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9일 토요일

[사진] 이게 바로 그 '새벽종'?

분당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서 본 추억의 종
 
윤근혁
 
▲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새벽종'이다.
ⓒ 윤근혁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70년대 전 국민은 이 노래를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길을 걸어야 했다. 학교, 마을회관, 심지어 교회 스피커에서도 박정희 작사, 작곡의 이 '새마을 노래'를 귀에 인이 박일 정도로 듣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노래에 이골이 난 뭇 중년들. 이젠 이 노래를 간혹 들으면 고향의 향수에 젖기까지 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새벽종'이란 게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한세대 30년 넘게 질기게도 울려 퍼지고 있냐는 것이다.

'새벽종'을 실제로 보기나 한 것일까. 마을에 범종을 세운 곳도 별로 없을 터, '새벽종'은 더더욱 볼 수가 없었을 게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이 종을. 서울 보신각종보다는 크지 않지만 제법 종의 모양을 갖춘 새벽종을 보았다.

때는 2006년 2월 어느 날 아침,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에 있는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지금은 '영어마을'로 빌려주고 있는 생활관 맨 오른쪽 건물 앞뜰에 그 유명한 '새벽종'이 있었다.

두 사람이 손을 뻗어 안으면 서로 손이 닿을 만한 직경에다 보신각종을 빼 닮은 이 종의 몸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선명하게 새겨 있었다. '새벽종'. 이 글귀 바로 아래엔 노란색 새마을운동 마크가 찍혀 있다.

▲ 이젠 이 종을 더 이상 치면 안 된다. 깨질 수도 있다.
ⓒ 윤근혁
새벽종 앞에 돌로 새겨놓은 안내문을 보면 83년 4월 22일 대구효종동문회란 단체에서 만들어 세워놨다고 한다. 83년 4월이면 이곳 연수원이 처음으로 문을 연 때랑 일치한다. 5공화국 시절 대통령 동생이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회장 자리에 앉은 뒤, 그 많은 돈을 떡 삼키듯 했다는 그때랑도 거의 맞아 떨어진다.

눈길을 끄는 안내문은 또 있었다. 기억이 정확한지는 몰라도 '종이 깨질 우려가 있으니 더 이상 치지 말라'는 글귀가 종 옆에 적혀 있었다. 종을 만든 지 20년이 넘게 흐른 지금, 더 이상 새벽종을 치면 안 되는 것이다.

그 시절은 때깔 나는 종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다시 치는 순간 산산이 깨져버릴 지도 모르는 위험한 종이 되어 버렸다. 그 애틋한 향수를 만든 종도 이젠 한물간 셈이다.

<오마이뉴스> 2006년 3월 1일치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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