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닝(e-learning), 방송과외, 사이버학급 등 올초 2·17 사교육경감대책 이후 방송과 인터넷을 이용한 입시교육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는 방송과외에 해마다 200억씩 들여 2006년까지 모두 600억원을 쏟아붓겠다는 계획이다. 2007년까지 2만4천여 개의 사이버 학급을 두고 인터넷 가정교실을 운영하는 사이버 가정학습 서비스도 올 9월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2·17 사교육대책 교육부 해설서'에 따르면, 이에 드는 돈이 2007년까지 국고, 지방비, 민간예산 등을 모두 합쳐 2778억원이다. 과외방송 시청과 사이버 학급 참여를 위해 학교별로 써야 할 장비 비용까지 합치면 천문학적 수치에 이른다.
안병영 부총리가 갖고 온 수능강좌 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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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부 안병영 부총리는 올해 2월 17일 사교육경감대책을 발표했다. 이것이 논란의 시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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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오마이뉴스 |
안병영 교육부총리 등장 이후 97년에 이어 또 다시 수능강좌라는 봇물이 터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와 시도교육청도 이런 물길 만들기에 가세했다.
강남구청은 지난 27일 강남구 인터넷 방송국을 열었다. 강남 지역 유명 학원강사를 초빙, 6월 1일부터 수능 인터넷 방송을 하기 위해서다. 시도교육청도 이런 움직임에 발맞춰 오는 9월부터 우선 두 개 교육청이 사이버 학급을 만든다. 이 또한 내년부터 16개 전 교육청으로 확대하겠다는 게 교육부가 26일 내놓은 'e-러닝 지원체계 방안'이다.
| 교육부·교육청에 뜬 해괴한 '맹자 엄마' |
| '난다 고교' 교사들은 수업 대신 수능과외에 열중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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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부 팝업창 첫 화면. |
| ⓒ교육부 사이트 |
 | 5월 중순께부터 교육부, 교육과정평가원, 교육개발원을 비롯 16개 시도교육청 홈페이지에 일제히 '맹자 엄마 잠입르포'란 이름의 팝업창이 내걸렸다. 이 창을 누르면 국정홍보처와 교육부가 만든 1분 50초 분량의 애니메이션 '맹자 엄마 잠입 르포'가 나온다.
만년 꼴찌를 면치 못하던 '난다 고교'가 갑자기 도내 1등이 됐는데, '뛴다 고교' 학부모인 '맹자 엄마'가 그 까닭을 캐보려고 '난다 고교'에 잠입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맹자 엄마가 처음으로 본 것은 교사들 회의 모습. 교사들끼리 이야기하는 소리가 나온다.
"예약녹화 잘하고 있어?" "방송일정표도 잘 짜고 있지?" "수능방송 VOD 예산신청 잊으시면 안돼요."
교사들은 수업을 잘하기 위해 회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수능방송을 학생들에게 잘 보여주기 위해 궁리를 한다. 이후 맹자 엄마는 이와 엇비슷한 교사들의 몇몇 모습을 본 뒤, "바로 이거였어!"하고 염탐의 결과에 만족한다.
인성교육을 첫째 덕목으로 삼은 중국의 진짜 '맹자 엄마'도 과연 이랬을까. 맹자의 스승은 또 어땠을까. / 윤근혁 기자 |
| | 이렇게 가다간 수천억원대의 국민 혈세로 무장한 인터넷 사이버학교와 방송과외가 온 나라로 퍼질 것이다. 인생을 판가름할 '결전의 하루'인 수능일을 눈앞에 둔 학생들은 교육부의 발표에 눈치만 살피고 있다.
학교 수업은 뒷전이고 방송과외에 매달리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지적이다. 난데없이 들이닥친 거대한 수능 강좌 홍수인 셈이다.
이런 방송과외 홍수 속에 공교육의 위상은 그 초라한 뼈대를 드러내고 있다. 올해 들어 학교는 교사부족 현상이 더욱 심각해진 것으로 드러났다. 올 5월에 작성된 교육부 자료만 봐도 교원 정원 대비 교사 부족 인원이 3만6005명이나 됐다.
정부가 법으로 정한 교원정원 확보율도 2003년 90.6%이던 것이 올해엔 89.2%로 떨어졌다. 한 해 일만 명 넘게 늘리던 교사 수(02년 10988명, 03년도 12517명)를 올해엔 그 절반(5095명)으로 깎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고교 교사들은 보충수업은 둘째치고 정규 수업 또한 일주일에 한두 시간씩 더 해야 한다고 아우성치고 있다. 이는 곧 공교육의 질 하락을 동반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세계일보 5월 18일치 보도에 따르면 올해 EBS 수능강의를 하면서 학교 도서관 예산도 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 과외 수신 설비 지원사업으로 교육부 예산 200억원을 넘게 쓰면서 도서관 예산 300억원 중 30%인 100억원 이상이 줄어들었다는 보도다.
물론 이 보도에 대해 교육부가 '기자의 오해'라는 해명서를 내긴 했지만 초라한 학교 교육의 위상을 보여줬다는 평가에 동의하는 이들이 많다.
홍수 속에 공교육, 뼈대를 드러내다
이처럼 '수능강좌 퍼주기'에 대한 논란이 이는 가운데 전국언론노동조합 EBS 지부는 28일 성명을 내어 "교육부는 사이버 가정학습을 강화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인간다운 학습을 하도록 공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실 정부에서 추진하는 방송과외와 사이버 교육은 또 다른 공교육이다. 'e-러닝'은 곧 '2-러닝'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의 '2-러닝'은 교사들의 사기와 함께 공교육의 본 모습 또한 왜곡시키고 있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주장이다.
e-러닝의 내용이 사교육인데 정부가 공교육인양 자꾸 행세하면 할수록 학교 학원화를 통해 학교 교육을 허무는 결과를 자초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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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구도 6월 1일 인터넷 수능방송 첫 신호를 전국으로 보낸다. 사진은 강남구 인터넷 방송국 첫 화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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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강남구 site |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박병춘(대전 대신고) 교사는 기사에서 "교사가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것이 수업인지, 우리 학생들이 EBS 교재를 갖고 방송을 듣는 것이 진짜 수업인지 혼란스럽다"면서 "내가 교사로서 가르쳐야 할 교육 내용이 담긴 EBS 테이프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면서 혹시라도 직무유기는 아닐까 의문을 갖게 된다"고 주장했다.
중등학교 교사 출신인 안승문 서울시 교육위원은 "수능방송의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든 일선 고등학교 교사들은 교육방송에 나오는 초일류 강사에 비하면 2류 또는 3류에 불과한 교사로 전락해야 한다"면서 "교육부가 교사들을 방송 안내자나 채널 매니저로 밀어 낸 사실은 곧 공교육의 체온을 급강하시킨 반교육 행위"라고 비판했다.
교사는 방송 안내자나 채널 매니저?
일선 교사들과 전교조, 한국교총,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등 교육시민단체들의 진단을 종합하면 '사이버 교육과 방송과외 홍수에 학교가 떠내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최근 "수능방송의 교재에 나온 것뿐만 아니라 강사가 강의한 내용에서도 수능 문제를 내겠다"고 말했다. 홍수 속에 물길을 더 크게 터 주려는 몸부림인 셈이다. 교육부와 교육과정평가원도 방송과외 내용에서 어떻게 하면 한 문제라도 더 낼 수 있을 것인지를 궁리하고 있는 모습이다. 모두 사교육을 잡겠다는 애국충정의 발로처럼 보인다.
이들의 이 같은 노력을 '100년의 큰 계획'이라는 교육의 역사는 과연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 수능방송 그 후, 대안은? |
| 교육단체들이 말하는 대안 "서울대 폐지와 공동학위제" |
"오죽하면 수능방송이라도 했겠나. 대안은 뭐냐."
정부의 수능방송과 사이버 과외 강화를 반대하는 교육시민단체에 대해 이 같은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이들 단체는 이에 대해 어떻게 답하고 있을까.
보수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회장직무대행 전원범)는 지난 27일 교육부의 사교육비 후속대책과 관련 성명서를 내면서 이에 대한 답을 엿보였다. "사교육비 경감은 입시제도의 개혁과 공교육에 대한 내실화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
전교조,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학벌없는 사회 등 40여 개 교육사회단체로 구성된 범국민교육연대는 한발 더 나아간다. 이들은 최근 내놓은 '공교육개편안'에서 대입제도 개혁과 학벌타파를 통해 '사교육에 대한 근본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증상에 대한 처방이 아니라 원인에 대한 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얘기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사교육 경감을 위해서는 ▲대학입학제도 ▲대학서열체제 ▲교육시스템에 대한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칼질 없이 사교육비를 완화하기 위해 교육부가 내놓은 처방은 '사교육도 못 잡고 학교도 파행으로 몰아가는 교육 동반자살'이라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이들은 ▲수능폐지, 자격고사 실시 ▲서울대 폐지와 국공립대 공동학위제 ▲학력차별금지특별법 제정 등을 대안으로 내놨다. 대학서열화와 학벌주의 청산 없이는 공교육 강화는 물론 사교육비 경감 또한 불가능하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 윤근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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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2004년 6월 1일치에 쓴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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