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근혁의 교육기사돋보기7 | ||||||
평준화 폐지 운동에 나선 일부 언론이 ‘조자룡 헌 칼 쓰듯’ 빼든 칼이 몇 개 있다. 이런 칼들은 ‘국민의 정부’ 이래 계속된 것이라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미 세뇌가 되었을 정도다. 죄송한 말이지만 <월간조선>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일부 교장선생님들! 아래와 같은 말 많이 한다. 신문에 나온 내용을 철썩 같이 ‘진실’로 믿고 있는 탓이다. “단군 이래 최대의 학력 저하” “평둔화(平鈍化)”(평둔화론) “과외비만 늘렸다, 고품질 교육 찾아 해외로”(사교육 팽창론) <조선><중앙><동아> 등 이른바 조중동 삼총사는 평준화교육에 대한 험담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이제 그들이 퍼뜨린 ‘교육신화’를 따져볼 때가 됐다.
마침 특수목적고(특목고) 존폐론이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노태우 정권 시절인 92년 ‘평준화 해체’의 노림수로 나타난 외국어고(외고)를 결국 ‘특목고 체제’에서 해소하는 방안이 교육부 정책으로 발표될 가능성도 크다. 이참에 조중동 삼총사의 과거 보도를 되새겨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제1신화: 평둔화론 나는 네이버 지식검색을 가끔 이용한다. 2005년 9월 어떤 학생은 이 지식검색란에 ‘평둔화가 무슨 말입니까?’란 질문을 던졌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희 학교 국어 선생님이 신문 사설을 읽고 모르는 단어 10개씩 쓰고 뜻풀이까지 하라고 하셨는데 인터넷과 사전을 찾아도 없어서요.” 당연히 없을밖에. 이 평둔화란 말은 일부 신문이 제멋대로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평준화를 비하하기 위해서다. “고교평준화로 모든 학교를 하향 평둔화(平鈍化)할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키워주는 섬세하면서도 치열한 교육을 해야 한다.”(동아일보 2005년 3월 2일 사설) 한국교총은 최근 이 ‘평둔화’란 단어를 활용해서 ‘교장공모제’ 반대 성명을 냈다. 이 단체는 9월 11일치 성명에서 “교총은 (교장 공모제가) 교육부의 최근 특목고 폐지 움직임, 대학 통제, 무자격교장제의 조급한 법제화 추진과 같은 일련의 조치들과 맞물려 있으며, 노무현 정부의 ‘교육 평둔화(平鈍化) 정책’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고 몰아붙였다. 평둔화란 도대체 어떤 말일까. 평준화란 멀쩡한 말에 굳이 ‘어리석은 둔’이란 한자말을 끼워 넣은 것만 봐도 그 의도를 알 수 있다. 학생들을 머저리로 만드는 교육이 바로 평준화라는 뜻이다. <조선>도 비슷한 말을 썼다. 이 신문은 2000년 들어서만 ‘이해찬 1세대’니 ‘전 국민의 우민화’(2003년 7월 9일치 사설), ‘국가경쟁력 붕괴’(2003년 3월 23일치 사설)와 같은 말을 써 가며 평준화가 학력저하의 주범이라 단정했다. 과연 그럴까. 조금만 유심히 교육통계를 들여다본 교사라면 이 말이 허상이란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학력저하론을 주장한 신문들의 근거는 무척 초라하다. 기껏해야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서울대가 신입생에게 ‘한자평가를 했더니 읽지도 못하더라’, ‘수학 기초능력도 없는 서울대생들이 많다’는 식의 보도가 주류를 이뤘다. PISA(경제협력개발기구 학업성취도 국제비교) 결과를 보자. 2004년에 공개된 자료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비회원 40개국 가운데 우리나라 중3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문제 해결력 1등, 읽기 2등, 수학 3등, 과학 4등으로 나타났다. 상위 5%와 하위 5% 수준 학생 사이의 점수 차이도 OECD 평균보다 낮게 나타나 학생들의 학력 격차가 세계 수준에 견줘 적게 나왔다. 2005년 ‘평준화 연구’를 진행한 김기석 서울대 교수(교육학과)는 다음처럼 강조했다. “‘평준화’라고 할 만한 평준화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동안 시행한 것은 일반계고 무시험 전형이다. 폐지론자들은 입시가 없어서 경쟁을 하지 않으니 학력이 떨어진다며 ‘평둔화’(平鈍化)라고 힐난한다. 실제 분석해 보니 ‘평둔화’는 없었다. 고교 입시가 부활하면 학생 실력이 향상되고 국가 경쟁력도 올릴 수 있다는 주장은 허구다.” 교육학계의 통념은 ‘우수한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한 곳에서 가르치는 것이 오히려 교육효과가 크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지난 9월 12일 강영혜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제도연구실장은 ‘특목고의 현주소와 개선방향’이란 연구보고서에서 외고 학생들의 ‘교육효과는 거의 없었다’고 강조했다. 학부모 배경 변인을 제외했을 때 평준화된 일반고 학생들의 교육효과와 같았다는 얘기다. 평둔화란 말은 교육에 둔한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이런 해괴한 조어를 교원단체까지 나서서 따라 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제2신화: 사교육 팽창론 사교육과 조기유학의 주범은 과연 무엇일까. 정부도 올 해부터 ‘특목고와 명문대 입시 때문’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국민들도 이 의견에 대부분 동의한다. 몸으로 느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언론은 2003년까지만 해도 정반대 분석을 내놨다. 이 당시 이들은 ‘평준화 탓’이라고 보도했다. 해마다 늘고 있는 조기유학 문제도 수준 낮은 평준화 교육 때문이라고 했다. <중앙> 2001년 4월 2일치 특집기사 ‘평준화 4반세기, 과외비만 늘렸다’는 기사가 그 본보기다. 물론 이런 주장은 근거가 없었다. 기껏해야 공교육붕괴론을 내세웠을 뿐이다. ‘평준화 붕어빵교육’으로 공교육이 붕괴되었으니, 학부모들은 학원이나 조기유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단순 논리였다. 물론 요즘엔 보수신문들은 이런 주장을 슬그머니 집어넣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멋쩍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논리가 맞으려면 평준화 체제에서 빗겨나 있는 특목고와 자립형사립고는 사교육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결과는 어떨까. 오히려 특목고와 자립형사립고 학생들이 사교육비와 사교육 참여 비율이 더 높았다. 2006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외고 1년생의 사교육 참여 비율은 86.4%였다. 이 수치는 서울 고교생의 사교육 비율 72%(2003년 한국교육개발원)보다 높았다.
조기유학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이들이 내세운 단골 메뉴는 이른바 ‘평준화의 조기유학 부채질론’이었다. 외고 지역제한과 국제중 설립을 막고 있으니 “정부가 조기유학 가라고 학부모 등을 떠미는 것”(2006년 6월 26일치 조선 사설 제목)이고 “미국학교 가는 아이들”(2006년 4월 28일치 조선 ‘만물상’ 제목)이 줄줄이 늘어나게 되었다는 얘기다. 잠시 이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보자. “청심국제중·고교는 …학부모가 내는 돈은 기숙사비·식비 50만원을 포함해 한 달 80만원, 1년 1000만원꼴이다. 어지간한 조기유학 비용의 3분의 1 정도다. 그래서 학부모들은 너도나도 청심국제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싶어 한다. 청심국제중의 신입생 경쟁률은 22대 1이었다. 제대로 된 국제학교가 있어야 글로벌 인재를 키울 수 있고, 한 해 70조에 이른다는 해외 유학·연수비도 절약할 수 있고, 외국 학생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한국에선 국제중 만든다고 하니까 교사단체가 단식을 하고 있다.”(2006년 6월 26일치 조선 사설) “학부모들은 외국어 공부를 시키기 위해 자녀를 외국 학교로 데리고 나가기까지 한다. 국제중 설립을 막으면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는 빠져나가고 기러기 아빠만 늘어난다.”(2006년 6월 6일치 <동아> 사설 ‘딸은 유학 보내고 국제중 반대하는 교육부총리’) “정작 교육청은 (국제중 설립을) 찬성하는데 권한 없는 정부가 팔을 비틀어 판을 깨는 실정이다. 이것이 시대착오적인 교육 평등주의와 획일적인 평준화 정책에 빠져 있는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이다. …우리 교육정책의 신뢰도는 갈수록 추락하고, 우리 교육은 더 후퇴하게 됐다. 이러니 우리 교육에 실망해 조기 유학 가는 학생과 기러기 가족이 늘고 있는 것이다.”(2006년 9월 5일치 <중앙> 사설 ‘국제중 설립 포기케 만든 배후 밝혀져야’) 이런 주장이 맞으려면 진짜로 ‘국제중과 특목고 등이 조기유학 수요를 흡수’하는 자료를 내보여야 한다. 그런데 사정은 어떨까. 조기유학에 대한 수요를 흡수하기는커녕 이들 학교의 존재 자체가 조기유학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오히려 해외 조기유학생들이 국제중과 외국어고에 대거 합격하고 있는 사실이 지난 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대표적인 특성화 학교로 꼽히는 경기 C국제중과 서울 D외고는 각각 1학년생의 갑절 이상인 61%와 53%를 초중고 때 해외 유학경험이 있는 학생으로 채웠다. 지난 해 10월 서울시교육청과 경기도교육청이 국정감사 자료로 만든 ‘국제중, 외고 1학년 해외교육경험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서울지역 6개 외고 1학년생 2182명 가운데 1년 이상 유학을 다녀온 학생은 293명(13.4%)이었고 단기유학을 포함한 유학생은 754명으로 34.5%(일부 대상자 중복 가능성 있음)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료를 보면 교육계 안팎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온 “국제중과 외고에 합격하려면 조기 유학을 다녀와야 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뒷받침 하고 있다. 조중동 삼총사는 요즘 바쁘다. 사설 학원과 함께 외고 모의고사 준비(조선일보)를 해야 하고, 외고 설명회(동아일보)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목고 확대를 외치면 외칠수록 이들 언론의 주머니는 두둑해지는 것이다. ‘그럴듯한 기사라고 다 믿지 마시라. 허상에 속지 마시라’. 이것이 바로 이들이 국민들에게 주는 교훈이 아닐까. *이 기사의 일부는 이전 ‘윤근혁의 기사’에서 따 왔습니다. 월간<우리아이들> 2007년 10월호에 쓴 글입니다. | ||||||
2009년 9월 5일 토요일
‘평둔(鈍)화론, 사교육 팽창론’, 일부 신문이 퍼뜨린 교육신화 뒤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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