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5일 화요일

'그날 그 수업'은 시간표에 없었다

'뒤죽박죽 장학록' 놓고 진위 논란
[확인취재-보성초등 사태] 장학록, 왜 갑자기 나타났나?
 
윤근혁
 
충남 예산 보성초 교장의 자살사건을 둘러싸고 이 학교 장학록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 학교 교장과 교감이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는 장학록에 대한 진위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 장학록은 '차 접대 거부에 대한 보복 장학'을 주장하고 있는 이 학교 기간제 교사 출신 진모씨(27)의 주장을 뒤집을 수 있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관심이 집중돼왔다.

'뜨거운 감자' 장학록

▲ 고 서 교장의 책상과 책장.
ⓒ2003 심규상
실제로 언론은 이 장학록 관련 기사를 지난 14일치에 크게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서 교장, 진교사 수업참관, 차 시중 마찰 이전부터 있었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이 장학록에는 진 교사가 이 기간에 학업지도 과정에서 보인 문제점 등이 조목조목 적혀 있는데다 진 교사가 차 시중에 대해 처음 문제를 제기한 8일 이전 기록도 있어 서 교장이 차 시중 거부를 이유로 '보복 장학'을 했다는 전교조측의 주장과는 차이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도 보도했듯 "이 장학록 가운데 서 교장이 썼다는 부분은 이 학교 장○○교무부장이 옮겨 쓴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책상에서 찾은 교장 장학록 원본

하지만 16일 들어 상황은 바뀐 듯이 보인다. '이미 교장 장학록을 대필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보성초 홍모 교감(58)이 이날 "장학록 원본을 15일 오후 6시 30분께 서 교장 책상에서 발견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홍 교감은 "이날 저녁 때 이○○ 장학사와 장○○ 교무부장과 함께 책상과 책장을 뒤지던 중 우연히 찾게 됐다"고 17일 말했다.

서 교장 자살 후 교장실 책상에서 발견된 자료는 이밖에도 '죽음의 기록'이라 이름 붙여진 수첩메모와 '사실과 거짓'을 명시한 진 교사 인터넷 인쇄물 등 2개가 더 있다. 며칠 간의 터울을 두고 교장의 같은 책상과 책장에서 자료가 잇따라 나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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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록 발견 2시간 전인 15일 오후 4시 30분께 전화통화에서 장학록 대필자인 장모 교무부장은 "장학록을 교장선생님 지시로 대신 옮겨 적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장학록 원본은 교장선생님이 갖고 계셨기 때문에 찾을 수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학교 홍모 교감도 이날 "현재 학교엔 원본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몇 시간만에 장학록 원본이 출현한 것이다.

시간표와 딴판인 장학록 내용

보통 초등학교엔 '장학록'이 없다
[충남 보성초엔 왜 있었을까]

'장학록'이 무엇인가에 대해 따져보자.

학교엔 보통 장학협의회록이 있다. 이것은 일년에 한두번 진행한 공개수업 강평을 적어놓는 회의록이다. 반면 이 학교에서 나온 '장학록'은 어떤 것일까. 기자가 만난 10여 명의 초등교사들은 '장학록'의 실체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듣도 보도 못한 문서"라고 입을 모았다.

같은 충남지역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고모 교사(34)는 "도대체 초등학교에 장학록이 어디있냐. 기간제 교사 하나를 위해 장학록을 만들어 비치하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보성초 정모 교사도 "평소 수업협의록은 있었지만 장학록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교직 경력 27년째인 김모 초등교사(50)는 "10년 전에 '교사동태보고서'는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 보고서에 대해 "전교조 교사들을 교육청에 보고하기 위해 문서를 만드는 것을 보긴 했지만 보성초와 같이 한 기간제 교사를 비판하기 위한 장학록은 못봤다"고 말했다.

반면 이 학교 홍모 교감과 장모 교무부장은 "장학록은 지난해부터 적어왔고 보성초에서 엄연히 존재해 온 문서"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장학록'의 존재 자체가 보통 학교에서는 거의 드문 일이긴 하지만 보성초의 경우 존재했을 수도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 윤근혁 기자
그럼 장학록 진위문제는 일단락된 것일까. 취재 결과 더 큰 의혹이 있었다. 교장과 교감 장학록의 내용 자체가 시간표와도 일치하지 않을 뿐더러 내용 또한 뒤죽박죽된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

먼저 장학록 대필이 벌어진 3월 20일 보성초로 돌아가 보자. 이 학교 관계자는 이날 "예산교육청 이모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 교무실에서 장학록 대필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 장학사는 진모 씨의 인터넷 투고에 대한 조사를 벌이는 과정이었다.

장모 교무부장도 "이 장학사님이 오신 가운데 원본 철을 보고 교장 선생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교감 선생님 것은 그대로 놔뒀다"고 증언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이 장학사가 현장조사차 방문한 날 장학록을 대신 적었을까. 교감 선생님 것은 왜 그대로 놔뒀나.

이 장학사 있는 데서 장학록 옮겨

장학록의 내용은 이에 대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장학록은 개학 이틀 후인 3월 5일부터 17일까지 2∼3일 간격으로 진 교사의 교수활동을 적은 8일간의 장학 기록. 그 내용은 학교 문서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진 교사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3월 7일 "교실 정리 정돈이 잘 안됨"(교감)
3월 8일 "본인(진모 교사)은 단원명, 학습목표 제시할 필요없다고 고집(아동은 알고 있다)"(교장)
3월 13일 "지도하는 입장에서 좀 심하다 할 정도로 빈정거림."(교장)
3월 14일 "(진모 교사가) 넘어진 학생 그냥 보고 있어 일으켜 줌"(교감)
3월 17일 "본인은 바빠서 청소 임장 지도할 시간이 없다고 함. 청소 상태가 아주 불량함."(교장)


ⓒ2003 윤근혁

▲ 예산교육청이 발표한 보성초 장학록 11일치와 12일치. 이날은 국어와 수학이 시간표에 없었다.
ⓒ2003 윤근혁
전체 8일간의 기록 가운데 홍모 교감이 적은 장학록은 모두 5일치. 이 가운데 3월 11일치와 12일치는 이 학교 3학년 수업시간표와 비교한 결과 장학한 과목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간표와 다른 장학록 내용

3월 11일 장학록은 "교과: 국어과(쓰기)"라고 적혀 있었지만 이날 3학년 시간표는 차례대로 '수학, 수학, 미술, 미술, 음악'이었다. 12일치 장학록도 "교과: 수학과"라고 적었지만 시간표는 '국어, 국어, 과학, 영어, 클럽활동'이었다.

왜 수업시간표와 장학 내용이 일치하지 않을까. 두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하나는 기간제 교사인 진모씨가 시간표를 바꿨을 경우고, 나머지는 홍 교감이 장학록을 몰아서 적었거나 작문했을 경우다.

'시간표를 바꾼 것 아니냐'는 물음에 진씨는 "이미 8일에 도덕과 체육 시간을 바꿔 교장선생님한테 야단을 크게 맞았는데 내가 시간표를 왜 바꾸겠냐"고 되물었다. 실제로 장학록은 3월 8일 이후 빈번한 교실 방문 사실을 적고 있다. 진 교사가 야단 맞는 것을 즐기지 않는 한 시간표를 이틀 연속으로 두 번씩이나 바꿀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럼 홍 교감이 장학록을 잘못 적은 것은 아닐까. 다음은 이와 관련 홍 교감과 17일 전화로 나눈 일문일답.

- 장학록은 그날 그날 적었나.
"나는 (장학록을) 그때 그때 쓰기 때문에 절대 몰아쓰는 일은 없다. 수업 참관한 다음에 교무실로 와서 바로쓴 다음 교장선생님께 보고하곤 했다."

- 그럼 3월 11일, 12일 시간표와 일치하지 않는 장학록 내용은 왜 생겼다고 보나.
"11일 분명히 국어 교과서를 갖고 쓰기 검사를 하고 있었다. 12일에도 수학과를 지도한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시간표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 3월 5일 차 접대 거부 전에도 교실 참관을 한 것으로 적었는데.
"그 날은 교실에 들어가지는 않고 도서실 옆 복도에서 슬쩍 지켜봤다."

- 20일 왜 이 장학사가 현장 실사를 나온 날 장학록을 달라고 했나. 장학록은 보통 학교에서 쓰지 않는 것 아닌가.
"장학활동을 했다고 하니까 장학사님이 장학록을 달라고 하더라."

- 그럼 이날 교장선생님 장학록 내용을 다시 쓰도록 한 것인가.
"그렇다. 너무 지저분해서 이 장학사 있는데 서 교장선생님이 다시 쓰도록 장 교무부장한테 지시했다."

- 교감선생님 장학록도 20일 직전에 혹시 몰아쓰신 것 아닌가.
"절대 아니다. 나는 그때 그때 적었기 때문에 절대 몰아쓰는 일은 없었다."

- 이 장학록을 예산교육청이 언제 갖고 갔나?
"그날(20일) 곧장 갖고 갔다. 그 다음은 모른다."

홍 교감 "장학록 그날 그날 썼다"

이 밖에도 진모씨와 홍 교감의 증언이 서로 다른 것은 14일치 장학록. 홍 교감이 적은 이날 장학록은 '체육과: 학생관리 소홀(넘어진 학생 그냥 보고 있어 일으켜 줌)'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진 모씨는 이날은 "14일이 아니라 15일 토요일이었고 이날만큼은 교감님이 사전에 참관하신다는 말씀을 하신 날"이라고 말했다. 진모씨는 "넘어진 학생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교감선생님이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말씀한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 고 서 교장의 내용을 장모 교사가 대신 쓴 3월 8일치 장학록. '아동은 알고 있다'는 말을 왜 썼을까.
ⓒ2003 윤근혁
교장이 적은 장학록 내용 가운데 특이한 점도 발견된다. 8일치 내용 가운데 "본인은 단원명, 학습목표를 제시할 필요 없다고 고집(아동은 알고 있다)"는 부분에 눈길을 모아보자. 괄호 안에 적은 내용 '아동은 알고 있다'는 말을 왜 썼을까. 이는 이 교사가 대든 것을 다음에 아동들도 증언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읽힌다.

진위논란 속 무책임한 교육청과 언론

취재 결과 장학록에서 언급한 내용은 '그 정도가 심하게 표현됐다'는 게 진 교사의 주장이긴 하지만 많은 부분 진 교사의 증언과 일치하는 점이 있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3일치의 기록을 포함, 전체 8일치의 장학록 기록 가운데 6일치의 기록이 학교 시간표를 비롯 진 교사의 주장과도 엇갈렸다.

왜 이렇게 문서의 기본인 날짜에 대해서도 의혹이 생기는 것일까.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자료를 왜 예산교육청은 뒤늦게 기자들한테 공개했을까.

분명한 사실은 이렇게 장학록에 대한 진위 논란이 이는 가운데 "장학록 발견으로 차 시중 이전에 장학이 있었다. 진 교사의 수업방식에 문제가 컸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는 것이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4월 17일치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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