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난사람] 북쪽 교사 5명과 그리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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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편 이기라. 니 편 지라. 한 꼴 넣고 들어온…. 남북이 하나되어 달리는 선생님들 보니까니 아름답네." 북쪽 아이 두 명은 남북 교사들의 통일잔치를 보면서 이처럼 색다른 응원 목소리를 냈다.
평양에서 온 두 학생의 응원― 분단 59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교육자통일대회가 열린 것이다. 남쪽에서는 전교조와 한국교총, 북쪽은 조선교육문화직업동맹 소속 교원들이 참석한 이번 대회의 공식 명칭은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교육자통일대회'. "남쪽 선생님들이 활기 있고 얼마나 잘 생겼는지 몰라요. 하루 빨리 통일돼서 남쪽 선생님들한테 수업 받고 싶어요. 남조선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고 싶어요." 이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설주와 은주는 묻는 말에 또박또박 대답했다. 나는 7월 말쯤 '남쪽 선생님한테 수업 받고 싶다'고 말한 이 두 학생의 모습을 어떤 인터넷신문사에 소개한 적이 있다. 이 기사를 읽은 한 독자는 댓글에서 다음처럼 적었다. "우리나라학생이 '나무처럼, 산처럼 듬직한 북한 선생님께 배우고 싶어요' 라고 이야기했으면, 어찌 되었을까? 조선, 중앙, 동아일보가 가만히 뒀을까? 조갑제가 가만히 있었을까? 비록 하드웨어는 남한이 북한보다 월등할지 모르나, 맨 파워, 소프트웨어는 확실히 뒤졌다는 것을 알 것이다." 엷게 분을 바른 설주와 은주의 얼굴엔 웃음과 탄성이 연달아 터졌다. 설주와 은주는 평양소년학생궁전에서 소조활동을 함께 하는 친구로서 축하공연을 하러 이곳에 왔다고 한다. 체육 유희오락경기 직전엔 평양학생소년궁전 소속 학생들이 나와 춤과 노래 공연을 펼친 바 있다. 량수진, 리진래 학생(평양 창전중 3학년) 등 7명이 무대에 나와 웅변투 말로 "선생님 오늘 맞잡은 손 놓지 마세요, 영원히 통일의 교단으로 빛내주세요"라고 울먹이며 말하자 일부 남쪽 교사들도 손을 눈 주위에 갖다대며 눈물을 씻었다.
행사장 확성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소리가 울려 퍼졌다. "뭉치면 승리이고 흩어지면 패배다." 처음 만난 북쪽 교사, 교수들― 남쪽 초등학교 대운동회는 '박 터뜨리기'가 끝나면 반드시 점심을 먹게 되어 있다. 남북 교사들의 대운동회가 펼쳐진 이날도 그랬다.
점심식사 시간 내내 남북의 교사들은 헤어졌다 만난 가족들처럼 삼삼오오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는가 하면 함께 노래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밥을 다 먹은 뒤 북쪽 김성희 교사(평양 인흥중)는 "반갑다는 마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남쪽 교사들 만난 것 돌아가서 학생들한테 얘기해 줄 것"이라면서 수줍게 웃었다. 그는 "60년 갈라져 살았지만 한 핏줄을 속일 수도 없고 너무나 똑같은 모습이다. 통일에 대한 염원도 똑같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를 지켜보던 한국교총 소속 김병기 교사는 "북쪽 교사들 만나니 남북의 벽을 허물었고 전교조 교사와 밥을 함께 먹으니까 우리끼리의 벽도 허무는 계기가 됐다"면서 "앞으로 교사는 물론 아이들이 함께 만나는 일이 더욱 잦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영옥 김일성종합대학 교수(경제학부)도 이날 식사를 마친 뒤 감회에 젖은 말을 던졌다. 최 교수 옆에서 이 말을 가만히 듣던 심성보 교수(부산교대 교육학)가 갑자기 최 교수한테 '같이 사진을 찍자'고 덤벼들었다. 머리카락이 백발인데도 개구쟁이 시절 표정이 그대로 살아있는 심 교수는 남쪽 30여 개 교육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상임운영위원장도 맡고 있다. 남북의 교수, 흰 서리가 머리를 감싼 교육자 남남북녀는 이렇게 어깨를 맞대고 카메라 앞에서 밝게 웃었다. 교사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빨간색 투피스를 입은 북쪽 여성 봉사지원요원 60여 명은 더위로 얼굴이 붉게 물든 채 '배사이다'와 '신덕샘물'과 같은 음료수를 준비하느라 바삐 움직였다. 찌는 날씨, 미지근한 음료수였지만 동포를 맞이하는 따뜻한 마음이 베어 나오는 것 같았다. 북측 한 지도요원은 "직업총동맹에서 특별히 정성을 다 해 준비하라는 말씀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장원 전교조 통일위원장은 "북측의 혼신을 다한 정성스런 모습에서 통일에 대한 염원을 엿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점심을 끝낸 뒤 참석자들은 오후 3시까지 한 시간 여에 걸쳐 남북 교원단체 소속 교사들이 준비한 문예공연을 관람했다. 북쪽 교원들의 문예공연을 지도한 안병국 교수(평양음악대학 학장·61)는 "우리 북쪽 교원들은 5일간 연습하는 동안 밤낮으로 힘든 줄을 몰랐다"면서 "나도 남쪽 교원들 앞에서 노래 한번 하겠다고 우겨서 직접 독창을 했다"며 농담 섞인 말을 나한테 던졌다. 안 교수는 공연이 끝나자 "날래 함께 사진도 찍지 않고 뭐하냐"면서 남북 문예공연단 교사들을 채근했다. 안옥보 평양 능라소학교 교장―
그의 교장 경력은 얼마나 될까. 자그마치 30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70년 대 초 나이 서른에 교장으로 임명받아 여태껏 교장이다. 안 교장의 품에서는 어머니 냄새가 났다. 자그마한 덩치에 안경 낀 얼굴, 나직하고 부드러운 말씨는 '어머니와 같은 품성'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 가운데 일부다. -능라소학교는 능라도경기장 옆에 있는 학교인가요? 서글픈 모습들, 이래선 안 되는데― 마침 이날 동석한 사람 가운데엔 남쪽 사립중등학교 교장(62)도 있었다. 북쪽 안 교장은 가끔 남쪽 교장한테 질문을 던졌다. "남쪽에서도 교육내용에 통일교육이 포함되어 있습니까."하고 묻자 남쪽 교장은 "하죠"라고 퉁명스럽게 한 마디로 답한다. 그러자 안 교장은 다음처럼 자랑스럽게 말을 받았다. "우리는 모든 과목에 통일교육 내용이 들어가 있어요. 수학을 할 때엔 응용문제에도 통일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지요." 안 교장은 이날 "북쪽은 일주일에 한번은 운동장 조회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말이 나오기 무섭게 남쪽 교장은 한탄하듯 말을 이었다. "우린 교사들이 편해지려고만 하기 때문에 조회도 안 하려고 해서 탈이에요. 이런 점은 북한에게 배워야 한다니 깐." 동석한 북쪽 청년 교원 로학철 씨(남포 항구중, 30)는 연신 남쪽 교장에게 맛있는 음식을 날랐다. '이 것도 드셔 보시라, 저것도 드셔 보시라' 웃어른에 대한 그의 깍듯한 태도는 보기에 좋았다. 그는 "방학이니 나름대로 공부도 해야 하지 않겠냐"고 묻자 "방학 때는 그저 놀기만 한다. 앞으로는 잘 해야 하겠지만 노니 좋다"면서 장난스레 웃었다. 이른바 '놀새'인 셈이다.
사실 이날 낮 교육자통일대회에서도 엇비슷한 모습이 연출되어 뜻 있는 교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당시 북쪽 교원들은 자리를 정확히 지킨 반면 일부 남쪽 교사들 수십 명이 대회장을 빠져나와 근처 온정각 휴게소에서 휴식을 즐기기도 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통일교육은 아이들한테만 필요한 게 아닌 것이다. 만찬 장을 나서는 나에게 북쪽 안 교장은 "남쪽에 가거들랑 아이들에게 통일에 대한 염원을 심어주고 좋은 글도 많이 써달라"고 부탁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대남 통일전선전략에 따른 책동일 수도 있고, 아니면 순수하게 후배 교사에게 전하는 염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나는 안 교장의 얼굴을 보면서 통일에 대한 진정성에 마음이 끌렸다. 이를 두고 대남 통일전선전략에 놀아난 것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말이다. 삼일포에서 만난 북쪽 학부모―
삼일포를 등반하던 북쪽 한 교원은 바위에 새겨진 글귀를 보면서 노래를 불렀다. 바위엔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 그 깃발로 굳게 맹세 해. 비겁한 자여 갈 테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고 적혀 있었다. 영화 '실미도'에서 주인공들이 부른 '적기가', 최근엔 KBS 한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실려 논란이 된 이 노래가 한 북쪽 교원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평양연극영화대학에서 '혁명역사'를 가르치는 이 교원(35)의 세대주(남편)는 시나리오 작가란다.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명주 수건 마르기'이기 때문에 일 없습네다"하고 말하는 얼굴은 햇빛을 받아 더욱 밝게 빛났다. 그의 아이들은 모두 둘인데, 소학교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한테 사교육에 대해 물어봤다. 남쪽 정부가 '2·17 사교육비경감대책'이니 '교육방송 과외'니 하면서 하도 떠들어대니 내 입에서 이런 질문이 자동으로 나왔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사교육이 뭡네까. 우린 그런 것 모릅니다. 더 배우고 싶은 아이들은 소조활동을 해서 자기 취미 따라 하는 것이지 뭐 하러 돈 내고 과외 받습니까?" 북쪽은 남쪽처럼 사설학원이 없다. 개인과외나 사교육이란 말도 없다. 그 곳의 과외는 소조 활동이 대신하고 있다. 학생들의 재능과 관심에 따라 과학기술 소조, 예술 소조, 체육 소조 등으로 나누어 활동하는 형태다. 장소는 학교, 소년 궁전, 마을회관을 이용한다. 남쪽의 방과후 특별활동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는 "우리는 비록 어렵게 살더라도 자존심과 자주성을 지키면서 세대주와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영화배우였지만 "후대에 혁명역사를 전수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교원이 됐다"고 한다. 나와 동갑내기인 이 교원은 내 수첩에 다음처럼 글을 적어놨다. "애국의 길, 통일의 길에서 열렬한 활동을 바랍니다. 참교육 하시고 참글 많이 써 주세요." "잘 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 목메어 소리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 "통일의 그 날 다시 봅시다." 남쪽 교사들은 떠나는 북쪽 버스 창문에 손을 올렸다. 북쪽 교사들은 남쪽 교사들의 손을 잡으려고 몸을 밖으로 내밀었다. 버스 창문을 넘어 남쪽과 북쪽 교사들의 몸이 아주 가깝게 다가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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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6일 수요일
"남북 교단은 높지 않지만 교사들의 높이는 잴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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