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6일 일요일

대통령의 돌변, ‘영어몰입’ 신문들 어쩌나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_11
 
윤근혁
 
 
요즘 교육정책은 한마디로 ‘아사리판’이다.

일제고사, 영어몰입교육, 교원평가, 학교별 학생성적공개,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확대…. 이 같은 설익은 정책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출몰하고 있다.

마치 ‘섣달 그믐날 노처녀가 개밥 퍼주는 식’이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결혼을 못한 노처녀가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교육정책을 내놓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 조선일보 2006년 4월 7일치     © 윤근혁



일제고사 이끈 공 서울시교육감도 ‘큰일 났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1호는 아무래도 영어몰입교육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맡은 이경숙 총장(숙명여대)이 ‘어륀지 전도사’로 세상을 뜨겁게 달굴 정도였다. 물론 이 인수위원장 뒤에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다. 바로 이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어와 국사도 영어로 가르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장이 이럴 정도이니 아랫사람들이야 영어몰입에 ‘올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점에서는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을 비롯한 인천, 울산, 강원 등지의 교육감도 마찬가지다. 이 가운데 맨 앞장에 선 이가 공 교육감이다.

“올해부터 초등학교 11개, 중학교 11개교 등 22개교에 우선 적용하고 이후 점차 확대한다.”

공 교육감이 지난 1월 28일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영어몰입교육 도입 계획’에 다짐한 말이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수학 과목부터 (영어몰입교육을) 시작하려고 한다”고 과목까지 지정했다.

실제로 공 교육감이 회장을 맡고 있는 시·도교육감협의회도 지난 1월 25일 회의를 열고 ‘영어몰입교육의 전국 시행’을 결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 박범이 참교육학부모회 서울지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소감을 물었더니 다음처럼 말했다.

“영어몰입교육을 정권이 바뀌자마자 타당성 검토도 없이 서울시교육감이 시행하겠다고 밝히고 나선 것은 졸속 행정의 표본입니다. 교육정책을 교육감 개인의 줄서기로 이용하는 부끄럽기 한없는 일이에요.”

영어몰입전도사들, 대공황? 말을 잊었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대통령이 돌변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0일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영어몰입교육 백지화’를 공식 천명했다.

“영어 몰입교육이라는 것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 모든 과목을 몰입해서 영어로 한다든가, 이런 과도한 정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대통령의 180도 회전에 국민들이 어지럼증을 느끼고 있다. 학원들도 화가 단단히 났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교육감과 일부 신문의 반응이다.

교육감들은 한마디로 ‘큰 일이 난 것’이다. 이미 발표한 영어몰입방안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이를 두고 ‘진퇴양난의 위기’라고 했던가. ‘닭 쫓던 ×, 지붕 쳐다보는 꼴’이다.

서울시교육청 가운데 영어몰입교육의 총대를 멘 곳은 강남교육청이다. 이 교육청은 최근 이 지역 초등학교에 보낸 ‘장학지도자료’에서 사실상 “초등학교 3학년은 일반 교과목까지 영어몰입교육을 하라”고 지시했다. 학교평가에 반영하겠다는 얘기다.

22일 현재 16개 시도교육감들은 입을 꽉 다문 상태다. 이런 점에서는 몇 년 전부터 영어몰입교육 홍보에 앞장 선 <조선일보>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대통령의 결정에 반기를 들어야 할 신문인데 그런 움직임은 없어 보인다.

<조선>은 이미 두 해 전인 2006년 4월 7일, “2개 언어 동시 교육은 효과적인 외국어 교육법”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몰입 교육(Immersion Program)’은 40년 전 캐나다에서 시작돼 현재 세계 각국에서 가장 효과적인 외국어 교육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몰입 교육은 중학생 이후 시작해도 효과가 크다’고 말한다. 현재 우리 공교육 시스템에서 해외유학 수요를 흡수할 가장 유효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숭실대 영문과 박준언 교수는 ‘몰입 교육 성공의 관건은 교사가 뛰어난 이중 언어 실력을 갖추어야 하며 3~4년 이상 학교와 학생, 학부모가 인내를 갖고 투자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당장 두어 달 전에도 영어몰입교육을 다그쳤다. 올해 1월 28일치 사설제목은 ‘10년 배워 입도 벙긋 못하는 영어 교육 확 고치라’는 것이었다.

“말레이시아는 2003년부터 초등학교 수학·과학도 영어로 가르쳐 왔다. 국민의 영어 사용 능력을 높여 국가 발전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려면 학교 교육에서 영어라는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과문한 터라 나는 말레이시아의 영어몰입교육에 대해 알지 못한다. 다만 영어몰입교육을 한다는 그 말레이시아가 우리나라보다 잘 살고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앞서 1월 16일 <조선> 사설도 눈여겨볼만 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영어로만 수업을 진행하는 몰입 교육을 시키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학교에서 영어교육만 제대로 시켜줘도 그것 이상의 교육개혁이 없다. 그렇게만 되면 학부모의 사교육 부담도 줄고, 조기유학도 줄고, 국가경쟁력은 커진다. 영어교육만 확실히 고쳐놓아도 ‘교육 대통령’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기사를 쓰면서 제일 싫어하는 게 말꼬리 잡기다. 하지만 여기서는 한번 잡아야겠다. ‘조기유학’ 말 잘했다. 조기유학 장사를 하는 곳이 바로 <조선일보> 아니던가. 물론 <한겨레신문>도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조선일보>는 이미 2005년에도 영어몰입교육 장사를 해왔다. 다음은 같은 해 3월 15일치 기사 내용이다.

“에듀조선 국제교류센터가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현지 교육청 및 학교와 공동으로 운영 중인 해외 공립학교 체험 프로그램이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참가학생과 학부모의 호응이 높은 건 8주간 오로지 영어만 사용해야 하는 영어 몰입 환경으로 인해 단기간에 영어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모집하고 있는 대상은 초등학교 3학년 학생 이상이다. 4월과 5월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기사 내용으로 보면, 한국학교 수업은 빼먹으라는 얘기다.

그래도 ‘위 사설을 보면 조기유학을 걱정하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겠다. 내 대답은 ‘병 주고 약주기’라는 것이다. 한국학교에서 영어몰입교육을 한다고 치자. 조기유학생이 줄어들 것인가, 아니면 늘어날 것인가. 나는 늘 것으로 보는데,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외국고와 국제중의 사례를 떠 올려보면 된다. 외고와 국제중 주창자들이 내세우던 논리 가운데 하나가 ‘조기유학 수요’를 수렴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정은 어떤가. 이들 학교가려고 조기유학을 떠나는 제자들이 늘고 있지 않은가.

요즘 이런 ‘다차원 사고’(?)를 가진 신문들이 공교육 강화를 외치고 나서고 있다. <동아일보>도 빼놓으면 섭섭해 할 것이다.

전교조와 동지(?)가 된 보수신문들

이 신문은 지난 2월 29일 오랜만에 재미있는 사설을 썼다. 이 사설의 제목은 ‘전교조의 이기적 교육관, 조기유학 부추긴다’였다. 전교조 대의원대회에 맞춘 기사였다.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전교조는 딴 세상에 살고 있다. 전교조는 국제중 외국어고 확대 및 자율형사립고 육성 정책을 집요하게 비판한다. …이런 시대착오적 의식구조에 매몰된 교사들이 존재하는 한 해외로의 ‘교육 탈출’은 사라지기 어렵다.”

‘교육 탈출’ 다시 말해 조기유학을 걱정하는 친 정부 신문의 노력이 정말로 눈물겹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하면 괘씸한 점도 있다.

정말로 위 사설 내용이 맞는다면 <동아일보>는 성질부터 부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쌍수를 들어 환영하거나 고마워해야 한다.

왜 그럴까. <동아일보>사의 조기유학 ‘돈벌이’를 도와주는 곳이 바로 전교조가 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 신문사는 2003년부터 자회사인 ‘동아유학’을 차려놓고 조기유학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업체는 사이트에 “특목고를 준비하는 초중생 대상 국제영어캠프 등 인재양성을 위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고 적어 놨다. 특목고 대비 조기유학도 쏠쏠한 재미를 느끼는 모양이다.

물론 위 <동아> 사설의 논리는 <조선>, <중앙>의 그것과 거의 같다. 외고와 자사고 확대를 한목소리로 외친 이들이 내세운 단골 메뉴는 이른바 ‘전교조의 조기유학 부채질론’이었다.

하지만 이는 과대망상격인 ‘전교조 결정론’이거나 아니면 사실 왜곡일 가능성이 높다.

조기유학을 떠나는 진짜 이유는 한국의 외고와 자사고에 다시 입학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기유학생들이 국제중과 외고에 대거 합격하고 있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된 때는 2006년 10월이었다. 경기 ㅊ국제중과 서울 ㄷ외고는 이 당시 각각 1학년생의 절반 이상인 61%와 53%를 해외 유학경험이 있는 학생으로 채운 사실이 드러났다.

그럼 조기유학을 부추긴 장본인은 누구일까. 당연히 한쪽에서는 외고와 자사고 설립을 외치면서 다른 쪽에서는 조기유학 돈벌이에 나선 일부 신문사들이 아닐까.

요즘 논술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천덕꾸러기 1호 취급’을 받는 것이 바로 이들 신문의 사설이라고 한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이상 전교조 관련 내용은 주간<교육희망> 3월 10일치 8면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를 수정한 내용임)

이전 정부에 대한 사사건건 트집 자세, 어디 갔나?

요즘 이른바 <조중동>은 영어교육에 대해 이 대통령한테 불만이 많을 것이다. 공 교육감을 비롯한 일부 교육청 교육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영어몰입교육’에 대해 대통령이 자신의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 바꿨는데도 별로 불평이 없다. 이전 정부의 교육정책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던 태도는 다 어디 갔는가.

‘귀머거리 5년, 벙어리 5년’이란 인고의 세월을 보낼 심산인가?
 
월간<우리아이들> 2008년 4월호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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