를 휘두르던 <조선>. 그런데 이명박 정부 시절엔 이전 정부보다 더 지독하게 학생선발권을 ‘무시’하고 있는데도 꿀 먹은 벙어리 노릇을 하고 있는 그들의 ‘이중행동’을 비판한 내용이었다.
사실 이 신문의 이런 버릇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논란이 된 ‘학원의 심야교습 제한’ 문제도 그렇다. <조선>은 이전 태도를 뒤집어 이명박 정부의 심야교습 제한 움직임에 박수를 쳤다.
다음은 5월 2일치 기자수첩 “교과부, ‘월권’ 운운할 때 아니다”의 일부 내용.
“60~70%의 국민 지지를 얻고 있는 ‘학원 심야교습 금지’ 등에 대해서도 교과부는 냉소적으로 코웃음 쳐왔다. 그러니 ‘교육관료들에 맡겨놓으면 아무 것도 안 된다’….”
5월 19일치는 한 발 더 나아간다.
“학원 심야교습을 단속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대다수 학부모 부담을 줄이고 자라나는 청소년들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면 어느 정도 부작용이 있더라도 밀고 가야 한다.”
이 사설의 제목은 “사교육 해결하려면 네 가지 처방 동시에 실행해야”였다. 사교육 해결을 위해 ‘부작용이 있더라도’ 심야교습 금지 조처를 해야 하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신문은 몇 년 전만 해도 ‘심야교습 금지’ 반대를 위한 ‘기사 데모’를 펼친 바 있다. 다음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에 나온 사설 내용이다.
“교육당국은 학원들 심야수업 솎아내는 데나 골몰하고 있으니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어둡다는 평을 듣는 것이다.”(03년 12월 3일치 사설)
“강남 학원들의 심야수업을 단속하겠다는 서울시교육청의 방침은 사교육의 과열 때문이라지만 순서가 뒤집힌 대책이다. …앞서가는 사교육의 발목을 잡겠다고 공권력의 몽둥이를 든 셈이기 때문이다.”(03년 11월 15일치 사설)
주변 온도에 따라 색깔이 바뀌는 카멜레온. 많은 이들이 <조선>을 보고 ‘뱀목’에 속하는 이 동물에 빗대 부른 이유가 정권에 따라 돌변하는 보도 때문인 것이다.
예전엔 심야교습 금지와 학생선발권 제한에 대해 맨 앞에서 봉기한 <조선>. 이명박 정부의 똑같은 정책 움직임에 대해 그들은 왜 봉기하지 않을까.
한 중앙일간지 교육중견기자는 그 까닭에 대해 다음처럼 분석했다.
“<조선>의 교육기사는 거의 위에서 기사 방향이 떨어져요. 이 신문사 윗선에서 ‘사교육 대책’에 대해 현 정권과 암묵적인 합의가 있지 않았나 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교육희망 2009년 6월 18일.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_36
“‘시위’가 ‘시민’을 몰아낸 서울광장.”
이것은 <조선일보> 6월 11일치 1면 머릿기사 제목이다. 전날 치른 6.10항쟁 22주기 기념대회를 두고 이런 제목을 붙여 놓은 것이다.
이날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은 자그마치 10만명이었다. <조선>의 제목과 정반대로 시위가 시민을 끌어 모은 결과였다. 반면 경찰과 정권은 시민을 몰아내려고 애를 썼지만 실패했다.
그럼 <조선>이 생각하는 ‘시민’은 다른 개념일까? 그것도 아니다. 같은 날 같은 지면에 실린 사설 “추모 편승해 무슨 이익 챙기겠다는 건가”는 다음처럼 시작된다.
“이날 집회엔 수만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그들도 대회에 모인 사람들을 분명히 ‘시민’으로 지칭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이 신문은 정반대의 내용을 그럴듯하게 왜곡한 포장지로 지면을 감싸는 술수로 커왔다. 앞뒤가 다르고, ‘조변석개’하더라도 당장 자신들의 주장만 ‘선전선동’하면 된다는 심보다.
이런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태도’는 교육기사에서도 판박이다.
박정희 시절에는 평준화에 대찬성하더니 노무현 시대에는 ‘좌파교육’으로 몰아세웠다. 김영삼 시절에는 대학 본고사를 사교육의 주범(93년 4월 11일치 사설)으로 몰아세우더니 노무현 시대에는 ‘제비뽑기로 신입생 뽑자는 입시강령’(07년 4월 9일치 사설 제목)이라고 돌변한다.
<조선>이 입버릇처럼 말해온 ‘학생선발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대입 본고사, 고교등급제 등을 반대하는 발언을 내놓자 “그건 입시가 아니라 제비뽑기일 따름”이라면서 다음처럼 주장했다.
“3불이란 평등의 정치 구호를 그냥 끌고 가겠다는 것은 교육의 수준 향상, 국가 수준의 업그레이드를 포기하겠다는 것일 뿐이다.”(07년 4월 9일치 사설)
이러던 <조선>이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형국이다. 이명박 정부의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부금입학제 유지 방침에 변변한 비판을 내놓지 않았다.
최근 교과부가 내놓은 자율형사립고 방안도 마찬가지다. 사교육 망국론에 위축된 교과부는 ‘자율형사립고를 내신으로 응시하게 한 뒤, 전원 추첨으로 선발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부자들이 모여 제비뽑기로 들어갈 수 있는 학교가 신설되는 셈이다. 사학의 선발권은 깡그리 무시되는 것이다.
이런 학생선발권 ‘개무시’에 대해 제일 먼저 봉기해야 할 곳은 바로 <조선>이다. 내신 위주 학생선발을 추진한 노무현 정부를 겨냥해 ‘눈 멀고 귀 먼 정권’(07년 7월 6일 사설)이라고 막말을 퍼붓지 않았던가?
교육희망 2009년 6월 11일.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_35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의 박수 대신에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이제 국민 열에 일곱은 그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그의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최악의 ‘비호감’ 대통령이 된 셈이다.
슬픈 일은 전교조 사정도 이 대통령보다 좋다고 보기 어렵다는 데 있다. 포털에 전교조 관련 기사만 뜨면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누리꾼이 철철 넘친다. 인터넷에선 이 대통령이 ‘×박이’로 욕먹을 때, 전교조는 ‘○교조’로 손가락질 당하고 있다. ‘알바’의 소행 탓이라고 치부하기엔 상황은 너무 심각하다.
“선생님 같이 좋으신 분이 왜 전교조를 하세요?”(어느 학생)
“6학년 담임이 죄다 전교조 교사라 걱정 했는데 정말 최고라고 하더군요.”(어느 학부모)
최근 보고 들은 얘기다. 하나는 윤지형 교사가 펴낸 책 <교사를 위한 변명>(우리교육) 서문에 실린 것이다. 다음 것은 내가 일하는 어느 시골의 전직 지회장이 현직 지회장에게 건넨 말이다.
이렇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언론 역사로 보면 전교조 20년은 ‘반전교조’ 보도 20년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식이었다.
“전교조는 가짜선생님, 선생님으로 위장한 싸움꾼의 집단이다. 북한의 선전물을 베끼고 거기에 무릎 꿇고 절하는 …우리 아이들의 내일을 위해 전교조와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2006년 7월 27일 <조선> 사설)
이날 하루 새 나온 조중동의 사설 제목만 늘어놓으면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을 공격하는 극렬 노조 테러”(조선), “전교조는 북한역사관 세뇌기구인가”(중앙), “전교조는 우리 아이들을 ‘북한 인민’ 만들 셈인가”(동아)
20년 동안 이렇게 두들겨 맞고도 전교조는 쓰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20돌을 맞은 오늘날, 전교조는 자신의 맷집을 자랑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 교육언론의 보수, 진보 구도는 8:2다. 문제는 ‘친 전교조’ 신문으로 여겨진 <한겨레><경향>까지 전교조의 현재를 비판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이들은 20돌 기념 전교조 특집 기사에서 전교조의 문제로 ▷대안 없는 반대운동 ▷교사 이익에 치중한 투쟁 등을 꼽았다. 전교조로선 억울할지 몰라도 새겨들어야 할 지적이다.
마침, 현 집행부는 ‘새로운 학교운동’을 펼치겠다고 다짐하고 나섰다. 반대운동보다 몇 배 더 어려운 것이 창조운동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대중의 박수를 위해서라도 절실하다.
1989년 5월 28일. 백골단 지랄탄에 쫓기며 깃발을 올린 전교조. 이 당시 교사들이 깃발을 든 까닭은 박수를 받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중의 박수를 받지 못하는 한 어떤 승리도 제대로 이룰 수 없기에 박수는 필요하다.
교육희망 2009년 6월 1일.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_21
5월 어느 날. 시골에 있는 어느 읍내 식당에서 술잔이 오갔다. 이 지역 전직 전교조 지회장이 현직 지회장에게 술 한 잔 사주는 자리다.
이 지역에서 부인도 만나 결혼까지 한 토박이 전직 지회장은 다음처럼 말했다. 그는 중학교 교사다.
“내 마누라 말을 들어보니 초등학교 전교조 선생님들 인기가 진짜 좋더군요. 학부모들이 실감을 하고 있더라고요.”
갑자기 웬 ‘인기타령’일까? 현직 지회장과 나는 전직 지회장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말이 이어졌다.
“내 처가 그 학교 학부모 거의 알 정도로 마당발이거든요. 그런데 학부모들은 학기 시작되기 전 6학년 반 담임교사가 대부분 전교조라는 얘길 듣고 걱정을 정말 많이 했나 봐요. 공부 안 시키고, 이상한 소리만 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나는 침이 꿀꺽 넘어갔다. 전직 지회장의 결론은 이랬다.
“그런데 겪어보니 최고라는 거야. 담임선생님들이 하나같이 학생들을 무척 사랑하고 공부도 얼마나 성실하게 가르치는지 칭찬이 자자하더라고요. 내가 부러워할 정도로 인기가 최고에요.”
이 말에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은 웃지 못했다. 전교조에 대한 살얼음판 같은 학부모들의 학기 초 첫 반응이 가슴을 짓누른 탓이다.
그렇다. 전교조 교사는 학력신장을 소홀히 하고, 의식화 수업을 한다는 생각이 부지불식간에 학부모들 머릿속에 스며들어있는 게 사실이다. 20년간 전교조를 겨냥해온 언론들이 만들어놓은 결과다. 하지만 우리의 책임은 없을까?
‘친 전교조’ 신문들도 회초리를 들고…
지난 23일 오후, 전국 교사 수천 명은 서울 여의도 공원에 모여들었다. 전교조 창립 20돌 기념식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들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탄압과 언론 몰매, 그리고 복잡한 전교조 내부사정도 작용했으리라.
20년 동안 신문의 논조를 단순화하면 전교조 ‘비호감’을 퍼뜨린 쪽이 70~80% 정도였다. 전교조 호감 보도에 나선 신문사는 10~30%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형편 속에서 전교조가 7만 명의 조합원을 유지하면서 이 정도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것 자체가 대견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스무 살 전교조는 지금 아프다. 아무리 좋은 맷집을 가졌더라도 사방에서 20년 동안 때려대는 언론보도를 견뎌내기란 쉽지 않은 법이리라.
올해 5월 들어 전교조에 대한 신문보도 내용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조중동(조선․중앙․동아)으로 대표되는 보수신문의 태도야 여전하다고 치자. 하지만 평소 전교조에 대한 호의적인 보도를 하던 <한겨레><경향>도 회초리를 들었다.
20돌을 맞아 전교조의 공과를 따지다보니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교조에 대한 비판치곤 무척 매섭고 아픈 것이 사실이다.
언론실명비판의 선각자인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지난 3월 30일 <한겨레>에 ‘전교조를 위하여’란 제목의 칼럼을 썼다.
“그간 보수신문들은 전교조에 대해 비난을 퍼부어 왔다. 반면 진보신문들의 지면에선 전교조에 대한 비판을 찾아볼 수 없다. 양쪽 신문 지면만을 놓고 본다면 전교조는 악이거나 선이다. 그 중간은 없다. 그런데 과연 이게 진실일까?”
이어 강 교수는 전교조를 사랑한다면 진보신문들도 전교조를 비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개혁·진보 진영엔 이상한 질병이 창궐하고 있다. 보수신문들이 비난하는 대상이라면 무조건 껴안고 옹호해야 한다는 질병이다. 이제 그런 방식으론 안 된다. 오히려 비판을 선점해야 한다. 전교조의 문제는 <한겨레> 지면에서 더 왕성하게 지적되어야 한다. 아니, 적어도 논쟁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보수신문들을 단지 저주의 대상으로 삼다간 부메랑을 맞아 이쪽이 먼저 쓰러진다.”
이 칼럼이 나온 뒤 두 신문의 전교조 비판은 매섭다. 최근 들어 <한겨레><경향>이 꼽은 전교조에 대한 비판 줄거리는 ▶교사 이기주의 ▶학부모․내부 소통 부족 ▶대안 없는 반대 등이다.
그런데 위 3가지 비판은 전교조 내부에서도 제법 여러 번 나왔던 것이다. 그만큼 두 신문의 문제제기에 귀기울여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한겨레> 5월 22일치에 나온 전교조 기획시리즈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다.
“전교조가 오는 28일 창립 20돌을 맞는다. 창립 뒤 한동안 전교조는 ‘교육 희망’이었고 ‘참교육’의 대명사였으며, 교사들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전교조에는 새로운 꼬리표가 하나 붙었다. ‘교직 사회의 기득권에 집착하는 이익집단’이라는 비판이다. ‘우군’인 진보진영에서조차 전교조와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성년을 맞은 전교조 내부 분위기가 밝지만은 않은 이유다.”
교사 이기주의 극복 과제
<한겨레>가 이날 첫 선을 보인 시리즈 “①전교조 20년 ‘빛과 그림자’”의 제목은 “참교육 ‘씨앗’ → 교사이익 ‘집착’ →동력 약화로 안팎 위기”였다. 교사이기주의가 전교조 위기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99년 1월. 교원노조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전교조는 합법 노조가 됐다. 당시 전교조는 기자회견문에서 다음처럼 밝혔다.
“어떤 경우에라도 우리는 교육적 입장에서 우리의 권익보다는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겠다. 참교육의 주체세력으로서 시대가 요구하는 교육개혁에 앞장설 것이며, 조합원 권익단체로 머무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 같은 다짐에 대해 <한겨레>는 “합법화 이후 이런 ‘초심’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는 평가를 안팎에서 받았다”고 비판했다. “참교육을 외치면서도 정작 교사와 학생·학부모의 이해가 대립하는 사안에서는 교사의 기득권 보호에 더 앞장섰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로 이 신문은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 전교조 평론집을 낸 한 전교조 교사를 등장시킨 뒤 7차 교육과정과 교육행정정보시스템(네이스)·교원평가 반대투쟁을 들었다.
기사 속 멘트는 기자의 숨은 의도다. 따라서 이날 <한겨레>에 실린 멘트들은 이 기사를 쓴 기자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멘트 내용을 간추려보자.
“합법화 이후 첫 이슈가 학생의 교과 선택권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7차 교육과정 도입 문제였는데, 전교조는 교사의 노동유연화 우려를 내세우며 반대 투쟁을 벌였다. 이처럼 학생과 교사의 이해가 상충할 때 기존 주장을 뒤집으면서까지 교사의 이해를 반영하려 했던 것은 문제다.”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
“전교조는 합법화 이후, 국민들의 눈에 ‘기득권 지키기 투쟁’으로 비치는 7차 교육과정·교육행정정보시스템(네이스)·교원평가 반대투쟁에 주로 힘을 쏟았다. 전교조에 우호적이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조합원과 국민들이 지지하는 ‘교장선출보직제’나 ‘학교개혁’ 투쟁을 했다면 학교교육은 물론 전교조의 위상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교육평론집 <학교 개조론>을 쓴 이기정 서울 창동고 교사)
<한겨레>는 이날 기사에서 “특히 전교조가 수년째 이어오고 있는 교원평가 반대투쟁은, 국민들은 물론 ‘우군’인 진보진영조차도 전교조에 등을 돌리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전교조는 성년이 된 지금 오히려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실시된 서울시와 경기도 교육감 선거는 전교조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공정택 후보는 전교조가 지지하는 후보를 겨냥해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무너집니다’라는 펼침막을 내걸어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성공했다.…전교조의 지지가 오히려 진보 성향 후보에게 짐이 되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이 기사는 다음처럼 마무리된다.
“많은 국민들이 ‘전교조’ 하면 ‘참교육’이라는 말보다는 ‘교사의 이익을 위해 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이라는 부정적인 단어를 떠올린다. 이 냉정한 현실은 스무 살 청년 전교조의 어깨 위에 극복해야 할 과제로 놓여 있다.”
조급함, 그리고 학부모, 학생과 소통 부족
<한겨레>는 유인종 전 서울시교육감과 정진후 현 전교조 위원장의 대담기사를 지난 5월 23일치에 실었다.
이 지면에서 강조해서 편집한 내용은 “유 전 교육감이 정 위원장에게 우선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루려고 하는 조급함’을 버릴 것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날 신문에 나온 유 전 교육감의 발언이다.
“보편화(평준화)를 근간으로 지향하는 전교조의 교육 방향 자체는 현대 교육이론에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꺼번에 모든 걸 바꾸기는 어렵죠. 그러다 보면 과격해지기도 쉽지요.”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그동안 지나치게 조급하고 과격하게 운동을 했다는 안팎의 지적에 공감한다”고 인정했다.
학부모 학생과의 소통 부족 또한 전교조의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한국일보>는 5월 18일 전교조 특집기사에서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진경 전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의 발언을 소개했다.
“전교조 태동 당시에는 교사가 학생, 학부모의 몫까지 안고 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한층 커진 교육 수요자의 목소리와 요구를 담아내지 못한 점은 전교조가 반성할 부분이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전교조와 20년째 동반자 관계를 유지한 참교육학부모회의 비판 목소리 또한 전교조로선 아프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한겨레> 23일치에 실린 참교육학부모회 임원들의 목소리다.
“전교조가 교육운동 단체로서 갖는 역할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교원평가제 반대 투쟁 등에서 전교조가 학부모들에게 밥그릇을 지키려는 모습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은 분명히 비판받아야 한다”(박범이 전 서울지부장)
“초창기 전교조가 학부모들의 지지를 받았던 것은 촌지 근절 등 학교 현장의 여건을 개선시키는 데 앞장섰기 때문이다. 정부 교육정책에 맞서는 활동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교실에서 학생·학부모와 소통하는 데 더욱 노력해 주기 바란다.”(장은숙 회장)
<경향신문>은 5월 19일치 전교조 특집기사에서 역대 전교조 위원장의 입을 빌어 내부 소통의 필요성을 보도했다.
“이영희 4대 위원장은 ‘조직 내부의 민주적 소통 구조를 우선 확립해야 한다’며 의사결정 구조의 변화를 촉구했다. 현재와 같은 일부 전교조 지도부만의 논의로 진행되는 일방통행식이 아닌 일선 학교현장의 교사·학생·학부모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아래로부터의 변화 움직임’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감할 수 있는 대안 마련... 그리고 참교육
전교조 비판에 나선 이른바 ‘친 전교조’ 신문들이 한목소리로 주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대안을 내놓는 운동을 하라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5월 19일치 전교조 특집기사에서 “전교조, 경쟁지상주의에 대안 없는 반대뿐… 속수무책”이란 제목을 달았다. 교단을 개혁할 신선한 정책을 개발해서 내놓으라는 주문인 것이다.
이 신문은 “전교조 창립 첫해에 국민의 지지를 받은 것은 ‘촌지 안 받기’ 등 신선한 개혁으로 학생·학부모들의 지지를 끌어냈기 때문”이라면서 다음과 같은 이범 교육평론가의 발언을 실었다.
“정치 관련 투쟁을 하더라도 국민이 공감할 만한 의제를 내놓고 함께 실천할 수 있어야 했다. 그게 부족해 현장과 괴리감이 생겨난 것이다.”
이어 이 신문은 “대안 없이 반대만 외쳐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는 지적도 있다”면서 “전교조 산하 참교육연구소 등이 있지만 제 기능을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이 같은 논조에 더해 참교육 운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다음은 지난 5월 21일치 “스무 돌 전교조, 다시 참교육의 보루로”란 제목의 사설 내용이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른 데는 전교조의 책임도 크다. 합법화 이후 참교육의 가치보다는 교사 이익을 지키는 데 더 많은 힘을 쏟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교조의 정파 간 갈등과 도덕성 문제, 학생과 학부모로부터의 소외를 낳은 원인이기도 하다.”
이어 <한겨레>은 같은 사설에서 다음처럼 ‘환골탈태할 것’을 전교조에 주문한다.
“전교조는 환골탈태해야 한다. 그 방향은 다시 초심인 참교육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낡은 조직이기주의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의미의 교육 민주화에 헌신하지 않으면 전교조의 미래는 없다.”
스무 살 전교조의 아픔이 ‘성장통’이길…
이런 점에서 지난 18일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이 공식 발표한 ‘새로운 학교 운동’은 위기를 벗어나야하는 전교조로선 절대 절명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정 위원장은 이날 “학교를 더불어 함께하는 배움의 장으로 바꾸기 위해 학생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재편하는 한편, 학생·학부모와 상담활동을 강화하고 학생 인권 보호에도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이날 발표한 내용을 살펴보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방향을 가리킨 손가락만 있을 뿐 국민 앞에 내놓을 선물 보따리(대안)는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새로운 학교 운동에 대한 <한겨레>의 기대치는 높다. 21일치 사설은 다음처럼 마무리되고 있다.
“정진후 위원장이 새로운 학교운동을 목표로 내건 점을 주목한다. 이 운동을 통해 학생과 학부모를 참교육의 우군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과 학부모는 여전히 새로운 교육에 목말라 있다.”
지금 전교조의 위기는 조직 혁신을 위한 기회다. 이 아픔이 스무 살 전교조가 새 교육역사를 창조할 수 있도록 만드는 ‘성장통’이길 수십만 교사들은 바라고 있을 것이다.
월간<우리아이들> 2009년 6월호.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_34
깎아지른 듯한 30m 절벽에 몸을 날렸다. 23일 새벽 ‘부엉이바위’는 이 모습을 지켜봤으리라.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통곡소리가 온 나라에 가득 찼다. 전교조 20돌 기념식이 열린 23일 전해진 비보는 교사들의 심장 또한 뜨겁게 만들었다. 전교조는 기념식에서 고인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올렸다.
이런 불상사가 생기기 20년 전인 89년 5월 30일. 노무현 당시 국회의원(통일민주당)은 전교조 편집실을 찾아왔다. ‘전교조 결성 의의와 전망’이란 좌담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주간<교육희망>의 전신인 <전국교사신문>은 같은 해 6월 5일치에서 그의 말을 다음처럼 중계했다.
“전교조가 정치투쟁화해 가고 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소수의 특권층들에게 항상 유리하도록 교육내용이 채워져 있지 않습니까? 그 교육노동에 종사하는 교사들이 사실상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는데, 어찌 정치무장화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동안 정치권력은 끊임없이 교사들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일하라고 강요해 왔습니다. 교육내용 또한 권력을 가진 세력들이 그 부당한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합리화한 내용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부당하게 정치권력을 거머쥔 자들이 그 권력을 계속 유지해 나가려면 군대, 경찰뿐만 아니라 언론과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 탄압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을 거꾸로 얘기하면 교직원노조 정당성을 이미 증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참교육실현에 몸부림치는 교사가 없다면 제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을 겁니다.(웃음)”
고인이 서거한 지 사흘이 흐른 2009년 5월 25일 오후. 20년 전 그의 말을 되뇌어보는 심정은 참담하다. 대통령을 거치며 전교조와는 애증의 관계로 서 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일부 세력과 결탁한 족벌언론이 20년째 벌인 칼부림은 전교조를 향한 것만은 아니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공격 또한 그 얼마나 살벌했던가.
“‘노무현’은 우리에게 별 의미가 없어졌다. 전직 대통령의 명예도, 좌파 리더로서의 존재가치도 사라졌다. …그가 또 다른 그 어떤 사건을 가지고 ‘국민’ 앞에 나서서 그의 번잡한 언변을 늘어놓는 것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조선일보> 4월 27일치 김대중 고문 사설 ‘노무현씨를 버리자’)
이제 <조선>의 바람처럼 그는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그러나 전교조가 새싹처럼 돋아나던 날, 그가 한 발언은 전교조와 영원히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봄바람에 실려 전국을 떠다닐 고인의 가슴에도 전교조가 살아 있으리라.
교육희망 2009년 5월 25일.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_33
푸르른 5월, 교사들의 마음이 퍼렇게 멍들고 있다. 스승의 날이 또 다가온 탓이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올해 학교에서는 이 같은 ‘스승의 은혜’ 노래조차 사라져가고 있다. 밤낮 두들겨 맞는 교사들이다보니 과잉 칭송 노랫말에 대한 부담도 한몫했다. 주눅 든 공교육 속 교사에겐 여러모로 꿀꿀한 시기다.
하지만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두고 나온 <연합뉴스>기사 ‘주눅 든 공교육에 스승의 날 풍경도 변화’는 이상한 기사다. 이날 대부분의 포털뉴스 대문을 장식한 이 기사의 부제는 ‘학원가는 은사 행렬... 학교는 썰렁’이었다.
현재 입시학원 강사에게 선물과 촌지를 주는 행위는 더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적기가 바로 스승의 날이다. 물론 공교육 속 교사에게도 이런 상황이 벌어지긴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입시학원 강사들에 대한 그것은 자연스런 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합뉴스> 기사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이 기사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강남 입시학원 강사 한 명의 사례만 갖고 공교육 교사 전체를 재단한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들을 가르친 교사를 찾는 날은 15일이다. 이날 오후엔 제자들 자장면 사주느라 눈코 뜰 새 없는 교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정이 이런데도 하루 이틀 전 학교 상황을 놓고 ‘썰렁’하다니….
스승의 날을 앞두고 ‘촌지는 물론 어떤 종류의 선물도 사절 한다’는 내용이 담긴 통신문을 보내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스승의 날,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가슴 아파하는 학생이 단 한명도 없게 하려는 배려다.
그런데 이런 교사들의 선행에 먹물을 튀기는 교육청의 획일주의가 끼어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경향신문> 14일치 보도를 보면 “전북교육청이 담임교사들에게 ‘촌지를 받지 않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학부모들에게 보내라고 지시해 논란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충남교육청도 비슷한 지시를 내렸다.
일제히 일제고사를 보듯 일제히 일제 편지를 보내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들 교육청의 지시가 나온 배후엔 이명박 정부 국민권익위의 지침이 있었다. 문화관광부에서 내는 <대한민국 정책포털> 11일치엔 다음처럼 적혀 있다.
“국민권익위의 촌지 안 주고 안 받기 자율 추진 예시- 교장, 교사, 학부모가 함께 참여한 촌지근절 자정결의대회 개최. 담임교사가 학부모에게 촌지를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 발송.”
스승의 날을 맞아 MB 정부의 촌지 근절 ‘자율(?) 추진’ 지시가 교사들의 낮을 화끈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교육희망 2009년 5월 14일.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_32
<조선일보>, <조선일보>…. 딱 2부가 아침마다 내가 일하는 학교에 뿌려진다. 한 부는 교무실, 한 부는 교장실이다. 물론 구독료는 나랏돈으로 낸다.
우리나라 초중고의 ‘조중동’ 구독 몰입현상은 군대 수준을 뛰어넘은 지 오래인 듯하다. 2004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군대의 조중동 구독률은 60% 수준이다. 예상보다는 높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경험으로 가늠해보면 학교는 이 수준을 크게 웃돌 것으로 보인다.
친 정부 신문인 <조선>과 <동아>의 아류신문들도 수십만 부가 전국 초등학교에 뿌려진다. <소년조선><어린이동아> 따위가 그것이다. 지난 해 4월 15일 교과부가 내놓은 소년신문 집단구독 ‘자율화 추진계획’ 결과다.
어디 이뿐인가? 조중동은 이미 학원업에 터를 잡은 지 오래다. 특목고, 자사고 강좌판을 벌여놓는가 하면, 대형학원들과 함께 입학설명회라는 이름의 ‘판촉 쇼’가 한창이다. 낮에는 학교 신문으로, 밤에는 학원 강좌로 돈벌이에 나선 셈이다.
그런데 이번엔 새로운 레퍼토리가 등장하려고 한다. 이른바 전국 중고교 공짜 신문 제공 계획이다. 한나라당 허원제 의원은 지난 4월초 신문법 개정안을 내놨다. 청소년의 신문읽기 활성화를 위해 학급당 4종의 신문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중고교 학급 수는 11만 5322개. 이 사업이 추진되면 2010년부터 5년 동안 약 840억 원의 세금이 들어간다. 신문사로선 하루 50만부의 신규 독자가 생기는 탓에 두 손들어 환영하고 있다. 문화부도 이런 움직임을 거들고 나섰다.
문제는 신문의 신뢰성이다. 아무리 공짜라도 불량식품을 학생들에게 먹게 하면 안 되듯이 불량신문을 읽게 할 수는 없다.
작년 한국언론재단의 대국민 설문 결과를 보면 신문의 신뢰도는 16.0%에 그쳤다. 방송(60.7%)에 크게 뒤졌고, 인터넷(20.0%)보다도 낮았다. <조선><동아>의 막무가내 식 사설은 이미 언론의 정도를 넘어섰다. 뜻있는 논술교사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 이런 독설이 담긴 일부신문의 사설을 학생들이 읽는 것이다. 편향성이 극을 달리는 탓이다.
그럼 그나마 믿을만한 신문은 무엇일까? 지난 해 8월 <시사저널>의 전문가 대상 조사를 보면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는 <한겨레>였다. 28.7%로 1등이었다. 이 신문은 방송보다도 신뢰성이 높았다.
하지만 이 신문은 학교에서 맥을 못 출 것이 뻔하다. 조중동 구독률의 사회 배경엔 자전거 경품이 있어왔듯, 학교 배경엔 교장들의 ‘지시’가 있기 때문이다. 수십년 째 <조선일보> 공짜신문으로 세뇌된 그들에게 힘을 몰아주는 ‘학교 자율화 방안’이란 게 꼬리를 물고 있지 않은가.
교육희망 2009년 5월 7일.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_31
“엉뚱하게 잡은 대못이 박혀버리면 두고두고 짐이 된다. 김 당선자는 대못 정책으로 평지풍파를 일으키기보다 ‘4.9% 지지’ ‘14개월 임기’ 교육감에 알맞은 처신을 해야 한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당선이 확정된 지 이틀 뒤인 지난 4월 10일치에 나온 <조선> 사설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낮은 지지율로 당선됐으니 ‘깐죽거리지 말라’는 것이다.
6%의 지지로 당선된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당선은 ‘전교조 교육감은 안 된다는 유권자의 뜻’(2008년 7월 31일치 <조선> 사설 제목)이고 5%의 지지를 받은 김 당선자는 ‘주제파악이나 해야 할 대상’이란 얘기다. 과연 ‘밤의 대통령’ 가문의 직원다운 우격다짐인 셈이다.
이런 <조선>스러운 ‘보도’ 먹구름이 최근 경기도교육청을 에워싸고 있다.
<문화>의 기자칼럼 ‘현장에서’는 이런 모습을 잘 보여준다. 지난 22일치에 나온 이 칼럼의 제목은 ‘교육감 정치색에 학생들만 혼란’.
줄거리를 요약하면 김 당선자 쪽의 국제고 설립 제동에 대해 “결국 5%의 지지를 받고 당선된 교육감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애꿎은 학생과 학부모가 혼란과 고통을 겪게 된 셈”이라고 질타했다. 국제중을 반대하는 듯 한 당선자의 모습을 정치색으로 폄하하며, 이런 정치색이 고통을 준다는 단순한 레퍼토리다.
우리는 지난 해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국제중을 밀어붙인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정치색’이란 잣대로 본다면 학자 출신인 김 당선자보다 한결 진한 색이었다. 대선 전부터 ‘고교 다양화 300프로젝트’라는 정치구호를 만든 뒤 귀족형 고교를 밀어붙이고 있는 현 이주호 교과부 차관은 또 어떤가?
<문화>는 MB 주변 교육 정치꾼들에겐 칭찬을 아끼지 않아온 신문이다. 이런 신문이 김 당선자의 정책을 놓고 ‘정치색’으로 단정해 비난하는 것은 ‘이중 잣대’다.
<연합뉴스>도 김 당선자에 대해 펜을 겨누기 시작했다. 이 통신사는 <문화>와 같은 날인 22일 “고양 국제고 재검토?‥일산권 주민 ‘격분’”이란 제목의 기사를 송고했다.
“김상곤 당선자가 ‘국제고 설립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고양지역 주민들이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학부모들은 물론 국제고 설립을 추진해 오던 고양시와 택지지구 개발 시행사도 오락가락 교육정책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이 기사가 맞으려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 기사에 실린 건설회사 주변, 국제고 준비에 나선 학부모 등의 발언은 ‘격분’이란 과격한 제목을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형편없는 소재거리다. 이해당사자의 ‘과격한 분통’을 일산 주민 전체의 것으로 확대하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탓이다.
교육희망 2009년 4월 23일.
윤근혁의 교육기사 돋보기_20
“한 사람이나 몇몇 사람은 영원히 속일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을 잠시 속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한 말이다.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링컨의 명언은 요새 우리들 가슴에 새삼스레 스며들고 있다.
경제는 747, 교육은 학교 자율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 400일. 이 사이 거짓말 논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겼다. 이상한 정권이 친 정권 신문과 결탁해 국민에게 쏘아올린 거짓 프레임이 난무한 탓이다.
보잉747 비행기를 개조한 대통령 특별기를 타고 다니는 MB. 그러나 그가 대선 시절 외친 747공약(임기 중 연간 7% 경제성장, 4만 달러 국민소득, 7대 경제 강국 진입)은 재앙이 되고 말았다. 거짓말이란 사실이 단박에 들어난 탓이다. 지금은 “이름은 명박, 경제는 쪽박, 개념은 외박”이란 우수개 소리를 아이들도 하고 있을 정도가 됐다.
거짓 프레임이 어지럽게 춤추기는 우리나라 교육마당에서도 마찬가지다. 참말을 가르쳐야 할 학교가 거짓말 잔치에 몸살을 앓고 있지 않은가?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인 지난 해 4월 15일. MB정부의 교과부는 교과부 출입 기자들에게 회심의 카드를 집어던졌다. 이른바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이었다.
이 카드를 집어든 상당수의 언론들은 자율화 프레임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밧줄로 꽁꽁 묶인 학교에 해방이 온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교과부 발표 다음 날인 16일, <조선>과 <동아> 두 신문은 경쟁이라도 하듯 교과부 발표에 박수부대를 자처했다. 특히 <조선>은 ‘0교시’ 부활에 학부모가 ‘환영’한다는 중간 제목까지 달아놓을 정도로 뻔뻔스러웠다. 0교시에 박수칠 학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 1년 전 신문을 펼쳐보니 저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조선>은 이날 1면 기사를 비롯해 8면 종합면을 통째로 도배했다. 사설에서도 찬양 일색이었다. <동아>도 <조선>에 뒤지지 않았다. 이 신문도 <조선>처럼 1면 기사에 이어 A10면을 도배했다.
<조선>이 8면에 실은 “‘학교 자율화’ 교육현장·학부모 반응” 기사는 한편의 코미디다. 먼저 기사 내용부터 보자.
“0교시 수업·심야학습 ‘환영’=0교시 보충학습과 야간 자율학습에 대한 규제를 풀겠다는 방침에 대해 많은 학부모들이 환영했다. 학부모 박희영(여·41)씨는 ‘방과 후에 따로 돈 들여 학원이나 개인 독서실 보내는 것보다 훨씬 교육적’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부 교사들은 ‘학습 시간이 길다고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보충·자율학습을 시키면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 방법을 선택할 권한을 침해받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0교시 수업과 심야학습에 학부모는 환영하는데 교사는 반대한다는 얘기다. 지금 이글을 읽는 상당수의 독자들도 학부모일 것이다. 주변에서 0교시 수업에 찬성하는 학부모를 본 적이라도 있는가?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아침밥 해먹이기 힘들어서라도 0교시 수업은 못마땅해 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조선>에게 이런 학부모들은 극소수로 보인다. 제 눈에 안경식 보도를 일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친 정권 신문 이권 챙겨 준 학교 자율화
이런 보도 속에서도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는 일도 빼놓지 않는 게 <조선>의 사업 감각이다. 이날 8면에서 이 신문은 “어린이신문 ‘단체구독 금지’도 풀려”란 제목의 기사를 한 꼭지 편집했다.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에 따라 일선 학교의 어린이신문 단체구독 금지 지침이 사라짐으로써 전국 초등학생들이 어린이 신문을 구독해 수업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어린이 신문 단체구독 금지 지침이 내려진 것은 지난 2006년 5월. …이는 전교조가 ‘신문사와 학교 사이에 기부금 수수가 있다’며 금지를 요구한 데 따른 것으로, 정권에 비판적인 조선·동아일보가 어린이 신문을 발행하는 것도 겨냥한 조치였다.”
교과부 발표에 따라 <소년조선일보><어린이동아>를 내는 친 정권 신문들의 숙원사업도 해결된 셈이다. 반면 소년신문 집단 구독 반대운동을 해온 교육시민단체들의 바람은 물거품이 되었다. 두 신문이 두 손 들어 박수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동아>도 지난 해 16일치 기사에서 “초중고교의 이른바 ‘0교시 수업’이나 심야보충수업 규제가 사라졌다”고 환영보도로 덧칠을 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금지해 온 초중고교의 이른바 ‘0교시 수업’이나 심야보충수업 규제가 사라지고 모든 학년에서 수준별 반 편성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방과후학교를 학습지 회사나 학원 등 영리단체에 위탁 운영할 수 있고, 초등학교 방과후학교는 특기적성 프로그램만 운영할 수 있었으나 영어 수학 등 교과 교육도 할 수 있게 된다. 참여정부 시절 초등학교들이 어린이신문을 단체로 구독하는 것을 금지했으나 이 규제도 폐지된다.”(1면)
지난 해 15일, 나도 교과부 발표 현장에서 취재를 했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0교시 수업 부활이나 우열반 편성, 심야학습 등은 <조선><동아>가 교과부 발표보다 한참 앞서간 것이다. 이날 교과부는 ‘0교시, 우열반이 당장 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도 두 신문은 규제 폐지, 학교 자율화란 구호를 강조하려다보니 자충수를 뒀다.
결국 이들의 보도를 제지하고 나선 곳은 다름 아닌 시도교육감들이었다. 이후 시도교육감들은 0교시나 우열반, 심야보충수업 등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긴 회의 결과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반면, 청소년들이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란 구호를 외치며 거리에 나선 데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두 신문의 덕이 컸다. 당장이라도 0교시와 우열반이 편성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 학생들을 불안에 떨게 만든 탓이다. ‘미친 교육’이란 신조어의 배경엔 이런 비정상 보도가 있었던 것이다.
‘미친 교육’ 외치게 만든 그들의 자충수
친 정권 신문들의 자충수는 사설에서 더 잘 드러난다.
<조선>은 16일치 사설 “교장끼리 누가 '좋은 교육' 시키나 겨루게 하자”란 제목을 실었다.
이 사설은 먼저 “지금까지 학교들은 수업시작 종을 아침 몇 시에 울리느냐 하는 것까지 교육부 지침을 받아 해왔다”면서 “학교가 지역 현실, 학생 수준에 맞춰 독자적 교육 프로그램을 갖는다는 건 꿈도 꾸기 힘들었다”고 엉뚱한 주장을 하면서 시작된다.
다 아시듯 이미 시종시간은 이전 정부 때부터 학교 자율사항이었다. 학교가 지역 현실에 맞춰 프로그램을 갖는 것 또한 누가 말려왔단 말인가? 학교를 이렇게도 모르는 논설위원들이 쓰는 사설이니 오죽하랴.
이어 이 사설은 다음처럼 주장한다.
“교장과 교사들에게 학교운영의 재량권을 준 뒤 다른 학교보다 좋은 학교가 되도록 노력하게 만들어야 한다. …교장과 교사에게 자율을 주고 어느 학교 어느 선생님이 더 잘 가르치느냐를 겨루게 하는 일, 그것이 대한민국 교육을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이다.”
참 고마운 말이다. 교장과 교사에게 자율을 주라니 얼마나 고마운 말인가? 하지만 교과부가 이른바 ‘학교 자율화 추진 계획’을 내놓은 뒤 벌어진 상황을 보자.
시험 선택의 자율권은 일제고사 무력 강압으로 사라졌다. 그나마 교장에게 넘겨준 체험학습 승인권 또한 박탈했다. 법으로 보장한 교과서 선택 자율권도 앗아갔다. ‘금성출판 근현대사 교과서’ 강제 변경을 놓고 하는 말이다.
이런 ‘학교 자율화’ 침해 사례에 두 신문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위 사설대로라면 결사항전이라도 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신문들의 보도행태는 정반대였다. 그들이 쥔 펜대로 ‘자율 선택권’을 옹호한 교사들을 두들겨 패지 않았는가.
<동아>는 교과부가 던져놓은 자율화 프레임을 전교조 공격으로 활용하는 민첩성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해 17일치에 나온 A12면 “학교자율화, 전교조가 ‘NO’하면 속수무책”이란 기사와 사설이 대표 사례다.
이 신문은 기사에서 “교육과학기술부가 우열반 편성, 0교시 수업, 심야보충수업 금지 등 초중고교 관련 29개 규제 지침을 폐지하고 학교의 자율권을 확대하는 조치를 발표했지만 시도 교육청과 교원노조가 맺은 단체협약에선 이를 금지하고 있어 자율화 조치가 이행되기 어려운 것으로 지적됐다”고 보도했다.
이어 사설 “전교조, 학교 자율화 발목 잡지 말라”에서는 “전교조는 ‘학교의 학원화’라고 딴죽을 걸고 나왔다”면서 “학교를 옥죄는 규제를 없애는 것은 교육자율화 및 학력수준 향상을 위해 옳은 방향이다. ‘학교의 학원화’가 아니라 학습열을 사교육에서 공교육으로 흡수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의 위 기사는 보도 자체로만 보면 뛰어난 것이었다. ‘전교조 단협’이라는 교과부 정책을 막아선 장벽을 최초로 밝혀낸 보도였기 때문이다.
이 보도 뒤 교과부는 전교조 단협 폐기 활동에 착수했다. 서울시교육청이 동을 뜨더니 다른 교육청들도 단협 폐지 발표에 줄줄이 나섰다. 교원노조의 단협 체결 자율성을 이른바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이 훔쳐간 것이다.
그들의 거짓말은 들통이 나고…
교과부가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인 지난 해 4월에 던진 학교 자율화 프레임. 프레임 확대를 위해 온 힘을 다한 <조선>과 <동아>. 이들의 주고받기 식 협력 속에서 ‘학교자율화’란 거짓 프레임이 국민들에게 먹혀드는 듯도 했다.
하지만 교육시민단체들은 이 프레임에 맞서 ‘학교 학원화’, ‘공교육 포기 계획’이란 새로운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교과부 4.15 대책의 본질을 꿰뚫은 말이었다.
게다가 “미친 소 너나 먹어!”를 외치던 학생들은 “미친 교육”이란 말까지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촛불시위 정국 속에서 이들의 거짓 자율화가 양파 껍질 벗겨지듯 한 꺼풀씩 드러났다.
MB정부가 던진 학교 자율화 프레임은 지난 해 이맘때쯤 수많은 사람을 잠시 속일 수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었다.
한 해가 흘렀을 뿐인데 많은 이들은 ‘학교 자율화’는 빚 좋은 개살구이며 거짓 포장술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 정권 신문들이 아무리 판을 쳐도 거짓말은 들통이 나기 마련이다.
월간<우리아이들> 2009년 5월호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_30
‘다음’과 ‘네이버’와 같은 포털 뉴스사이트에서 주요 정보를 얻으시는가? 그렇다면 <연합뉴스>에 푹 빠져 사는 것이다. 포털 뉴스에 머리기사로 내걸린 보도의 절반 가량은 이 회사가 생산한 것이기 때문이다.
<연합뉴스>는 통신사다. 통신사는 보도 내용을 파는 ‘뉴스 도매상’이다. 우리나라엔 <연합뉴스>와 함께 <뉴시스>가 있다.
요즘 <연합뉴스>의 보도 내용이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연합뉴스>는 전두환 정권이 만들어준 회사다. 1980년 12월의 일이다. 전 정권은 민간 통신사이던 동양통신과 합동통신을 강제로 묶어 버린다. 그런 뒤 탄생시킨 것이 바로 <연합뉴스>의 전신인 <연합통신>이다. 당연히 이 통신사의 전두환 찬양보도는 지극정성이었다.
그런데 요즘 이 통신사가 MB식 무한경쟁교육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조중동이 울고 갈 지경일 정도다.
사례 두 가지만 들어보자.
지난 15일 이 통신사는 “수능성적 공개... 평준화 체제 위협받나”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평준화가 위협 받았으면 좋겠다’는 식의 기사다.
“지역, 학교 간 차이가 확연하다는 사실이 데이터로 입증된 만큼 평준화 실효성 논란이 일 수 있고, 이는 평준화 해체 주장으로까지…”
우리나라 고교 근거리배정제(평준화) 이행률은 전체의 50% 정도다. 그나마 근거리배정이 지역마다 제각기 다른데다 신입생 또한 성적차가 큰 상태로 입학하는 탓에 지역, 학교 간 수능 점수 격차가 생기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당연한 현상을 놓고 평준화 폄하에 나서는 것은 속보이는 행동이다.
이 기사의 의도는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격차가 존재하는데 평준화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한 대학교수의 멘트에서 환히 들어난다. 자본주의 왕국이라는 미국과 영국 등 대개의 선진국이 기본 정책에서는 근거리배정이라는 사실은 찾을 수 없다. 평준화 해체로 달음박질 치고 있는 MB 교육정책에 발맞추기 위해서였을까?
<연합뉴스>의 전교조 멱살 잡기는 더 가관이다. 이 통신사는 지난 3월 3일 “전교조, 자체 진단평가 ‘맞불’”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전교조가 자체 진단평가를 추진해 논란이 일 전망”이라고 적었다. ‘자체 진단평가를 실시해 논란이 일었으면 좋겠다’는 표현인 셈이다.
하지만 전교조는 자체 진단평가를 추진한 적이 없다. 단답형 진단평가가 아닌 다양한 진단 활동을 펼쳤을 뿐이다. 사실 왜곡으로 전교조 몰매현상을 부추기려는 기사 ‘장난’인 셈이다.
지난 해 정부가 <연합뉴스>에 준 국민혈세는 385억 원. 국민과 연합해야할 <연합뉴스>가 MB 정부와 연합하고 있으니 큰일이다.
교육희망 2009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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