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4 | |||||||||
| 올해 5월 15일 ‘스승의 날’ 기사를 보셨는가. 지난해와 달리 올해 보도는 이상하리만치 교사 찬양 일색이었다. 같은 교사들이고 같은 학교들인데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이렇게 365일 만에 180도 달라도 되는 것일까. 난데없는 교장선생님들의 ‘세족식’
올해는 ‘세족식’ 사진들이 스승의 날 다음 날인 16일치 신문을 장식했다. 교장과 교사가 나란히 앉아 아이들 발을 닦는 정겨운 모습이었다. 이렇게 가다간 ‘스승의 날엔 세족식하라’는 교육청 공문이 내려오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이런 사진이 보여주듯 올해 언론들은 몸을 낮춘 ‘스승들’을 강조하는 내용을 유독 많이 다뤘다. 교사로선 기분 나쁘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중앙일보>와 <국민일보>는 15일 아침 기사에서 전교조가 ‘참 교사’로 추천한 송 아무개 교사를 집중 취재해 보여주기도 했다. 사실 지난 해 까지만 해도 푸르른 5월, 그날이 오면 교사들의 속은 푸르게 멍들곤 했다. 촌지를 들먹이면서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신문과 방송 등 언론이었다. 이런 몰매 속에서 교사들은 기진맥진 나자빠지기 일쑤였다. 스승의 날 학교수업을 하면 ‘촌지 폭탄’ 때문에 큰일이라고 보도하고, 스승의 날 휴업을 하면 다시 ‘촌지 때문에 그랬다’고 입을 모아 합창했다. 촌지를 받는 일부 교사들의 못된 습성이야 비판을 넘어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전체 교사들이 이 같은 ‘촌지 결정론’식 보도 때문에 ‘불신 지옥’으로 떨어지곤 했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일까. 올해 ‘스승의 날’ 보도 탈바꿈한 배경은?
그럼 왜 올해 신문사들은 교사에 대한 보도를 손바닥 뒤집듯 바꾼 것일까. 우선 지난 해 5월은 교원평가 정국이었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겠다. 교사를 몰아세울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촌지문제가 줄줄이 터지고 패륜 교사들이 전국에서 신문을 장식했다. 패륜 얘기가 나왔으니 패륜 기사의 원조를 살펴보자. 2000년 5월 한 명문대 학생이 부모님을 토막 살해한 패륜 사건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이 해 5, 6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온 기사들을 기억할 것이다. 이런 줄 패륜 기사를 보면 나라가 당장이라도 망할 것 같다. 사람들은 “우리 사회는 진짜 패륜 사회구나”라고 하면서 걱정을 태산같이 했다. 물론 이 당시만 패륜범죄가 극성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패륜 사건은 항상 있어왔다. 다만 이 당시 기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패륜 문제를 기사화했을 뿐이었다. 교사들의 촌지 ‘패륜’ 또한 비슷한 형태다. 지난해까지 5월만 되면 기자들이 눈에 불을 켠 채 촌지 기사를 찾아 나섰던 것이다. 또한 지난 해 교장협의회가 스승의 날 전면 휴업을 결정하는 ‘월권’을 벌인 것 또한 촌지 논쟁을 물위에 떠오르게 했다. 촌지 때문에 쉬는 것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한국교총 산하단체이면서 친목단체에 불과한 단체가 ‘언론플레이’란 것을 했다가 옆에 있는 일반 교사들까지 불에 데게 했던 셈이다. 전교조에 대한 언론 보도가 호의적으로 변한 것 또한 올해 5월 교사들에 대한 보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교육부 한 중견관리는 “올해처럼 전교조를 좋게 다뤄준 때가 근래엔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시각은 전교조 현 본부 임원들도 같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이전에 견줘 분명히 나아진 것만큼은 분명하다. 학부모들은 어떻게 교사와 전교조를 파악하나 학부모들은 교사의 모습을 크게 두 가지 경로로 파악한다. 하나는 앞서 살펴 본대로 언론이라는 거울을 통한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직접 만남을 통한 것이다. 기자들도 학부모다. 하기에 자기 자식을 가르친 교사에 대한 판단이 기사에도 작용한다. 교육부나 교육청을 출입하는 교육 담당 기자들의 나이는 대부분 30대 중반.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두고 있을 나이다. 교육기자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대부분 자기 담임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런 마음이 교사에 대한 보도에 그대로 스며든다. 특수한 경험이 일반적인 교직사회를 재단하는 것이다. 학부모들이 전교조를 파악하는 경로 또한 마찬가지다. 언론에 비친 전교조와 직접 만나는 전교조로 나뉜다. 직접 만나는 전교조 교사들은 대개 참교육에 열정을 지닌 모습이다. 촌지를 받는 이도 거의 없고 아이들에 대한 사랑 또한 대단히 높다. 그런데 전교조가 언론에 나오기만 하면 ‘투쟁꾼’이나 ‘패륜집단’, 또는 ‘빨갱이집단’처럼 보였다. 직접 보는 것과 언론에 비친 전교조는 대개 이렇게 엇갈린다. 뉴스포털 사이트에 전교조를 비판한 기사가 뜨면 오히려 학생들이 전교조 교사를 두둔하는 경우가 제법 눈에 띤다. ‘우리 담임선생님도 전교조인데 전혀 빨갱이 아닌데요.’, ‘전교조 선생님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우리 마음을 이해해 주시고…’ 이런 식으로 말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99년 합법화 이후 그간 전교조를 이끌어온 집행부 자체의 문제도 분명히 있었다. 투쟁은 하되, 주변을 살피는 슬기로운 대처는 부족했다. 하지만 조선·중앙·동아일보로 대표되는 거대 족벌언론들의 힘이 여론을 쥐락펴락한 탓이 더 크다. 이들은 89년 전교조 창립 때부터 전교조와는 말 그대로 ‘적대관계’였다. 그런 기조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15일, 인천지역 한 초등학교 교사가 성추행을 했다는 보도가 떴다. 나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그가 전교조 소속인가 아닌가’부터 확인했다. 그는 다른 한 교원단체 소속이었다. 만약 그가 전교조 소속 교사였다면 어땠을까.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먹잇감을 만난 ○○떼처럼 달려들었을 것이다. 교사 넷 가운데 한 명이 전교조 소속일 정도로 전교조는 대중조직이다. 시험을 치르거나 사상성을 검증한 다음에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신문은 조합원 하나하나에게 펜대를 겨누고 있는 것이다. 아주 특수한 경우(꼬투리)를 잡아내서 전교조 전체에 대한 ‘흠집’을 내기 위해서다. 조선과 중앙의 해괴한 침소봉대 최근 교사와 전교조를 다룬 두 개의 칼럼이 눈에 들어왔다. 강효상 조선일보 사회부장이 쓴 것과 김종혁 중앙일보 사회 부에디터가 쓴 글이다. 이 두 사람은 지난 15·16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촌지’ 문제를 칼럼 형태로 다뤘다. 16일 강 사회부장은 조선일보 칼럼 ‘태평로/ 렉싱턴 고교엔 ‘촌지’가 있다는데’를 썼다. “(미국) 렉싱턴시의 교육청은 해마다 한 차례씩 이 학교의 학부모 전원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연구지원금 명목으로 기부를 하라는 제안입니다. 액수는 10달러도, 100 달러도 좋습니다. 어느 선생님에게 기부를 할 것인지는 학부모가 정합니다.” 그는 이어 이 돈을 받은 교사들은 “실험기자재를 구입하거나 전문서적을 사서 읽는 등 수업의 질을 높이는 데 애쓴다”고 적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말. “참으로 합리적이고, 멋진 이야기 아닙니까?” 내가 봤을 때는 참으로 비합리적이고 해괴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정반대 생각을 글로 쓴 것이다. 학부모 기부를 받아서 실험기자재를 사는 것이 합리적이라니 될 법한 소린가. 공립학교라면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기부 못 받은 교사는 실험기자재를 못 사고, 이는 다시 아이들한테 피해를 주게 된다. 아주 이상한 제도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강 사회부장은 이런 문제를 우리 교육에 대입하면서 ‘촌지’ 문제를 거론한다. 하지만 논조를 보면 촌지를 받으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도통 종잡을 수가 없다. 촌지 문제를 앞장서서 거론하며 스승 때리기에 나선 신문치곤 그 탈바꿈이 매끄럽지 않다. 이 칼럼에서는 윤종건 교총회장의 말을 따와 “촌지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는 현실에 분노했다”고 적었는데. 윤 회장도 사실 좀 그렇다. 이 단체 산하조직인 교장협의회는 지난 해 학교가 문을 닫도록 ‘결정’하는 월권을 벌이지 않았는가. 명백한 일반화의 오류로 보인다. 미국의 특수한 사례를 들어 칭송한 뒤 한국에 일반화시키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사고체계를 따를수록 교육문제는 꼬이기 십상이다. 하루 전에 쓴 중앙일보 김종혁 부에디터의 글도 특수한 사례를 갖고 일반화를 노리고 있다. 김 기자는 ‘시시각각/ 슬픈 스승의 날’이란 칼럼에서 후배라는 한 교사의 사례를 글머리에 적어 놨다. 이 후배는 전교조를 최근 탈퇴했단다. 칼럼이 소개한 탈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전교조요? 형, 제가 말한 사례들은 다 전교조 교사들이 있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거예요. 전교조 동료들에게 여러 번 얘기했지만 먹혀들지 않아요. 전교조 9만 명 조합원 중 20~30%만이라도 참교육을 생각한다면 아마 달라졌겠죠. 지금 주어진 조건 속에서도 얼마든지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할 수 있는데, 만날 입으로만 참교육… 정말 공허해요. 그래서 탈퇴했어요. 더 이상의 위선이 싫어서.” 참고서 리베이트와 해외여행 돈 빼내기를 전교조가 막지 않아 탈퇴했다는 것이다. 입맛이 쓰다. 이 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교조가 누구보다도 발 벗고 나선 사실은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이런 비위 혐의를 감싸주는 대신 이를 해결하려고 나선 교사들을 가로 막으며 욕한 세력 가운데는 중앙일보도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여기 도둑놈을 막기 위한 자율방범대가 있다고 치자. 자율방범대가 제 역할을 못한다고 탓할 수는 있다. 하지만 도둑놈을 먼저 비판하고, 도둑놈을 잡지 못한 경찰을 욕하는 게 우선 아닌가. 이 칼럼이 소개한 후배도 그렇다. 스스로 ‘전교조 회원’이라면 누가 해주길 바라는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것을. 문제가 있다면 스스로 양심에 따라 문제를 풀기 위해 나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아쉽다.
그들이 만든 교사의 모습은 허상이다 학교를 잘 모르는 교육부 관료와 신문 관료들이 범하는 오류가 있다. 바로 일반화의 오류다.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당신들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관심을 좀 가져라. 그리고 자주 가서 살펴보라. 미국만 쳐다보지 말고. 지금 대한민국 교사들의 모습은 일부 주류신문들이 만들고 있다. 신문 영향력 80% 이상을 차지하는 조선·중앙·동아일보가 만들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들이 펜으로 만들어 낸 교사들의 모습은 이처럼 허상이다. 월간<우리아이들> 2007년 6월호에 쓴 글입니다. | |||||||||
| 2007/05/25 [23:04] ⓒ 윤근혁의 교육돋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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