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먹고 사는 문제냐, 죽고 사는 문제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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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어느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한 교사도 최근 어느 학생의 '국어' 교과서를 보고 기겁을 했다고 말한다. 국어가 '미국죽어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란다. 장난으로 쓰다 보니 그랬을 수도 있지만 지난해 '오노의 쇼트트랙 트랙사건'과 함께 터진 몇 가지 충격스런 일들을 떠올려보면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근무하는 <교육희망>이란 주간지의 만평을 올해부터는 많은 이들이 본 바 있는 '미선아 효순아'란 만화를 그린 한 작가가 담당하고 있다. 그는 교사들 셋 가운데 한 명이 보는 우리 신문에 다음과 같은 그림으로 그림판을 채운 기억이 떠오른다. 이 만평은 두 장면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UN'이란 글자가 써 있는 교탁 앞엔 교사가 서 있다. 맨 앞줄에 노 대통령 닮은 학생이 있고 그 뒤에 등발 좋은 부시 미 대통령 같은 학생이 서 있다. 부시 바로 뒤엔 아랍 청년이 주눅든 표정으로 있다. 부시는 아랍 청년 멱살을 거머쥐며 칼까지 빼들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교사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부시는 이에 아랑곳없이 이 아랍 청년을 후려치면서 말한다. "뭐 어때! 내가 왕인데…." 부시 앞에 앉은 노 대통령 닮은 아이는 뭐라고 했을까.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다음처럼 말했다. "맞습니다. 맞고요." 미국이 UN 결의도 없이 이라크를 침공했다. 노 대통령은 '국익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면서 파병결정을 내렸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엔 이 파병 결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대학교수와 교사, 시장에서 일하다 온 듯한 아줌마, 아저씨. 그들이 든 팻말 가운데엔 다음과 같은 글귀도 써 있다. "이라크 다음엔 북한, 우리 민족의 생명을 위해 전쟁을 반대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남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악의 무리를 처단하기 위한 성전이든 석유를 빼앗기 위한 침략이든 이 전쟁의 성격이 어떻든 간에 잘못 없는 이라크 시민들이 쓰러져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같은 전쟁의 칼날이 우리의 반쪽인 북한한테도 다가온다면. 까딱 냉정을 잃으면 불씨가 화약고에 옮겨 붙을 수 있는 게 우리 형편이다. 한국전쟁으로 3백만 명 이상이 죽고 다쳤다. 현재 남북의 전력은 그 때보다 50배가 넘는다. 여기에 세계 제1의 힘을 갖고 있는 미군의 힘까지 덧붙인다면 상상을 뛰어넘는다. 잠시 요즘 학생들의 고민을 떠올려 보자. 어느 대학에 갈 것인가, 핸드폰을 살 것인가 PDA폰을 살 것인가,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을 것인가 롯데리아에 갈 것인가. 이 같은 고민들은 죄다 '먹고사는 문제'다. 하지만 전쟁 얘기는 '죽고 사는 문제'다. 당연한 말이지만 죽는 것보다는 우짜둔둥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 길은 무엇일까. '이 땅에 살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기사는 4월 1일 <한국고교신문>에 쓴 글입니다. | ||
2009년 8월 4일 화요일
이 땅에 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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