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6일 수요일

“학부모가 거부감 갖는 잡지 될 것”

만남/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겸 편집인 김규항 씨―
 
윤근혁
 

▲김규항씨 사진.     ©윤근혁
뜻밖에도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겸 편집인은 김규항(41) 씨다. <B급 좌파>(야간비행)란 책에서 스스로를 얼치기 좌파로 규정한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출판 쪽에서 일하다 뒤늦게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한겨레21 <쾌도난담>, 씨네21 칼럼 <유토피아디스토피아> 등으로 세상에 알려진 인물이다.


문화비평과 사회비평으로 세상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킨 그가 왜 돈도 크게 되지 않을 것 같은 어린이 잡지를 만들려고 했을까. 그 까닭은 분명했다. 10월 20일 저녁 서울 홍대입구 전철역 근처에 있는 <고래가 그랬어> 사무실에서 그는 다음처럼 절박한 마음을 나타냈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대개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사람들이라는 사실과 그들이 내 글을 제 얼마간의 사회의식을 배설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삶에 대한 태도를 바꿀 가능성이 남은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만드는 게 절실하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깨닫게 된 것이지요.”


그가 찾은 대상은 아이들.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무조건 받아들여 머리는 물론 가슴까지 새롭게 만들어 가는 이들에게 교양잡지를 선물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혼자 만들 수는 없을 텐데.

“물론 같이 일하는 식구들이 함께 만들지요. 더구나 편집자문위원으로 이오덕, 권정생, 윤구병 선생님들이 도와주셨지요.”


-이오덕 선생님이 많이 간여하셨나.

“‘만화라는 그릇ꡑ을 사용한다는 내 생각을 이오덕 선생님은 무릎을 치며 반겼지요. 선생님은 한글 교열을 자청하기도 하셨어요.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어떤 생각을 심어주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아직 가지고 있다는 걸 믿어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그게 잘 열매 맺도록 도와주는 것이다.’는 당부를 하셨지요. 선생님의 당부는 내내 기획 작업의 기조가 되었습니다.”


- 잡지 이름이 왜 <고래가 그랬어>인가.

“봄, 싱싱 등 여러 이름을 검토했어요. 하지만 이런 이름 자체가 아이들을 대상화하는 어른 식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 잡지제목이 꼭 내용을 함축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고래가 그랬어>란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일단 편안한 호기심이 생기잖아요.”


김규항 씨는 잡지사 다니는 사람과 달리 생각 이상으로 단정했다. 스포츠보다 약간 긴 머리를 한 그를 학교 운동장에 모셔다 놓으면 바로 체육선생님처럼 보일 것 같았다. “생각보다 깔끔하게 생겼다”는 내 말에 그는 “모범적으로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글 씁네 작가 입네 하고 괴상하게 행동하고 노동에서 열외되고 하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고 대꾸했다.


- 스스로를 좌파라고 하신 분이 발행인을 맡았으니 애들까지 좌파로 만드는 것 아닌가.

“그렇게 만들면 정확한 거죠.(웃음) 세상이 중립적이지 않은데 중립적인 교양지를 만들 수는 없고 그런 거라면 굳이 내가 할 건 없다고 생각해요. 절반 이상의 부모가 이 잡지에 대한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왜 그런가. 장사도 해야 할텐데.

“아이들은 수백만 명이에요. 장사로 보면 이 가운데 10만명만 봐도 성공하는 것이지요.”


- 상업주의에 타협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당연합니다. 아이들한테 주는 정신적 음식이니까요. 아이들 먹을 것에  좋지 않은 화학재료를 섞으면 죽일 놈이라 다들 욕하지요.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일단은 잡지가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나.

“우리는 버틸 수 있어요. 삼 개월에서 육 개월이면 자리를 잡을 것이라 봐요. 우리 잡지를 본 어린이들의 표정을 보면 자신감이 생겨요. 삼십대 중반 이상의 어른들은 좀 어수선하다는 평을 하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하나같이 편하고 재미있어 하거든요. 인터넷 서점 알라딘 같은 곳은 잡지 부문 1위, 예스24는 3위까지 올라갔는데 그런 반응은 오프라인에서도 일반화될 거라 봅니다.”


-앞으로 계획은?

“어른들이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꾸준히 만들려고 합니다. 다음달쯤에 선보일 우리 홈페이지는 우리나라 최초로 어린이 토론 공간으로 만들려고 해요.”


김 발행인은 “일단 <고래가 그랬어>를 우선 읽어보시고 좋다고 생각하면 주변에 권유 좀 해달라”는 부탁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고래가 살려면 물도 필요한 법. 그는 뜻 있는 교사들이 “힘을 보태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우리아이들> 11월호에 쓴 것입니다.

 
2003/10/22 [23:59] ⓒ 윤근혁의 교육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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