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3일 목요일

'중앙 학력평가’, ‘한겨레 조기유학’ 이게 뭔가

[교육기사돋보기5] 신문지인가, 사설학습지인가
 
윤근혁
 
 
▲ 한겨레신문의 교육과미래 사이트.     © 윤근혁

“은평뉴타운 자사고, 정원 50% 강북학생 선발.” <조선일보>가 지난 6월 20일 A12면에 쓴 기사 제목이다.

이 기사는 “2009년 3월 개교를 목표로 하는 은평뉴타운 자립형 사립고(자사고) 설립안이 사실상 확정됐다”면서 “교육부가 내신 강화 등을 통해 평준화 유지 정책을 고수하려는 가운데 자사고 설립안이 확정된 것이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를 보면 ‘한 학년이 150명’이라거나 ‘송자 대교 회장을 초대 교장으로 앉히기로 했다’는 등 확정된 학교의 청사진을 보여주었다. 하기에 독자들은 누구라도 ‘확정’ 사실에 대해 의아심을 가질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이치에 맞지 않았다. 이 기사를 쓴 정 아무개 기자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잘못된 보도란 사실을 뒤엎기는 어렵다. 오보에 가깝다는 얘기다.

먼저 기사 자체에 허점이 있다. 대교가 서울시교육청에 신청서도 내지 않은 사실을 적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설립 신청서도 내지 않은 상태에서 ‘설립안이 확정됐다’고 본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조선일보>와 대교가 자사고 확정하나

현재 자립형사립고 설립, 최종 허가권한은 김신일 교육부총리에게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자사고와 영재고 설립은 대통령령 규정에 따라 교육부총리가 갖는 정부 고유의 권한(초중등교육법 제61조, 영재교육진흥법 제6조)인 것이다. 더구나 교육부는 자사고 설립을 더 이상 확대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이런 상태인데 설립안이 확정됐다니 도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서울시교육청에 알아봤다. 서울시교육청 학교운영지원과 담당자도 문제의 <조선일보> 기사를 봤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설립신청서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확정이라고 보도한 것은 맞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교육부는 또 어떨까. 교육부 관계자는 “조선일보 보도를 보고 서울시교육청에 알아봤더니 신청서도 내지 않은 상태였다”면서 “우리는 설립안을 확정하기는커녕 금시초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 모두 ‘오보’ 기사에 대한 정정보도 청구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 이 기사를 쓴 정 아무개 기자는 도대체 어떤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일까. 그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서울시교육청이 설립안을 확정한 것인가?
“내가 듣기로는 그렇다.”

-서울시교육청은 펄쩍 뛰던데…
“그들이 말은 그렇게 할 것이다.”

-설립 신청서를 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확정할 수 있냐는 게 교육청과 교육부의 얘기다.
“(한 참을 말이 없다가) 나는 백 데이터를 갖고 있다. 어떤 데이터인지 말하고 싶지 않다.”

-교육청이 설립안을 확정한 것인가, 대교가 확정한 것인가.
“그것도 말할 수 없다.”

특목고 확대 외친 특수목적 있었나

이글을 쓰고 있는 지난 6월 20일, 벌어진 일을 써봤다.

취재하면서 제일 하기 싫은 게 있다. 바로 기자에게 전화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이른바 ‘보도된 기사를 다시 조지는 기사’를 쓰기 위해서 그렇게 할 때는 더 그렇다.

그래도 가끔 전화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반론을 듣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오늘 <조선> 기사로 글을 시작한 까닭은 이 신문을 비롯한 보수신문들이 자사고와 외국어고 확대 운동에 총대를 메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다. 이 기사는 사실과 맞지 않지만 호시탐탐 자사고 확대를 노리고 있는 서울교육청과 서울시 몇몇은 웃었을지도 모른다.

▲ 동아일보의 이지논술 사이트.     © 윤근혁
보수신문들이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를 확대하려는 특수목적 가운데 하나는 바로 돈벌이가 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자회사인 에듀조선 사이트(www.educhosun.co.kr)에 한번 같이 가 보자. 첫 화면 왼쪽 항목 가운데 ‘용도별 TEPS 학습가이드-특목고, 자사고’를 눌러보라. 이곳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박혀 있다.

“최근 TOEFL 대란으로 인해 선발요건에서 토종 어학능력시험인 TEPS가 부상하고 있습니다. …특목고를 지원하는 학생은 늦어도 중학교 2학년 겨울부터는 TEPS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기초강좌로 시작하더라도, 정기적으로 모의고사를 풀어봄으로써 점수 상승 속도에 따라 그때그때 수준에 맞는 강의 또는 교재로 바꾸는 것이 학습에 지속적인 흥미를 갖는데 도움이 됩니다.”

자신들이 주도해서 만들고, 강좌로 돈벌이까지 하는 TEPS를 공부하라는 것이다. 외고나 자사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필수코스라는 얘기다.

이들은 이 사이트에서 ‘종합반’, ‘패키지’, ‘영역별’ 코스 등을 마련해놓고 있다. 동영상+교재 패키지 강좌의 경우 한 해에 47만8000원이다. 짭짤하지 않은가.

어디 이 뿐인가. 이 신문은 지난 2005년 평촌에서 논술교육센터를 열어 운영 중이다. 자회사 에듀조선은 대치동에 디스커스 아카데미라는 논술기업을 설립하기도 했다고 <미디어오늘>은 보도했다.

사정은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도 다르지 않다.

<중앙일보>는 ‘중앙일보NIE연구소’를 통해 통합논술 월간지를 창간했다. 대학들의 통합논술 시험을 몸으로 감싸주더니 이내 프랜차이즈 돈벌이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고등 통합논술 교재 ‘엔비’는 지난 해 12월 11일에 창간했다. 중학생용 ‘엔비’는 올해 3월에 첫선을 보였다. 초등학생용 ‘퍼니’는 이보다 앞서 지난 해 7월부터 내고 있다.

<동아일보> 또한 조중동 삼총사식 장삿속에서 빠질 수 없었나 보다. 이 신문은 ‘이지논술’이라는 온라인 사업을 전개하면서 논술 관련 학습지를 팔고 나섰다.

이 사이트(www.easynonsul.com)에 들어가 보니 첫 화면을 장식하는 것은 ‘2008 서울대 연세대 논술 모의고사 적중!’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책 해설집과 본편 등을 합친 책값은 5만원이었다.

<한겨레신문>도 ‘조기유학’ 장사 눈총 받아

요즘 학원가에서 떠도는 말이 있다. ‘MBC 영어학력평가’, ‘동아 수학인증시험’, '중앙 수학학력평가’, ‘한겨레 조기유학’ 등이 그것이다.

이런 말은 언론사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시험 시장에 뛰어든 결과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한겨레신문>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다.

이 신문은 몇 해부터 자회사를 통해 조기유학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면에서는 앞장  서서 조기유학을 비판하면서 자회사인 ‘한겨레 교육과 미래’에서는 정반대 처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란 그 묵직한 역사의 무게를 조기유학 업체 앞에 붙이도록 하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인지.

요즘 신문들은 저마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교육섹션’을 낸다. 그런데 이 게 교육섹션이 아니다. 학습섹션이나 학원섹션이란 말이 더 어울린다.

한국언론재단이 발행한 ‘신문과방송’ 보도를 다룬 <미디어오늘>은 지난 해 11월 6치 기사에서 다음처럼 전했다.

“‘신문과방송’은 경향 동아 세계 조선 중앙 한겨레 등 6개 신문의 교육섹션과 서울신문 한국일보 등 2개 신문의 2주치 교육면을 분석한 결과 한겨레를 제외하고는 ‘학습섹션’에 가까웠다고 보도했다. 교육섹션의 213건 기사 가운데 기획기사(72건)와 칼럼(71건)이 가장 많았는데 칼럼의 경우 학습법이나 지상강의 유형이 40건이나 됐고, ‘논술첨삭지도’와 시험예상문제도 각각 24건과 18건이나 됐다.

스트레이트, 기획기사, 칼럼 154건의 내용도 교육 일반에 대한 것(29건, 18.8%)보다 직접적인 학습에 관한 것이 118건(76.6%)으로 훨씬 많았다. 학습에 관한 내용은 진로가 41건(26.6%), 논술 40건(26.0%), 영어 23건(14.9%), 학습법 14건(9.1%) 등의 순이었다.

특히 교육섹션의 콘텐츠 생산을 주로 담당하는 그룹은 기자(33%)나 교사·교수(15%), 학생·학부모(5.6%)가 아니라 ‘각종 사설 입시학원과 논술학원 강사, 사설 입시연구소 관계자, 입시교재 및 학습지 출판사 등 사교육의 주체들’(37.1%)이었고, 논술첨삭지도와 예상시험문제 출제자(제공자)가 사설 학원에 대한 편향이 심한 것은 물론 각종 도움말, 제공, 협찬 등의 명목으로 유명 학원이름과 입시정보 회사들이 등장했다.”

언론 빙자 사익추구집단 아닌가

신문은 사기업이다. 돈벌이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언론으로서 가져야 할 공정성이다.

공교롭게도 조선·중앙·동아일보 이른바 조중동 삼총사의 보도 방향은 자신들의 돈벌이 수단과 일치했다. 지면에서 통합형 논술이나 특목고 확대, 그리고 영어몰입교육을 외치면서 자신들의 자회사에서는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들 신문들에게 질문을 던질 때가 됐다. 신문지인가, 사설학습지인가. 언론인가, 언론을 빙자한 사익 추구집단인가.

월간<우리아이들> 2007년 7월호에 쓴 글입니다.

 
2007/06/30 [01:34] ⓒ 윤근혁의 교육돋보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김학천 07/07/02 [08:33] 수정 삭제
  바른 보도를 읽게 되어 고맙고 특히 한겨레신문도 유학장사를 하는 것에 대한 비평은 참 좋았습니다. 특목고를 설립하려는 대교와 조선일보,송자회장이란 분의 장사속을 잘 보도했고, 조기유학의 위험성을 간과하고 마구 부추기는 거대언론 대열에 한겨레신문도 뒷자리라도 끼여들려 하는 행태를 잘 고발했습니다.
과분한 칭찬이옵니다. 윤근혁 07/07/02 [10:18] 수정 삭제
  이 글은 시간에 쫓겨 쓰다보니 부족한 부분이 넘 많습니다. 과분한 칭찬이옵니다. 글 주신 분의 성함이 '언론운동'의 대명사인 그 분과 같은데 동명이인이신지, 아니면 그 분이신지 모르겠군요.
암튼 이 글은 다음에 더 충분히 취재해서 완결된 내용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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