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4일 화요일

어느 초등교사의 '송복 교수 욕하기'

'노블레스 오블리제' 찾아 참교육 방해 그만둬라
 
윤근혁
 
▲ 12월 10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송복 교수의 칼럼


"건강에 좋지 않은데 담배피지 말아요."
어떤 학생이 어른한테 걱정 어린 말투로 한마디 던진다고 치자. 그 때 어떻게 답할 것인가.
"그래 끊으려고 하는데 잘 끊지 못하겠구나."
이처럼 따뜻한 웃음을 보낼까, 아니면 "네 이놈, 버릇없이 '말아요'가 뭐니. '마세요' 그래야지”하고 으름장을 놀 것인가.

송복 교수의 색깔 숨기기

나는 자신의 의견을 합리화할 때마다 만인이 동의할 '도덕 가치'를 들먹이는 사람을 보면 욕을 해주고 싶다. 성인군자인 양 얘기하는 말 속엔 대부분 자신의 색깔을 숨기려는 영악함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에 연재칼럼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쓰고 있는 연세대 송복 교수가 이런 부류에 속하지 않을까. 그는 12월 10일자 '보루가 무너지다'란 칼럼에서 스스로의 '도덕 잣대'를 교육과 교사들에게 들이댔다.

그는 글 첫머리에 '대다수 인간은 도덕적인데 그 도덕적 인간들이 모여 만든 사회는 어째서 비도덕적일까'란 물음을 던진 다음 아래와 같이 적는다.

이유는 명백하다.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들의 절대다수가 이익집단이고, 그 이익집단들이 자기 집단의 이익을 높이고 자기집단의 이기주의를 충족하려 광분하기 때문이다. 그 광분하는 것만큼 집단들의 행동은 도덕적 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법과 제도라는 것이 있다.

집단이기주의 광분?

나는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들의 절대다수가 이익집단이며 더구나 집단이기주의를 충족하려 광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많은 시민사회단체나 종교모임, 그리고 봉사집단들이 죄다 그렇다면 세상이 돌아가겠나.

이런 점에서 송 교수가 몇 달 전 '비전@한국'이란 '집단'에 참여해서 언론사 세무조사를 규탄한 일에 대해 '집단이기주의의 광분'이라고까지 잘라 말하고 싶지 않다. 이전 김영삼 정부 시절인 94년부터 97년까지 대통령자문기구 정책기획위원을 맡은 일 또한 마찬가지다.

집단의 이익을 위한 '광분(?)'이 도덕적 행위와 거리가 멀다는 말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집단의 이익추구가 사회 전체 이익에 보탬이 된다면 집단이익은 더 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송 교수는 집단의 이익추구 자체에 대해 '도덕적 알레르기' 증세가 있는 것처럼 글을 쓴다. 그는 이어서 '교육자 집단은 이익집단이 아닌 대표적 집단'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육자들이 만드는 집단은 그 어떤 집단이든 '교육의 질'을 높이는 수단일 뿐이다. 교육의 질과 직결되지 않는 교육자들만의 이익증대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만큼 교육자집단은 사회 내 어떤 집단보다 도덕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할 사명을 띠고 있다.

교육집단의 순결성은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처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정도로 '교육집단의 순결성'을 글머리에서 강조한 분이라면 이어지는 글엔 '정략적인 정년연장'이라 비판받은 어느 교육단체의 잘못을 짚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 예상은 빗나갔다. 오히려 정년단축을 할 때 정부가 여론몰이를 했다고 매를 든다. 그리고 그 매는 엉뚱한 교원단체로 옮겨간다.

학교 밖에서 오는 압력만 문제가 아니라 안은 안대로 노조를 만들어 수업 중에도 데모하러 나간다.

이어 그는 '학교붕괴와 교육자 죽이기 행태가 모두 지난 3-4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라면서 "이 모두 도덕을 비도덕적인 함성으로 매장하고, 교육을 비교육적인 지침으로 재단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다. 송 교수가 도덕을 들고 나올 때부터 예상은 했다. 그가 내세운 '도덕잣대'는 '교원노조 때리기'용이었다. '부도덕한 붉은 띠 교사들과 교원노조 비호(?)하는 김대중 정부를 즉각 응징하라', 이런 구호를 외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교사들이 노조를 만든 데 대해 아주 큰 분노를 지닌 사람 같다. 또한 노조는 데모만 하는 이기주의 집단이며 데모는 부도덕적 행위란 등식을 가진 게 분명하다.

교원노조 때리기

송 교수의 교원노조 때리기는 이번만이 아니다. 그는 지난 11월 5일치 동아일보 '교사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생이 노조를 만든다는 것, 이것은 '죽는 일이 있어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노조를 꼭 만들고 싶으면 교직을 떠나서 자동차 공장으로 가라."

우리나라는 10만, 세계엔 2500만 명의 교사들이 '죽는 일이 있어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노조' 활동을 하고 있다. 지구상에 있는 교사 두 명 가운데 한 명이 노조활동을 하고 있는 셈. 이들은 노조 만들고 싶어서 자동차공장으로 떠나지 않았다. 교원노조를 만든 목적이 자동차 잘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잘 해보자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교육 잘 해보자는 점에선 송 교수와 같다. 그런데 왜 송 교수는 교원노조가 재미삼아 데모나 하는 집단처럼 자꾸 글을 쓰는 것일까. 그것도 교육자의 도덕성이란 잣대를 들이대면서 말이다. 송 교수도 교육자다. 최소한 전체교사들에게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스스로에게 먼저 잣대를…

정치사회학을 전공한 송 교수는 대표 족벌신문인 조선-중앙-동아에 10년 넘게 칼럼을 써온 대표 칼럼 선수다. 그는 칼럼을 통해 올 8월엔 김 대통령의 '6·25 통일전쟁' 발언을 규탄하는가 하면 91년엔 '경찰의 학생 치사 사건'을 규탄한 시위대에게 '시위 때문에 민주변혁이 안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 인물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제(기득권에 걸맞는 도덕과 의무). 송 교수가 올해 들어 중앙일보에 여러 번 써온 칼럼 면의 제목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민주주의 방해꾼으로 찍힌 조선일보 91년 5월 31일자 5면엔 그가 쓴 '민주주의 방해꾼'이란 제목의 칼럼도 보인다. 송 교수는 어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되찾아 '교육개혁의 방해꾼'이 되지 않길 바란다.
[송복 교수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보루가 무너지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말이 있다. 이를 아주 설명력 높게 서술한 책도 있다. 묘한 논리이고 묘한 현실이다. 대다수 인간은 도덕적인데 그 도덕적 인간들이 모여 만든 사회는 어째서 비도덕적일까. 사회는 어느 사회든 기본적으로 도덕적 공동체다. 도덕이 무너지면 사회도 무너진다.

그런데 어떻게 그 사회가 비도덕적이라는 말인가. 이유는 명백하다.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들의 절대다수가 이익집단이고, 그 이익집단들이 자기 집단의 이익을 높이고 자기집단의 이기주의를 충족하려 광분하기 때문이다.

그 광분하는 것만큼 집단들의 행동은 도덕적 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법과 제도라는 것이 있다.

그래서 또한 국가권력이라는 것이 있어 그 법과 제도의 테두리 내에서 이익을 추구하고 그 테두리 내에서 경쟁을 하도록 조정하고 감시한다. 도덕도 그렇게 해서 일정수준에서 지속돼간다.

*** 도덕적인 교육자 집단

그렇다 해도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집단이 다 이익집단인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 집단이 교육자집단이다.

교육자들이 만드는 집단은 그 어떤 집단이든 '교육의 질'을 높이는 수단일 뿐이다. 교육의 질과 직결되지 않는 교육자들만의 이익증대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그만큼 교육자집단은 사회 내 어떤 집단보다 도덕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할 사명을 띠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자집단은 어느 사회에서나 예외 없이 도덕적 보루(bulwark) 가 된다. 사회는 전장터나 다름없이 끊임없이 분쟁과 분열 해체현상을 야기한다.

보루 없이 전쟁할 수 없듯이 사회라는 이 격렬한 전장터 역시 도덕적 보루 없이는 존재 자체를 지탱해 갈 수가 없다. 정치인도 공무원도 기업인도 근로자도 교육자 집단만큼 도덕적 집단이 되지 못한다.

못하는 것만큼 그들에게서 사회를 지키는 도덕적 보루 기능을 기대할 수가 없다. 거의 유일하게 교육자집단이 보루가 되고, 어떤 곡절을 겪든 지금까지 이 집단이 우리 사회에서 그 보루기능을 수행해 왔다.

이 교육자집단이 지금 집단 안팎의 공략에 의해 붕괴 직전에 놓여 있다.온갖 수모와 모욕, 갖은 상처를 입고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학부모는 '당신도 돈 받고 하는 직업 아니냐'며 학생 앞에서 선생에게 삿대질을 한다.

'나이 많은 교사는 나쁘고 무능하고 부패했다'며 외쳐대고, '늙은 교사 한명 몰아내면 젊은 피 2.5명이 들어간다'며 아예 선생을 '몰아내는'대상으로 전락시킨다. 교원 정년단축이 마치 교사 스스로의 무능과 과오와 비도덕성에 의해 자초된 양 합리화하고, 학부모 몇십%가 정년단축을 찬성한다며 여론몰이까지 하면서 정당성을 강조한다.

오죽했으면 정년단축으로 그만둔 선생보다 자존심이 상해 더 이상 선생을 할 수 없다며 교직을 버린 40대 선생이 더 많다고 하는가.

어느 선생이든 잡무가 끝이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잡무 때문에 학생은 틈틈이 가르친다고 말하는 선생도 있다. 아침 6시반에 집을 나와서 밤 10시가 돼도 퇴근이 어려운 날이 비일비재하고, 그러면서 월급은 대학을 같이 졸업한 동기생에 비할 바가 못된다.

교실은 '열린교육'으로 난장판이 되고, '공부 안해도 대학 간다'는 어느 유토피아 사전에도 없는 지침서로 선생의 의의도, 가르침의 의미도 죽어가고 있다.

*** 비교육적 지침 걷어내야

학교 밖에서 오는 압력만 문제가 아니라 안은 안대로 노조를 만들어 수업 중에도 데모하러 나간다. 아무리 현실이 절박해도 수업보다 더 절박한 것이 있을까. 그럼에도 붉은 띠를 두르고 수업을 고대하는 학생을 내 몰라라 한다면 이보다 큰 교육붕괴가 있으며 이보다 큰 비도덕적 행위가 있겠는가.

어쩌다가 우리 교육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학교붕괴.학력저하.교육이민.교육자간 갈등,마침내 선생 업신여기기 분위기며 교육자 죽이기 행태는 모두 지난 3~4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다. 이 모두 도덕을 비도덕적인 함성으로 매장하고,교육을 비교육적인 지침으로 재단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현정권의 교육정책만큼 실패한 정책이 없다.

역대 그 어느 정권에서 이런 실패를 찾아 볼 수 있을 것인가. 그 실패가 교육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완전히 죽여버렸다. 그 지탄, 그 질책은 이 정권이 끝난 후에도 두고두고 계속될 것이다.

송복 연세대.정치사회학 교수

2001/12/10 오전 04:09
ⓒ 2001 OhmyNews
 
2003/01/19 [22:46] ⓒ 윤근혁의 교육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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