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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춘식 한성여중 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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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오마이뉴스 남소연 |
'참으로 장관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참담하였다. 2004년 11월 7일 오후 2시 50분. 서울역 앞 광장은 한 마디로 분노와 증오가 넘쳐나고 있었다. 증오의, 증오에 의한, 증오를 위한 집회가 아주 성대하게 거행되고 있었다. 아, 기어코 해내고 만 것이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결사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영토는 과연 무엇인가.'
| 고춘식 교장은 누구? |
고춘식 교장의 지인들은 그를 두고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인물'이라고 말한다.
47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고 교장은 생활 시조 작가로도 알려졌다. 96년부터 1년여 동안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시조로 세상 읽기'를 묶어 98년엔 <끝 모를 어둠을 파다(두리 미디어)>란 시조집을 내기도 했다.
경기 용문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이래 35년 동안 사립학교에서만 근무했다. 한성여중엔 2000년 11월 교장으로 부임했다. 교장이면서도 일주일에 네 시간씩 수업을 하며, 학생들이 '살고' 싶어하는 학교를 만들어 주기 위해 발벗고 뛰는 등 '색다른 교장'으로 소문이 나 있다.
한때는 전교조 조합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7년 전 결성된 서울지역 교사 풍물패 '흥시렁'의 회원이다. 현재 성북지역 사립중학교장회 총무를 맡고 있다. / 윤근혁 기자 |
| | '사립학교법 반대 궐기대회'를 현장에서 지켜본 한 사립학교 교장이 직접 적어놓은 글귀다. "학교 폐쇄 결의에 분노하고 있다"는 고춘식(57) 교장. 그는 이 대회를 주도한 사학재단연합회 소속 사립학교 가운데 하나인 서울 한성여중에서 4년 동안 교장을 맡고 있다.
"'학교를 폐쇄하겠다'는 마인드를 가진 그런 사학 법인부터 폐쇄해야 사학이 삽니다. 사학이 생기를 얻어야 우리 교육도 삽니다."
고 교장은 9일 오후,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해 이제는 교장으로서 입을 열 때가 된 것 같다"면서 이같이 뼈아픈 말들을 토해냈다.
그는 이날 "현재 사립학교법 개정을 반대하는 분들의 현재 모습이 사학법 개정의 필요성을 웅변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라면서, 그 근거로 ▲학생 몰래 이사회를 열어 학교 폐쇄를 결정한 사학재단 ▲인사권을 주겠다는 데도 반대 결의까지 한 사립학교 교장들의 모습을 들었다.
고 교장은 이어 "사립재단이 '내 학교'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학교'라는 생각을 지닐 때 진정한 건학 이념이 구현될 수 있는 것"이라면서, "학교 구성원의 참여를 활성화시키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오히려 사학에 생명력을 넣어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학재단이 건학 이념 구현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군림하려 들지 말고 그 학교의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마음속으로 어떻게 파고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70년 3월 교편을 잡은 이래 35년 동안 줄곧 사립학교에서만 몸담아 온 고 교장. 소박한 얼굴 표정에 톤이 낮은 목소리였지만, 그의 두 시간에 걸친 '커밍 아웃'은 진지하고 단호했다.
"상상할 수 없는 폭력을 보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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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오마이뉴스 남소연 | - 교장으로서, 특히 사립학교 교장으로서 이런 발언을 하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사학재단이 사학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것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재산권과 기득권을 유지하겠다고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들의 입에서 '학교 폐쇄'란 말이 나왔다. 이것은 교육자로서 상상할 수도 없는 말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말은 무덤까지 그냥 가져가야 할 말이다. 아무리 속이 상하고 분노한다고 해도 이런 생각을 하고, 더구나 1만 명씩이나 모여 그 말을 확인하고 있으니 얼마나 참혹한 일인가. 나는 요즘 엄청난 충격 속에 살고 있다. 가만히 있어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7일 사립학교법 반대 궐기대회 현장을 직접 지켜봤다고 하는데. "그렇다. 도대체 어떤 말을 어떤 표정으로 하는지 궁금해서 한 40분 동안 지켜보다가 비통한 마음으로 자리를 떴다. 나는 이 양반들이 '학교 폐쇄'를 결정했다고 하기에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결의대회 현장에 딱 가서 보니까 농담이 아니었다. 충격이었다. 나중에 신문에 난 내용을 보니 어떤 사학재단연합회 임원은 '학교에 불을 지르겠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이들의 생각엔 누구도 못 말릴 오만과 반교육적 정서와 독선이 가득했다."
- 그 집회를 어떻게 평가하나. "순수한 교육적인 행사가 아니었다. 거의 정치적인 궐기대회였다고 생각한다. 현 정권에 대한 위협 차원의 집회였다. 현 정권을 한 움큼밖에 되지 않는다며 얕잡아보는 말이 난무했다. 대회를 주도한 이들의 상상력은 어디엔가 갇혀 있는 듯했다. 반노무현, 아니면 반북, 반통일, 반전교조의 늪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르신네들이 참 많이 모였는데, 나로서는 그분들이 어른스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 하지만 한국교총이나 학부모 단체도 공동주최한 행사가 아니었나.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른바 교원단체나 학부모 단체 간부들의 언사다. 당연히 학교 폐쇄를 반대해야 할 위치에 있는 분들이 학교 폐쇄를 기정사실화하고,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을 보니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학교 폐쇄가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 그 국가적 대혼란을 조금도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당연히 학교 폐쇄라는 말에 대한 준엄한 비판을 먼저 하고 나서 할 말을 했어야 하는데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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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 폐쇄'를 다룬 <조선일보> 11월 8일자 4면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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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조선일보 PDF | - 이 날 '학교 폐쇄'와 '헌법재판소 제소' 결의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누구 맘대로 문을 닫는다는 얘긴가. 재학생들에게 물어보았는가, 교직원에게 물어보았는가, 학부모와 지역 주민에게 물어보았는가. 어르신네들이 이렇게 구성원들을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사립 학교는 국가 대신 교육을 위임받은 곳이다. '사립 학교'는 '사립'을 강조하는 시각과 '학교'를 강조하는 시각에 따라 주장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사립 학교'를 한꺼번에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사립'을 강조하면 자율성이 주가 되고, '학교'를 강조하면 공공성이 중심이 된다. 이 두 가지는 둘 다 존중되어야 한다. 개방 이사제는 사실 이 두 가지를 다 배려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고 보지 않는다."
- 재단 쪽은 그렇다 치고, 지금 사립학교법은 교장들도 반대하고 있지 않나? "9월 중순 건국대에서 사립교장들이 모여서, 교원 임면권을 학교장에게 주는 것을 수용할 수 없다고 결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세상에 어느 나라 교장들이 자신들에게 교원 인사권을 주겠다는데 마다하겠는가. 그런데 교장 선생님들은 왜 인사권을 반납하겠다고 했을까. 처참한 코미디이다. 우리나라 사학이 어느 정도 비정상적이고 또 얼마나 왜곡되었는가를 이 말 한 마디로도 똑똑하게 알 수 있지 않은가."
- 결국 교장의 임면권은 개정안에서 삭제됐는데. "교원을 뽑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려면 학교 실정을 잘 알아야 한다. 한 달에 한두 번 나오는 법인 이사들이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법인의 이사장이 교육과정과 내용을 얼마나 꿰뚫고 있겠는가. 인사권은 학교 실정을 가장 잘 아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행사해야 하는 것이기에 교장이 가져야 마땅한 것이다. 그 교장에 대한 인사권을 법인이 행사하고 있으니 법인의 권한을 빼앗는 것이란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립재단의 왜곡이 교장 사회까지 왜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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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오마이뉴스 남소연 | - 교장들이 왜 인사권을 반대했다고 보나? "교장이 법인에 완벽하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대부분의 사립학교에서 법인과 교장과의 관계는 주종 관계 그 자체다. 그렇기 때문에 인사권을 행사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면서도 다르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립재단의 왜곡된 모습이 교장들까지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인사권을 거부하는 결의대회를 한 것은 다시 말하지만 우리 교육계의 슬픔이요, 우리 교육사에 남을 참혹한 비극이다."
- <조선><동아>와 <중앙> 보도를 보면, 개정안이 통과되면 사학이 당장이라도 난장판이 될 것 같은데. "정말로 정신나간 언론들이 국민들을 혼란시키고 있다. 사학이 폐교를 결의했다면 언론은 당연히 국민의 이름으로 엄중 경고를 하면서 학생들의 교육권을 보호하는 말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들은 이런 반교육적인 모습을 확대 보도하고 부추기기까지 하는 듯하다. 이런 언론을 어떻게 언론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언론이라고 말할 수 없는 신문들이 언론 노릇을 하는 게 우리 사회의 불행이다."
- 사립학교 교장으로서 사학법 개정안에 찬성 의견을 나타내는 까닭은 무엇인가. "사학재단이 '내 학교', '내 것'이란 생각을 하는 데서 많은 부조리와 문제가 생기고 있다. 내 학교라고 생각하니까 폐교라는 말까지 할 수 있는 것이고, 학교를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엄청난 착각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어떤 학교가 그 어떤 사람의 것이라면, 도대체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학교라는 공동체는 누구의 것이 아니다.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참여하는 '우리 모두의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공동체 의식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건학 이념도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한 구성원의 참여가 있으면 사학 운영의 투명성도 저절로 생긴다. 이런 점에서 개방형 이사제와 학교운영위원회 심의 기구화 등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것이다."
- 그래도 개방형 이사제는 경영권과 재산권 침해라는 목소리도 있지 않나. "사실 사학이 공교육이니까 설립 당시부터 개방 이사제를 했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국가 예산으로 감당이 안 되니 국가가 많은 사학들에게 빚을 지게 되었고, 그런 가운데 사학들을 바로 이끄는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늦게서야 이런 제도를 마련하려고 하니 결국은 기득권을 건드리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나는 개방형 이사제를 둬서 학교 운영의 투명성만 확보된다면 재단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를 오히려 늘려주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조선일보>는 개방형 이사제와 학교운영위원회 심의제가 되면 전교조 세상이 된다고 걱정하던데. "의도된 오버다. 왜 이렇게 언론이 오버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전체 이사 9명 가운데 개방형 이사 3명을 추천하더라도 다수결로 하면 전교조가 추천할 수 있는 학교는 그리 많지 않다. 정보력이 아주 뛰어난 조선일보가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빗장 걸린 이사회 문을 열고 한두 명의 외부 인사라도 들어가게 되면 그 새로운 시각들이 일방 통행식 운영을 막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역할에 의해 학교는 좀더 투명하게 운영되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오로지 반 전교조적 시각에서 너무 과장된 논리에 빠져 그것을 즐기고 있다. 언론의 정도를 한참 벗어난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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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오마이뉴스 남소연 |
"사학법 개정안은 오히려 사학에 생명력 줄 수 있어"
- 사학법 개정안은 결국 사학을 죽이는 '死학법'이라고 반대하는 운동은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데. "요새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 무릎을 칠 만한 명언이 있더라. '보안법이 폐지되어도 국가 안보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사실을 보수 세력이 들킬까봐 기를 쓰고 반대한다'는 얘기다. 얼마나 정곡을 찌르는 말인가? 사립학교법 개정이 되면 사학 법인은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만 사립학교는 분명히 새로운 생기와 생명력을 얻는다. 우리는 '사학 법인'과 '사학'을 혼동하면 안 된다.
지금이 위기라면 사학 법인의 위기이지 사립학교의 위기는 아니다. 군림하는 사학 법인이 좀 기가 죽어 사학이 산다면 괜찮은 것 아닌가. 그것은 손실이 아니라 궁극적 이익이 아닌가? 건학 이념이 훼손된다는 말도 지어낸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학교 구성원의 참여를 활성화시키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오히려 사학에 생명력을 넣어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을 해 달라. "나는 '책임만큼의 권한과 권한만큼의 책임'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어떤 권한을 가져가려면 그에 따른 책임도 함께 가져가야 마땅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권한만 가져가려고 애를 쓰고 있는 듯하다. 법인 이사회가 가진 권한, 교장이 가진 권한을 가져가려면 그에 합당한 책임도 가져가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대화가 되고 타협도 된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빼앗겠다는 심정으로 달라붙으면 그 누구도 빼앗기지 않으려 할 것이다.
사학 법인들에게 바라는 것은, 지금의 분노를 '교육'이라는 이름 속에서 건강한 고민으로 바꾸어야 속도 덜 상하고 희망이 있는 답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교육도 교육 공동체 모두를 아우르는 커다란 화두를 정하고 답을 함께 찾아가는 길을 모색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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