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_13 |
| ‘교과서’란 무엇인가.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을 보면 ‘학교에서 교육을 위해 사용하는 학생용의 주된 교재’라고 적혀 있다. ‘검인정 교과서’는 ‘교육부가 심사하여 적합한 것으로 판정한 교과서’다. 교사들이라면 다들 알다시피 우리나라 교과서는 보수적이다. 교육과정을 만든 사람도, 교과서를 쓴 사람도 진보와는 거리가 있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교과서가 처음 제작된 때는 해방 다음 해인 1946년이다. 이 당시 교과서는 내용의 상당수가 일제강점기 때의 것을 발췌했다고 한다. 나라는 해방되었지만 교과서는 아직도 식민지 상태였던 것이다. 이로부터 두 세기 60년 가량이 흐른 2008년. 대한민국은 교과서를 놓고 전쟁이 한창이다. 이전 정권에서는 국지전 성격을 띠더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는 전면전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교과서 전쟁 중 공격자는 뜻밖에도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같은 경제단체다. 이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기업인 프랜들리’ 대통령이 후견인으로 들어선 탓이다. 나팔수 노릇을 담당할 동맹군 또한 무척 든든한 편이다. 다들 눈치채고 계시겠지만 이들의 동맹군은 <조선><중앙><동아>, 이른바 조중동 삼총사다. 김도연 교과부장관은 최근 한 모임에서 “역사교과서가 다소 좌향좌 되어있다”고 ‘다소’ 엉뚱한 발언을 했다. 교과부에 알아봤더니 이미 이들은 가위질할 교과서에 빨간 줄을 다 그어놓고 있었다. 다음은 내가 주간<교육희망> 5월 19일치에 쓴 기사 가운데 일부다. “교과부가 ‘친기업, 친일, 친미’ 논란을 빚은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의 지난 3월 건의를 상당 부분 받아들여 교과서를 대폭 손질하기로 최종 결정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교과부 교과서선진화팀 관계자는 이날 ‘교과서 수정을 한다고 일부 언론이 보도한 내용은 바로 대한상의 수정안을 받아들인 것’이라면서 ‘교과서 제작자들의 검토를 거친 결과 건의 내용의 40% 정도를 수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날 아침 <동아일보>는 ‘역사교과서가 다소 좌향좌 되어있다’는 김도연 교과부장관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정부가 초중고 역사·경제교과서 전면 수정에 나섰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번에 교과부가 가위질하기로 결정한 교과서는 중고교 '국사'와 '근현대사'를 비롯하여 '경제', '사회' 과목이다. 이명박 시대 교과부와 교과서 공격세력은 같은 편이라는 것이다. 그럼 대한상의가 건의한 내용은 무엇일까. 이 단체가 지난 3월 28일 교과부에 건넨 ‘초중고 교과서 검토의견’ 자료를 보면 초중고 교과서 60여종 337개의 수정안이다. 다시 내가 지난 4월 7일치에 주간<교육희망>에 쓴 기사에 들어있는 ‘보기’를 인용하겠다. 저들의 몰상식함, “자주독립국가 능력 가졌는지 의문” "(일제) 토지조사사업의 목적은 토지약탈…" (고교 근현대사 166쪽 <천재교육>)→ "목적은 근대적 토지소유제도의 확립…" "우리 민족은 자주독립국가를 수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고교 근현대사 <두산> 259쪽)→ 자주독립국가 능력 가졌는지 의문. "중국군의 개입으로…"(고교 국사 125쪽)→"중공군"으로 변경. "(유신헌법은) '긴급조치'라는 초법적인 권리를 부여…" (고교 근현대사 <금성> 288쪽)→유신헌법상의 권리이므로 '초법적' 부분 삭제 "(기업을) 소유자 중심 체제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변화해야…" (고교 경제 <두산> 134쪽)→편향적 시각이므로 삭제. "영화산업은 미국 할리우드 대자본의 물량 공세에 맞서…" (고교 국사 331쪽)→'대자본의 물량공세' 운운은 반미적 언급이므로 삭제. "인류 발전을 위해서는 가능한 한 사회의 중간 계층을 많이 늘려야…"(중2 사회 <동화사> 165쪽)→중간 계층 늘려야 한다는 논리 불명확으로 삭제. 위 내용은 그 몰상식함의 심각성에 비해, 보도 당시에는 거의 반향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5월 들어 교과부가 교과서 수정 작업에 나선 사실이 알려지자 뒤늦게 빛을 보긴 했다. <한겨레신문>은 21일치 1면 머릿기사로 위 내용을 뒤늦게 보도했다. 하지만 이 신문이 위 내용의 근거로 삼은 ‘역사교육단체의 분석 결과’란 표현은 사실과 맞지 않다. 역사교육단체는 이 글을 쓰는 23일까지도 분석 결과를 내놓은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 기사를 쓴 <한겨레> 기자가 나한테 보도 하루 전 주간<교육희망> 내용을 인용하겠다고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역사교육단체의 발표’로 둔갑시킬 줄은 몰랐다. 잘못된 기사쓰기 방식이다. 개인 얘기를 조금 하면, 나는 위 문제를 끄집어내기 위해 대한상의가 교과부에 건넨 A4 용지 105쪽 분량의 원문을 4월 초 어느 날,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죈종일 분석했다. ‘중국을 중공’으로 써야 맞고, ‘미국 할리우드 대자본의 물량 공세’란 교과서 내용이 ‘반미적 언급’이라는 이들의 건의문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당시 주간<교육희망>의 보도 뒤에도 역사교육단체는 물론 전교조까지 그 흔한 성명서조차 내지 않았다. 선전포고를 한 공격자들의 화력은 막강한데 방어자가 변변치 못했다는 얘기다. 사실 교과서 문제는 전교조와 역사교사모임이 먼저 깃발을 들지 않으면 따라나설 곳이 없다. 화력 막강한 공격자, 변변치 못한 방어자 그럼 공격자들의 화력을 가늠해보자. 다음은 대한상의가 건의문을 냈을 당시 일부 신문의 보도내용 가운데 제목만 뽑은 것이다. “反기업 - 反시장 교과서 바로잡아 달라, 기업의 경제성장 역할 지나치게 폄훼, 세계화에 대해 근거없이 비판하기도, 상의 ‘합리적 경제관 갖도록 개편을’”(<동아> 3월 31일치) “초·중·고 교과서에 이런 글이… ‘성장 제일주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편법과 황금 만능주의를 확산시켰다’, ‘대기업이 협력업체에 횡포를 일삼고 있다’”(<중앙> 3월 31일치) 사실 인터넷 누리집을 돌다보면 누리꾼들이 기자들보다 더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대한상의가 내놓은 ‘교과서 편향성 수정안’에 대한 논평도 그렇다. 지난 3월 31일, 국내 한 포털사이트에는 ‘초·중·고 교과서에 이런 글이’란 고발성 제목이 붙은 <중앙일보>기사가 실렸다. 기사를 쓴 기자에겐 미안하지만 제목과 달리 내용은 보도자료를 ‘받아쓰기’한 수준이었다. 이 기사에 달린 52개 댓글 가운데 대부분은 ‘옳은 말 하는 건데 왜 시비인 건지’(아이디 x23102820)란 제목이 보여주듯 기존 교과서에 손을 들어줬다. 다음은 가장 많은 추천수를 받은 댓글이다. “대기업이 협력업체에 횡포를 일삼는다. 기업은 이익 위해 유전자 조작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교과서 내용 중에서 대한민국 경제에 적용되지 않는 사실이 무엇이 있는가?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횡포 부린 것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유전자 조작한 회사 한둘이 아니고….”(아이디 vision8724) <동아일보>도 제목은 다르지만 <중앙일보>와 거의 같은 내용을 실었다. 다른 신문들도 보도자료 베끼기 식 보도는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다. 기자님들! 대한상의가 교육부에 건넨 건의문 원문은 읽어보셨는가. 그리고 그 건의문을 만든 학자들은 누구였는지 알아보셨는가. 빠듯한 시간 속에서 기사 톱니바퀴를 돌다보면 사실 원문을 찾아 읽어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학생들 인생이 달린 교과서와 같은 문제를 다룰 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중국’을 ‘중공’으로 써야 맞고, ‘미국 할리우드 대자본의 물량 공세’란 글귀가 반미적 언급이므로 삭제해야 한다는 ‘황당 시리즈’를 찬양해서야 되겠는가. 기자들이 알다시피 이번 대한상의가 낸 자료는 재탕도 아니고 삼탕도 아닌, 사탕이었다. 2003년에 이어 2005년, 2007년에도 비슷한 테이프를 틀은 곳이 바로 여기다. 이럴 때마다 똑같은 펜대를 굴려야 하는지 기자들도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상 주간<교육희망> 기사 재인용) 교과서의 역류, 교사들이 막아야 이전과 달리 지금 벌어지는 교과서 전쟁 양상은 심각하다. 교과부장관이란 분이 ‘역사교과서가 다소 좌향좌되어 있다’고 이데올로기 공세에 앞장 설 정도다. 교과서 공격자들을 정부가 거들고 나설 정도로 황당한 시대가 되었다는 얘기다. 신이 난 것은 예의 그 조중동 삼총사다. <조선일보> 5월 15일치 사설을 펼쳐보시라. “김도연 교육부 장관이 14일 좌편향 교과서의 수정 방침을 밝힌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현행 교과서는 고쳐 쓴다고 해도 2002년 검정 당시의 집필기준 내에서만 고쳐 쓸 수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다음 검정에서 채택할 새 집필기준을 지금부터 구상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의 지난날을 비하하는 것은 교육만이 아니다. 좌편향 역사서적들이 지금도 여전히 서점을 점령하고 있다.” 대한상의 건의문에서 보듯 이들이 올바른 역사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부 세력의 친일행적을 감싸주는 것이 아닐까. 친일을 찬양하는 대한민국 역사교과서를 친일언론들이 앞장 서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지금 형편은 녹록치 않다.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친일세력의 총질을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결국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교사들이 나서야 되지 않겠는가. 월간<우리아이들> 2008년 6월호에 쓴 글입니다. |
2009년 9월 8일 화요일
대한민국 교과서에 총질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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