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똘이장군 부시 “악의 축 발언은 당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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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가마니’가 하나 있다. 쌀이 담겨 있을까, 돌이 담겨 있을까? 쌀이 많으면 쌀가마니고 돌이 많으면 돌 가마니다. 아침마다 강제로 배달하는 소년조선일보를 비롯한 소년신문엔 쌀이 들어있을까? 돌이 들어있을까? (편집자)
신문 가운데엔 ‘오늘의 역사’, 또는 ‘소사’를 싣는 난이 있다. 소년조선 3월 5일치 ‘오늘의 역사’ 난엔 다음처럼 써 있다. “조선일보 창간(1920. 3. 5). 굽히지 않고 일본에 항거해 온 조선일보는 글로써 민족의 정기를 드높였다. …조선일보를 발간, 독립에 대한 민족의식을 일깨웠다.”
세상에 일장기를 제호 위에 올리고 신년호마다 천황의 만수무강을 기원한 신문이 민족신문이라니. 더구나 ‘굽히지 않고 일본에 항거해 온 조선일보'란 말은 아이들을 앞에 두고 내뱉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런 편협성과 왜곡은 소년신문 곳곳에 나타난다. 더구나 소년조선은 미국과 북한문제에서 그 정도를 뛰어넘는다. “적 미사일은 공중에서 파괴…미국을 철벽 요새로” 지난해 3월 9일치 소년조선일보 2면 머릿기사 제목이다. NMD(국가 방어 미사일) 문제를 다룬 위 제목을 보고 미국 어린이신문이라 착각하지 마시라. 날마다 학교에서 공식 배달하고 있는 이 기사 내용은 다음처럼 이어진다. “공화당 출신의 부시 대통령은 힘센 미국을 부르짖고 나왔어요. 힘이 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강력한 군대와 무기를 가져야 하겠죠? ‘NMD’는 이런 목적에서 나온 거예요. …누구라도 미사일을 쏘면, 미사일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하늘에서 박살내겠다는 것이지요. 자기 나라를 지키겠다니 당연한 일이죠” 자기 나라를 지키겠다니 당연한 일이라고? 백번 양보해 그럴 수도 있는 소리라고 치자. 이런 포용력이라면 북한의 미사일 개발도 ‘자기 나라를 지키겠다’는 것이니 이해할 수 있는 일이겠네.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소리다. 소년조선은 올 2월 15일치 ‘북한어린이’란 고정란에서 다음처럼 외치고 있다. “미국은 최근 북한·이란·이라크를 ‘악의 축’이라고 선언하고 나서면서 테러 근절을 위해 더욱 힘을 쏟고 있다. …1990년대부터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의혹이 불거지면서 미국은 더더욱 북한을 테러 국가로 인식하게 되었다. 게다가 핵무기 운반 수단인 장거리 미사일이 개발되어 북한은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테러 국가가 된 것이다.” l 미국 미사일은 당연, 북한은 테러 NMD 개발과 ‘악의 축’ 발언은 우리 정부도 우려를 표명할 정도로 논란이 많은 문제. 아이들한테 이런 친미사대주의 잣대를 번득이는 신문이 우리 나라 소년신문이라는 게 슬픈 일이다. ‘민중엔 무딘 펜촉, 안보상업주의엔 거센 판촉’을 추구하는 소년조선과 조선일보가 ‘아 6·25전’을 개최할 정도로 냉전 전령사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전쟁과 아이들. 어울릴 수 없는 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신문엔 ‘6·25 전쟁’이란 말이 자꾸 나온다. 소년조선의 사설 제목만 펼쳐 보자. ‘6·25 전쟁 교훈을 되새기자’, ‘현장 체험 학습의 장 ‘아! 6·25전’, ‘잊지 말아야 할 6·25전쟁’. 지난 해 6월 26일자 사설에서는 “6·25전쟁을 통해 안보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가에 통일교육 담당교사들은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전쟁을 통해 안보의식을 심어주는 게 통일교육이라고? 이러니 화해, 평화통일교육을 생각하는 순수한 교사들의 몸짓이 죄다 불순하게 보일게다. 지난해 9·11 테러보도도 이런 연장선에 있다. ‘테러=악, 보복공격=성전’이라는 미국 측의 주장만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반대 옥천시민모임에서 분석한 내용을 보면 이 문제에 대해 소년조선은 35, 소년동아 15, 소년한국 22개의 기사를 다뤘다. 이 모임의 전정표 회장은 “소년조선이 전쟁을 흥미위주로 접근하는 자세와 전쟁을 반대하는 견해조차 소개하지 않는 보도태도는 조선일보를 닮았다”면서 “어릴 때부터 이런 내용을 자꾸 다루는 일은 편협한 냉전의식을 아이들에게 세뇌시키는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걱정했다. l 돌 섞인 급식, 돌 섞인 신문 전국 십만여 명의 초등교사들이 아침마다 백만 명이 넘는 초등학생에게 배달하는 소년신문. 한푼의 보상 없이 수십 년째 진행되는 이 일은 사실 ‘희생과 봉사’ 정신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모든 희생과 봉사는 받는 사람한테 도움이 돼야 꽃이 피는 것일 터. 앞서 살펴본 것처럼 소년신문 내용에 문제가 많다면 이는 ‘선의의 희생’과 봉사가 곧 죄를 짓는 일로 된다. 돌멩이 섞인 급식을 아이들에게 줄 수 없는 것처럼 문제 있는 소년신문을 배달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 기사는 주간<교육희망> 2002-04-10 제300호에 실은 글입니다. |
2009년 8월 4일 화요일
심층진단·소년신문, 쌀인가 돌인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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