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의 일사불란함에 박수 치신 어른들께 | |||||||||
| 초등학교 가을운동회 구경 잘 하셨나요? 부채춤과 꼭두각시, 그리고 학교에 따라선 차전놀이까지 해내는 학생들을 보면서 흡족한 마음이 들었을 겁니다. 전교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모여 여봐란 듯이 치른 학교 운동회도 이제 끝이 났네요. 저는 한 해에 한 번씩이라도 학부모와 교사, 학생이 뭉치는 행사는 꼭 필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전국 초등학교에서 펼쳐진 가을운동회는 햇빛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항상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오늘은 가을운동회의 그늘도 한 번 찾아보려고 합니다.
사실 운동회도 유행을 타는 게 분명합니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기존 매스게임 식 운동회에 대한 반성으로 놀이마당 형태의 운동회가 유행했습니다. 매스게임과 같은 보여주기식 운동회가 수업 결손과 함께 학생들에겐 고통을 주었기 때문이죠. 구슬치기, 딱지치기, 엿치기 등과 같은 놀이를 모든 학생들이 하는 놀이마당 식 운동회는 모든 아이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폼 나는 모습은 연출되지 않는 단점이 있었죠. 이 놀이마당 식 운동회의 번창은 전교조의 '참교육운동'에 힘입은 바 컸습니다. 이러던 운동회가 2000년 대 초반 들어 다시 90년대 이전의 보여주기 식 운동회로 방향 선회를 하고 있습니다. 올해 전국 대부분의 운동회는 '학년 전체의 율동'(집체극)이 빠짐없이 들어가 있었을 겁니다. 왜 그럴까요. 부채춤과 꼭두각시, 그리고 어른들의 박수 학생 이삼백 명이 나와 음악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춤을 추는 것은 폼 나는 일입니다. 6학년이 부채춤을 하고 1학년 어린 학생들이 나와 꼭두각시 춤을 추는 것은 무척 화려해 보입니다. 물론 이 같은 춤은 20~30여 년 전에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죄다 해 본 것이지만 학부모와 교사는 학생들 앞에서 저절로 박수를 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동작을 위해 각 학교는 운동회 한 달 전부터 연습에 들어갑니다. 이른바 뼈저린 예행연습이 시작되는 것이죠. 심하면 두 달 전부터 준비하지만 보통 한 달 정도 본격 연습을 진행한다고 보면 되죠. 시끄러운 마이크 소리, 하늘을 뿌옇게 만든 먼지 속에 짜증을 내는 학교 주변 학부모들도 있었겠지만 정작 문제는 아이들입니다.
"운동회 연습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어떤 아이는 "차라리 공부하는 것보다는 좋아요"라고 말하더군요. 좋습니다. 아이들이 교실 수업을 받는 것보다 좋다는 이 운동회 연습은 얼마나 학생들의 교과학습을 가로막고 있을까요. 한번의 율동은 수업일 5일 정도를 투입한 결과 보통 학교별로, 고학년은 한 달 전부터 일 주일에 두 번씩, 한 번 할 때마다 두 시간 정도씩의 시간을 연습으로 씁니다. 한 주에 모두 네 시간을 쓰는 것이지요. 다른 수업시간을 안 하고 운동회 연습을 하는 것이라 보면 틀리지 않습니다. 한 달을 다섯 주로 잡았을 때 학생들이 운동회 날 한 번의 율동을 하기 위해 전체 20시간의 연습 시간을 갖는 것이지요. 초등학교 고학년의 일주일 수업시간은 모두 32시간. 이를 일주일동안 수업하는 날인 6일 정도로 나누면 하루에 대강 5시간의 수업을 하는 셈입니다. 이를 운동회 총연습 시간인 20시간으로 환산하면 한 4일 정도의 수업 결손을 일으키는 것이지요. 물론 이뿐만이 아니죠. 운동회 전날이나 전전날 하루종일 실시하는 총연습까지 따지면 적어도 한 번의 운동회를 위해 5일 분량의 수업시간을 버리고 운동회 연습에 매달리는 것이 됩니다. 또한 연습하는 과정에서 다른 학년의 수업을 방해하는 일은 당연한 것이죠. 빠진 교과목의 진도는 담임이 알아서 맞추는 것이고요. 소고를 갖고 율동 연습을 하던 5학년 한 무리의 여학생들은 연습이 끝나자 다음처럼 소리를 치더군요. "야 해방이다!" 햇빛 가득한 운동회는 어른들의 몫 교사들이 이 학생들한테 압박과 설움을 주려고 한 것도 아닌데 이 아이는 해방을 그리워했던 것입니다. 운동회 예행연습은 어떤 아이에겐 즐거움을 주기도 하겠지만 많은 아이들한테 '억압된 감정'을 준 것이지요. 내년에도 가을운동회는 계속될 겁니다. 아이들이 그늘을 벗고 빛으로 가득 찬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어른들의 몫입니다. 어른들한테는 보기 좋은 일이래도 아이들한테는 괴로움을 주는 일이 된다는 사실을 운동회 과정을 통해 새삼 떠올립니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10월 15일치에 쓴 것입니다. | |||||||||
| 2003/10/22 [21:14] ⓒ 윤근혁의 교육돋보기 |
2009년 8월 26일 수요일
가을 운동회 '매스게임'의 그늘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