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_12 | ||||||
| ‘자주, 자치, 그리고 자율’과 같은 ‘자’자 돌림 말은 원래 교육민주화세력이 쓰던 것이었다. 그런데 세상 많이 바뀌었다. 참여정부 교육부가 ‘자치’란 말을 많이 쓰더니, 이번엔 이명박 정부 교과부(교육과학기술부)가 ‘자율’이란 말을 밥 먹듯이 쓰고 나섰다. 자율화 시리즈 줄 탄생 배경엔 작전세력이…
최근 나온 것만 봐도 ‘대입 자율화 방안’과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이 있다. 문제는 내용과 정책명칭이 따로 놀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쓰레기통을 만들어놓고 장미꽃이라고 우기는 격이다. 사실 내용을 따지고 보면 대입 자율화 방안은 ‘고교 정상화 3원칙(본고사․고교등급․기부금입학 금지)’ 폐지 방안이다. 본고사와 고교등급제 등을 주창해온 대학총장이나 이사장들이 자율로 대입방안을 만들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5일 교과부가 내놓은 이른바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도 내용을 들춰보면 교육감과 교장들의 자율화 방안일 뿐이다. 교육의 주체인 교사, 학생, 학부모의 ‘자율화’와는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학교가 자율화되려면 교사회와 학생회, 학부모회 등 기본 자치조직이 제 노릇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이들 기구를 법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딴판이다. 한 학기가 지나도록 교무회의도 제대로 열지 않는 학교가 있을 정도다. 이런 현실을 아는 교사들은 “학교 자율화 계획은 ‘학교장 자율화 계획’이거나 ‘교장 독재보장 계획’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친 교장 단체인 한국교총 등이 환영성명을 내고 사학재단이 쾌재를 부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상한 자율화, 저들의 웃음소리 들리네 더구나 이 계획은 0교시, 우열반, 어린이신문강제구독, 사설학원의 학교침투 등을 부활시키는 신호탄 노릇도 하고 있다. 무늬만 ‘학교 자율화 계획’이지 ‘학교 학원화’ 또는 ‘학교 이권화’를 부추기는 계획이라는 것이다. 왜 이처럼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교과부는 정책을 내놓을 때 이름과 내용을 따로 놀게 하고 있을까. 그것은 이들이 정책의 이름을 붙이면서 선거 홍보하듯 전략적 선택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딱한 것은 헛갈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 고교생들이 촛불시위를 하면서 들고 있는 손 팻말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학교 자율화 정책에 반대 한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교과부 정책에 반대하는 누리꾼들의 글에도 여지없이 비슷한 제목이 붙어 있다. 심지어 전교조의 성명서도 교과부 발표 직후에는 ‘학교 자율화 계획을 반대 한다’는 식으로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반대하는 것은 0교시와 우열반 등 학교 학원화이지 ‘학교 자율화’는 아니다.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활동이 ‘자율화 반대’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되면 청와대와 교과부의 전략이 먹혀드는 꼴이다. 그 동안 자율과 자치를 줄곧 주장해온 학생과 교사들이 이렇게 ‘자율화를 반대 한다’고 외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를 즐기고 있는 세력이 있다. 바로 청와대와 교과부 안에 있는 ‘작전세력’이 그들이다. 다행히 지난 4월 말쯤부터 교육시민단체들은 교과부 정책이름을 새롭게 작명해 쓰고 있다. ‘학교 학원화 추진계획’이나 ‘공교육 포기 계획’이란 개명작업이 그것이다. 사물에 대한 규정을 선점하기 위한 싸움인 ‘프레임(틀) 전쟁’에 당하지 않기 위한 자구책인 셈이다. 청와대와 교과부 안에는 ‘작전세력’이 있다 이런 작전세력에 박자를 척척 맞춰주는 곳이 보수신문들이다. 이들은 참여정부 시절 ‘퍼주기’, ‘좌파정권’, ‘붕어빵교육’이란 프레임으로 톡톡한 재미를 봤다. 이번 ‘학교 학원화 추진계획’을 놓고 벌어진 파동에서도 이들은 활동을 시작했다. ‘자율화’란 프레임을 홍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지난 4월 17일치 사설 제목은 “좌파의 '낙인 찍기' '편 가르기'에 놀아나선 안 돼”였다. 낙인찍기와 편 가르기를 주도해온 언론이 적반하장 식 제목을 붙인 게 눈길을 끌었다. 사설 내용은 대부분 우열반과 0교시 반대를 주도해온 교육단체와 신문을 낙인찍는 것이었다. ‘좌파’ 프레임을 덧씌우는 작업이다. “전교조는 ‘성적으로 학생을 줄 세우고 학교를 입시 전쟁터로 내 몬다’는 성명을 냈다. 일부 좌파 교육단체와 좌파 언론들도 잇따라 들고일어나 초·중·고 일선 학교에 대폭적으로 자율권을 부여하겠다는 교육부 방침에 대해 ‘교육부가 간섭 안 하겠다는 것은 학교가 우등생 따로, 열등생 따로 모아 차별교육 시켜도 괜찮다는 것 아니냐’고 공격을 퍼붓고 있다.” 우열반에 반대하는 이들을 좌파라고 규정하는 발상 자체가 참 색다른 용기다. 주간<교육희망>이 서울지역 고교생 17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83%가 교육부 계획에 반대했다. 학부모와 교사들의 반대 정도도 이와 비슷할 것으로 판단된다. 반대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조선> 사설이 적은대로 ‘우열반 탄생 우려’다. <조선>의 고질병 가운데 하나가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면 모두 빨갛게 보이는 증후군(빨갱이 증후군)은 아닐까.
우열반은 없을 것이라는 <조선일보> 이 사설은 우열반을 찬성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했다. "학교가 학생 석차를 근거로 '우등생반' '열등생반'을 만든다면 그걸 찬성할 학부모, 학생, 교사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이들한테 공부가 좀 뒤처진다고 이런 낙인을 찍는다면 그건 교육이라고 할 수도 없다." 알아도 모른 척 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일까. 우열반을 금지한 교육부 지침 속에서도 서울지역 상당수의 사립고교가 우열반을 운영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우열반 금지 지침을 풀어놓는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돌아간다는 게 교육을 아는 이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 4월 15일 교과부 브리핑에서도 기자들은 ‘우열반 부활’에 대해 질문을 집중했다. 우형식 교과부차관은 “우열반이 일부 생겨나는 곳도 있을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은 딴소리를 하는 것이다. <조선>의 교육에 대한 무절제함은 다음과 같은 사설 내용에서 확인된다. “수준별 이동수업은 학생 실력에 맞게 교실을 옮겨가면서 과목별로 수업을 듣게 하는 것이다. 좌파 교육학자들이 평등교육의 모범으로 칭송하는 핀란드에선 같은 반 옆자리 친구라 해도 시간표는 제각각이다. 과목별로 현재 자기 수준에 맞는 과정을 찾아 따로 모여 배우기 때문이다.” 교육선진국인 핀란드의 종합학교(초중학교) 교육은 한 교실에서 맞춤식 개별화 방식을 쓰고 있다. 우열반이나 영재반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일제고사도 없다. 더구나 <조선>이 칭송해온 특수목적고와 자립형사립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최근 펴낸 보고서(강영혜 작)도 “핀란드에서는 능력의 우열과 같은 특정 잣대로 아동들을 조기 분리시키는 것이 교육적 수월성의 저해요인이라고 보고 있다. 오히려 섞어서 경쟁하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핀란드 교육사례를 들어 교육시민단체들을 비판하려는 <조선>의 궁여지책이 참 엉뚱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았다. 이 사설은 교과부에 대한 지도성을 발휘하면서 다음처럼 글을 끝맺는다. “대학이 내신 평가에서 고교 간 학력 차이를 반영해 각기 자기 수준에 맞는 대학을 갈 수 있도록 하자고 나서자 좌파 교육단체들이 '고교등급제'니 '연좌제'니 하는 말을 만들어 매도했던 것도 대표적 '낙인 찍기' 수법이었다. 교육부부터 객관적 용어를 잘 골라 써야 한다.” 교과부가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과 같이 작명을 잘 하라는 주문을 한 것으로 보인다. 프레임 전쟁에서 이길 것을 눈물겹게 부탁하는 애정 표현인 셈이다. 작전세력의 ‘자율화’로 전교조를 공격 같은 날 나온 <동아일보> 사설도 <조선일보>의 그것과 쌍둥이 격이다. 제목은 “전교조, 학교 자율화 발목 잡지 말라”였다. “교육부가 ‘장학지도’란 이름으로 시행한 29개항의 규제를 없애고 시도교육청과 학교 자율에 맡기겠다고 발표하자 전교조는 ‘학교의 학원화’라고 딴죽을 걸고 나왔다.” 작전세력이 작명한 ‘자율화’란 프레임을 갖고 전교조를 공격한 것이다. 교과부 발표의 본질을 전교조가 ‘학원화’라고 규정한 것에 대해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사설은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력걱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지난 정부는 전교조 코드의 평준화에 집착해 학교 차이를 무시하는 입시제도를 강요하고, 학력 경쟁을 어렵게 하는 규제로 학교를 꽁꽁 묶어놓았다. 앞서 가는 학교를 세워놓고 뒤처진 학교와 보조를 맞추라는 식의 교육정책은 미래세대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보수신문들이 고장 난 레코드처럼 몇 년째 써온 레퍼토리가 바로 학력저하론이다. 평준화가 학력을 저하시킨 주범이라는 주장이었다. 정말 그럴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학업성취도국제비교연구(PISA)에서 우리나라는 핀란드에 이어 세계 2등밖에 못한 것을 탓하는 것인가? OECD도 한국과 핀란드 학생들이 우수한 성적을 내는 배경에는 ‘평준화가 있다’고 강조한 사실을 이들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 <동아> 사설 쓰는 분들은 지구 밖에 살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할 정도다. 그래도 이 신문은 <조선일보>보다는 양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열반 편성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은 했기 때문이다. 신문들이여, 잠좀 자고 밥좀 먹게 하자 “학교는 1교시 이전에 하는 0교시 수업, 야간자율학습, 방과후 수업의 위탁운영, 성적에 따른 우열반 편성에 대한 폭넓은 자율권을 갖게 됐다. 교장은 이 같은 권한을 적절히 활용해 기업 최고경영자(CEO)처럼 학교에 많은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수 있다.” 0교시가 실시되고 영리업체가 방과후학교를 맡게 되며, 우열반이 편성되는 것이 자율성이라니 숨이 턱 막히지 않는가. 더구나 이를 추진하는 교장을 CEO로 칭송하는 대목에서는 기가 막히기까지 하다. 이들의 논리 앞에서 “잠좀 자자! 밥좀 먹자!!”는 고교생들의 외침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월간<우리아이들> 2008년 5월호 | ||||||
2009년 9월 7일 월요일
수상한 자율화, 작전세력에 속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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