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_23
여름방학 중이었지만 어제 학교에 갔다. 교무실 앞에 산처럼 쌓여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들춰보니 초등학교 2학기 교과서였다. 개학하면 담임교사들은 이 교과서를 학생들에게 나눠줘야 한다.
하지만 MB시대 저탄소 녹색성장 사명을 부여받은 교사들은 책을 나눠줄 때 주의할 점이 새로 생겼다.
교과서를 나눠줄 때 새로 생긴 주의할 점
담임교사가 절대 다음과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책에 자기 이름부터 쓰세요.”
물론 위와 같은 말을 듣더라도 학생들은 당황할 것이다. 책 뒷 표지에 박혀 있던 학생이름 쓰는 난이 사라진 탓이다. 저탄소 녹색성장에 앞장(?) 서기 위해 ‘교과서 대여제’를 선언한 교과부가 벌인 일이다.
교과부의 교과서기획과가 지난 5월 18일 작성한 ‘교과서 대여제 추진계획안’을 보면 “초중학교에서는 원칙적으로 교과서는 교육청(학교) 소유이며 학생들은 해당 학년 동안 학교로부터 빌려 쓴 후 반납”이라고 적혀 있다. 의무교육 과정인 초중학교에서는 책을 정부 예산으로 사서 준 것이기 때문에 그 소유권 또한 교육청에 있다는 얘기다. 이를 거꾸로 얘기하면 제 돈 내고 교과서를 산 고교생들은 교과서 대여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된다.
이어 교과부는 이 교과서 대여제의 기대효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들었다.
◦ 예산 절감은 물론, 검약 생활 교육 강화 및 저탄소 녹색성장에 기여
◦ 교과서 질 제고를 위한 가격상승 부담 절감
이에 따라 교과부는 이번 2학기 교과서부터 개인이름 쓰는 난을 없앤 대신 교과서 물려주기 기록표를 새겨 넣었다. 당초 2012년 전면 시행이라고 발표했지만, 당장 올해부터 시행되는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상당수의 학교는 최근 ‘저탄소 녹생성장 교육 사례’를 보고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이런 형편에서 학교는 없는 것도 짜내 모범사례를 보고했다. 교과서 대여제 용 교과서가 나온 판에 이것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한 명분이 있다는데 이를 거스를 학교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교과서 대여제는 2012년 시행이 아니라 2009년 2학기부터 시행된 것이다.
교과서 물려주기 기록표를 보면, 연도 아래에 다섯 칸이 있는 걸로 봐서 많게는 5년을 거치며 물려줄 예정인 것처럼 보였다. 맨 오른쪽 칸에는 교과서 상태를 적는 난이 생겼다. 매우 좋음, 좋음, 나쁨으로 표기해야 하는 것이다. 학생이 표시해야 하나, 아니면 교사가 표시해야 하나? 이건 나중에 공문으로 알려주겠지.
아무튼 이 교과서 대여제가 첫 보도된 날은 올해 5월 5일이었다. 학생 처지로선 어린이날 선물 치곤 썩 내키지 않는 것이었을 게다.
보도 내용은 보혁신문을 막론하고 대부분 찬성이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들은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 시절 졸업식장에서 흔히 불려지던 송별노래. 지금이야 듣기 어렵지만 졸업식장서 보편적이던 석별의 대표 레퍼토리였기에 여전히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떠나고 보내는 이들을 연결 짓는 소재 중에 하필 물려받은 책을 택한 건 왜일까.”(<서울신문> 5월 6일치 칼럼 ‘씨줄날줄’)
위 내용은 칼럼 시작부분이다. 책을 물려주는 미덕을 강조하기 위한 것. 결론 부분은 보지 않아도 가늠이 가능할 것이다.
그 많은 쓰기 내용, 스티커 부록은 어찌할까?
같은 날 나온 <조선일보> 논설위원 칼럼인 ‘만물상’도 교과서 대여제에 대해 힘을 얹어주고 있다. 이 칼럼이 나온 지 서너 달 만에 학교에 도착한 교과서 모습이 기사 내용과 너무 흡사해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미국 초·중·고 학생들이 쓰는 교과서 표지 안엔 도서 기록카드가 붙어있다. 언제 구입해 해마다 누가 썼는지 기록한다. 한 권에 60~150달러씩 하는 비싼 교과서라 학교가 구입해 5~7년간 물려 쓰게 하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책에 비닐 표지를 씌워 잘 보관하게 하고 낙서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학년말 반납 때 책 상태를 New(새책) Good(좋음) Fair(양호) Poor(나쁨) Bad(불량), 5단계로 분류해 파손이 심하거나 잃어버리면 책값을 물린다.”
이 신문의 내용으로 가늠해볼 때 우리나라 2학기 교과서 물려주기 기록표 내용은 미국 것을 베껴온 것 같다. 이 칼럼은 다음처럼 끝을 맺고 있다.
“교과서 품질을 높여 학교 교육을 충실히 하고 참고서 부담도 줄여주는 제도를 주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대여제라고 완벽할 수는 없다. 교과서에 줄 치고 메모하는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가 쉽지 않다. 교과서를 학교에 두고 다니면 집에서 예·복습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일본은 10여 년 전 대여제를 추진하려다 포기했다. 교과서를 갖고 다니게 하는 것을 비롯해 단점들을 보완할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대여제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교과서가 개인 책이 아니라 공동재산이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이 칼럼을 읽으면서 역시 <조선일보>의 자료 조사 실력은 대단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미국과 일본의 사례, 그리고 미국식을 차용해온 교과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우려를 담은 내용은 새겨볼만하다. 전교조와 한국교총, 그리고 이 단체들 속 연구소도 캐내지 못한 새로운 정보다.
하지만 이 칼럼은 교과서 대여제 찬성이라는 대전제 속에서 시행 상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기사라는 한계가 있다. 이를테면 “교과서에 줄 치고 메모하는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대목이 그렇다. 이런 주장은 교과서에 줄 치고 메모하는 습관이 잘못되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과연 그럴까?
중학교 교과서는 둘째치더라도 현 초등학교 교과서를 살펴보자. 그 형식이 어떻게 되어 있나? 국어와 수학, 영어 등 상당수의 책이 직접 줄 치고 메모하도록 되어 있다. 7차 교육과정은 이를 권장해왔고, 교사들도 책을 직접 거둬 학습 결과를 검사하는 데 활용했다.
하지만 교과서 대여제가 시행되면 이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교과서 대여제의 참 뜻이 아무리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거대담론과 연결된 중요한 것이라도 교육활동에 방해를 주는 것이라면 말짱 도루묵이 아닌가.
한 초등교사가 쓴 아까운 기사를 보니~
이에 대해 <오마이뉴스> 7월 31일치에 의미 있는 기사가 실렸다. 초등학교 교사인 신은희 교사가 쓴 것이었다. 하지만 이 기사의 제목은 “열심히 공부하면 ‘나쁨’?”으로 잡혀 있어 어떤 주장을 말하는 것이지 명확하지 않았다. 내용에 견줘 눈길을 끌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 기사가 된 것이다. 다음은 신 교사가 쓴 내용이다.
“지금 교과서는 직접 책에다 쓰게 되어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활용을 하자면 아이들에게 빈 칸에 손대지 말고 공책에 그걸 따로 쓰라고 해야 합니다. 아니면 교사가 복사라도 해야 할 판입니다.”
말하기․듣기․쓰기와 읽기 교과서가 있는 국어와 수학, 영어가 이에 해당한다. 교과서에 직접 쓰도록 만들어놓고 쓰지 못하도록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림의 떡’이 아닌가. 고육지책으로 교사가 책 내용을 복사해 나눠준다면 이것이야말로 이중 자원낭비란 비판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올해 처음 적용된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만든 교과서 뒤에 달린 부록의 양이 전에는 수학에 주사위나 숫자카드 정도 있었는데, 올해부터는 1, 2학년 모든 교과서에 학습자료가 있습니다. …내년에 쓸 4학년 국어교과서는 반 정도가 부록입니다.”
개정 교육과정 교과서는 한 술 더 떠 대부분의 교과서에 부록을 넣었다. 붙임딱지(스티커), 말판, 편지지 따위를 오려붙여 학습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교과서 대여제 취지를 따르자면 이것에 손댈 수 없게 된다. 붙임 딱지를 떼어서 쓰고 나면 다음 해부터는 쓸 수 없는 노릇이 되는 게 아닌가.
이런 것을 보고 한 해 앞도 못 내다보는 교과서 행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교과부 한 쪽에서는 부록과 직접 써야 하는 난을 늘려놓고 다른 쪽에서는 교과서 대여제를 시행하라고 으름장을 놓을 것이 뻔하다.
지역 교육청과 학교 교사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 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닐 듯하다.
초등교사인 나는 올 1학기 학생들에게 다음처럼 말했다.
“책 절대 깨끗하게 쓰려고 하지 마라. 놀려고 낙서를 해서는 안 되지만, 낙서처럼 자세히 적어야 한다.” 이런 말을 내년에 또 한다면 그것은 정부 정책에 역행하는 못된 교사가 될 것 같아 고민이다.
교과서 대여제 최대 장벽은 교과서 만든 교과부
이제 결론을 낼 때가 되었다.
교과서 대여제는 대부분의 언론 보도대로 그 뜻은 참 좋다. 하지만 교과서 대여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바로 교과부가 만든 교과서다.
이런 아이러니컬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내주어야 하는 곳은 기성 언론사가 아니다. 전문성을 띤 교사들과 교원단체가 이런 몫을 해내야 한다. 시국선언과 같은 정치투쟁도 필요하지만 학교와 학부모에게 파고드는 정책대안을 생산하는 것이 정말 소중한 일 아니겠는가.
오랜만에 악담을 퍼부어야 할 집단이 있다. 그 대상은 초등학교 교과서를 기획하는데 심부름꾼 노릇을 한 교대와 교원대 교수들이다. 자기들이 만든 교과서 체제를 엉망으로 만들 교과서 대여제에 대해 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 노릇을 하고 있다. 시키는 일만 하고 돈과 명성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심보인가. 그런 생활하려거든 차라리 학교를 떠나 장사꾼으로 나서든가, 심부름센터를 차려라.
노자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작은 생선을 굽듯 조심하라’고 했다. 하지만 MB정부 교과부는 책상머리 행정과 함께 청와대 청기와에 휘둘리는 정치꾼 집합소가 되어버렸다. 그 예가 바로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교과서 대여제가 아닌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하겠다는 데 웬 말이 그렇게도 많은가, 말 많으면 공산당!”이라는 불호령이라도 내릴 것 같은 기세다.
그런데 말이다. 교과부가 명심해야 할 말이 있다. 사회 간접자본의 핵심은 강물을 ‘삽질’로 파헤치는 운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생들을 생각하지 않는 교과서 대여제는 허망한 짓이다.
월간<우리아이들> 200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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