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 초대 전교조 위원장 윤영규 선생 민주사회장 | |||||||||||||||||
| 4월 4일 오후 12시 36분, 그가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는 국립 5·18 묘지를 찾았다. 가로 5m, 세로 3m 크기의 영정이 맨 앞에 섰다. 그 뒤를 태극기가 따랐다. 이어 20여 개의 오색만장이 휘날렸다. "영원히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겨레의 스승, 선생님의 넋을 기립니다." "참스승 잊지 못합니다."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이 묘지 전체에 울려 퍼졌다. 광주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추념문을 지나 참배광장에 다다랐다. 관 위에 손을 얹고 절뚝거리며 걷는 이귀님 여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장녀 윤지현씨 등 7명의 딸들이 번갈아 가며 어머니를 부축했다. 5·18민중항쟁추모탑을 지나니 묘역이 나왔다. 묘역 맨 앞자리 가운데, 고인이 누울 자리(제 5묘역 51번 묘)가 마련되어 있다. 이날 정부가 고인에게 추서한 국민훈장 모란장이 묘 자리 앞에 놓여 있다. '전교조를 통한 교육민주화와 5·18계승운동을 통한 사회민주화'를 이룬 공로다. 200여 명의 추모객들은 하관식을 앞두고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하관식은 기독교식으로 치렀다. 식을 집전한 강신석(광주 무진교회) 목사는 다음처럼 입을 뗐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역사의 한 밀알로 쓰셨다. '교사도 노동자다.' 이 한마디로 한국역사를 변화시켰다. 노동자가 무지렁이가 아니라 신성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성서의 내용을 알려주셨다." 묘 자리에 고인의 관이 눕고, 대리석이 그 위에 놓였다. 눈물을 보이지 않던 이 여사가 "우~우흐응" 하는 가슴 속 울음을 토해냈다. 딸 7명은 아버지 영전에 마지막 절을 올렸다. 여기저기서 추모객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박형규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고인을 위해 마지막 기도를 드렸다. "이제부터 영원히 윤영규의 그 정신을 이어 받아서 나가게 해 주십시오. 참교육과 이 민족의 평화를 위해서…." 오후 1시 16분, 이렇게 그는 떠났다. 박준영 전남지사 "먹구름 헤쳐 온 정의의 투사 잊으면 안 돼" 이수일 전교조위원장 "참교육 쉬지 않고 앞장서신 큰 스승"
장례위원장을 맡은 박형규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송기숙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위원장을 비롯, 이수일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 전교조 전 위원장 등 참석자들은 유족들의 오열 속에 고인의 넋을 기렸다. 박준영 전라남도 도지사는 조사에서 "전교조의 대부이시자 민주화운동의 지도자이신 윤영규 전 이사장은 가셨지만, 고인의 업적은 기리 남을 것"이라면서 "오늘날의 바람이 부드럽다고 해서 지난 날 먹구름을 헤쳐 온 정의의 투사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수일 전교조 위원장도 "선생님께서는 참교육 운동에서 항상 대중노선을 걸으면서도 한번도 쉬지 않고 언제나 앞장서셨던 참스승"이라면서 "우리 시대가 선생님을 가진 것이 자랑스럽고 시간이 지날수록 선생님을 더욱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영결식을 치른 운구행렬은 전라남도 도청 앞에서 노제를 지낸 뒤, 전교조 광주지부 사무실과 고인의 자택을 거쳐 5·18묘지에 도착했다. 하루 전인 3일 오후 2시, 전교조는 전국에서 모인 교사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5·18기념문화관 대동홀에서 '참스승 고 윤영규 선생 추모식'을 열고,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참교육운동을 더 굳건히 펼쳐나갈 것'을 다짐했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2005년 4월 5일치에 쓴 것입니다. | |||||||||||||||||
2009년 8월 27일 목요일
'참교육의 별' 하늘로 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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