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가라! ‘세금도둑’보다 더 큰 죄는 ‘마음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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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물줄기가 있다. 족벌 언론 역사를 관통하는 이 물줄기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식 표현대로라면 주류(메인 스트림)요, 시민사회단체 눈으로 보면 역류다. 이 물줄기는 축구 경기의 3각 패스와 닮았다. 조선일보와 극우세력이 같은 편을 먹고, 시민사회단체와 맞붙은 축구 경기. 이들이 활용하는 삼각 패스의 기술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독재정권의 패스를 받아 조선일보가 받고, 다시 조선일보의 패스를 받아 독재정권이 활용하는 방식이 그 첫 번째다. 대표 격인 본보기가 바로 전교조 탄압과 참교육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세. 89년 전교조 결성 당시 노태우 정부는 전교조 해직이라는 칼로 전교조 탄압에 나선다. 이때 조선일보는 이들의 패스를 받아 전교조 교사 ‘빨갱이 사냥’에 앞장선다. 이 조선일보의 전교조에 대한 발길질을 바탕으로 노 정부는 해직의 칼날을 맘껏 휘두를 수 있었다. 주로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많이 쓰인 기술이다.
두 번째 방식은 조선일보의 패스를 받아 한나라당이 받고, 다시 한나라당의 패스를 받아 조선일보가 활용하는 기술이다. 현재 많이 쓰이는 게 바로 이 방법. 이는 조선일보가 그만큼 막강 권력이 되었음을 반증한다.
‘이해찬 1세대’란 말의 유행에서부터 사립학교법 개정·평준화 딴지걸기에 이르기까지 그 본보기는 셀 수 없이 많다. ‘이해찬 1세대’란 말이 퍼진 경로를 살펴보자. 올 5월 17일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세칭 이해찬 1세대인 현 고3생들의 학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든가…”란 말을 썼다. 이 기사가 나오자마자 한나라당은 현 정부의 평준화 정책 등 그나마 긍정 요소가 있는 개혁정책을 비판할 때마다 이 말을 즐겨 사용한다. 다시 조선일보가 ‘이해찬 1세대’의 학력저하를 부풀리기 보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3각 패스의 다른 말은 ‘주고받기 전법’이다. 지금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은 무엇을 주고받고 있는가? 이회창 총재가 밝힌 ‘주류’는 노무현 민주당 고문 식 표현대로라면 ‘타락한 주류’다. 이는 최근 조선일보가 세금 도둑질 ‘1등 신문’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런데 학교는 이 ‘썩은 물’(타락한 주류)을 아직도 마시고 있다. 조선일보 구독률에서 군부대와 1등을 다투고 있는 우리 학교들. 아직도 이승복론에 바탕한 반공교육 전파매체인 소년조선일보를 아이들에게 배달하는 교사들…. 이제 그만 멈출 때가 된 것이다.
윤근혁 기자 bulgom@eduhope.net
조선일보를 휴지통에 버려야 할 7가지 이유
[1]‘가재의 게 편들기’는 당연한 일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부정한 사학 옆엔 사학법 개정 반대에 앞장 선 조선일보가 있었다. 조선일보는 올 2월 9일치 사설에서 “그(사학법 개정) 내용들은 전교조 등… 주장을 거의 그대로 수용한 것이 특징”이라면서 “사학 설립자나 운영자, 그리고 학교법인의 입장과 주장은 철저히 배제되다시피 했다”고 강조했다.(본보 274호 참조) 문제는 여기에 있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지지하는 사립학교법 멱살 잡기를 시도한 조선일보 자체가 사학재단이었던 것. 최근 교육부의 ‘사학재단 이사현황’ 자료를 보면 조선일보사 방우영 회장은 지난 해 4월부터 연세대학교 이사장이다. 방 사장을 비롯 부사장인 안병훈 씨는 단국대학교, 논설고문인 홍사중 씨는 포항공과대학교 이사로 일하고 있다. 역시 조선일보는 사립학교 진출율 1위를 나타냈다.
[2]‘빨갱이 사냥’을 교사에게 참교육 왜곡보도
참교육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는 8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좋게 말하면 파격이고, 나쁘게 말하면 파괴의 모습을 띠었다. 무엇을 파괴하기 위한 것일까? 물론 전교조다. 그럼, 파괴의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빨갱이 사냥법’이었다.(본보 271호 참조) “전국 여러 곳의 어머니회 회원들이 ‘의식화 교사들에게 자녀를 맡길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은 …전교협이 주동이 되어 노조가 결성되는 경우, 의식화교육으로부터 자녀를 보호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학부모들은 매우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조선일보 89년 5월 26일치 사설) 이 염려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의 염려였음이 분명하다.
[3]촌지왕국 속 철밥통? 평교사 멱살잡기
스승의 날을 나흘 앞둔 올 5월 11일자 조선일보 사회면. “서울 초등교 40% ‘스승의 날’ 쉰다촌지수수 시비 막기 위해”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보인다. 이 기사에 따르면, “(휴업하는 이유로)‘가족사랑 체험학습’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촌지수수 시비’를 막으려는 취지가 강하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올 휴업은 교육부 지침에 따라 봄·가을 방학을 실시한 것. 이런 조선의 ‘평교사 멱살잡기’식 보도태도는 이해찬 장관 재직시절인 98년엔 하늘을 찔렀다. 10월 14일치 ‘더 지능화한 교사 촌지’란 사설에서 “감사원 ‘초중고교 부조리 실태’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라면서 “사례 등은 교육계 촌지수수 행위가 얼마나 뿌리깊게, 또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는지를 대변해 준다“고 교직사회 전체를 욕하고 나섰다.
[4]‘과외온상’으로 덧칠한 평준화 평준화 딴지걸기
조선일보는 지난 3월 5일부터 ‘교육, 이대론 미래 없다’란 시리즈를 최근까지 내보냈다. 이 시리즈가 겨누는 칼날의 방향은 한 쪽으로 일치한다. 바로 ‘고교 평준화 정책’. 왜 조선일보는 ‘평준화 딴지걸기’에 나섰을까? 평준화 옹호론자들은 이를 허물 경우 입시열풍이 더욱 극심해지고 과외도 더불어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외극성론은 허구다. 평준화를 깨면 개개인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공교육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오히려 과외수요를 학교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2000년 5월 18일치 조선일보 사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본보 270호 참조) 여론을 쥐락펴락하는 조선의 억지인 셈이다. 정권흔들기가 ‘교육흔들기’로 번졌고, 가장 약한 고리인 ‘평준화 문제’를 건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5]사교육을 누비는 장사꾼 사교육 살리기
최근 문화방송의 토론프로그램에서 김민곤 교사(서울 광양고)는 “공교육을 흠집 내고 사교육을 살리려는 보수언론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시선을 모은 바 있다. 이 보수언론의 최선봉엔 바로 조선일보가 서 있다. 이에 대해 김대유 전교조 정책연구국장은 “소년 조선일보는 학습지 시장과 연계해 수십 년째 아이들에게 신문을 강매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서 “이들이 학교의 학력저하 논쟁을 유도하면서 문제풀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6]‘이민왕국’의 끝은 공교육 허물기 자립형 사립고 밀어주기
최근 조선일보 보도는 우리 나라가 교육이민 왕국처럼 보인다. 이런 이민왕국론의 끝엔 자립형 사립고 밀어주기가 버티고 있었다. 올 3월초부터 시리즈로 내보낸 교육-이대론 미래 없다는 기사에서 자립형 사립고 지지는 노골화된다. 5월 13일치 시리즈인 ‘어느 자립형 사립고 청사진’이란 기사에서는 “의약분업 실패로 코너에 몰린 현 정부가 평준화 정책의 근간을 깰 소지가 큰 자립형 사립고교를 도입하는 것은 부담이 크기 때문에 사실상 현 정부 내 시행은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팽배해 있다”고 걱정할 정도다. 이 신문은 정진곤 한양대 교수, 임지순 서울대 교수, 서정화 홍대 교수 등 자립형 사립고 찬성론자들의 글을 받아 확대 편집하고 있다.
[7]6·25교육으로 무장한 통일교육 반공교육 신화 만들기
98년은 조선일보가 ‘깜짝놀랄만한 일’이 두 번 터졌다. 그 하나는 63년 이승복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란 조선일보 특종 기사가 작문되었다는 주장. 또 다른 하나는 최장집 당시 대통령정책기획위원장에 대한 색깔시비로 궁지에 몰린 사건이다. 이 두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조선일보는 말로는 통일교육을 주장하면서도 언제나 민족에 대한 칼을 숨기고 있다. 이는 아이들이 보는 소년조선일보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이 신문엔 ‘6·15공동선언’보다는 ‘6·25 전쟁’이란 말이 자꾸 나온다. (본보 277호 참조) 아무리 멋있는 어린이신문이라도 아이들의 맘을 상하게 한다면 못된 신문인 것이다.
윤근혁 기자 bulgom@eduhope.net
아직도 ‘조선’을 봅니까
정기훈·전교조 부/초등위원장
잘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가 대화 내용이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면 물어본다. “구독하시는 신문이 무엇입니까?” 열이면 열, 조선·중앙·동아일보 중의 하나라고 대답한다. 신기한 일이 아니다. 당연한 것이 ‘학생은 가르치는 교사의 수준을 뛰어 넘을 수 없다’는 말과 같이 자신이 구독하는 신문이 자신의 사고를 잠재적으로 지배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본인은 자신의 자유로운 사고로 자신의 사물을 보는 관점에서 말한다고 항변할 터이지만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사실 여부는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지금 옆자리에 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교사가 있다면 시험삼아 물어볼 일이다.
사립학교법 개정을 요구하며 한나라당사 앞 돌바닥에서 농성을 하는 기간 동안에 얻은 성과 중의 하나가 바로 사학재단과 조·중·동 그리고 한나라당이 같은 기초 위에 세워진 겉만 다른 색의 건물로서 공생의 관계로 살아간다는 점을 확인한 일이다. 교육이민이니, 공교육붕괴니 하며 시리즈로 교육을 진단하고 호들갑을 떤 핵심 이유 중의 하나가 평준화 해체와 교육에 자본시장의 논리를 도입하기 위한 전 단계라는 것을 이제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이제 ‘공교육 정상화’의 싸움은 대정부, 교육부와의 싸움만이 전부가 아니다. 조·중·동을 포함하여 교육을 빙자, 사적·집단적 이익을 취하려하는 자들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고추밭에 고추가 열린다. ‘미디어 오늘’에서 발표한 중앙일간지 편집국장 184명의 1960년대 이후 출신대학분포에서 서울대 64%, 고려대 7%, 연세대 6%로 나타나 소위 명문 3개대가 77%를 차지하여 사법고시합격율(71.4%)을 훨씬 뛰어 넘고 있다. 이게 바로 고추밭이다. 이러한 고추밭은 학연주의, 연고주의, 자본을 바탕으로 한 경쟁의 논리, 수월성의 논리로 이어지고 이러한 몰가치한 가치를 신봉하는 고추를 맺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여기서도 가장 앞장을 서고 있는 조선일보는 최근 들어 신입기자 응시율이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학생들의 의식이 높아져서 응시율이 떨어졌으면 좋으련만 그렇지가 않다. 어차피 서울 명문대 졸업생들만의 잔치니 응시해봐야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응시율 하락의 원인이라니 수긍이 가면서도 기가 막힌 사실이다. 이러면서도 지면상으로는 학벌주의의 폐해를 논하고 지역감정을 힐책하고 정의를 말하니 모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필요시에는 이 부분 역시 칠면조처럼 색을 바꾸어 논조를 치장하고 본질을 왜곡한다는 사실을. 언론자유를 외치는 기자들을 사주가 내쫓고 훗날 자기 신문사들도 민주화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강변하는 후안무치한 언론사 사주들. 또 거기서 크게 자유로울 수 없는 기자들. 여기서 아무리 교육의 평등권을 외치고 공교육 정상화를 외쳐봐야 이들의 대답이 신통할 리 없는 것이다. 그렇다. 이제는 우리 차례다. 우리가 대답을 분명하게 해야만 한다. 우선 조선일보를 거부하자 .
이것을 나뿐만이 아니라 우선은 조합원, 그리고 주변에도 전파해내자. 그래도 혹 반대편의 엉터리 논리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면 억울하지만 가판대에서 사서 보자. 이 돈은 조선일보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니 조금은 다행 아닌가! 나는 필요시 가판대에서 사서 보곤 했는데 이 사실을 몰라서 이에 대한 마음의 부담이 컸었다. 혹여 지하철에 굴러다니는 조선일보가 있으면 남이 주워서라도 볼까봐 챙겨뒀다가 꼭 쓰레기통에 버려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간혹 교실로 삼성 외판원이 들어오면 아무리 좋은 상품일지라도 삼성의 교활한 노조탄압과 무노조주의가 미워서 못하겠다고, 그리고 이 사실을 당신 상사에게도 꼭 알려 달라고 했다. 그 사람이 무슨 죄가 있으랴마는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이 한 일을 생각하면 이 일은 아주 작은 일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일보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어쩌다 간혹 있는 조선일보의 인터뷰 요청도 이런 이유를 분명히 들어 거절하곤 했다.
우리의 상부 단체인 민주노총도 결합하고 있는 언론개혁 시민운동에 나 자신의 물 한방울의 힘이라도 보태야만 한다. 이런 힘들이 모여 시냇물을 이루고 그 힘이 사회를 변혁시켜 나가는 것을 역사를 통하여 보아 왔다. 확신을 갖고 해 나가자. 이번에 지면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 것인가? 생각 많은 소크라테스보다 땀흘려 밭가는 농부가 좋은 이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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