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6일 수요일

교사들의 통일잔치 "남남도 화해!"

19일 금강산에서 사상 첫 남북교육자대회
 
윤근혁
 
▲ 19일 남북교육자통일대회를 위해 남쪽 교사들이 입장하고 있다.
ⓒ2004 윤근혁
남북 단일기가 운동장에 들어섰다. 한복을 차려 입은 남북의 교사들이 파란색 대형 한반도 기를 맞들었다. '반갑습니다'란 노래 연주가 이들의 발걸음을 맞추어 주었다. 평양 금성제일중학교 학생 50여 명으로 짜인 취주악단의 연주소리가 대회장 안을 가득 채웠다.

19일 오전 9시 금강산 아래 '김정숙 휴양소'.
상기된 표정을 한 남녘 교사 400여 명이 단일기를 따라 정문에 들어섰다. 남쪽에서 온 원영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과 윤종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회장이 맨 앞에 섰다.

'민족대단결', '조국통일'이란 글귀가 적힌 손깃발을 흔들며 남쪽 교사들이 운동장을 한바퀴 돌았다. 북쪽 소학교, 중학교 교사들 300여 명은 운동장 주변에 선 채로 박수를 연달아 치며 남녘 교사들을 맞이했다.

700명의 남북 교사들, 60년 만에 첫 통일교육자대회

▲ 원영만 전교조 위원장(오른쪽 네 번째)과 윤종건 한국교총 위원장(오른쪽 다섯번째) 등 남쪽 대표단이 입장을 위해 '김정숙 휴양소' 앞에 섰다.
ⓒ2004 윤근혁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해 오신 남측 교육자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환영! 전교조, 환영! 교총"

북쪽 여 교사의 우렁찬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대회장에 울려 퍼졌다. 분단 59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교육자통일대회가 펼쳐진 것이다. 대회 공식 명칭은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교육자통일대회'.

지난해 7월 전교조 소속 교사 100여 명이 평양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남북 교사들이 이처럼 정식 대회를 연 것은 처음이다. 전교조와 한국교총이 공동으로 통일행사를 펼치는 것 또한 사상 최초다.

박미자 전교조 통일위 정책국장과 공동사회를 맡은 림창복 조선교육문화직업동맹(교육동맹) 부위원장이 대회 개막을 선언했다. 곧이어 단일기가 게양됐다. 단일기가 깃대를 타고 올라가자 남북 교사 700여 명은 마치 국기 게양식 모습처럼 차려 자세로 경건하게 섰다.

한 여름 무더위 속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씻는 남북 교사들의 모습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서로 쳐다보며 손을 흔들고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 남북교육자통일대회에서 문예공연을 보고 있는 남북 교사들.
ⓒ2004 윤근혁
먼저 남쪽 교원단체 대표와 북쪽 교육동맹 대표의 연설이 차례로 진행됐다.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 개최하자"

윤종건 한국교총 신임 회장이 연설에 나섰다. 윤 회장은 "오늘 우리의 만남이 통일을 앞당기는 또 하나의 주춧돌이 될 것을 확신한다"면서 "앞으로 교육자통일대회를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 개최하고 교육문화교육발표회와 교원연수단 교류사업을 공동으로 펼쳐나가자"고 제안했다.

이어 북녘 김영도 교육동맹 위원장은 "먼저 애국의 사명감을 안고 달려온 남측 교육자들에게 북녘 전체 교육자들을 대표하여 동포애로 인사 드린다"고 운을 뗐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잘못 만든 제품은 버리면 그만이지만 잘못 키운 제자는 역적이 될 수도 있다"면서 "모든 교사들은 6·15 선언을 가꾸는 원예사가 되어 참된 애국자들을 길러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날 그는 연설 끝부분에서 '반미자주'와 '미군철수' 등을 주장했다. 이 때 남쪽 교사들 좌석에서는 다소 술렁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 문예공연에서 북쪽 학생이 공연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04 윤근혁
마지막으로 연단에 선 원영만 전교조 위원장은 "교사들은 우리의 사랑스런 제자들이 통일조국에서 우리 민족끼리 힘을 모아 살아갈 수 있도록 민족교육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면서 "제자들에게 통일조국을 물려주기 위해 교육자들이 앞장서서 전쟁위협을 민족공조로 막아낼 수 있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설이 끝나자 평양학생소년궁전 소속 학생들이 나와 춤과 노래 공연을 펼쳤다. 특히 량수진, 리진래 학생(평양 창전중 3학년) 등 7명의 학생은 웅변투 말로 "선생님 오늘 맞잡은 손 놓지마세요, 영원히 통일의 교단으로 빛내주세요"라고 울먹이며 말하자 일부 남쪽 교사들도 손을 눈 주위에 갖다대며 눈물을 씻었다.

오전 10시 30분부터는 체육유희 오락경기가 펼쳐졌다. 남북 교사들이 섞여 '연대팀'과 '연합팀'을 이루고 박 터트리기 등 4종목의 경기를 벌였다. 양쪽 팀의 팻말을 들고 선수단을 도와주던 리설주(평양 창전중 5학년)와 박은주(평양 해운중 4학년) 학생은 한목소리로 "남쪽 선생님들이 활기 있고 얼마나 잘 생겼는지 몰라요. 빨리 통일돼서 남쪽 선생님들한테 수업 받고 싶어요"라고 말하면서 밝게 웃었다.

정오께 남북의 교사들은 어깨를 기대고 달려 나와 모래주머니를 던져 박을 터뜨렸다. 터진 박 속에서는 오색종이와 함께 '자주평화통일', '민족대단결', '우리민족끼리'란 글귀가 적힌 천이 운동장에 쏟아져 내렸다. 참석자들은 누구랄 것 없이 환호와 함께 박수를 쳤다.

"활기 있는 남쪽 선생님한테 수업 받고 싶어요"

오후 2시까지 두 시간 여에 걸쳐 점심시간이 이어졌다. 남북의 교사들이 10개조로 나뉘어 북쪽이 평양에서 준비한 700여 개 도시락을 나눠먹었다. 흙먼지 속에서도 땅에 주저앉아 밥을 먹는 교사들의 모습이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점심식사 시간 내내 남북의 교사들은 헤어졌다 만난 가족들처럼 삼삼오오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는가 하면 함께 노래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밥을 다 먹은 뒤 북쪽 김성희 교사(평양 인흥중)는 "반갑다는 마음이야말로 표현할 수 없다"면서 수줍게 웃었다. 그는 "60년 갈라져 살았지만 한 핏줄을 속일 수도 없고 너무나 똑같은 모습이다. 통일에 대한 염원도 똑같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국교총 소속 김병기 교사는 "북쪽 교사들 만나니 남북의 벽을 허물었고 전교조 교사와 밥을 함께 먹으니까 우리끼리의 벽도 허무는 계기가 됐다"면서 "앞으로 교사는 물론 아이들이 함께 만나는 일이 더욱 잦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총 교사 "전교조와 밥 먹으니 우리끼리도 벽 허물어"

▲ 함께 한 점심식사 두 시간.
ⓒ2004 윤근혁
최영옥 김일성종합대학 교수(경제학부)는 식사를 마친 뒤 "남쪽의 교사들에게 우리 어린 학생들의 공연을 보여주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면서 "교육사업은 아이들은 물론 그들의 부형까지 좌우하는 것이니만큼 교원들은 통일을 위해서 온힘을 다 바치자"고 힘주어 말했다.

교사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빨간색 투피스를 입은 북쪽 여성 봉사지원요원 60여 명은 더위로 얼굴이 붉게 물든 채 '배 사이다'와 '신덕샘물'과 같은 음료수를 준비하느라 바삐 움직였다.

북측 한 지도요원은 "직업총동맹에서 특별히 정성을 다 해 준비하라는 말씀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장원 전교조 통일위원장은 "북측의 혼신을 다한 정성스런 모습에서 통일에 대한 염원을 엿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점심을 끝낸 뒤 참석자들은 오후 3시까지 한 시간여에 걸쳐 남북 교원단체 소속 교사들이 준비한 문예공연을 관람했다.

북쪽 교원들의 문예공연을 지도한 안병국 교수(평양음악대학 학장·61)는 "우리 북쪽 교원들은 5일간 연습하는 동안 밤낮으로 힘든 줄을 몰랐다"면서 "나도 남쪽 교원들 앞에서 노래 한번 하겠다고 우겨서 직접 독창을 했다"며 농담 섞인 말을 기자한테 던졌다. 안 교수는 공연이 끝나자 "날래 함께 사진도 찍지 않고 뭐하냐"면서 남북 문예공연단 교사들을 채근했다.

문예단 공연 직후 폐회식이 이어졌다. 남쪽 전교조·한국교총과 북쪽 교육동맹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남북 교원들은 차상철 전교조 교육교류추진위원장, 박규선 한국교총 교육교류추진위원장, 강준호 북 창덕학교 교장이 함께 읽은 결의문에서 "전쟁과 분단의 고통이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되며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통일조국을 물려주는 것이 우리 교육자들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

오후 3시 30분 아리랑 연주와 함께 단일기가 내려졌다. 남북 교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하고 사진을 함께 찍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남쪽 교사들이 휴양소 운동장을 빠져나온 뒤에도 한참 동안 북쪽 교원들은 손을 흔들었다.

▲ 20일 삼일포 들머리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남북 교사들.
ⓒ2004 윤근혁
남쪽 보-혁 교원단체 북쪽에서 만나다

이에 앞서 하루 전인 18일 저녁 9시부터 북쪽 금강산호텔 12층 '만장'이란 식당에서는 남남 교사 대표들의 만남의 장이 펼쳐졌다. 전교조와 한국교총 대표들 30여 명이 만나 간담회를 연 것이다.

전교조 원영만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6·15 공동선언의 정신으로 교총·전교조가 만나게 된 것"이라고 말했고 한국교총 윤종건 회장은 "우선 우리부터 화합하고 단합해서 민족통일을 이루는 계기를 만들자"고 대꾸했다.

양쪽 대표들은 기념패를 서로 교환한 뒤, 1시간여에 걸쳐 '봉학맥주'를 나눠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이를 옆 좌석에서 지켜본 박경양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선생님들이 북쪽에 와서 한마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니 보기에 좋다"고 거들었다.

양 교원단체는 함께 만들어 참가자들에게 돌린 수첩에서 "한국교총 교사들이나 전교조 교사들이나 우리 아이들이 평화롭고 행복한 통일된 나라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 가지일 것"이라면서 "바로 이러한 마음이 교육자통일대회를 준비하는 신뢰의 바탕이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예정됐던 전체 남쪽 교사들의 '화합의 밤' 행사는 도착시간이 늦어져 취소됐다. 또 19일 교육자통일대회 당시 북쪽 교원들은 자리를 정확히 지킨 반면 일부 남쪽 교사들 수십 명이 대회장을 빠져나와 근처 온정각 휴게소에서 휴식을 즐기기도 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검붉은 얼굴에는 땀방울과 함께 눈물방울이…

▲ "맞 잡은 손 굳게 잡고 통일합시다."
ⓒ2004 윤근혁
20일 아침 9시 남북 교사들은 금강산 자락에 있는 삼일포 지역을 함께 둘러봤다. 전날 저녁 7시 30분부터 김정숙 휴양소에서 열린 환영만찬에 이은 세 번째 만남이다. 이 삼일포는 남북이산가족 상봉 때마다 석별의 정을 나누던 곳이다.

오전 11시가 되자 삼일포 들머리에서는 '다시 만나요'란 북녘 이별가가 확성기를 타고 울려 퍼졌다.

"잘 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 목메어 소리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

이산가족 작별 장면이 펼쳐졌다. 남쪽 교사 400명이 길섶 양쪽에 서고 그 가운데를 북쪽 교사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햇볕에 탄 검붉은 얼굴들에는 땀방울과 함께 눈물방울도 흘러내렸다. 이렇게 남북 교사들의 짧은 만남은 그 막을 내렸다.

"통일의 그날 다시 봅시다."
"아니에요. 내년 남북 교육자통일대회에서도 꼭 봐야지요."

남쪽 교사들은 떠나는 북쪽 버스 창문에 손을 올렸다. 북쪽 교사들은 남쪽 교사들의 손을 잡으려고 몸을 밖으로 내밀었다. 버스 창문을 넘어 남쪽과 북쪽 교사들의 몸이 아주 가깝게 다가서는 순간이었다.
  [인터뷰] 김영도 북 조선교육문화직업동맹 위원장

다음은 교육자 통일대회에서 채택한 공동결의문이다.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북남)교육자 통일대회 공동결의문

온겨레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민족의 단합과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힘차게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남과 북(북과 남)의 교육자들은 2004년 7월 19일 금강산에서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북남)교육자 통일대회를 가졌다.

전체 대회참가자들은 이땅에서 외세에 의한 전쟁과 분단의 고통이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되며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평화롭고 부강 번영하는 통일조국을 물려주는 것이 우리 교육자들의 역사적 사명이라는데 대해 뜻을 같이 하였다.

남과 북의 교육자들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해결해 나가는 민족자주선언을 끝까지 이행해 나갈 확고한 의지를 담아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첫째, 우리는 교육부문에서 6·15공동선언을 고수 이행해나가는 것이 민족의 미래를 확고히 담보하고 자주와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겨레를 사랑하는 교육자의 마음으로 6·15공동선언을 적극 실천해 나갈 것이다.

둘째, 우리는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교육이야말로 우리 교육자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임을 자각하고, 우리 제자들이 외세없고 전쟁없는 평화로운 통일조국에서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다.

셋째, 우리는 비록 사상과 제도, 이념은 달라도 하나의 민족임을 확인하고 민족의 평화와 단합과 통일이라는 공동의 과제를 실천하기 위해 서로간의 연대와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이번 대회가 남북(북남) 교육자들의 6·15 공동선언 실천의지를 새롭게 다지고 민족의 평화와 나라의 자주통일을 앞당기는데 크게 기여하는 계기로 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6·15 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남북교육자통일대회의 결의를 힘과 지혜를 모아 아낌없이 실천해 나갈 것이다.

2004년 7월 19일

금강산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2004년 7월 21일치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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