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7일 목요일

대입전쟁, GOP 근무 고교생들의 외침

버림받은 삶, 버림받은 성적표
 
윤근혁
 
고교등급제, 대학 본고사, 통합교과형 논술, 특기자 전형….

대학입시 방안을 놓고 최근 벌어지는 이전투구가 점입가경이다. 12년 초중고 교육에 대한 최종 성적표 노릇을 하는 게 바로 이 대학입시이기에 더 그렇다.

대학입시라는 전쟁에서 최전방 GOP(일반전초부대, General Outpost) 근무에 나서야 하는 이들은 아무래도 대한민국 고등학생들. 이들이 바라본 21세기 학교와 대학입시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억눌린 삶, 종이비행기에 실어 날리듯 시를...

요즘 중고등학생들의 한숨은 하늘을 찌른다. 대학입시 때문에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다. 억눌린 삶을 하늘에 날리려는 듯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운동장 한가득 뿌리기도 한다. 이러다가 대학입시 압박에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도 한 해 200여명에 이른다는 조사보고도 있다.

이런 아이들이 시를 썼다. 자기의 속마음을 종이비행기에 실어 하늘에 날리듯 시로 풀어서 세상에 던졌다.

최근 출판된 고등학생 81명의 시 묶음집 <버림받은 성적표>(보리)가 바로 그것이다. 이 시집엔 대학민국이라는 곳에서 벌어지는 대학입시라는 전쟁의 참상이 가득 차 있다. 그것도 8,90년대 이야기가 아닌 지금 현재 우리 고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시는 대부분 2002년부터 2004년 새에 씌어졌다.

'야·자라는 구속영장'을 받은 학생들이 탈옥을 시도하고 학원이라는 또 다른 감옥으로 옮겨지는 대학민국 고교생들. 교실 뒷자리에서 수업하다 아이들을 보면 등만 있고 목이 없다. 목 없는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외치는 고교생들. 텔레비전 속의 선생님이나, 담임선생님이나, 우리나, 정말 사람 할 짓이 아닌 것 같다고 울부짖는 우리 아이들.

기다리다 지치신 어머니는 리모컨을 손에 쥔 채 주무시고, 하루를 마친 시각을 보니 오늘이 아니고 내일이 되어 버린 고3 가정들. 이깟 게 뭔데 나와 아버지를 사이를 갈라놓아. 성적표가 싫다고 진저리치는 학생들. (이상 고교생 시 내용 재편집)

고2 대현이는 '야자'라고 불리는 야간 자율학습을 '구속 영장'에 빗댄다.

'야·자'라는 구속 영장

…죄수 명단을 들고 교관이 들어와 인원수를 체크한다./ 압박감에 시달려 탈옥을 체념한 채/ 허리를 굽히고 눈을 감으며/ 엎드리는 죄수는 늘어만 간다./ 종이 울린다./ 동시에 죄수 수십 명이/ 발광하며 뛰쳐나간다./ 문은 열리고/ 그러나 자유여야 할 문 밖은 온통 학원 차뿐,/ 또 다른 감옥으로 옮겨지는 종소리일 뿐이었다.(김대현·부산고 2)


죄를 지은 사람을 죄수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어떤 죄를 지었기에 죄수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들에게서 자유를 빼앗은 이들은 누구인가.

문제를 풀거나 조느라고 고개를 숙인 친구들. 이를 바라보는 동료 고교생의 눈길은 '목 없는 아이들'이란 시 속에서 잘 드러난다.

목 없는 아이들

우리 교실 뒷자리에서/ 수업하다 아이들을 보면/ 등만 있고 목이 없다./ 목 없는 아이들이 불쌍하다.(윤세원·부산고2)


0교시 수업이 되어버린 EBS 방송과외에 대한 학생들의 분노도 대단하다. 교육부가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만든 이 방송과외가 또 다른 부담이 되어 버린 학생들. 최민호군은 이런 현상을 두고 "정말 사람 할 짓이 아닌 것 같다"고 외친다.

방송수업

아침 8시 10분/ 우리 반 장균이는 프린트를 가져온다./ 나머지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켜고 자리에 앉는다./ 화면에 선생님 얼굴이 나오면 애들은 조용해진다./ 그러나 그것도 고작 10분./ 선생님은 목이 터져라 설명하시지만/ 우리는 비몽사몽 정신을 못 차린다./…8시 50분, 왕지각대장 재준이가 등장한다./ …"재준이 빗자리 몽디 가오이라."/ 텔레비전에선 선생님 목이 터져라 설명하시고/ 뒤에 깔리는 타작 소리./ 텔레비전 속의 선생님이나, 담임선생님이나,/ 우리나, 정말 사람 할 짓이 아닌 것 같다.(최민호·부산상고3)


'고3병'은 고3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이런 환자들 가운데 한 명이 바로 고3을 둔 부모들. 살만한 집이야 개인과외나 족집게 강사라도 둘 수 있으니 맘이라도 편하련만 서민 부모들은 속앓이만 한다. 대학입시 전쟁에 나선 학생들의 고통은 곧 가족들의 고통이 된다.

학원수업 마치고

학원수업 마치고/ 집까지 터벅터벅 걸어간다./ 나 때문에 잠가 놓지 않은/ 대문을 여니 불이 환하다./ 먼저 안방으로 간다./ 기다리다 지친 어머니는 리모콘을 손에 쥔 채 주무신다./ …시계는 한 시 반/ 핸드폰을 보니 26일 수요일이라 되어 있다./ 좀 전만 해도 25일 화요일이었는데/ 하루를 마친 시각이 오늘이 아니고 내일이다.(김진휘·부산고2)


대입전쟁 속 아이들이 시를 쓴 까닭은?

밤늦게까지 힘겹게 일하는 어머니, 몸 여기저기에 기름때가 묻은 아버지. 이런 식구들을 갈라놓는 것은 다름 아닌 성적표였다. 이런 것이 입시전쟁보다 더 괴롭다고 학생들은 하소연한다.

버림받은 성적표

…"이게 뭐고. 이게 성적표라고 갖고 왔나?/ 니 이 실력으로 대학 갈 수 있는지 아나?"/ …찌익― 사정없이 성적표를 찢어 버린다./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니 정말 이랄래? 아버지는 니 하나만 믿고 사……."/ 말을 이으시지 못했다.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못난 아들이구나.'/ 성적표가 싫다./ '이깟 게 뭔데 나와 아버지 사이를 갈라놓아.'(장기준·부산고2)


▲ 시집 <버림받은 성적표> 표지
ⓒ2005 보리출판사
전쟁은 힘겹다. 이기기 위해서는 '인정사정도 볼 것이 없다'고 여기저기서 얘기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주변을 때묻지 않은 눈으로 둘러보면 힘겹게 살아가는 장애인 아저씨, 외국인 노동자, 벽돌공 아저씨도 보인다. 아이들은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가꾸고 자신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내일을 꿈꾸고 있다. 더불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그날을.

여기서 물음 하나. '전쟁터에 나선 고등학생이 과연 시를 쓸 수 있을까.' 이 시집을 엮은 구자행 교사는 '엮은이의 말'에서 다음처럼 답하고 있다.

"우리 고등학생들이 새벽에 집을 나서서 (다음 날) 한 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판에 무슨 시 타령이냐고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맞아요. 그렇기는 하지요. 하지만 세상이 입시 하나로 몰아세울수록 시를 쓰는 일은 오히려 더욱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삶을 가꾸기 위해 시를 썼습니다. 느낌이 넉넉해지고, 생각이 깊어지고, 더 나아가 뜻을 올바르게 지니게 됩니다. 곧 사람다운 마음을 지니게 되는 거지요."
이 기사는 인터넷 사이트 <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썼습니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2005년 8월 3일치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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