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6일 수요일

'속설'에 속은 그대에게 띄운 전상서

[서평]김용일의 <속설과 진실>, 평준화 속설 필살기
 
윤근혁
 
▲ 속설 때문에 산통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 평준화를 둘러싸고 강원도는 현재 싸움 중이다. 사진은 올해 초 진행된 '평준화 실현 강원도민 결의대회' 모습.
ⓒ2004 박철우
모두가 NO라고 할 때 YES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독과점처럼 신문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보수언론들이 입을 맞춰 ‘평준화는 NO'라고 할 때 'YES' 하고 말하는 교육학자를 찾기는 정말 어려웠다. 독과점 여론 시장을 이처럼 거스르는 말을 하는 데엔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개인 경험을 하나 들며 책 소개를 할까 한다. 이상주 전 교육부총리를 기억하시는가. 지난해 조중동(조선, 중앙, 동아일보)이 인터뷰와 기사로 단골 메뉴처럼 등장시킨 인물이 바로 그다. 나는 이들 신문과 무척 가까운 이 전 부총리가 평준화 문제에 대해서도 이들과 한마음 한뜻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 1월 14일 한국중학교장회 강연에서 그가 목청을 높인 다음과 같은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하향평준화란 언론보도는 일종의 상투어일 뿐이에요. 실제 그런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평준화는 사교육을 막는 일종의 철판입니다. 이 철판이 무너지면 초중까지 망가집니다.”

물론, 그는 ‘평준화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이긴 했지만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가 보수언론과 수없이 벌인 인터뷰에서 위와 같은 내용으로 그들의 보도내용을 꾸짖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속설은 무엇이고 진실은 무엇인가

교육처럼 속설이 판치는 세상도 드물다. 최근엔 경제학자들과 보수언론들이 이 속설을 대놓고 부추기고 있다. 여론시장의 독과점 구조 속에서 평준화 관련 보도는 ‘이미 갈 데까지 갔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런 형편에서 최근 교육학자인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수가 <속설과 진실>(교육비평)이란 책을 낸 것은 그 자체로 값지다. 독점 신문시장 구조가 만들어놓은 속설을 깨고 교육에 대한 진실을 알리겠다는 용기 자체만으로도 신선하지 않은가. 더구나 그는 지난해 대통령직 인수위 전문위원까지 지냈으니 눈치 봐야 할 사람도 제법 있었을 텐데 말이다.

김 교수가 문제 삼은 것은 내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는 학부모들의 순진한(?) 속설에 대한 것이 아니다. 정작 그가 화살을 겨눈 것은 경제학자들과 보수언론들이 퍼뜨리고 있는 조직적이며 의도된 속설이다. 그래서 그는 책 서문에서 다음처럼 말한다.

“사태를 고의적으로 왜곡하여 교육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언설이 정작 더 큰 문제다.”

어째서 그럴까. 그는 “이런 류의 속설은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생산·유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문제 해결의 치명적인 걸림돌”이라고 못 박는다.

▲ 책 <속설과 진실>
ⓒ2004 교육비평

그럼 이들이 만들어 퍼뜨린 속설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김용일은 책에서 △시대 역행적인 평준화론 △평준화의 학력저하론 △강남집값 안정론 등을 꼽았다. 이 모든 것이 속설이란 얘기다. 이 속설을 깨기 위해 그는 외국의 사례와 최근 교육학계의 동향, 교육관 등을 끌어들여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책을 읽으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한발 더 나아가 그는 “권력일 따름인 학벌 네트워크의 고리를 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안병영 교육부총리와 청와대가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보이는 사교육경감대책에 대해서도 “학벌타파와 대학평준화 주장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최근 논란을 지켜보면서 나는 속설 전파자들한테 중요한 것은 교육논리가 아니라 시장논리라는 생각을 더욱 굳혔다. 이들의 입은 교육을 말하고 있지만 그 뿌리는 교육과 인연이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도 책에서 이런 점을 강조한다.

“시장경쟁의 논리는 교육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비교육적이며 대개의 경우 교육에 반하는 모습을 연출할 뿐이다. 학습과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는 일이 최저의 비용으로 시험을 준비시키는 훈련이 되는 것이다.”

모두 37개의 글을 묶어 놓은 <속설과 진실>은 모두 네 부분으로 되어 있다. 속설과 진실, 인간화와 민주화, 쟁점과 대안, 교육과 정치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글 대부분은 지난해 김 교수가 기존 언론과 학회지에 발표한 칼럼들이다.

따라서 글이 쉽게 읽힌다. 최근의 공교육 논란, 즉 시장주의 세력과 공공교육 강화 세력 사이의 싸움을 이해하는 데 이 책은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책의 내용이 한 쪽을 편드는 것이긴 하지만 다른 쪽의 논리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칼럼이란 형식의 한계 때문에 글의 호흡이 길지 못하다. 깊이 있게 생각할 겨를을 갖기도 전에 이미 다른 주제로 넘어가 버린다. 오자가 상당히 많은 것 또한 글의 신뢰성에 영향을 줄 정도로 눈에 거슬린다.

속설을 바로 잡을 이 누구인가

모든 옥에는 티가 있기 마련이다. 이 책도 한계는 제법 보이지만 교육학자가 최초로 최근의 교육속설에 대해 칼을 겨눴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용학 스님의 말이 머리를 감돌았다.

“옷에 묻은 때는 옷이 아니다. 살 위에 돋아난 고름은 살이 아니다. 때는 씻고 고름은 짜내야 한다.”

현재 속설 전파자들은 옷에 묻은 때를 옷이라고 하고, 살에 돋아난 고름을 살이라고 우기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들은 신문시장을 독점하다시피 쏟아 붇는 캠페인성 보도로 속설을 진실처럼 바꾸고 있지는 않은가. 이를 바로 잡을 이 누구일까.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2004년 1월 25일치에 쓴 것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