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반발, 그리고 지지와 이해…. 지난 11일 오전 이수일 전교조 위원장이 연가투쟁 연기를 전격 발표한 뒤 학교의 표정이다. 왜 전체 조합원 가운데 71.7%가 ‘찬성 몰표’를 줬는데도, 연기한 것일까.
이 위원장은 이날 “교육부 교원평가 저지를 위한 투쟁에서 집단연가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무기”라면서 “전교조에 대한 매서운 국민 정서 속에서 연가투쟁이란 무기를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 고뇌 끝에 연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투표에서 확인된 조합원의 뜻을 무겁게 받아 교육부가 11월 25일까지 교원평가 강행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더 큰 규모의 연가투쟁을 벌이기 위해 몸을 바칠 것”이라고 다짐했다.
연가투쟁 연기를 발표한 이날 오후 2시부터 두 시간에 걸쳐 전교조 본부 위원장실에서 이 위원장을 만났다. 삭발을 한 채 닷새를 굶은 그의 얼굴엔 핏기가 없었다. 하지만 말할 때마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연가투쟁을 묻는 총투표 가결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 뜻을 어떻게 받들어서 최대의 성과를 이룰 것인지 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한 조합원의 뜻은 12일 연가투쟁을 하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조합원들은 우리가 연가투쟁에 응할 테니 전교조 집행부는 이를 받아 교원평가 일방 강행을 저지하고 학교혁신을 실현시키라는 뜻이었다고 생각했다. 투표 전까지 12일 연가투쟁을 집행하려고 결심했지만 보수언론의 마녀사냥 속에서 전교조 사상 초유의 위기 상황이 조성됐다. 그래서 뼈를 깎는 각오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연가투쟁보다는 연가투쟁 연기가 더 어려운 길인 것 같다.
“12일 연가투쟁을 벌일 경우 성과에 대한 전망이 그렇게 밝지 않았다. 학부모와 국민의 정서가 더욱 매섭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바뀔 것이란 전직 전교조위원장님들의 충고도 있었다. 11일 아침 연락할 수 있는 시도지부장과 의견을 나눈 뒤, 본부 투쟁본부 회의를 거쳐 고심 끝에 연기를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이번 결정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연가투쟁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우리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며 학교혁신을 이루기 위한 무기인 것이다. 무기는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시기와 상황을 면밀히 검토해 결정을 하고 책임을 지는 것은 위원장의 소임이라고 생각했다. 조합원 사이에 찬반 논란이 가장 염려스런 점이다. 단결을 약화시키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 ‘싸우기 싫어하는 위원장의 잘못된 판단’이란 비판도 있다.
“가장 잘 싸우는 것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고 그 다음 잘 싸우는 것은 적게 싸우고 많이 이기는 것이라고 손자병법은 말하고 있다. 12일 연가를 연기함으로써 사회쟁점화에 성공하고 정부에게 정치적인 압박을 주고 있다. 이것은 연가를 결행했을 때와 비슷한 환경이다. 우리의 목표를 새로운 협상공간에서 최대한 관철하기 위한 것이다.”
- 이번 연기결정을 하면서 고심이 컸을 텐데….
“중앙집행위 계획대로 12일 연가를 집행하면 따로 책임질 부담은 덜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위원장으로서 이렇게 안주할 수는 없었다. 이번 결정에 대한 책임은 내가 감당할 몫이다.”
- 일부 언론은 이번 결정이 사실상 연가 철회라고 보도하고 있다.
“연가투쟁을 통해 우리 목적 달성이 관건이다. 만약 정부당국이 우리가 준 이 기회를 망각하고 상응한 조치가 없을 경우, 우리 전교조는 지금보다 더 큰 명분과 국민 이해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결정은 연가 철회가 절대 아니다. 교육부가 교육평가 중단을 선언하지 않으면 더 큰 규모의 연가투쟁을 벌일 것이다.”
- 지금 ‘마녀사냥’이란 것을 전교조가 당하고 있는데.
“그간 10년 넘게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대해 민중적 관점에서 단호하게 대처해 온 유일한 조직이 바로 전교조다. 평준화 강화 저지, 입시제도 개혁, 사립학교법 개정, 자립형사립고 반대 등을 우리는 몸을 바쳐서 싸워왔다. 수구기득권세력과 교육관료들은 이번에 이런 전교조를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다. 수구기득권세력의 총공세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 그런데 그 총공세가 먹혀들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 저들로서는 부적격교사퇴출, 교원평가란 문제를 던진 게 호재다. 그들에게는 가장 유리한 공략지점이고 우리로서는 가장 대응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교육부는 교원평가야말로 자신의 잘못을 교원에게 떠넘길 수 있는 호재로 보고 있다. 이는 현 참여정부가 정체성을 망각한 처사다.”
- 대선 교육혁신공약 완수율이 0%인데.
“이것이야말로 여당과 정부의 국민배신 행위다. 지금 여당의 지지도조차 아까울 정도다. 교원평가야말로 이런 공약을 반대하는 세력이 총공세로 활용하는 먹잇감이다. 이 문제를 갖고 계속 전교조의 발을 묶어두려고 하는 것이다. 전쟁 실패의 책임을 사병한테 떠넘기는 게 과연 정상적인 것이냐. 지금 교원평가가 바로 그 꼴이다.”
- 이번 교육부 교원평가 반대활동에서 얻은 것과 얻을 것은 무엇인가.
“교원평가 저지 투쟁을 지렛대로 해서 근무평정제 폐지, 교장선출보직제, 교사회 법제화 등으로 상황을 반전해야 한다. 학교자치평가제는 이를 위한 우리의 문제의식이다. 전교조가 책임 있고 설득력 있는 자세로 우리 교육을 바꿔 나가야 교원평가라는 악재를 호재로 만들 수 있다. 근무평정제와 승진문제에 대해 여론을 환기하고 교장승진제 개편방안이 교육혁신위에서 본격 논의되도록 한 것이 우리 성과다. 지난 3월 교육부가 발표한 교원평가제 시안 가운데 독소조항을 빼도록 한 것도 진전이다.”
-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연가투쟁이 곧바로 되었다면 이후 현장 저지투쟁에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연가투쟁 연기를 통해 본부의 협상투쟁과 지역의 거부투쟁이라는 양 날개를 달게 된 점도 있다. 이런 국면 속에서도 교육부가 강행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 조합원들의 분노를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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