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일 화요일

‘3불(不)’제 보도는 ‘3불(달러)’짜리 보도?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3
 
윤근혁
 
 
점잖은 교육학자들도 화나면 무섭더라.

한국교육개발원(원장 고형일, KEDI)이 봉화를 올렸다. 일부 언론의 대입 3불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부금입학제 금지 정책) 왜곡보도에 정면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 사이트에 가보시라

▲ 한국교육개발원이 왜곡보도를 한 언론사에 대해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연구위원성명서를 팝업창으로 띄어놓은 이 기관 사이트 첫 화면.     ©윤근혁
시간이 나시면 한번 국책연구기관인 이 기관 사이트(http://www.kedi.re.kr)에 가보시라. 4월 17일 현재 방문자를 맞이하는 것은 회색빛 팝업창이다. KEDI 연구위원협의회가 ‘언론사의 연구보고서 왜곡 보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제목으로 낸 성명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근 일부 언론들이 보이고 있는 우리의 연구 결과에 대한 왜곡된 보도 태도는 우려를 넘어 우리의 연구 활동 및 연구기관의 존립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KEDI에 있는 연구위원은 모두 50여 명. 이들은 “일부 언론사가 왜곡보도를 통해 연구자들을 악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내용의 폭로성 성명을 지난 12일 발표했다.

연구위원 전체가 보도내용에 강력 항의하는 집단 성명을 낸 것은 이 기관이 설립된 72년 이후 최초의 일이다.

사이트 첫 화면 ‘교육현안’란엔 자신들의 항변을 보도한 주간<교육희망>과 <오마이뉴스> 기사가 나란히 걸려 있다.

강영혜 KEDI 교육제도연구실장은 “교육개발원 연구위원들이 왜곡보도에 대해 모두 분노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조용히 연구하던 학자들이 이렇게 들고 일어난 것일까.
그것은 바로 3불제 관련 보도 때문이다.

지난 9일과 10일, <한국교육신문><조선일보><동아일보> 등과 KBS는 KEDI가 펴낸 ‘고교-대학 연계를 위한 대입정책 연구보고서’가 3불정책과 2008 대입제도를 정면 반박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점잖은 학자들이 들고 일어난 까닭

이들 신문의 보도 내용은 이랬다.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 3불 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 고수론을 폈지만 한국교육개발원은 3불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밝혀져 관심을 끌고 있다.”(<동아일보>  10일치 A14면)

“현 정부가 강력히 고수하고 있는 3불 정책을 기반으로 한 현행 입시체제의 문제점을 국책연구소가 비판했다는 점에서 큰 파문이 예상된다.”(<조선일보> 10일치 1면 머리기사)

나는 10일 오전 이 연구보고서를 쓴 강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론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떨렸다. 화가 날대로 난 것이다.

“일부 언론이 <한국교육신문> 내용을 베끼다시피 했어요. 자신들이 쓰고 싶은 방향대로 3불 정책을 반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처럼 호도를 했습니다.”

강 실장의 말에 신빙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의 과거 행적이 그의 주장에 힘을 보태주었기 때문이다.

강 실장은 2004년 10월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이 고교등급제를 실시한 사실이 드러나자 “일부 사립대학의 고교등급제는 (강남 지역 학생을 뽑기 위한) 변형된 기여입학제”란 내용의 보고서(Position Paper)를 내놓기도 한 학자다. 이 때 그는 시쳇말로 ‘X욕’을 얻어먹었다. 이처럼 그는 3불제 문제만큼은 완고한 학자였다.

급한 대로 같은 건물 한층 아래에 있는 참교육연구소(소장 이철호)를 찾았다. 문제의 논문 분석을 의뢰하기 위해서다.

분석 결과 A4 용지 344쪽으로 돼있는 이 논문에서 KEDI 연구진이 3불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은 단 한 군데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일부 신문 보도와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논문은 결론 부분(235쪽)에서 “대학의 입학사정은 ‘가르친 자가 평가한다’는 평가 원칙에 따라 고교 내신 성적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며 대학별 고사는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말하는 ‘대학별 고사’란 표현 또한 보통 쓰이는 본고사가 아니라 ‘면접과 논술 등 현재 대학별로 보는 현행 시험을 뜻한다’는 게 KEDI의 설명이다.

권재원 참교육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은 “이 보고서의 핵심은 대학교육은 고등학교 교육과 연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학이 고등학교 교육과 무관하게 자의적인 전형을 실시하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분석했다.

또 “일부 언론이 주목한 3불 정책에 관련된 나머지 내용은 저자의 주장이 아니라 단지 여론조사 결과일 뿐”이라면서 “그 설문내용도 대학별 고사의 필요성을 물어봤을 뿐인데 이를 3불 폐지와 직접 연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KEDI의 주장이라니…

이날 <조선일보> 기사 제목인 “교육개발원 ‘2008 대입’ 정면 비판”이란 글귀 또한 왜곡됐다는 게 KEDI의 반박 내용이다.

KEDI 홍보실 관계자는 “일부 신문과 방송이 연구보고서 내용과 취지에 반하는 제목을 붙였다”면서 “이 보고서는 고교 교육과정과 대학의 연계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으므로 내신비중을 높여 고교교육 정상화를 추구하는 정부의 2008대입정책과 기본목표가 일치 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보고서를 대표 집필한 강 실장의 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본고사는 후진적인 정책이고 고교등급제는 개인별 평가라는 철학에서 어긋나며 기여입학제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것인데요.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3불제의 문제를 지적하는 논문을 쓸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도대체 일부 언론들은 무엇을 보고 보도를 했던 것일까. 그 답은 기사 내용에 있었다. 바로 2008 대학입시와 3불제를 연상시키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 기사를 쓴 것이다.

나는 10일 KEDI 연구보고서에 대한 일부 언론의 왜곡 보도 실태를 첫 보도했다. 뒤이어 보도한 곳은 정부매체인<국정브리핑>과 <프레시안>, <한겨레신문>뿐이었다. 교육언론계에서 나타나는 보혁구도인 9(보수):1(혁신) 체제를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 기사를 쓴 지 이틀 후인 12일, KEDI가 사실을 왜곡한 기자로 지목한 이와 점심을 같이 먹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KEDI 얘기를 먼저 꺼냈다.

“KEDI가 그렇게 나오면 안 되지. 자신들이 그렇게 설문조사하고 분석도 다 해놓고 이제 와서 왜 딴소린지 모르겠어요.”

내가 KEDI는 아니지만 대꾸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문이 기부금입학제에 대해 설문조사 해서 반대가 많이 나왔다고 칩시다. 그럼 ○○신문이 기부금입학제를 찬성하는 것인가요? 그런 건 아니잖아요.”

KEDI는 왜곡보도 언론사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태세다. 언론중재위에 제소한 뒤 법적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 한다. 국책 기관이 언론과 쉽지 않은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무척 보기 드문 일이다.

▲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조선일보> 주의 처분 결정문.     ©윤근혁
개구리 알 터지듯 툭툭 불거지는 왜곡보도

여기서 툭, 저기서 툭…

개구리 알 터지듯 툭툭 불거지는 3불제 보도로 교육계가 시끄럽다. 보수 신문인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이 제일 앞장을 서고 있다.

이들의 보도는 침소봉대를 떠나 사실왜곡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는 게 교육계 안팎의 지적이다. KEDI 사태 말고도 이런 사례는 많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3불제 폐지를 권고했다’는 지난 2월말 보도 내용도 그것 가운데 하나다.

OECD 검토단은 지난 2월 25일 공개한 ‘고등교육분석보고서’에서 “투명성 제고를 위한 다른 제도가 정착되지 않는 상황에서 3불정책과 다른 규제들을 서둘러 없애지 말라고 우리는 경고한다”(교육부 해석)고 적었다. 현 시점에서 3불정책 폐지에 반대하는 태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물론 이 내용에 대해서도 <조선><중앙><문화><매경>은 OECD가 ‘3불정책 폐지’를 권고한 것처럼 비틀기 식 보도를 했다.

이 당시 <조선>과 <중앙>의 기사 제목은 각각 “(OECD) 대학 자율 막는 3불 정책 없애야”와 “OECD ‘한국 3불 정책 고쳐야’”였다.

교육부는 이 언론사에 ‘문서 한 두 장짜리 반론보도 신청서’를 보내는 낮은 단계의 대응 뒤, 뒷짐만 지고 있다.

뜻밖에도 문제를 삼고 나선 곳은 신문 자율감시기구인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이사장 김대성)였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3불정책 폐기를 권고했다’고 보도한 <조선일보> 등 신문사에 대해 주의 처분을 내린 것이다. 신문윤리강령 위반에 따른 조치다.

신문윤리위는 자체 사이트에 올린 3월 심의결정문에서 “조선일보는 기사 본문 내용과 달리 제목에서 ‘대학자율 막는 3불 정책 없애야’라고 표현, OECD가 아무 단서 없이 3불정책을 폐지할 것을 권고한 것 같은 인상을 줬다”고 처분 이유를 밝혔다.

이 신문은 지난 2월 26일치 A1면에 이 같은 기사를 실은 바 있다.

지난 2월 27일 신문에 'OECD의 3불정책 폐기 권고'란 제목의 사설을 실은 <헤럴드경제>도 주의 조처됐다.

신문윤리위는 “이 같은 신문의 제목들이 공신력을 훼손할 우려가 있으므로 신문윤리요강 제 10조 3항(미확인사실 과대편집 금지) 등을 위반했다고 인정하여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신문보도의 잘못을 다름 아닌 신문 편집인 모임이 인정한 것이다.

모르고 그런 것인가, 일부러 그런 것인가

“보도들은 연구결과와 무관한 3불정책과 2008 대입제도를 둘러싼 현재의 갈등을 부추기는 제목을 뽑고 특정 내용만을 가공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언론사들과 정부의 정치싸움에 중립적인 연구기관과 연구자들을 악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성명서에 담긴 KEDI 연구위원들의 항변이다. 이 항변 뒤엔 소박한 바람이 있었다. 성명서 결론 부분을 살펴보자.

“왜곡 보도에 대해 신속한 사과와 정정 보도를 해 주세요. 향후 연구보고서 내용을 보도할 때 전체 내용을 숙독해주세요.”

일부 언론의 왜곡보도는 착오 때문인가, 아니면 일부러 그런 것일까.

분명한 것은 최근 일부 보수신문의 ‘3불(不) 보도는 ‘3불(달러)’ 값어치도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월간 <우리아이들> 2007년 5월호에 쓴 글입니다. 5월호 발행 전까지 다른 곳에 옮기지 말아주시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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