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6일 일요일

청소년 설문조사에 "성폭행한 적 있냐"

'인권침해' 논란 빚은 직업능력개발원 설문... 일부 학교 조사 거부
 
윤근혁
 
  
▲ 1년간 성관계 몇 번했나? 직업능력개발원이 미성년자인 고교생을 상대로 조사하고 있는 설문 내용.
ⓒ 윤근혁
직업능력개발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직업능력개발원(원장 이원덕)이 전국 전문계고 학생 등 수천 명을 대상으로 '성폭행(가담)과 부모 이혼 여부' 등 미성년자의 은밀한 정보까지 캐묻고 나서 말썽을 빚고 있다. 이 설문은 교육부 협조로 학생의 노동시장 진입정책에 대한 학생 연구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학교 차원에서도 설문 거부 결정 등 '반발'


 

14일 일선 학교에 따르면 해당 학교 가운데 일부가 이 기관의 설문을 전면 거부키로 결정하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개인의 은밀한 정보를 실명으로 묻고 있는 등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 위반 가능성이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직업능력개발원은 지난 11월 1일 전문계고 50여 개교 등 전국 100여 개교에 보낸 공문에서 학교별 조사대상 학생 명단을 요구하며 학생, 학부모, 교사 대상 설문 문항을 함께 보냈다. 올해 설문 규모는 1만 3700명이다.


 

학생 대상 설문 문항을 살펴본 일부 교사들은 어리둥절했다. 패널조사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130개나 되는 문항 가운데 상당수가 다음과 같은 사적인 내용을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년 반 번호 이름, 주민등록번호, 보호자 핸드폰과 주소, 친구 2명의 이름 전화번호 전자메일'.


 

읽기에도 민망한 다음과 같은 설문 문항은 더 심각했다.


 

'2006년 7월부터 2007년 6월까지 성관계 경험이 있습니까?', '성폭행을 하거나 당한 적이 있습니까?',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을 공정하게 대하십니까?'.


 

이 밖에도 설문에서는 담임교사에게 해당 학생의 지각, 결석과 성적(9등급) 내용까지 기록하도록 했다. 학부모 대상 설문은 한발 더 나아가 학생 이름을 적도록 한 뒤, 이혼 경험과 장애인 가족 존재 여부, 부모의 출신 대학 이름 등을 요구했다.


 

"미성년자에게 성폭행한 적 있냐니, 제정신인가"


 

인천지역 한 전문계고 교사는 "실명조사를 하면서 '성폭행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묻는 등 연구진이 제 정신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경남지역 여자 전문계고의 교감도 "여학생에게 해괴한 설문을 진행할 수도 없고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한 것 같지 않아 학교 차원에서 설문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설문을 진행하면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동의절차를 거의 거치지 않았다는 것.


 

학교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요구에 따라 이미 11월 말까지 대상 학생 명단을 직업능력개발원에 통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이렇게 올해 패널로 신규 등록된 1600여 명의 고교생들은 2015년까지 7년 동안 이런 조사에 응해야 한다는 사실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단체인 다산인권센터 김경미 상임활동가는 "이번 설문은 개인정보보호법 조항 가운데 정보 자기결정권 침해"라면서 "인권침해 요소가 다분한 설문을 강행할 경우 인권단체들이 공동대응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경원 전교조 실업위원장도 "실업계 학생들에 대한 인권침해 요소가 분명한만큼 조사의 재검토를 위한 활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단법인 한국조사연구학회에서 발표한 조사윤리강령은 '조사자를 모욕하여 수치심을 유발하는 조사방법 사용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직업능력개발원 "'성폭행 경험', 실태 파악에 필요"... 교육부 뒤늦게 점검


 

이에 대해 직업능력개발원의 유아무개 연구위원은 "패널설문 진행 전에 면접요원이 학생의 사전 동의를 받고 있다"면서 "연구를 위한 일부 설문 문항만 갖고 문제를 삼는 것은 이해할 수 없으며 '성폭행 경험' 등을 물은 것은 학생 생활실태 파악에 필요한 자료였다"고 반박했다.


 

직업능력개발원은 이번 조사에 대해 반발이 일자, 설문조사는 그대로 진행하되 일부 문제가 되는 문항에 대해서는 데이터베이스에서 삭제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는 이 기관에 협조를 해주었으면서도 설문문항을 미리 점검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 중견관리는 "교육고용패널 조사라는 얘기만 듣고 설문문항도 이 같은 목적에 따라 작성된 줄 알았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뒤늦게 설문 작성 경위 등에 대해 조사에 나선 상태다.


 

오마이뉴스2007년 12월 15일치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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