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6일 수요일

초등특기적성, 학원업체가 점령

1조5천억 시장, 171개 서울학교 업체와 연결
 
윤근혁
 
사설 학원업체와 관련된 특기적성 교육활동 강사 소개업체들이 초등학교의 특기적성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해 시장규모 1조5천억원 정도로 추정되는 특기적성 활동은 전국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에 외부 강사를 초빙해 교실에서 수업하는 교육형태로 교육부와 교육청은 사설업체와 연결된 계약을 금지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서울시 교육청이 전체 540여 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특기적성 교육현황 문서>와 사설 강사 소개업체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밝혀졌다. 교육부의 '2·17 사교육 경감대책' 이후 '탈법과 불법이 판을 치고 있다'는 소문이 자료를 통해 광범위하게 사실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학교에 소위 '영업'이라는 것을 했다"

▲ 서울교육청이 실시한 특기적성활동 현황조사 문서를 보면 특정 업체 소속 강사가 학교장과 불법 계약을 맺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진은 일부 내용으로 강사 이름과 경력, 학교 이름은 가렸다.
ⓒ2004 윤근혁
서울시 교육청 <특기적성 교육현황 문서>에 따르면 상당수의 학교장은 특정업체 소속 강사와 계약을 맺는 등 교육부와 교육청이 만든 '특기적성 교육활동 운용 지침'을 어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 운영지침에 따르면 "강사파견 업체와 계약은 금한다. 임용 계약은 학교장과 강사가 직접 한다"고 돼 있다.

<특기적성 교육현황 문서>에 언급된 '강사 소속 단체'는 매직캐슬, 하늘아이, 에이플러스과학나라, 마술샘터, 세스넷, 레고닥타, 버그박사, 한수학(무순) 등이다. 또한 서울 남부교육청 소속 ㄱ, ㅅ초등학교 등 몇 개 학교는 아예 인근 학원강사가 직접 학교로 나와 가르치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기적성 교육활동이란?

특기적성 교육활동이란 정규 교육과정에서 충족시키기 어려운 예체능과 기술교육 등을 방과 후에 초등학교 교실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말한다. 따라서 직접 교육과정과 관련된 국어, 수학, 사회 등과 같은 과목은 배제된다. 사교육 수요를 학교에서 흡수해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것이 제1목표다.

초등학교의 경우 지난해 전체 학생들의 29%인 122만 명이 참여했다. 하지만 사교육경감대책을 발표한 교육부는 올해 50% 수준인 210만 명 참여를 목표로 삼고 있다. 대부분 외부 강사(80%)가 수업을 진행하며 일부 현직교사들도 참여하고 있다.

학교마다 한 해에 300만원에서 500만원 정도씩을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다. 이 돈은 대부분 강사 수당보조비로 활용된다. 서울교육청이 올해 잡아놓은 강사수당 보조비는 1억7천만원이다. / 윤근혁 기자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 업체들은 특기적성 강사를 소개하는 대신 알선비용과 함께 재료·교재비를 따로 챙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업체는 자사 사이트에서 "지사의 순수익 산정 기준치는 한 학교 당 월 50만원이며 한 교사를 2-4개 학교에 근무시킴으로써 고수익을 보장할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한 업체 고위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 학교장과 소위 '영업'이라는 것을 하고 강사들도 자체 연수를 시켜야 하기 때문에 로얄티 개념으로 돈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특기적성 강사로 일한 바 있는 ㅇ 아무개 씨(34)는 "학교장과 개인 계약을 맺는 형식을 취하지만 실제 돈은 회사가 받고 있다"면서, "일부 금액을 빼고 월급 형태로 임금을 지급 받았다"고 말했다.

특기적성교육 시행 이후 교원단체와 학부모단체들은 "사교육비를 줄이려고 만든 특기적성 교육이 오히려 사교육 팽창에 기여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이미 학교 안팎에서 이러한 내용이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서울지역에만도 171개 이상이 지침을 어기고 특정업체와 연결된 것으로 확인됐다. 강사 소개업체 가운데 한 업체의 자료에 따르면 이 회사와 연결된 서울지역 초등학교는 로봇교실 109개, 논리셈·속독 62개 등 모두 171개(중복학교 포함)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업체 관계자는 "현재 전국 350개 학교에 강사를 파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교육부와 학원총연합회가 후원하고 한 신문사가 주최한 대회에서 '교육산업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 업체는 전국에 지정 사설학원 68개를 거느리고 있다.

이 업체 자료의 신빙성을 따져보기 위해 서울시교육청에서 조사한 <특기적성 교육현황 문서>에 나온 학교의 강좌명을 견주어 본 결과 대부분 일치했다. 서울 강○초, 금○초, 도○초, 매○초 등 수십여 개 학교는 '강사 소속 단체'로 이 업체이름을 직접 적어 놓기도 했다. 한 개 업체가 이렇듯 수백 개의 학교와 계약을 맺은 사실이 밝혀진 만큼 이 같은 탈법 계약이 전국 학교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탈법 계약, 적어도 서울만 171개 이상

▲ 한 업체 자료에서 밝혀진 서울지역 계약 관계 학교. 이 업체는 사이트에서 '커뮤니티를 통해 (해당학교) 지도교사와 의견을 나눌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학교 이름 가운데 둘째 글자는 편집자가 0자로 표시했다.
ⓒ2004 윤근혁
이 같은 사실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은 "업체와 직접 계약을 맺거나 업체가 파견한 강사와 계약을 맺는 형태는 모두 불법"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서울시교육감이 각 학교에 내려보낸 '특기적성 교육활동 운영지침'에는 "강사파견 업체와 계약은 금한다. 임용 계약은 학교장과 강사가 직접 한다"고 적고 있다. 고등학교 '보충수업'과 달리 사설 업체 또는 학원 강사가 초등학교에 들어오는 형태를 원천적으로 막아 놓은 셈이다.

서울시교육청 특기적성활동 실무 책임자인 문 아무개 장학관은 5일 전화통화에서 "파견업체 또는 소속 강사들과 계약하지 말도록 공문과 회의자료를 통해 수없이 강조했다"면서 "만약 파견업체 소속 강사와 계약한 사실이 드러난 학교장은 모두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건 서울시교육위원은 "시정질의에서 유인종 교육감도 업체 소속 강사와 계약한 학교장이 밝혀지기만 하면 즉시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는데 어처구니없는 일이 터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당국이 이 같은 탈법, 불법 사실을 알면서도 교육부가 내놓은 '사교육 대책'에 흠이 갈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못 본 척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전교조 서울지부 김민석 초등위원장은 "뒤틀린 사교육 대책 속에 초등학교가 특별한 투자 없이 들어온 사설업체들의 이윤추구의 장이 됐다"면서 "이미 업체들의 실체는 학교 주변에서 알려 질대로 알려진 상황이라 교육청이 몰랐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참교육학부모회 윤숙자 부회장은 "학부모 입장에서 특기적성활동은 또 하나의 과정일 뿐 사교육을 줄이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제는 학교 특기적성 활동에까지 사설학원 업자들과 업체들의 농간이 끼어 들고 있는 것을 보니 기가 막힐 뿐"이라고 말했다.

참교육 학부모회와 전교조는 ▲학교학원화 정책 반대 ▲특기적성 활동 전면 재검토 ▲특기적성 불법 사례 전면 재조사 등을 요구하는 공동 성명서를 빠르면 이번 주 안에 발표할 예정이다. 서울시교육청은 5일 "특기적성 강사 계약 과정에서 불법 사례가 정말로 있었는지 조사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초등학생들의 특기적성 교육을 놓고 벌이는 '사교육 복마전'의 고리를 과연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지, 교육부와 교육청의 해법 마련에 교육계가 주목하고 있다.

"외부업체 개입이 초등 0교시 주범"
참교육학부모회 기자회견, 특기적성 교육활동 문제 거론

"외부 사설학원과 업체가 개입하니까 초등에서도 자꾸 0교시가 진행되는 겁니다."

참교육학부모회(회장 박경양)는 초등학교 특기적성 교육활동 파행과 관련 지난 6월 28일 기자회견을 같고 이같이 주장했다.

박경양 회장은 이날 "초등학교에서 불법적, 파행적인 0교시가 전국적으로 실시되고 있으며 사설학원과의 유착에 의해 그 정도를 더 심해지고 있다"면서 "사설학원의 시설투자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컴퓨터나 영어 과목의 경우 투자비 환수를 위한 0교시수업을 부추기고 있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윤숙자 부회장도 “사교육경감 방안으로 시작된 초등학교 방과후 특기적성교육이 0교시에 실시됨에 따라 오히려 사교육 과목 수만 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면서 “특기적성 교육이 오히려 사교육비를 가중시키고 학생들의 심신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참교육학부모회는 이날 0교시 수업을 진행하는 30여 개 초등학교의 명단을 공개하면서 교육부가 0교시 수업 실태와 특기적성 활동 파행 사례 조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반면 서울시교육청 초등교육과 중견간부는 “현재 초등 0교시에 대해서는 금지하도록 각 학교에 공문을 보낸 상태”라면서 “대부분 중단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7월 현재 서울 지역 상당수의 학교가 교육청의 공문을 무시한 채 0교시 수업을 강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정쩡한 교육당국의 태도 속에 말 않듣는 학교만 늘어나는 셈이다. 물론 이들 학교 뒤엔 업체들이 있다.
/ 윤근혁 기자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2004년 7월 7일치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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