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6일 수요일

어느단체의 이상한 '이해찬 설문조사'

설문용지에 실명· 서명란도...<교사 정치악용> 우려
 
윤근혁
 
▲ 한국교총이 전국 학교에 보낸 설문용지. 실명과 함께 서명까지 하도록 만들어놨다.
ⓒ2004 윤근혁
6월 9일 전국 1만여개 초중고 학교엔 이상한 설문용지가 날아들었다. 이 설문용지를 받아든 교사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A4 용지 두장 분량의 설문용지는 응답자의 이름을 직접 적고 설문문항에 답하도록 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설문용지에 실명을 기입하도록 한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그 옆엔 서명란까지 만들어 뒀다.

이 설문용지의 제목은 '이해찬 전 교육부장관 국무총리 지명에 따른 긴급 설문조사'. 용지 끝 부분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라고 적혀 있다.

'수신자'란엔 '교총 분회장, 교장 선생님'이라고 적어 놨다. 이에 따라 특정 단체 학교별 대표(분회장)는 물론 학교 책임자인 학교장까지 '설문조사' 진행자로 참여시킨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이 단체는 전국 40만 교사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 다음 주 초에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무늬만 설문용지, 내용은 반대 서명?

이 단체는 설문 문항에서 '차기 국무총리 후보로 이해찬 전 교육부장관(열린우리당 의원)을 지명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란 질문을 던진 뒤 '적절하다, 부적절하다, 잘 모르겠다'란 항목에 답하도록 해놨다.

현재 설문에 참여한 교사들은 대부분 '부적절하다'란 항목에 답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한국교총 관계자는 "이해찬 총리 임명에 반대하는 설문 결과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교사들이 이해찬 총리 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명조사인 탓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교총 산하조직인 교장협의회에 가입해 있는 학교장의 뜻을 정면에서, 그것도 실명으로 거스르기 어려운 교직 문화도 한 몫하고 있는 셈이다.

방대곤(서울 난우초) 교사는 "응답자 성명을 적고 설문에 응한 다음, 다시 서명까지 하도록 한 설문용지를 보고 기가 막혔다"면서 "이해찬 임명에 대한 찬반 의견을 떠나 이런 식으로 진행된 교사들의 설문 결과를 정치인들이 악용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조남규 교사(서울 경인중)는 "이해찬식 시장주의 교육개혁은 문제가 컸기 때문에 그의 입각에 반대한다"면서도 "그렇다고 해도 한국교총이 교사 서명을 받는 식으로 해괴한 공개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도의적으로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한국교총은 설문이 진행되는 시점인 지난 10일 "교육황폐화 장본인 이해찬 전 교육부장관이 국무총리가 되는 것을 저지합시다"란 제목의 업무연락을 각 학교에 보냈다. 이 단체는 업무 연락에서 "이해찬 전 교육부장관의 국무총리 인준이 부결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활동을 요청한다"면서 ▲긴급 설문조사 교총 송부 ▲부결을 위한 대 국회, 정당 활동 전개 등의 활동을 벌일 것을 촉구했다.

한국교총 "근거 명확히 하기 위해 실명 적도록 했다"

11일 오후 6시 현재 한국교총은 홈페이지 첫 화면에서 '한나라당 국회인사청문회 특위 위원'의 이름과 연락처를 팝업 창 형태로 소개하고 있다. 이 화면엔 "한나라당 특위 위원이 확정됐다. 긴급하게 자료 요청을 해오고 있으므로 본회 및 해당 위원님들에게 보내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날 현재 민주노동당이나 열린우리당 특위 위원들의 이름과 연락처는 빠져 있는 상태다.

▲ 한국교총 사이트에 떠 있는 첫 화면 팝업창. 한나라당 소속 청문회 특위 위원들만 소개하고 있다.
ⓒ2004 한국교총
이 사이트에 특위위원으로 소개된 이군현 한나라당 의원은 한국교총 회장을 맡다가 지난 3월 31일 4.15 총선을 앞두고 임기를 채우지 않은 채 중도 사임한 바 있다.

한국교총 한재갑 대변인은 "이번 한국교총의 설문조사가 팩스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근거를 명확히 남기기 위해 실명을 적도록 한 것"이라면서 "만약 무기명으로 진행된다면 한 사람이 여러 명을 체크할 수도 있으므로 이번 설문 방식은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한 대변인은 또 "경제계, 문화계 등 모든 곳에서 자기 소리를 내는 상태인데 총리 임명에서 교원단체가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면서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설문용지에 서명까지 받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국교총과 전교조 등이 가입한 국제교원단체연합(EI) 동아시아 집행위원을 맡은 바 있는 이동진 교사(서울 한천중)는 "한국교총이 특정 정치단체와 결탁해 교사들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면서 "50년 동안 교육계 주류로서 기득권을 행사해 온 단체가 교육황폐화의 책임을 특정인사에게 떠넘기려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비판했다.

'돌아온 이해찬'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양대 교원단체 반대 성명 속 '환영 목소리'도 나와

교직사회는 '돌아온 이해찬'을 어떻게 보고 있나. 결론부터 정리하면 호의적인 의견보다 부정적인 의견이 크다.

이런 사실은 보수 교원단체인 한국교총은 물론 전교조까지 반대 성명을 낸 사실에서 드러난다. 오랜만에 양대 교원단체가 입을 모아 그의 국무총리 입각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교총은 9일 낸 성명에서 "이해찬 전 교육부장관은 교육부장관 시절 공교육 붕괴의 단초를 제공하고, 학생 학력을 저하시키는 등 교육 황폐화의 장본인"이라면서 "이 전 장관은 총리 후보자로 나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자숙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해찬 총리 후보는 98년 교육부장관 재직 시절, 한국교총이 교사들을 대상으로 퇴진 서명운동을 벌인 직후 자리에서 물러난 바 있다.

전교조도 9일 성명에서 "이해찬 의원은 교육부장관 재임시절인 1998년, ‘교원 정년단축’ 등 이른바 ‘시장주의 구조조정’을 교육계에 본격 도입했고 "한 가지만 잘 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허황한 발언으로 이른바 ‘이해찬 세대’ 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킨 장본인"이라고 혹평했다.

하지만 교육계 일각에서 환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교조가 '이해찬 총리 임명 반대 성명'을 내자 자체 홈페이지엔 '성명서 내용에 반대한다'는 교사들의 의견 또한 줄을 잇고 있다.

이 사이트에 글을 올린 한 교사는 "정년단축은 잘했다는 여론이 그 당시에도 많았고 지금도 절대적"이라면서 "(이해찬 전 교육부장관이 추진한) 전교조 합법화가 잘못된 정책인가?, 특기적성교육이 잘못된 정책인가? 학운위 강화가 잘못되었는가?" 하고 되물었다. / 윤근혁 기자
  [주장] 내가 이해찬씨의 총리 임명을 지지하는 이유
 

[주장] 내가 이해찬씨의 총리 임명을 반대하는 이유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2004년 6월 12일치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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