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람] 통도 크고 간도 큰 통일교사 간우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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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고 / 님이 되여 만난 사랑도 /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 가슴 아픈 사연에 울고 웃는 사람도 / 복에 겨워 웃는 사람도 / 점 하나에 울고 웃는다 점 하나에 울고 웃는다" 솔직히 나는 속물 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통일'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면, 우리 민족이 나은 트롯 명가수(?) 김명애 씨의 '도로남'이란 노래가 입 속에서 저절로 나온다. "돈이라는 글자에 받침 하나 바꾸면 돌이 되어 버린 인생사"란 노랫말도 맘에 든다.
이제 화해평화의 시대란다. 그런데도 아직 마음 속 철책 선을 거두지 못한 교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이런 점에서 나도 예외가 아니다.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지우면 님이 되는 인생사를 정말 몰라서 그런 것일까. 사실 남과 북은 남도 아니었다. 한 핏줄로 하나의 문화를 5000년 동안 공유해온 한 겨레란 말이다. 통일교육 점 하나 찍은 청년교사 오늘은 통일교육의 점을 하나 찍은 청년 교사를 소개하려고 한다. 학급 재량활동 시간에 줄곧 통일교육을 해온 사람, 통일교사 모임이라면 만사 제쳐두고 뛰어가는 사람, 이름하여 '통큰 남자 간큰 청년' 간우연 교사(29, 경기 안산 이호초)다. 25일 오후 5시 30분. 경기도 안산 상록수 전철역 근처에 있는 그의 교실문 앞에 섰다. 4학년 2반이란 학급 팻말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등발 좋은 사람이 환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저 같은 사람도 소개할 가치가 있나요. 제대로 (통일교육)하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는 상당히 겸손한 말로 취재하러 온 나를 맞았다. 하지만 나는 청소년통일캠프, 참교육실천보고대회, 한겨레어깨동무, 전국통일교사모임 등에서 맹활약하는 그를 몇 년 동안 지켜본 터라 이 말이 귀에 거슬렸다. 그래서 다음처럼 쏘아붙였다. "간 선생님 같은 분이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해요. 무조건 취재에 응하시오!" 칠판 오른편 게시판엔 '통일교육 원칙'이란 글귀가 붙어 있다. '담임 교육 원칙' 또는 '선생님 차지' 뭐 이런 식의 글귀는 없고 다음과 같은 생경한 글이 써 있는 것이다. <통일교육원칙> '왜 이런 글씨를 인쇄해서 붙여놨냐'고 물어봤다. 정말 그랬다. 7차 교육과정에도 나와 있는 '자주적인 어린이'란 말도 여기 들어 있었다. '다른 사람과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이란 글귀 또한 얼마나 좋은 것인가. '왕따'니 '은따'니, '애자'니 이런 말은 사실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개인주의의 독버섯이 아니던가.
"통일의 꽃을 피워요 삼천리 방방곡곡에 / 우리의 땀을 바치어서 예쁘게 피워요 / 겨레의 가슴마다에 민족의 가슴마다에 / 뜨거운 눈물 뿌리어 활짝 피워요…." 이쯤 되면 그의 실상을 얼마간 눈치챘으리라. 좀더 그의 속마음을 캐보기 위해 '왜 통일교육을 하냐'는 물음을 던졌다. 내가 던진 질문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왜 교과수업이나 잘하면 되지 주변 눈총 받으면서 통일교육이란 것을 하려고 합니까."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뜻밖에도 일반 선생님들의 생각과 일치하는 내용으로 들려왔다. "저는 아이들 때문에 통일이 되고 통일국가도 운영될 수 있다고 보고 있어요. 이런 아이들이 마음의 준비를 한 채 통일을 맞이해야 하지 않겠어요? 또 통일교육이 주는 가치는 공동체성이에요. 다른 사람과 화해하고 주변 친구를 위하는 것, 이것은 학급운영의 기본이기도 하죠. 전쟁하지 말고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통일교육입니다." 이처럼 말할 때 그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배어 나왔다. 간 교사의 말투는 느리고 어눌했지만 진심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그 말뜻을 정말로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평범한 말이지만 이것이 바로 정답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NEIS 거부' 때문에 통일교육 업무분장 횡재 이런 생각 때문에 그는 지난 해 학교 전체 '통일교육 담당'이란 업무분장을 맡고 기뻐했다고 한다. 사실 그는 2000년 첫 발령부터 줄곧 이 학교에서 정보담당을 맡아왔다. 하지만 지난 해 2월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업무이관을 거부하자 학교 쪽은 그를 전격 경질(?)하고 새 일자리를 넘겨주었다. 그것이 바로 통일교육 담당이란다. "기뻤죠. 정보담당 교사에서 잘린 것은 기분 좋은 게 아니었지만 그 다음에 통일교육 담당을 하라고 하니 좋더라고요." 이런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선 학교 쪽에 대한 원망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판에 박힌 통일교육을 하라고 하는 교육당국에 대한 원망 섞인 말은 튀어 나왔다. "관급 공문이 정말 문제예요." 그의 원망은 이렇게 시작됐다. "정말로 교육청에서 하라는 통일교육 공문은 해마다 날짜만 바꿔서 보내는 것 같아요. 변함 없이 똑 같아요. 이러니 아이들도 관심이 없지요." 그의 말은 25년 전 학교 반공웅변대회에 출전한 경력과 반공 글짓기대회 최우수상 수상 경력을 갖고 있는 나로선 이해되고도 남았다. 반공이란 말이 평화로 바뀌었고 달력이 바뀜에 따라 공문의 날짜가 바뀐 것말고는 교육방법과 내용이 엇비슷한 것은 알 사람은 다 알 수 있으리라. 왜 이들은 이런 공문을 자꾸 생산하는 것일까. 가만히 있으면 주위 눈총을 받을까봐 그런 것일까, 아니면 머리가 나빠서 자꾸 이전 것을 베끼다보니 그런 것일까. 간 교사는 이런 공문에 아랑곳없이 자기 나름의 통일교육 프로그램을 짰다. 6학년을 가르친 지난해만 해도 학급 특색사업이 바로 '통일교육'이었다. "초등학교 아이들과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인 것처럼 보입니다. 뭔가 잘못된 것을 주입하지는 않는지 스스로를 자꾸 점검해 보기도 하고, 이내 활동을 포기한 경우도 없지 않았어요." 그렇다. 웬만큼 간이 크지 않고서는 통일교육을 하기 버거운 현실이 요즘이다. 우리는 화해평화 공동수업을 진행한 전교조가 지난해 '반미교육의 원흉'으로 몰려 몰매를 맞는 현상을 봤다. 친일행위로 모자라 학살주범 전두환을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단군 이래의 성군'이라고까지 칭송한 조선일보를 필두로 폭격이 감행됐다. 화해평화교육에 대한 총질에 눈치를 살피던 교육부도 가세해 '반미교육 대책'이란 것을 만들기도 했으니 기가 막힌 노릇이다. 제발 친일과 학살 칭송세력들은 피묻은 펜대 세척 작업이나 했으면 좋으련만, '통일교육과 나라 걱정'까지 하고 있으니 일이 꼬이기 십상이다. 이런 형편에서 몇몇 교사들은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간큰 교사' 간 교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량활동 시간을 빼내 한해 동안 통일교육을 묵묵히 진행한 것이다. 한 해 동안 모든 교육활동을 통일로 연결 우선 그는 3월에 옆 친구에 대해서 잘 알아 가는 활동을 시작했다. 이윽고 터진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전쟁의 고통과 평화의 소중함을 생각해봤다. 이를 2절 우드락에 광고판 형식으로 표현해 각 학년 복도에 전시까지 했다. (이하 교육내용은 민주평통신문 2004년 4월 16일치 간우연 교사 글 참조) 4월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선 아이들 스스로 다른 사람을 어떻게 차별하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북에 살고 있는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할 친구라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5월부터는 우리 민족의 아픔을 이야기로 쓴 '벌렁코 할아버지'<현암사>와 같은 동화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해 보았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이것을 간단한 애니메이션이나 연극,인형극을 통해 내면화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6월엔 6.15 남북공동선언과 6.25 한국전쟁 발발일 등 날짜가 말해주는 역사적인 사실을 조금이나마 알려고 노력했다. 2학기 들어서면서 다양한 방식의 활동 위주로 통일교육이 이루어 졌다. 아이들이 한 활동을 살펴보면 '노래가사 바꿔 부르기', 현재 방송되고 있는 광고 내용을 통일과 관련된 내용으로 바꿔서 연기하는 '통일 CF',잡지의 사진이나 그림을 적절하게 바꿔서 만드는 '통일 패러디 광고판',앞으로 10년 뒤 통일을 가정하고 만들어 보는 '가상 통일 신문 만들기' 등과 같은 활동을 진행했다. 2학기말엔 한해의 통일교육을 정리하려고 했다. 10월엔 비무장지대를 직접 찾아가는 통일체험학습을 벌였다. 간 교사 스스로의 준비에 따라 학급 아이들만 참여하는 색다른 체험학습이었다.
결국 아이들은 스스로 이라크 백성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벌인 게 바로 지난 해 12월 20일에 연 이라크 어린이 돕기 바자회였다. 간 교사는 지난 해 1년 내내 벌인 통일교육 활동을 떠올리면서 다음처럼 말했다. 통일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어땠을까. 지난 해 낸 학급문집 '하나바라기'엔 아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많은 글 속에 한해동안 배운 통일학습에 대한 평가가 들어 있었다. 아이들은 이 문집에서 통일체험학습과 이라크 어린이 돕기 바자회 얘기를 적었다. 그만큼 큰 감흥이 있었다는 것이리라. "같은 민족끼리 통일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쓰니까 좀 웃긴 것 같다. 원래는 당연한 일인데 말이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통일을 이루어 내야 한다. 반드시."(6학년 4반 박성은) 먹고 사는 문제냐, 죽고 사는 문제냐 올해도 간 교사는 6월을 맞아 통일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통일 염원을 담은 연등을 만들어보고, 통일 노가바 대회도 열 생각이다. 그는 '통일교육을 제대로 안하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통일교육을 권유하는 말을 좀 해달라'는 부탁에 다음처럼 대꾸했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통일된 세상입니다. 그 때 어렵고 혼란스러워 하는 제자들을 본다면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가치관에 대한 혼란을 극복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통일교육은 필요합니다. 통일교육이 바로 평화롭고 좋은 나라를 만드는 교육이란 생각을 갖고 열심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우리 학교사회엔 해야할 교육이 정말 많다. 경제교육, NIE교육, 한자교육, 영어교육, 컴퓨터교육, 독서교육, 글쓰기교육…. 대개 이런 교육들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시키기 위한 교육이다. 그런데 '죽고 사는 문제'를 다루는 교육이 있다. 바로 통일교육인 것이다. 이는 경제문제가 먹고 사는 문제라면 통일문제는 죽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곧 6.25가 다가온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식 교육을 계속해야 할까. 그래서 "쫓기는 적의 무리"라도 쫓고 더 쫓아 마지막 한 놈까지 쳐서 무찔러야 속이 후련할 것인가. 이래선 평화가 없다. 미국이 지금 이라크에서 자행하듯 응징과 보복, 그리고 고문만이 있을 뿐이다. 6월은 6.25말고도 6.15가 있다. 역사적인 남북 6.15 공동선언이 바로 그것이다. 간 교사는 지금 통일교육을 하며 자신의 몸으로 다음처럼 외치고 있다. "6·25에서 6·15로, 제발 열을 빼세요!" 6.25라는 숫자에 열(10)만 빼면 6.15가 되는 인생사란 얘기다. 교사들이 이런 마음을 가질 때 화해평화 통일교육은 밝게 빛나지 않겠는가. 이 기사는 월간<우리아이들> 2004년 6월호에 쓴 것입니다. | |||||||||
2009년 8월 26일 수요일
"6·25에서 6·15로, 열을 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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