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9일 토요일

"선생님을 빨갱이로 고발하라고요?"

한나라당 '전교조 정치·이념 편향교육 제보 게시판' 논란
 
윤근혁
 
▲ 지난 12일 한나라당 홈페이지 첫화면에 등장한 제보 게시판.
"21세기에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자기 담임선생님이 의식화 빨갱이교육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고발하라고 공당에서 게시판을 만들다니요. 그것도 어린 아이들이나 학부모한테…."

중학교 2학년과 대학교 1학년 두 아들을 두고 있는 학부모 성아무개(50·서울 서대문구)씨는 지난 12일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들렀다가 화들짝 놀랐다. 이 사이트 한복판에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그의 속을 뒤집어놓은 것이다.

"전교조 정치 이념편향교육, 제보를 받습니다"

사립학교법 반대 장외투쟁에 한창인 한나라당은 1월 초부터 자체 홈페이지에 '전교조 정치·이념 편향교육 제보게시판'을 열어 놨다.

이 당은 게시판 안내문에서 "전교조는 …'6.25 때 미군이 양민을 학살한 원수'라는 편향된 정치 이념을 주입시키고 수만 가지 의식화교육 자료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면서 "날치기 사학법을 무효화하기 위해 여러분의 자녀나 또는 자신이 전교조로부터 받은 정치 이념교육 실태를 제보해 달라"고 적었다. 학부모는 물론 어린 학생에게도 자신의 교사가 의식화 교사인지 따져본 뒤 고발하라는 것이다.

이 게시판에 1월 5일부터 올라온 글은 현재 겨우 7개뿐. 지난 12일까지는 한나라당 사이트 첫 화면에 메인 소개판까지 만들어 홍보했는데도 참여율이 무척 낮은 편이다. 그나마 올라온 글 또한 특정 교사와 교원단체에 대한 순수 제보 내용은 없었고 인터넷신문인 '독립신문' 등의 기사를 옮겨 온 것들이었다.

박근혜 대표 "교사 존경 분위기 만들겠다"고 약속해 놓고선...

장은숙 참교육학부모회 사무처장은 "아주 심각한 이념편향을 가진 정당이 사학법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특정 교원단체 교사들을 고발하도록 한 것은 반교육적 행위"라면서 "의식화 교사를 고발하라는 마녀사냥식 글귀를 보는 순간 섬뜩하고 아이들이 볼까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학부모와 학생들은 전교조 교사가 누구인지 모른다. 결국 전체 교사를 감시하라는 얘기 아니냐"면서 "한나라당이 이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이야말로 전 교사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무너뜨리고 학교 공동체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해 5월 14일 스승의 날 기념식 축사에서 "교육 여건이 선생님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도 미흡하다"면서 "선생님들이 존경과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교육 개혁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 제보게시판에 대한 전화 상담을 받고 있는 한나라당 민원실 관계자는 "사학법 투쟁과 관련해서 전화는 많이 오는데 전교조에 대해 의견을 주시는 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아이들이나 학부모에게 자기 선생님을 고발하라는 것은 문제 아니냐'는 물음에 "사립학교법 투쟁과정에서 생긴 일이지만 이에 대해 입장을 말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즉답을 피했다.

▲ 한나라당 제보게시판 속 내용. 13일 현재 글 7개가 올랐다.
ⓒ 윤근혁
성씨는 한나라당 제보게시판에 따끔한 비판 글이라도 올리려고 했다가 포기했다고 한다. 글을 올려봐야 게시판 성격과 어긋난다면서 삭제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기자에게 다음처럼 분통을 터뜨렸다.

"제발 정치꾼들이 교육계를 이념적으로 편 가르고 충동질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전국의 학부모나 학생들이 교사들을 빨갱이인지 아닌지 색안경을 끼고 감시한다면 어떻게 교육이 되겠습니까? 한나라당은 교육계를 반분해서 이득을 보겠다는 생각을 당장 집어치워야 합니다."

오마이뉴스 2006년 1월 13일치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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