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4일 화요일

모윤숙과 김일성 별장

살아있는 친일언론에 '안보장사꾼'도 판을 치다
 
윤근혁
 
2002 윤근혁
3·1절을 갓 보낸 3월 초, 지금은 국방부의 '안보홍보관'으로 바뀐 강원도 고성군의 화진포 해변 '김일성 별장'. 모윤숙의 시 '민족을 가르치는 노래'(민족의 교성곡)가 울려 퍼진다.
"겨레여! 희망의 터전 위에 자유와 번영의 무궁화 피리니… 대한민국 통일의 조국 저 깃발 향하여 달리세, 힘차게 동포여!"

모윤숙은 1942년 '일본군의 싱가포르 함락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 바로 그 때 그 사람.
"거리엔 전승의 축배가 넘치는 이 밤/ 환호소리 음악소리 천지를 흔든다 /소남도! …/ 여기 너는 아세아의 인종을 담은 채/ 길이길이 행복 되라…."

그는 이 시를 쓰고 6년 뒤인 48년에 김활란과 함께 UN총회 한국대표로 참석한다. 다시 3년만인 1951년,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란 시로 목청을 돋운다. 똑같은 입 바꾸지도 않은 채….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핏속엔 더 강한 대한의 혼이 소리쳐/ 나는 달리었노라."

모윤숙이 생각한 원수는 누구이며, 해방 후 그가 달린 길은 어디일까. 3·1문화상과 국민훈장모란장을 받고 국회의원까지 하다 90년에 죽은 모윤숙. 그는 아직도 김일성 별장에서 '안보홍보꾼' 노릇을 하며 살아 있었다.

모윤숙이 세상을 뜬 90년 6월, 조선일보는 때를 만난 듯 소리 높여 외쳤다.
"건국공로자로서의 모윤숙이면 국립묘지에 그의 쉴 곳을 만들만하지 않느냐는 것이 그와 문단 후배들의 말이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고 노래한 모 시인이 '죽어서 국군과 말할' 기회를 우리 국민은 주지 못할 것인지, 적지 않은 문인들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조선일보 90년 6월 10일자 2면 기자수첩)

친일 언론이 살아있는 형편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건국공로자로 둔갑하는 건 당연한 일. 그 언론과 모윤숙은 아직도 안보 장사꾼으로 우리 생활 속에 파고들고 있다.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회장 김희선)은 지난 2월 28일 모윤숙을 비롯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 708명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엔 조선·동아일보 창립자 방응모·김성수도 끼어 있었다. 사진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화포리에 있는 '김일성 별장'의 전시물.


2002/03/14 오후 1:16
ⓒ 2002 OhmyNews
 
2003/01/19 [23:12] ⓒ 윤근혁의 교육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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