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저소득층 일류대 진학 저하'를 앞다투어 걱정한 당사자들이, 이번엔 '고교등급제'를 찬성하고 나서 주목된다. 고교등급제는 졸업생의 성적에 따라 학교 등급을 매긴다는 점에서 '저소득층의 일류대 진학을 가로막는 학력세습, 학력연좌제'란 비판을 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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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9월 10일치 <조선일보> A5면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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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조선일보 PDF |
한나라당 이주호(국회 교육위원회) 의원과 <조선일보>는 최근, 사실상 고교등급제 찬성 의견을 나타냈다. 올해 1월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이 "저소득층 학생의 서울대 진학이 어려워졌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자 '학력세습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지 8개월만이다.
그런데 몇 달 전 만해도 저소득층의 학력세습 문제를 부추긴 이들이, 이번엔 태도를 바꿔 '고교등급제'를 찬성하고 나선 것은 앞뒤 논리가 맞지 않을뿐더러 다른 뜻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들은 왜 8개월만에 태도를 바꿨을까
이 의원은 지난 9일 기자들에게 돌린 보도자료에서 "2001년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분석했더니 지역간, 학교간 학력격차가 심각했다"면서 "학교간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새 대입제도는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교등급제를 강하게 시사한 것이다.
<조선일보>도 정부가 새 대입제도안을 내놓자, 고교등급제를 실시하지 않는 교육부를 질책했다. 이 의원의 보도자료가 배포된 다음날, 1면 머릿기사를 비롯 10여 개의 관련 기사를 실을 정도였다.
이 신문은 9일치 '사이비 교육평등론자의 폐해'란 제목의 사설에서도 "전국 학교의 학력차이는 어마어마한데 내신을 각 학교 단위로 결정하도록 하면, 학력이 높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현저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면서 "어떤 부모가 자녀가 이런 불공정한 처우를 받는 것을 앉아서 당하고만 있으려 하겠는가"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주호 의원과 <조선일보>는 올 1월 말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이 "평준화 때문에 저소득층 학생의 서울대 진학이 어려워졌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자 이를 찬성하고 나섰다. '학력세습이 평준화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 서울대 보고서는 교육부가 공식 유감을 표명하는 등 '주관적 판단에 따른 오진'이란 비판을 자초한 바 있다.
이 당시 <조선일보>는 사설과 연구 당사자들의 칼럼 등을 잇따라 실어 '저소득층의 학력세습 현상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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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1월 26일치 <조선일보> 2면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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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조선일보 PDF |
특히 이주호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서울대에서 주최한 토론회에 직접 참석,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 결과는 심층연구였고 그 결과 또한 굉장히 주목할 만한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윤정일 서울대 사범대학장 등 토론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인사가 과대해석이란 비판을 하자 이 교수는 토론자 가운데 유일하게 찬성 의견을 나타내면서 "앞의 분들이 연구의 비약이라고 표현했는데 오히려 연구진이 더 적극적으로 교육 불평등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학력세습 브레이크를 떼자는 주장"
| 공교육 앞 야누스의 얼굴 |
| [미니칼럼] 두 개의 얼굴을 찾아라 |
여기 공교육이란 집의 문 앞에 서 있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공교육이란 집에 들어가는 학생에겐 평준화를 깨기 위해 학력세습을 걱정하는 표정을 짓고, 그 집을 나와 대학에 가려는 학생에겐 다시 얼굴을 바꿔 학력세습을 단단하게 만들 고교등급제를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문 앞에 있는 그 두 개의 얼굴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한국판 '야누스의 얼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 윤근혁 기자 |
| |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 또한 거세게 일고 있다.
한만중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정책실장은 "계급이 분명했던 조선시대 과거제도도 형식적으로는 서당과 지역의 차별을 두지 않았다"면서 "봉건제도보다도 못한 고교등급제 시행에 찬성하는 이주호 의원과 <조선일보>가 학력세습을 우려한 것은 본 마음이 다른 데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교조도 12일 낸 성명에서 "평준화 제도에서 학력격차가 이토록 벌어졌다면, 평준화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학력격차는 통제불능 지경이 될 것"이라면서 "평준화가 학력격차를 해소하지 못했으니 폐지하자는 주장은,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사고가 났으니 자동차에서 브레이크를 떼자는 주장"이라고 밝혔다.
학력세습 걱정과 함께 고교등급제 도입 등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결국 평준화 폐기 올인 전략에 따라 '학력격차' 문제를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인 것이다.
| 이주호 의원 다시 '악수' 뒀나 |
| 올해 2월 그 자료 '재탕', 연구 신뢰성 도마 위에 |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농구시합을 벌였다. 서로 맞겨룬 상대는 평준화 지역 고등학교 대 비평준화 지역 고등학교. 경기 결과 1학년도 평준화 지역 고교가 이겼고, 2학년도 그랬다.
1학년은 63:53, 2학년은 61:55였다. 1학년 점수차는 10점이었고 2학년 점수 차는 6점이었다. 비평준화 지역 1학년은 53점을 얻었고 2학년은 55점을 얻었다.
이런 결과를 지켜본 해설자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 봐라. 비평준화지역 고교생들은 시간이 갈수록 평준화지역 고교생보다 점수가 상대적으로 많이 오른 것이 증명됐다."
이런 분석에 대회 주최 쪽(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펄쩍 뛰었다.
"고1 학생이 1년 뒤 점수가 어떻게 변하는가를 종단적으로 측정해야지, 한 날 한 시에 치러진 고1과 고2 경기라는 서로 다른 표본(학생들)을 갖고 점수 향상도를 잰 것은 말도 안 된다. 이것은 연구란 이름으로 평준화 제도를 두 번 죽이기 위한 것이다."
위 글(<오마이뉴스> 2월 24일치)은 이주호 의원이 당시 소장을 맡았던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육개혁연구소가 올해 2월 23일 내놓은 보고서를 빗대서 적어놓은 것이다.
학자 이 소장과 국회의원 이주호
보고서는 '같은 해 평준화지역과 비평준화지역 고교생 1, 2 학년 점수를 비교해 본 결과 비평준화지역 고교생들이 평준화지역 고교생보다 성적이 많이 올랐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연구가 발표되자 <조선>과 <동아>는 마치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것처럼 대서특필했지만 교육계 반응은 싸늘했다. 교육학자들에 의해 이 연구의 허점이 금방 드러났기 때문이다.
KDI가 이 연구에서 활용한 자료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01년 실시한 고교생 교육성취도 평가. 그런데 국회에 입성한 이주호 교수가 지난 9일 내놓은 '학력격차' 보도자료도 바로 이 자료를 '재탕'한 것이었다.
이번 '지역별 학력격차' 보도자료 또한 신뢰성 논란이 일고 있다. 전국 고교생 1%를 표본으로 삼은 분석자료가 학력격차를 알아보려고 구상된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학업성취도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 이에 따라 이 의원의 주장과 달리 서울강남지역 고교만 해도 상위권과 하위권 학교가 함께 섞여있을 정도로 들쭉날쭉이었다.
<연합뉴스> 10일자 보도에 따르면, 조사 대상 28개 고교 가운데 강남구에 있는 3개교 중 2개교는 1(70.7점), 2위(68.3점)를 차지했지만 다른 한 학교는 23위(47.3점)로 꼴찌에서 6번째였다는 것. 관악구도 한 고교는 3위였지만 다른 고교는 26위로 끝에서 3번째일 정도로 같은 지역에서도 편차가 컸다는 것이다.
이 의원과 <조선일보>는 일반계 고교의 학력차이가 지역별로 극심하다고 주장하면서, 그 본보기로 강남구 A고교의 평균점수는 70.7, 중구 B고교는 44.2점이라는 수치를 내놓은 바 있다.
교육과정평가원은 11일치 보도자료에서 "(이 의원의 주장과 달리) 한 개 고등학교로 한 지역 교육청 소속 학생들의 학력을 대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물론 교육부와 교육과정평가원도 이 의원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학교차이가 존재하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런 성적 격차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환경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지는 것인데다 세계 어느 나라든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문제는 국가별 심각 정도.
학교별 학력격차, 한국이 가장 작아
우리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학교간 학력격차와 부모 소득에 따른 학생 성적 격차가 가장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OECD가 발표한 '교육지표 2002'에 따르면 각 학교간 학업성취도 차이가 OECD 23개 분석 국가의 평균치 대비 절반 밖에 되지 않아 학업성취도와 교육의 평등성을 동시에 이룩한 예로 평가됐다.
학교간의 학업성취도 차이는 우리나라가 19.7%로 OECD 평균인 36.2%보다 크게 낮았다.
부모 소득 격차에 따른 학생 성적 격차도 가장 적어 소득 상위 25% 가정을 둔 학생의 학업성취도는 542점이었으나, 하위 25% 가정 출신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509점으로 그 격차가 33점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48개 조사참여 국가의 상위 25%와 하위 25% 가정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격차는 평균 82점이다. 독일(114점), 스위스(115점), 벨기에(103점), 영국(98점), 미국(90점), 프랑스(83점) 등 대부분의 회원국 학업성취도 격차는 한국보다 2~3배나 컸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교육계에서는 "우리 나라도 지역에 따라 학력격차가 심각하긴 하지만 평준화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의 결과가 나왔다"고 자평하고 있다.
이처럼 이 의원의 주장은 또 다시 '신뢰성'이라는 도마 위에 올랐다. / 윤근혁 기자 |
| | 이 기사는 2004년 9월 13일 쓴 것이지만 미발표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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