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년 경력 학생들 앞에 선 6일된 교사 최정혜 씨 | ||||||||||||
|
“여러부운~. 선생님이 왜 하필 첫날부터 땅콩을 나눠줬을까요.” 아이들의 눈빛은 ‘선생님이 또 무슨 궁리를 하려고 저러나’ 하는 의심섞인 그것이었다. “선생님은 너희들이 땅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땅콩을 나눠 준 것이에요.” 아이들이 술렁였다. ‘우리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땅콩이 기가 막혀.’ 아마 아이들은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땅콩은 겉모습이 흙도 묻고 볼품이 없죠? 하지만 속은 맛있어요. 땅콩 알은 둘이 사이좋게 지내요. 우리도 땅콩처럼 친구끼리도 사이좋게 지내길 바래요. 또 다른 어른 땅콩인 선생님과도 잘 지내길 바래요.” 이제야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땅콩을 까서 입어 넣었다. 그는 전날 시장에서 땅콩을 사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떨리는 마음 대신 작은 보람이 가슴 속에 샘솟았다. 그와 아이들의 첫 만남은 이렇게 평화롭게(?) 시작되었다. 눈싸움에 곰만한 녀석도 고개를 숙이고… 3월 6일 서울 난우초 6학년 7반 교실. 4교시 사회 학습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학교에 온 지 6일된 새내기 최정혜(24) 교사가 경력 6년차 학생들 앞에 섰다. 100년 만에 내린 폭설에 산 속에 있는 이 학교는 눈 속에 잠겨 있었다. 교실도 추웠다. 난로 대신 설치해 놓은 히터는 켜 있지 않았다.
점퍼를 입은 아이들은 앞에 선 선생님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짝꿍과 장난을 친다. 최 교사가 떠드는 아이를 노려본다. 약 3초 간의 눈싸움이 시작됐다. 등치가 곰만한 그 남자 아이는 ‘어휴’ 하고 한숨을 내쉰 다음 서서히 고개를 숙였다. 교실 뒤쪽엔 ‘나의 자화상’이란 소개판이 붙어 있었다. 자신의 모습을 그려놓고 ‘안이비설신의’ 여섯 감각을 나름대로 소개하는 것이었다. 어승태란 학생은 코(비) 옆에 써놓은 소개 글에 ‘내가 좋아하는 냄새: 돈 냄새’라고 적어 놨다. “우리나라 인물을 각자 선택해서 조사해 와야 해요. 인터넷에서 드레그 해서 긁어서 오면 절대로 안돼요.” 최 교사의 말은 좀 빨랐다. 목소리도 약간은 떨렸다. 그래도 아이들은 듣는데 지장이 없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웅성웅성’ 여전히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웅성 되는 지방방송을 계속 틀어댔다. 12시 10분 정각에 4교시 끝나는 종이 울렸다. 아이들 처지로 보면 이날이 토요일이라 집에 갈 일만 남았다. 그런데 끝 종에 상관없이 수업은 계속됐다. 최 교사는 작심한 듯 다음처럼 말했다. “이번 조사는 수행평가에 반영할 테니 잘 해오세요.” 계속되는 최 교사의 수업 이 모습을 보면서 이전에 들은 우수개 소리가 생각났다. 일본, 영국, 한국의 해병대들이 각자 어떤 말을 듣고 자신 있게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일본 해병대는 “사무라이 정신으로 뛰어내려라”는 말을 듣고 용기를 냈고, 영국 해병대는 “기사도를 보여 줘라”는 말을 듣고 몸을 날렸다. 그럼 한국 해병대는 어떤 소리를 들었을까. 그건 바로 “이번 낙하 훈련은 평가에 반영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최 교사는 벌써 한국인의 약한 고리를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기지개를 펴는 아이들, 가방을 싸는 아이들 교실은 더 요란해졌다. 12시 15분, 어떤 학생이 “선생님 빨리 가야 해요.”라고 말한다. 이 때 갑자기 최 교사는 “합죽이가 됩시다” 하고 외쳤다. 아이들은 검지를 입에 대며 일제히 “합”이라고 말했다. 조용해진 시간은 10초, 다시 교실은 지방방송으로 웅성댄다. “3․3․7 박수 시작!” 최 교사의 지시에 아이들은 박수를 쳤다. 그런데 잠잠해진 시간은 안타깝게도 1초 정도였다. “선생님! 여기쯤에서 끝내야 하지 않나요?” 어떤 아이가 ‘개김성’ 발언을 한다. 또 다른 아이는 “야 조용히 해!”라고 선생님을 거들고 나선다. 항상 ‘범생이’는 한 반에 꼭 한 명이상씩은 있는 법인가 보다. 12시 18분. “가방 싸!, 다음엔 의자를 위에 다 올려” 최 교사의 일성이 터진다. 의자 올리는 학생들은 유난히 느림보다. 벌써 3분이 더 흐른 12시 21분. “아 참. 여러분 우유 곽 앞으로 보내세요.” 1교시 끝나면 바로 우유 곽 모으는 거사(?)를 치러야 하는데 그걸 잊었던 모양이다. 다시 교실은 아이들 목소리가 최 교사 목소리를 집어 삼켰다. 개구리 울음 소리 같은 음향이 크게 들렸다. 아이들은 합죽이가 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교실 뒤에서 지켜보던 사진기자 김진석 씨는 나한테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한다. “선배님! 나는 진짜 이런 분위기에선 애들 가만 놔두지 않을 것 같애. 나는 선생님 진짜 못할 것 같애. 초등학교 선생님들 참 엄청나다. 인내력이….” 드디어 청소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교실을 쓸고 최 교사는 뒤쪽 선반을 정리한다. “여자들은 열심히 하는데 남자들은 뭐하는 거야.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야지.” 최 교사의 여성차별성(?) 발언이 다시 들린다. 그래도 남자 아이들은 들은 척도 안한다. 오히려 이 아이들은 ‘원탁의 기사’들처럼 빗자루를 들고 칼싸움까지 시작한다. 최 교사는 빗자루를 들더니 쓰레기통 주변을 불이 나게 쓸고 있다. 어느새 의자까지 내렸다. 청소가 끝나자 다시 이른바 ‘나머지 공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진단평가 많이 틀린 학생 11명이 그 대상이다. 학생들을 죄다 보낸 시간은 오후 1시 10분. 12시 10분이 끝나는 시간이니 한 시간을 더 가르친 셈이다. 사실 ‘교사도 할만한 직업’이라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여기엔 조건이 따른다. 그 조건은 ‘아이들만 없으면…’이란 것이다. 그래서 나는 틈틈이 주변 동료들한테 다음처럼 설파한다. “교사도 할만한 직업이래요. 아이들만 없으면요.” 하지만 내 심성과 달리 최 교사는 말 안 듣는 개구쟁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 놓고 싶어서 안달하는 것처럼 보였다. 왜 그는 아이들과 같이 있고 싶어 하는 것일까. 최 교사는 이날 처음으로 ‘울 뻔 했다’고 한다. 첫 번째 단체기합을 줬기 때문이다. “어제 결심했거든요. 운동장에 나갔는데 우리 반이 제일 엉망이었어요. 그래서 이래선 안 되겠구나 결심하고선 오늘 떠들 길래 단체로 기합을 준 것이지요.” 최 교사가 준 단체 기합은 바로 ‘의자에 앉은 상태로 손들기’. “한 3분 정도 했나. 아이들이 조용해지더라고요. 효과가 장난이 아니었어요. 오늘 하루 애들 기 많이 죽어 있었죠?” 단체기합, 장난이 아니었어요 최 교사는 오히려 나한테 되물었다. 나는 부담을 안주려고 그저 웃기만 했다. “아이들 터치를 안 하려고 했는데 실망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벌을 주면서 감정이 복 받혀서 눈물이 찔끔 나오려고 했어요.” 사실 최 교사는 교단에 서기 전에 다음처럼 다짐했다고 한다. “아이들 다양성을 존중해 줘야지. 일곱 빛깔 무지개 색을 섞으면 검은 색이 되잖아. 교육이란 이름으로 이렇게 개성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 학원에 가지 않고도 내가 가르치는 것으로 모두 다 배울 수 있는 그런 교육을 해야지. 그리고 무엇보다 친절해야 해.” 하지만 이런 다짐은 하루 만에 흔들렸다. 3월 2일 6시간을 진행하면서 ‘겁부터 나더라’고 최 교사는 말한다. 최 교사는 서울교대 다닐 때, 서예 동아리 ‘묵향’에서 부회장까지 지냈다. 그리고 작품전시회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교실에서 등치 좋은 나와 단 둘이 있는데도 말하는 태도가 차분하고 거리낌이 없었다. 붓에 먹물을 묻혀 글씨를 써 나가듯 그의 목소리도 부드럽게 흘렀다. ‘중등교사 자격자 초등임용 반대 운동’이 교대를 강타한 때는 최 교사가 2학년이었다. 그도 이 운동에 날마다 함께 했다. 아마도 생전 처음 시위라는 것을 한 것처럼 보였다. “시위를 하면서 책임감이 더 커지더라고요. 초등교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는 구호를 외치면서 다짐의 기회가 됐어요. 나는 초등교사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장난 아니게 많이 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1장 1조 우리나라 헌법 제1장이 어떤 내용인지 아시는가. 헌법 1장은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으로 ‘의회 쿠데타’를 일으킨 지금, 이 헌법은 상처 받을 대로 받았다. 국회 도적떼들이 주권자인 국민의 뜻과 상반되게 헌법을 유린했기 때문이다. 헌법에 바탕해 학급 헌법 제 1장 2조를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 학급의 주권은 학생들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학생으로부터 나온다.” 최 교사 반 학생들이 학급의 대표인 반장을 뽑은 날이 마침 우리 일행이 최 교사 반을 찾은 날이었다. 지금은 탄핵무효와 진보정치, 민주수호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지만 그 때는 어찌 이런 일들을 상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최 교사는 이날도 정치판에 대해 쓴 소리를 던졌다. “돈만 먹고 굽실거리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갈아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최 교사는 겉모습과 달리 약간은 과격한 말을 던졌다. 그렇다. 4월 15일, 그날 우리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날이 오면’ 국회의원을 판 갈이 하듯 바꿔버려야 한다. 요즘 교육계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으로 뒤숭숭하다. 교육방송 과외와 수준별 보충수업이 ‘좋으니 나쁘니’ 사람마다 터뜨리는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교차한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사교육의 힘을 빌려 대학에 가듯, 교사도 사교육 때문에 교단에 설 수 있게 된지는 벌써 꽤 오래됐다. 교사를 만드는 곳은 교대가 아니라 노량진 학원이요, 교사를 만드는 사람은 교대 교수가 아니라 학원 강사다. 이처럼 뒤바뀐 임용구조의 원인은 바로 임용고시 때문이라는 사실을 최 교사는 몸으로 느꼈다고 한다. 임용고시가 뺏어간 시간들 “교대 4학년들의 생활이 고3 수험생처럼 됐어요.” 이에 따라 고등학생들이 ‘고3병’에 시달리듯 교대생들은 ‘대4병’에 시달린다고 한다. 최 교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책과 씨름하는 하는 대신, 정작 그가 하고 싶은 플릇과 수영, 그리고 봉사활동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저는 그래도 학원에 가는 대신 유료 인터넷 강의를 들었어요. 사실 이 학원강사의 인터넷 강의는 크게 도움이 안됐지만 불안한 마음에 어쩔 수 없었지요.” 예비교사에 대한 사교육비 경감 대책은 언제쯤 나오려나. 모든 사교육비 대책이 그래야겠지만 이 또한 증상에 대한 처방인 ‘해열제’ 같은 것 말고, 원인을 치료하는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 교사는 임용고시에 대해 다음처럼 평했다. “지식적으로 도움된 것은 부정할 수는 없지만 잃는 것이 너무 많아요. 임용고시, 다른 방법으로 보완됐으면 좋겠어요.” 문밖에서 보던 것과 집안에 들어와서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법. 최 교사의 요즘 학교생활도 그런 것 같다. 그 스스로도 학교에 오기 전까지는 “교사들은 교재연구도 안하고 나태한 것처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는 토끼 몰이식 언론보도 탓이 컸으리라. 하지만 이젠 생각이 바뀌었다. “선배님들 아이들 대하는 것 보면 배울 점이 넘 많아요. 진짜 인내심으로 열심히 하시는 선생님들이 많더군요.” 하지만 짧은 기간이지만 학교 행정에 대한 아쉬운 점도 그의 머릿속을 맴돈다. “너무 통일성을 강조하는 것 같아요. 다른 반과 보조, 다른 학년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게 정말 힘들어요. 이런 분위기에서는 더 해보고 싶은데 내 스스로 안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새내기들이여! 합죽이가 되지 맙시다
합죽이란 말은 ‘이가 빠져서 입과 볼이 우므러진 사람’을 뜻한다. 이 땅의 교사로서 첫발을 내딛은 최 교사만큼은 합죽이가 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가져 본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할 말은 하는 용기 있는 교사’가 되길 바란다. 100년 만에 내린 폭설에 아랑곳없이 이 땅에도 봄은 오고 있다.
이 기사는 월간<우리아이들> 2004년 4월호에 쓴 것입니다. | ||||||||||||
2009년 8월 26일 수요일
“손들어 보세요. 합죽이가 될까요?”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