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성초 서아무개 교장 자살 당일인 4일 오후 3시, 예산읍내에 있는 예산교육청 현관 앞에 자동차가 멈췄다. 차에서 내린 보성초 전 학부모위원장인 김아무개씨, 예산군 학교운영위원장협의회장인 조아무개씨 등 5명 이상의 학부모가 1층 왼편 끝 방인 학무과장실로 줄줄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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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일 오후 10시 30분 어둠에 휩싸인 충남 예산교육청. 이날 이 시간까지 교육청 안에는 이 아무개 학무과장을 비롯 몇몇 장학사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
| ⓒ2003 윤근혁 | 4일 오후 3시 예산교육청에 들어선 학부모들
이들이 이날 이곳에 모인 지 한 시간쯤 후에 자살사건에 대한 성명서가 나왔다. 이날 이 교육청 인아무개 장학사와 보성초 홍아무개 교감, 경찰, 유족 등 4명이 사체를 처음 발견한 시간은 오전 10시쯤. 각기 예산 지역에 떨어져 살면서 대부분 농사를 짓는 이 학부모들이 교육청에 모여 성명서를 만들어 발표하는 데는 채 몇 시간이 걸리지 않은 셈이다.
이 성명서는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교직단체(전교조)의 개입으로 인한 죽음"이라는 내용을 처음으로 내세운 것이었다. 다음은 성명서 내용.
"이번 사태는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일부 교직단체의 집단적인 개입이 회원으로 가입하지도 않은 기간제 교사의 문제로 고민을 해오다 끝내 죽음을 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4시 30분께 성명서 돌려가며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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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일 오후 4시께 학부모들이 서명한 학부모 성명서 둘째 장. |
| ⓒ2003 윤근혁 | 성명서 작성 후 서명을 한 시간은 오후 4시부터 4시 30분께. 어떤 논의를 거쳐 누가 성명서를 만들었는지 참석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뒤늦게 참석한 보성초 어머니회장 강아무개씨는 "교육청 1층 어떤 방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와보니 성명서가 만들어져 있었다"면서 "같이 있던 사람이 학부모인지 장학사인지 내가 알 수는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나머지 5명의 학부모와 함께 이 A4 용지 두 장으로 타이핑된 인쇄물에 이름을 적은 다음 사인을 했다.
예산교육청 이아무개 학무과장은 방을 내준 이유에 대해 "학부모들이 (교육청에) 와서 사무실에 있길래 번잡하기도 해서 내 방에 들어가라고 했다"고 지난 23일 말했다. 그는 "왔다갔다하느라 몇 번 방에 들르기는 했지만 성명서를 직접 만들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전 보성초 학교운영위원장 김아무개씨는 "성명서를 누군가가 써 갖고 왔는데 내용도 좋고 해서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사인을 했다"면서도 "누가 성명서를 만들었는지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교육청, "번잡해서 학무과장실에 가라고 했다"
이 서명이 진행된 후 대략 한 시간 남짓 시간이 흐른 오후 5시 서울 정부중앙청사 교육부 기자실. 기자들은 교육부 직원이 나눠주는 이 성명서와 '전교조 압박에 의한 자살'이란 내용을 담은 교육부 내부 분석자료를 함께 받아들었다.
예산교육청 이 학무과장은 23일 기자와 만나, 교육부 기자실에 문제의 성명서가 배포됐다는 말을 전해 듣고 "총알같이 갔구먼. 성화봉송도 이렇게 빠를 수가 없지. 참 빠르다"는 말을 잇따라 토해냈다.
교육부는 이날 교원정책과 한 사무관이 만든 '교장자살 언론보도 관련 사항'이라는 제목의 이 자료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었다.
"서 교장은 전교조가 교권침해라는 빌미를 잡아 집단적으로 개입하여 시한 내 서면 사과문을 제출하라는 등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에 심한 압박감을 느껴왔으며, 이로 인하여 심적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것으로 보임."
오후 5시, 교육부 직원, 기자에게 '문서' 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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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시 오후 5시께 교육부에서 만들어 기자들에게 배포한 '내부문서'. 이 자료엔 학부모 성명서가 첨부돼어 있었다. |
| ⓒ2003 윤근혁 | 다음날 아침부터 조선·중앙·동아 일보 등 보수언론은 일제히 위와 같은 내용으로 지면을 장식했다.
교육부 이영만 교원정책심의관은 "교장자살 당일 자료를 보고 받고 공보관실에 한 장 주긴 했지만 기자들한테 뿌릴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부가 진상이 규명되지도 않았는데 자료를 기자들 전체에게 주었다면 잘못된 일"이라고도 했다.
전교조 원영만 위원장은 25일 오전 7시30분 윤덕홍 부총리를 만나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문서를 전달했다.
"교육부는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전교조 압박에 의한 자살이란 예단을 내린 문서를 기자들에게 나눠주고, 이 자료에 첨부된 학부모성명서는 사건 당일 예산 교육청 학무과장실에 모여 작성된 것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는 등 교육당국이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전교조 죽이기를 선도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진상을 왜곡한 책임자를 문책할 것을 요구합니다."
교육부는 교사·학생·학부모가 하나되는 '교육공동체 실현'을 강조해왔다. 그런데 이 교육공동체 속에 들어가 있는 전교조 소속 교사 10만 명이 사건 발생 몇 시간만에 다름 아닌 교육부에 의해 자살을 일으킨 주범으로 단죄된 것이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4월 25일치에 쓴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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