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일 화요일

감독 재벌, 주연 전경련, 홍보 보수신문

기자수첩
 
윤근혁
 
우리는 지금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있다. 학교를 무대로 한 이 영화의 제목은 ‘경제교과서 퍼주기’다.

감독=재벌, 주연=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홍보기획=보수신문. 전경련과 손을 잡고 주연으로 나섰던 교육부는 무대에서 뛰어내렸다. 교육의 중립성을 수호해야 할 정부가 ‘재벌과 춤을’ 춘 데 대한 비판을 의식한 탓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감독과 주연을 맡은 재벌과 이들의 이익단체 전경련은 지난 25일 돌연 이 영화를 공짜 배급하기로 결정했다. 그 규모도 교육부가 학교에 보내기로 발표한 것보다 10배나 많은 2만부라고 한다.

영화 제목대로 ‘교과서 퍼주기’가 시작된 것이다. 학생과 교사에게 전경련의 작품(교과서)이 대량 살포되는 사상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정부의 개입은 개인과 사회 전체에 손해를 초래 한다’는 반 헌법적 글귀와 함께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 과정에 대한 찬양을 담은 내용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학교를 잠식하게 됐다.

이제 올 해 2월부터 4개월을 끌어온 이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다. 파국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해피엔딩이 될 것인가.

배급을 위한 홍보기획은 보수언론이 맡았다. 내용에 대한 선전을 곁들인 기사에서 <조선일보> 등은 신청 전자메일을 적어주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무대에서 끌려내려오다시피 한 교육부는 엉거주춤한 자세다.
교육부 한 관계자는 “전경련 교과서를 교사들이 참고자료로 쓰는 것은 전교조 자료를 써도 되는 것처럼 가능한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교조가 참고자료로 활용하겠다면서 5·18 광주민중항쟁과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공동수업자료를 발표했을 때, 사실상 금지 조처한 것과는 상반된 태도다.

교육부의 이 같은 태도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지난 해 2월 15일 전경련과 교과서 공동발간 등 양해각서(MOU)를 맺을 당시 책임자들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당시 김진표 교육부장관의 지시를 받고 진행 책임을 맡은 김 국장은 그대로다. 전경련 상무와 함께 실무 지원팀장을 맡았던 류 국장은 실장으로 한 단계 승진한 상태다.
지금 대한민국은 재벌 이익 옹호단체가 학교 교육을 돈으로 사고 있다.
주간<교육희망> 2007년 6월 4일치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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