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5일 화요일

그는 '국민의 정부' 장관이 아니었다

분석/ 교육연합 대표 맡은 이상주 전 교육부장관
 
윤근혁
 

새 정부가 뜨자 교육수장이 바뀌었다. 윤덕홍 교육부장관이 들어오고 이상주 전 장관은 교육부 장관실을 떴다.

▲조선일보 속 이상주 전 장관     ©윤근혁

'떠나는 사람'이나 '떠나는 사람을 배웅하는 사람'이나 덕담을 나누는 것이 보통. 그런데 이 전 장관이 3월 7일 이임식 직후부터 각종 기자간담회나 강연에서 전체 교사들의 30%(9만5천여명)가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특정 교원단체를 겨냥, 독설을 퍼붓고 나섰다.

특정 교원단체에 대한 독설

"전교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전교조는 공격할만한 교장이 하나 걸리면 집단적으로 물고늘어지는 하이에나 떼와 같다.",  "붉은 띠를 매고 정치의식화한 전교조 일꾼들이 교단을 점거해 가고 있다.", "전교조가 교육감실을 뒷간 드나들 듯 점령한다."

이 같은 말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최근 전교조 집행부가 교사와 국민정서를 벗어나 '꽉 막힌 집단'처럼 대화를 회피하고 일부 강성행보를 한 것처럼 비쳐진 것은 비판받을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의 말은 '일부 정치인들의 그것처럼' 과장과 왜곡이 심하다는 게 일반의 관측이다.

이 전 장관은 퇴임 직전인 3월 4일, <문화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교육부총리를 해 보니 전교조냐, 아니면 교장단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입장"이라면서 "솔직히 현장교육을 위해 교장단을 선택했다"고 말해 말썽을 빚은 바 있다. 전체 35만 교사를 지도하고 감독해야 하는 교육수장이 '1만여 명의 교장들 편만 들었다'고 실토한 것에 대해 비판 목소리도 거셌다.

그가 말하는 교장단은 현재 보수 교원단체로 꼽히는 한국교총 산하기구다. 한국교총 지역 조직인 서울교총은 지난해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지지' 공문을 학교에 돌려 관련자가 구속까지 당한 바 있다. 교장단은 해마다 학생들에게 써야 할 학교운영비에서 자체 회비와 연수비 등을 빼내는 등 빈축을 사왔다.

"교장단 편을 들었다"는 그의 말

그러던 그가 퇴임 3개월만인 6월 14일 사실상 '안티 전교조'를 내세운 교육단체인 '교육공동체시민연합'(교육연합)을 만들어 대표를 맡았다. 그가 퇴임을 앞두고 측근들에게 "교육부를 떠나면 전교조에 반대하는 NGO(비정부 시민단체)를 하나 만들겠다"고 말하고 다닌 것이 결국 공염불이 되지 않은 셈이다.

이날 발족 총회에서 교육연합은 상임대표에 이상주 전 부총리를 선임한 데 이어, 서지문 고려대 교수, 배규한 국민대 교수, 김진성 전 구정고 교장, 고학용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등 5명을 공동대표로 뽑았다.

이날 연단에서 이 대표는 다음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교사들이 걸핏하면 거리로 나가 시위를 벌이고 편향된 생각을 전파하기 위해 의식화교육을 시키고 있다. 이런 행위의 피해자는 우리의 자녀들로, 인간적이고 민주적이며 조화로운 교육공동체를 위해 우리가 가진 지혜와 힘을 한 데 모으려고 한다."

이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육연합은 그 목표로 △인간적이고 민주적이며 조화로운 교육공동체 조성 △2세 국민의 건전한 성장 발달 등을 내세웠다.

이상주는 '살아있는 실천가'인가

이 단체 출범 전후로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이상주 전 장관을 크게 소개했다. 마치 그가 비뚤어진 교육계의 아픔을 짊어지고 나가는 '살아있는 실천가'인 것처럼 묘사되기도 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 전 장관은 7월초에 나온 <주간조선>과 인터뷰에서 "오히려 요즘이 장관할 때보다 훨씬 바쁘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로 반기는 분위기인 것 같다.

하지만 수많은 보도 속에서 정작 교육연합이 내 건 목표와 이 대표의 행적이 어울릴 수 있는 것인지 따져보는 기사는 거의 없었다. 이를테면 이 대표가 과연 △인간적이고 민주적이며 조화로운 교육공동체 조성과 △2세 국민의 건전한 성장 발달을 추구할 수 있는 목표에 걸맞은 사람인지 검증하는 기사는 별로 없었다는 얘기다. 그가 사실상 주도해 교육연합이 생겼고, 그 자신이 대표를 맡은 이상, 그와 이 단체의 목표를 가늠해 보는 일은 의미가 있는 일인데도 이런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과거는 현재의 어머니란 말이 있다. 이 대표 또한 과거의 말과 행동을 살펴보면 현재의 생각을 얼마간은 알 수 있으리라. 먼저 그의 일대기를 훑어보자. 이미 그에 대한 좋은 얘기는 조중동에 많이 나왔으니까 여기서는 문제될 만한 행적부터 따져보자.

이 대표의 행적이 현재의 그를 말한다

이 대표(66)는 화통한 성격에 마당발로 소문이 난 사람이다.
그가 세간의 주목을 받은 시기는 박정희 유신정권 때인 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대 사범대 조교수(교육행정학)이던 그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설립준비위원으로 앞장서더니, 결국 간사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이 연구원은 유신정신을 연구한 대표적인 관변학술단체란 오명을 받은 바 있다. 그는 당시 같은 학교 교수였던 김태길 교수와 함께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산파역을 맡았다.

그는 5공 전두환 신군부 정권 들어서도 학자의 경력과는 어울리지 않게 아시아태권도연맹회장, 대학태권도연맹 회장, 대한체육회 이사 등 스포츠 활동을 활발히 벌였다. 이런 성격 탓인지 80년부터 1년여 간 5공 신군부 집권초기엔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맡았고, 국민의정부 시절인 2001년엔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 같은 경력은 그의 '광폭정치(?)' 기술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일보가 이 당시 광주학살의 주역을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단군 이래의 성군"으로 칭송할 때, 이 대표는 그 성군(?) 밑으로 들어가 교육과 문화전반에 대한 '신군부 구상'을 만들어냈다.

그는 이 교육문화수석을 지낸 다음 이른바 출세가도를 달린다. 대학 총장만 18년간이나 했다. 5공 초 청와대를 나온 그는 강원대, 울산대, 한림대 총장을 거쳐 결국 2002년 1월 교육부 수장에 이른다.

프로야구 누가 만들었는지 아나?

그는 80년 교육문화수석 시절엔 한국 프로야구를 만든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이른바 독재정부에서 많이 쓴다는 3S 정책(SEX, SPORTS, SCREEN)을 내온 것이다. 그는 82년 강원대 총장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신군부의 실세였다. 이 당시 40대 총장이 청와대 낙하산으로 내려오자 학생들이 반발했지만 인맥을 활용해 많은 예산을 따 대학을 키우면서 연임까지 했다.

강원대 총장 시절인 83년 그는 강원도 사회정화추진협의회 회장으로서 '정의사회 구현'이란 5공 세력의 정치 모토를 일선에서 실현하는 몫을 담당하게 된다.

88년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게 발탁돼 울산대 총장을 맡기도 했다. 92년 정주영 명예회장이 통일국민당을 만들자 그도 창당발기인으로 나섰다. 이른바 10여년 전 신군부가 만든 민주정의당 활동을 발판 삼아 통일국민당에도 발을 뻗은 것이다. 그는 정주영씨가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때 대표적인 지지학자로 언론에 오르내렸다.

이처럼 이 대표의 부침은 상상 이상으로 화려하다.

이제 왜 그가 '안티 전교조'를 외치고 나섰는지 살펴보는 게 필요할 듯 하다. 그가 최근 교육부장관 시절 어떤 일을 했는지 간단히 살펴보는 일은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는 왜 '안티 전교조'로 나섰을까

2002년 1월 29일 이 대표는 정부중앙청사 16층 교육부장관실에 들어섰다.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일한 지 4개월만에 주특기를 살려 교육부에 왔다는 게 당시 언론들의 보도였다. 그는 이날부터 올 3월 교체 전까지 1년 2개월여 동안 교육수장으로 일했다.

새정부 출범을 앞둔 올 1, 2월 교육시민단체들은 잇따라 '국민의 정부 교육개혁을 평가하는 토론회'를 연 바 있다. 이 토론회에서 의견일치를 본 내용은 "국민의 정부 교육개혁은 실패했다"는 것. 물론 이 실패의 한복판엔 이 대표가 서 있었다.

장관 취임 직후 이 대표는 기자간담회 등에서 "교육개혁 과제를 새로 내놓기보다는 이미 나와 있는 것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취임 직후인 3월 '공교육정상화대책'을 발표하면서 보충수업을 사실상 허용했다. 교육단체들은 일제히 반발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었다.

또 문제가 된 것은 0교시 수업. 지난해 3월 초 0교시 수업을 직접 경험한다고 학교방문을 나선 이 대표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내가 며칠 (새벽에) 다녀보니까 다녀볼 만하다. 대도시의 경우 러시아워에 따른 도시교통문제도 있고 하니 조금 일찍 나오는 것도 좋지 않으냐."

이런 가운데 0교시 수업은 아직도 살아 있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대표가 보충수업까지 부활해 학생들한테 입시위주 교육의 전형을 선보였다는 것일 게다.

이 밖에도 그는 초3 기초학력진단평가와 교육행정시스템을 '군사작전식'으로 감행했다. 다음은 내가 2002년 9월 주간<교육희망>에 쓴 글이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의 정황을 일부 알 수 있다.

보충수업 부활, 0교시 수업 방관

"그거 탁상행정이죠. 관료들의 책상머리 정책이 사라져야 학교가 살아요."

전국단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논란을 두고 최근 초등교사출신의 서울교육청 모 간부가 털어놓은 교육부 비판론이다. 이처럼 교사·학부모들은 말할 것도 없이 일부 교육중간 관료들까지 교육부 비판에 나서고 있다.

교육부가 2002년 10월 15일 전국 62만 여명의 초등 3학년생들을 대상으로 강행의사를 밝힌 초등 진단평가. 이 시험을 코앞에 둔 지난 9월 24일엔 전국 시·도 교육감들이 모여 표본만 뽑아 시험을 보도록 하는 '표집 평가'방식을 건의하는 등 반기를 들 정도다. 최근 이 같은 비판의 화살은 이상주 교육부장관에게 집중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전두환 정권시절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출신인 이 장관은 진단평가와 교육행정시스템에 대한 고집을 꺽지 않고 있다. 진단평가에 대해 이 장관은 지난 9월 16일 교육부 국정감사 답변에서 "진단평가는 저 자신의 교육 신념에 따라 추진하는 것이니 의원님들이 이해해달라"고 부탁하며 "전교조 대표도 와 있는데 충분히 이해하길 바란다"고 고압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또 9월 25일 기자간담회에서는 "전교조가 진단평가를 반대하는 것은 귀찮아지니까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는 소식이다.

현재 일선 교사들의 교육부에 대한 비판 정도는 위험수위에 와 있다. 이들은 "교육부가 교사들의 의견엔 귀를 막은 채 장관과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일방통행식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멀리는 지난해 성과금 지급과, 가깝게는 교육행정시스템 추진, 앞으로는 진단평가와 성취도평가를 강행하려는 일련의 과정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교육부 폐지론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군사작전식 교육정책 추진 방식
 
NEIS는 말 그대로 '좌충우돌'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는 지적이다. 시행 2년만에 기존 시스템을 갈아치운 졸속 추진 방식도 문제였지만, 운용 당사자인 교사들 대부분이 반대하는데도 부득불 '9월 개통'을 고집하다가 결국 거센 반발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예산낭비 비판과 정보인권 보장을 위한 목소리엔 귀를 틀어막은 듯하다.

이 시스템 개통시기에 대해 최근 전교조가 학교 전산담당 교사들을 상대로 설문을 벌인 결과 100명 가운데 2명만이 교육부 정책에 손을 들어줬다. 우리 교육행정 역사상 이렇게 큰 거부물결은 없었다는 분석이다.
전교조 이용환 정책실장은 "정작 교육정보화 시스템의 문제는 고치면 되지만 교사들 절대 다수가 반대하는데도 강행하려는 내려 먹이기식 교육부 관료시스템이 더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군사작전식 진단·성취도평가 추진도 '탁상행정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뽐내는 듯하다'는 지적이다.
진단평가에 대해서는 이미 전교조와 한국교총 등 교원단체와 참교육학부모회 등 학부모단체, 그리고 서울학교운영위원협의회도 반대 성명을 냈다. 심지어 시도교육청 교육감도 반대 건의문을 장관한테 보낸 상태다. 이제는 서울·경기 교육위원회를 비롯한 전국 교육위원회도 교육부 방침에 '쐐기'를 박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까지 하다.

결국 이 장관을 비롯 몇몇 일반직 관료들만이 70년대 일제고사 방식의 '경쟁 줄 세우기 깃발'을 들고 있는 셈이다.

자립형 사립고 확대와 평준화 흔들기

재경부 등 경제부처에 휘둘리는 평준화 해제 시도와 자립형 사립고 추진도 교육부에 대한 불신을 한층 높게 하고 있다. 강남지역 주택대책을 평준화 해제와 맞물려 놓은 '경제 숭상 교육 천시' 발상이 최근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같은 교육부의 좌충우돌 속에 일선 교사와 아이들은 아우성치고 있다. 교육부 홈페이지엔 연일 교육부를 '교육낭비부'라 비판하는가 하면 '교육부가 죽어야 교육이 산다'란 말도 공공연히 올라오고 있다. 9월 25·6일 이틀 동안 이곳에 올라온 진단평가 반대 글만 100여 개나 된다.

이제 국민여론 수렴과 교육부 관료 개혁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육부 개혁 방안을 담은 '교육은 살아있다'는 책을 쓴 김대유 교사(서울 서문여중)는 "교육부는 일반직 관료가 독점 체제를 굳힌 독과점 시장이며 교사들이 빠진 그들만의 나라"라면서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듯이 교육관료체제 개혁을 위해서는 국민들이 뭉쳐서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장관 활동은 낙제점, 전교조에 둘러대기?

이처럼 이 대표의 장관활동은 '낙제점'에 가깝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조중동 또한 이 당시 이 대표를 거세게 몰아쳤다. 그 소재는 위에 적은 것처럼 기초학력진단평가와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아이러니컬하게도 조선 또한 이런 비판의 최선두에 섰다. 지금은 손바닥 뒤집듯 내용이 바뀌었지만 말이다.

다음은 조선일보 2002년 9월 27일치에 실린 '중앙집권적 교육' 제목의 기자수첩 내용.

"…난데없는 일제 시험을 앞두고 초등학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시험 열풍’에 휘말리고 있다. 전교조에 이어 교총도 '기초학력 평가는 지역과 학교단위 책임으로 시행해야 한다'며 반대하고, 학부모단체도 가세하고 있다. 교육부는 그러나 '시험 취지를 이해 못해서…'라거나 '교사들이 귀찮으니까…'라며 오히려 학부모와 교사가 문제라는 태도다.
이상주(李相周) 부총리는 25일 외국의 학력시험 사례도 거론하며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도 교육 열기가 유별난 한국의 현실을 고려했는지는 의문이다. <중략>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란 이름의 새 교육정보시스템 구축도 마찬가지다. 새 시스템이 구축되면 교육부는 책상에서 학생 상담 내용, 교사의 재산, 학부모 주민번호, 학생 이메일 주소 등 신상정보가 낱낱이 입력된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기존 시스템 구축에 든 1500여억원을 고스란히 날려도 될 만큼 절실한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아직도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어야겠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이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 교육부는 한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는 '국민의 정부 교육부장관'이 아니었다

이 대표의 장관 재직 시절 그를 칭찬하는 기사는 눈을 씻고 찾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현실 감각 없이 보수적인 교육관을 밑천 삼아 줄잡아 악수만 두고 있다'는 게 이 당시 교육계의 시각이었다. 다음은 이와 관련 에피소드.

교육부 장관에 이 대표가 선임되자 사정을 아는 이들은 코웃음을 쳤다. 이 장관이 학자시절인 2000년 4월 자신이 쓴 저서에서 현 정부의 교육개혁을 신랄하게 비판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학교가 무너지면 미래는 없다'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현 정부를 꾸짖었다.

"최근의 교육정책들은 …결과적으로 교원들의 사기와 권위를 떨어뜨리고 갈등을 조장하였으며 일선 학교에 큰 혼란을 초래했다. 그리고 학교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려는 개혁이 오히려 학교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무리하게 밀어붙인 교육개혁이 오히려 '학교 붕괴'와 '교실붕괴'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교원노조 합법화에 대해서는 "다른 교원단체와 상의 없이 노사정위원회에서 합법화하는 바람에 교직사회에서 분열과 대립이 일어나고 있다"고 칼을 빼들기도 했다.

그는 또 이 책에서 고교평준화 문제와 관련 "학생의 학교선택권 제한, 학생의 능력 차로 인한 수업효과 저하 등 많은 문제가 제기되어 평준화 정책에 대한 사회적 물의가 계속 일어났다"고 고교 평준화를 반대하는 내용을 적었다. 그러던 그가 장관이 된 이후 고교 평준화 사수를 외치고 나서기도 했다. 때와 장소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달리해 온 것이다.

이처럼 그의 교육사상은 조선일보 또는 한나라당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95년 4월 7일치 조선일보에 칼럼을 썼는데 "평준화 정책은 애초에 잘못된 가정이었다"면서 평준화 반대를 분명히 하기도 했다. 이런 그가 국민의 정부 교육부장관이 된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은 고개를 가로 저었던 것이다.

때와 장소에 따라 바뀐 교육사상

최근 서강대 재단이사장 선임을 둘러싸고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교육공동체가 깨질 정도로 말이 많았다. '주사파 발언'으로 유명한 박홍 전 총장이 재단이사장으로 선임되자 학생들과 동문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박 재단이사장은 지난 6월 '교육공동체 회복'을 외치며 교육연합 발족 총회에서 이상주 대표와 나란히 섰다. 박 재단이사장은 이날 "민주주의의 이름을 내걸고는 그 반대를 가르치고, 민중·민족교육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찬물 먹고 떠나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박 재단이사장은 95년 한국통신노조(위원장 유덕상)가 파업에 들어가자 "한통노조 파업을 북한에서 조종했다"는 발언을 하는가 하면 91년 유서대필 논란이 일 때는 "죽음을 부추기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는 엄청난 발언을 하기도 한 인물이다. 특별한 증거도 없이 공동체에 험담을 늘어놓은 대표적인 이가 바로 박 전 총장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 박홍 재단이사장을 두둔하고 나선 대학 총장모임을 이상주 대표가 주도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음은 이를 보도한 94년 7월 24일치 대한매일 보도.

"…서강대 박홍 총장의 '주사파 비판발언'을 지지한 20개 대학총장들의 이례적인 모임은 예정시간보다 1시간 가량을 넘길 정도로 계속돼 그동안 총장들이 학생운동에 '할말'이 많았음을 드러냈다. …'뉴스를 타 스타가 되니 기분 좋으시죠'(울산대 이상주 총장)라는 인사말이 나오자 박 총장은 웃으며 '발언 이후 많은 격려도 받고 이 가운데 공갈도 있었다'고 답했다."

박홍과 함께 "주사파 척결 운동" 앞장 서

이 대표는 이날 나머지 19개 대학 총장들과 함께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냈다.

"우리 일동은 박홍 총장 발언내용에 체험적으로 공감하며 박 총장과 같은 입장에 서서 이 문제에 대해 공동 대응키로 했다. 적어도 주사파 운동과 같은 좌경폭력운동만은 이 사회로부터 뿌리뽑아야 하며 이를 위해 우리는 계속 공동 노력할 것이다."

민주주의를 외친 제자들을 주사파란 단어로 재단, 공안정국을 만드는 데 이 대표를 비롯 이 당시 총장들은 기여했다. 이쯤 되면 '교육공동체'와 같은 말은 입바른 소리에 머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오직 고발과 폭로만이 난무할 뿐이다.

이 대표는 올해 6월 13일치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쏟아냈다.
"교육이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지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나라 교육이 광복 이후 최대 위기다.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교육공동체적 기반이 완전히 무너졌다. 교장과 교사, 교원과 학부모, 일선 교육자와 교육행정가, 교육단체와 교육단체가 서로 발목잡고 불신하고, 갈라서 있다."

그를 신뢰할 수 없는 까닭

그의 이 같은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의 말에 신뢰를 보내기는 무척 어렵다. 더구나 그의 과거 행적을 아는 이들은 '도둑이 매를 드는 격'이란 생각까지 떠올릴 수도 있다.

이 대표는 알아야 한다. 그가 현재 걱정하고 있는 '교육공동체 붕괴'의 최선봉에 얼마 전까지 다름 아닌 '자신이 서 있었다'는 사실을….

*이 기사는 월간<인물과사상> 8월호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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