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5일 화요일

작은 교사, 보통 교사, 큰 교사

[이사람] 창조학교 일궈 가는 진병찬 교사
 
윤근혁
 

▲창조학교 문패 앞에 선 진병찬 교사.     ©윤근혁
'닥터 노먼 베쑨'이란 책을 펼치면 서문에 다음처럼 적혀 있다.

"질병을 돌보되 사람을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작은 의사'라 하고, 사람을 돌보되 사회를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보통 의사'라 하며, 질병과 사람, 사회를 통일적으로 파악하여 그 모두를 고치는 의사를 '큰 의사'라 한다"

진병찬(35) 교사는 지난 8월 11일 저녁 자신이 일하는 허름한 학교를 나서면서 의사이며 혁명가이기도 한 '노먼 베쑨' 얘기를 꺼냈다. "왜 조그만 방과 후 학교에서 사서 고생하고 있냐"는 물음에 대한 그의 답변은 이랬다.

"좀 거창한 얘기긴 해도 저는 큰 교사가 되고 싶거든요. 지식을 가르치되 학생을 돌보지 못하는 교사를 '작은 교사'라 하고, 학생을 돌보되 사회를 돌보지 못하는 교사를 '보통 교사'라 하며, 지식과 학생, 사회 그 모두를 가르치고 돌보는 교사가 '큰 교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큰 교사가 되고 싶거든요"

경남 양산시 웅상읍 매곡리에는 2층 건물인 매곡마을회관이 있다. 이 곳에 진 교사가 텃밭에 씨앗을 뿌리듯 가꿔온 '창조학교'가 있다.

"어 그 학교요. 진병찬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만든 대안학교예요. 엄청나죠. 진짜 열심히 합니다."

하루 전 전화통화로 만난 최윤현 전교조 양산지회장의 말이다. 이 칭찬을 떠올리며 진 교사 차를 타고 이 학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쯤. 건물 옆에 붙은 좁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는 진 교사의 몸매는 가냘파 보였다.

2000년 3월 양산지역에서 초등학교 특기적성활동 강사로 일하던 대여섯 명이 진 교사의 꼬임에 걸려들었다. '더 이상 학교 안에서 학원 교육을 해서는 안되겠다'는 게 이들 '동지'들의 다짐이었다. 그리고 아파트 상가 빈터를 얻어 세운 게 바로 창조학교였다.

▲창조학교 모습.     ©윤근혁
'창조'란 '이제까지 없었던 일을 새로 만들어 내는 일'(두산 대백과사전)을 말한다. 창조학교도 이제까지 없었던 학교 형태를 띠고 있다. 전국에 학부모들이 모여 만든 방과 후 학교는 좀 있지만 이처럼 교사들이 직접 세운 학교는 창조학교가 처음이다.

다음은 창조학교 이영남 교장이 지난 2월 창조학교 이사를 앞둔 때에 연 학부모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2000년, 기대와 설렘으로 창조학교 문을 연 지 이제 꼬박 3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체험학습과 표현교육의 모형을 만들어갔고 이제 많은 사람들의 관심 안에 창조학교가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교사들이 창조한 창조학교

사실이 그랬다. 방과후 학습 격인 주제학습에 이 지역 학생 65명이 거의 날마다 이 학교를 찾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여는 나들이 수업이나 방학 때 여는 계절학교는 현재 수용불가 상태다.

이번 여름 계절학교는 특별한 광고가 없었지만 130명 모집에 250여 명이 몰려 곤란을 겪을 지경이었다. 자연과 공동체 활동을 벗삼은 이 학교 교육프로그램의 우수함이 입과 입으로 전해진 까닭이다.

이제 창조학교는 지역 교육공동체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이 학교를 모르는 주민은 간첩'이라고 할만한 경지에 이른 것이다.

한 달에 한번씩 여는 학부모모임과 함께 올해 초 짜인 이사회가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이 학교 소식지인 '쑥떡콩떡' 3월 27일치에서 지역 공동체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2월 22일 오후 3시 30분 길놀이를 시작으로 창조학교의 새로운 둥지를 알리는 매곡 어울림 마당이 열렸습니다. …이어진 문화공연은 마음사람들과 허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2월 한달 칸막이 문을 달고, 책상을 짜고, 사물함을 만들고, 페인트칠을 하면서 기대와 설렘으로 창조학교의 새로운 한해를 맞이합니다. 지금까지 함께 참여해주신 학부모님과 이사진들이 있어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늘 함께 하는 창조학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시골 마을에 희한한 '창조학교'가 창조됐고 이 학교를 중심으로 마을 주민들이 뭉치고 나선 것이다.

뜨개질, 고무줄 총을 유행시킨 학교

창조학교의 존재는 공교육 기관인 이 지역 초등학교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교실 1/3 크기인 교사연구실에 앉은 진 교사는 얼굴에 웃음기를 풀지 않고 자랑스레 말을 이었다.

"우리학교에서 뜨개질을 가르쳐 주었거든요. 그랬더니 지역 초등학교에 뜨개질 열풍이 불기도 했어요. 초등학교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뜨개질을 하고 야단이 아니었죠. 비비탄이 문제가 됐던 시절엔 창조학교에서 고무줄 총 만들기를 했거든요. 그랬더니 고무줄 총 만드는 법 전수 받으려고 학생들이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그한테 최근 정부가 내놓은 '학원 강사의 학교 안 방과 후 수업'에 대한 견해를 떠 봤다. 예상대로 그는 손사래를 쳤다.

"공교육이 훼손되는 게 바로 그겁니다. 학교를 고치려고 하질 않고 사교육인 학원의 문제를 옮겨놓겠다는 것이죠. 공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제도와 사람을 바꿔야 합니다. 공교육의 질이 높다면 사교육은 점차 줄어들겠죠. 그런데 지식을 팔아 돈 벌기 위한 사교육에 학교를 내주겠다는 것은 참 문제 같아요."

그 스스로 학교 밖에 있으면서도 학교를 걱정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창조학교 교사들 모두가 한결 같았다.

사정이 이렇게 되니 어느 때부터는 초등학교 교사들이 이 학교 입학을 적극 추천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교사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이 학교에 많이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간혹 다음과 같은 소리도 진 교사 귓가에 들려온다.

"창조학교 애들은 못됐다. 버르장머리가 없다."

'문제교대생'이 '문제아'를 가르치다

하지만 진 교사는 이들이 이른바 '문제아'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진 교사 스스로 부산교대 재학시절 교수들한테 '문제학생의 대장'으로 낙인찍힌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90·91·92년 교육대학생대표자협의회(교대협)의 임용고시 반대 운동을 기억하는가. 앞에 얼굴을 잘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이를 배후조종(?)한 인물이 바로 진 교사였다.

이 때 진 교사는 교대협 중앙집행위원장을 맡아 전국 11개 교대를 누비고 다녔다. 임용고시 반대 운동을 위한 투쟁방법을 기획하고 목적 교대를 일구기 위한 방안을 내오는 일이 그한테 맡겨졌다.

92년 교대협 의장을 맡은 바 있는 박근병 교사(전 서울교대총학생회장)는 이 때 진 교사의 모습을 다음처럼 떠올렸다.

"참 이렇게 순수하게 일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교사로 우리 교대생 모두가 서야 한다는 마음으로 밤을 낮 삼아 일하는 모습에 감동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박 교사는 "교대협 의장 일을 하면서 진 교사를 만난 것은 큰 소득이었다"면서 "지금도 가끔 힘들 때면 진 교사를 만나 힘을 얻곤 한다"고 덧붙였다.

진 교사는 교대를 나선 후 '초등학교의 교사'가 아닌 다른 '교사'의 길을 택했다. 전교조 양산지회 간사와 글쓰기 학원 강사 등을 거쳐 창조학교를 세운 것이다.

"참교사가 무엇일까. 대학 시절과 사회에 나와서 생각을 좀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즐겁게 생활하고 배우는 교사의 삶을 살기로 한 것은 지금도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진 교사의 창조학교 출근 시간은 오전 9시. 일반 교사와 같다. 하지만 퇴근 시간은 저녁 7시다. 그런데 이 게 끝이 아니다. 이 때부터 새로운 교육활동은 시작된다. 뜻을 같이 하는 교사들과 함께 학습을 하고 전교조 양산지회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등 빼곡한 일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병과 진병찬 교사 부부.     ©윤근혁
임신 8개월 부인한테 주는 80만원

이렇게 활동해서 그가 벌어들이는 한 달 봉급은 80만원이다. 임신 8개월 째인 그의 부인한테 "생활하기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다.

"그나마 제가 학교에서 벌고 있잖아요. 아기 낳으면 한 1년 휴직하고 싶기는 한 데 그럴 수는 없겠죠?"

김희선 씨(경남 양산시 웅산초 교사)는 "그래도 창조학교 첫 해엔 40만원 받았는데 2년만에 200% 올랐다"면서 빙그레 웃었다.

진 교사 집엔 텔레비전이 없다. 이 집에 하루 밤 머물며 심심함을 느낀 나머지 "테레비 없으면 무엇하고 지내냐"는 말을 진 교사한테 던졌다.

"처랑 얘기하면서 저녁을 보내요. 어떤 땐 초저녁에 시작한 대화가 새벽 3시까지 이어질 때도 있어요. 주로 주제통합학습이나 체험학습에 대한 얘길 나눠요."

기가 턱 막혔다. 어떤 교사는 "처랑 5분 이상 대화를 하지 않는 까닭은 시간을 초과하면 싸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고, 또 다른 교사는 "부부간에 밤늦게 하는 유일한 대화는 부부싸움 아니겠냐"는 말만 들어온 나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하지만 진 교사의 얼굴을 보면 이해가 갔다. 여자 같은 하얀 얼굴에 여린 몸매, 다정한 눈빛은 고생이라곤 한 것 같지 않은 여자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학생들한테 다정하게 대하는 태도를 가정 속에서도 이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외유내강이 분명했다. 삶의 이력을 펼쳐보면 그의 삶은 녹녹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창조학교가 본 괘도에 올랐으니 새로운 학교를 더 만들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새로운 실험을 또 한번 벌여보겠다는 얘기다. 이 말을 들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어디서 일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일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글이 떠올랐다.

'큰 교사'란 무엇인가?

공교육체제인 초등학교에서 담임을 맡은이도 교사지만 학교 밖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도 엄연한 교사다. 문제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느냐'에 따라 참 교사와 거짓 교사가 판가름나는 게 아닐까.

"교사가 원칙을 잃으면 절대 학생들이 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교사라면 교육의 목표를 잡고 그 목표를 방해하는 문제들과 싸울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진 교사의 이 같은 말을 들으며 '큰 교사'의 뜻을 되새겨 보았다.

이 기사는 월간<우리아이들> 9월호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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