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람] 창조학교 일궈 가는 진병찬 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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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을 돌보되 사람을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작은 의사'라 하고, 사람을 돌보되 사회를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보통 의사'라 하며, 질병과 사람, 사회를 통일적으로 파악하여 그 모두를 고치는 의사를 '큰 의사'라 한다" 진병찬(35) 교사는 지난 8월 11일 저녁 자신이 일하는 허름한 학교를 나서면서 의사이며 혁명가이기도 한 '노먼 베쑨' 얘기를 꺼냈다. "왜 조그만 방과 후 학교에서 사서 고생하고 있냐"는 물음에 대한 그의 답변은 이랬다. "좀 거창한 얘기긴 해도 저는 큰 교사가 되고 싶거든요. 지식을 가르치되 학생을 돌보지 못하는 교사를 '작은 교사'라 하고, 학생을 돌보되 사회를 돌보지 못하는 교사를 '보통 교사'라 하며, 지식과 학생, 사회 그 모두를 가르치고 돌보는 교사가 '큰 교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큰 교사가 되고 싶거든요" 경남 양산시 웅상읍 매곡리에는 2층 건물인 매곡마을회관이 있다. 이 곳에 진 교사가 텃밭에 씨앗을 뿌리듯 가꿔온 '창조학교'가 있다. "어 그 학교요. 진병찬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만든 대안학교예요. 엄청나죠. 진짜 열심히 합니다." 하루 전 전화통화로 만난 최윤현 전교조 양산지회장의 말이다. 이 칭찬을 떠올리며 진 교사 차를 타고 이 학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쯤. 건물 옆에 붙은 좁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는 진 교사의 몸매는 가냘파 보였다. 2000년 3월 양산지역에서 초등학교 특기적성활동 강사로 일하던 대여섯 명이 진 교사의 꼬임에 걸려들었다. '더 이상 학교 안에서 학원 교육을 해서는 안되겠다'는 게 이들 '동지'들의 다짐이었다. 그리고 아파트 상가 빈터를 얻어 세운 게 바로 창조학교였다.
다음은 창조학교 이영남 교장이 지난 2월 창조학교 이사를 앞둔 때에 연 학부모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2000년, 기대와 설렘으로 창조학교 문을 연 지 이제 꼬박 3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체험학습과 표현교육의 모형을 만들어갔고 이제 많은 사람들의 관심 안에 창조학교가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교사들이 창조한 창조학교 사실이 그랬다. 방과후 학습 격인 주제학습에 이 지역 학생 65명이 거의 날마다 이 학교를 찾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여는 나들이 수업이나 방학 때 여는 계절학교는 현재 수용불가 상태다. 이번 여름 계절학교는 특별한 광고가 없었지만 130명 모집에 250여 명이 몰려 곤란을 겪을 지경이었다. 자연과 공동체 활동을 벗삼은 이 학교 교육프로그램의 우수함이 입과 입으로 전해진 까닭이다. 이제 창조학교는 지역 교육공동체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이 학교를 모르는 주민은 간첩'이라고 할만한 경지에 이른 것이다. 한 달에 한번씩 여는 학부모모임과 함께 올해 초 짜인 이사회가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이 학교 소식지인 '쑥떡콩떡' 3월 27일치에서 지역 공동체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2월 22일 오후 3시 30분 길놀이를 시작으로 창조학교의 새로운 둥지를 알리는 매곡 어울림 마당이 열렸습니다. …이어진 문화공연은 마음사람들과 허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2월 한달 칸막이 문을 달고, 책상을 짜고, 사물함을 만들고, 페인트칠을 하면서 기대와 설렘으로 창조학교의 새로운 한해를 맞이합니다. 지금까지 함께 참여해주신 학부모님과 이사진들이 있어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늘 함께 하는 창조학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시골 마을에 희한한 '창조학교'가 창조됐고 이 학교를 중심으로 마을 주민들이 뭉치고 나선 것이다. 뜨개질, 고무줄 총을 유행시킨 학교 창조학교의 존재는 공교육 기관인 이 지역 초등학교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학교에서 뜨개질을 가르쳐 주었거든요. 그랬더니 지역 초등학교에 뜨개질 열풍이 불기도 했어요. 초등학교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뜨개질을 하고 야단이 아니었죠. 비비탄이 문제가 됐던 시절엔 창조학교에서 고무줄 총 만들기를 했거든요. 그랬더니 고무줄 총 만드는 법 전수 받으려고 학생들이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그한테 최근 정부가 내놓은 '학원 강사의 학교 안 방과 후 수업'에 대한 견해를 떠 봤다. 예상대로 그는 손사래를 쳤다. "공교육이 훼손되는 게 바로 그겁니다. 학교를 고치려고 하질 않고 사교육인 학원의 문제를 옮겨놓겠다는 것이죠. 공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제도와 사람을 바꿔야 합니다. 공교육의 질이 높다면 사교육은 점차 줄어들겠죠. 그런데 지식을 팔아 돈 벌기 위한 사교육에 학교를 내주겠다는 것은 참 문제 같아요." 그 스스로 학교 밖에 있으면서도 학교를 걱정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창조학교 교사들 모두가 한결 같았다. 사정이 이렇게 되니 어느 때부터는 초등학교 교사들이 이 학교 입학을 적극 추천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교사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이 학교에 많이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간혹 다음과 같은 소리도 진 교사 귓가에 들려온다. "창조학교 애들은 못됐다. 버르장머리가 없다." '문제교대생'이 '문제아'를 가르치다 하지만 진 교사는 이들이 이른바 '문제아'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진 교사 스스로 부산교대 재학시절 교수들한테 '문제학생의 대장'으로 낙인찍힌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90·91·92년 교육대학생대표자협의회(교대협)의 임용고시 반대 운동을 기억하는가. 앞에 얼굴을 잘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이를 배후조종(?)한 인물이 바로 진 교사였다. 이 때 진 교사는 교대협 중앙집행위원장을 맡아 전국 11개 교대를 누비고 다녔다. 임용고시 반대 운동을 위한 투쟁방법을 기획하고 목적 교대를 일구기 위한 방안을 내오는 일이 그한테 맡겨졌다. 92년 교대협 의장을 맡은 바 있는 박근병 교사(전 서울교대총학생회장)는 이 때 진 교사의 모습을 다음처럼 떠올렸다. "참 이렇게 순수하게 일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교사로 우리 교대생 모두가 서야 한다는 마음으로 밤을 낮 삼아 일하는 모습에 감동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진 교사는 교대를 나선 후 '초등학교의 교사'가 아닌 다른 '교사'의 길을 택했다. 전교조 양산지회 간사와 글쓰기 학원 강사 등을 거쳐 창조학교를 세운 것이다. "참교사가 무엇일까. 대학 시절과 사회에 나와서 생각을 좀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즐겁게 생활하고 배우는 교사의 삶을 살기로 한 것은 지금도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진 교사의 창조학교 출근 시간은 오전 9시. 일반 교사와 같다. 하지만 퇴근 시간은 저녁 7시다. 그런데 이 게 끝이 아니다. 이 때부터 새로운 교육활동은 시작된다. 뜻을 같이 하는 교사들과 함께 학습을 하고 전교조 양산지회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등 빼곡한 일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활동해서 그가 벌어들이는 한 달 봉급은 80만원이다. 임신 8개월 째인 그의 부인한테 "생활하기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다. "그나마 제가 학교에서 벌고 있잖아요. 아기 낳으면 한 1년 휴직하고 싶기는 한 데 그럴 수는 없겠죠?" 김희선 씨(경남 양산시 웅산초 교사)는 "그래도 창조학교 첫 해엔 40만원 받았는데 2년만에 200% 올랐다"면서 빙그레 웃었다. 진 교사 집엔 텔레비전이 없다. 이 집에 하루 밤 머물며 심심함을 느낀 나머지 "테레비 없으면 무엇하고 지내냐"는 말을 진 교사한테 던졌다. "처랑 얘기하면서 저녁을 보내요. 어떤 땐 초저녁에 시작한 대화가 새벽 3시까지 이어질 때도 있어요. 주로 주제통합학습이나 체험학습에 대한 얘길 나눠요." 기가 턱 막혔다. 어떤 교사는 "처랑 5분 이상 대화를 하지 않는 까닭은 시간을 초과하면 싸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고, 또 다른 교사는 "부부간에 밤늦게 하는 유일한 대화는 부부싸움 아니겠냐"는 말만 들어온 나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하지만 진 교사의 얼굴을 보면 이해가 갔다. 여자 같은 하얀 얼굴에 여린 몸매, 다정한 눈빛은 고생이라곤 한 것 같지 않은 여자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학생들한테 다정하게 대하는 태도를 가정 속에서도 이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외유내강이 분명했다. 삶의 이력을 펼쳐보면 그의 삶은 녹녹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창조학교가 본 괘도에 올랐으니 새로운 학교를 더 만들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새로운 실험을 또 한번 벌여보겠다는 얘기다. 이 말을 들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어디서 일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일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글이 떠올랐다. '큰 교사'란 무엇인가? 공교육체제인 초등학교에서 담임을 맡은이도 교사지만 학교 밖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도 엄연한 교사다. 문제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느냐'에 따라 참 교사와 거짓 교사가 판가름나는 게 아닐까. "교사가 원칙을 잃으면 절대 학생들이 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교사라면 교육의 목표를 잡고 그 목표를 방해하는 문제들과 싸울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이 기사는 월간<우리아이들> 9월호에 쓴 것입니다. |
2009년 8월 25일 화요일
작은 교사, 보통 교사, 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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