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5일 화요일

“내년 총선에 교장후보 국회 보내자” 정치연설엔 환호, 초등생 공연 '텅텅'

[잠입취재] 교장협 5천명의 이상한 '정치집회'
 
윤근혁
 
제주 중문관광단지에 나타난 100여대의 버스

▲ 개회식 전 행사장 입구.
ⓒ2003 윤근혁
제주도 남단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와 여미지 식물원 사이에 있는 제주국제컨벤션센터. 7월 28일 오전 9시부터 국내 최대의 리조트 시설이 있는 이 곳에 관광버스 100여대가 몰려들었다.

관광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전국에서 모인 초등학교 교장들로 이들은 최근 학교 돈 전용으로 말썽을 빚은 한국초등교장협의회(회장 이승원, 교장협) 연수에 참석한 것이다. 교장협은 보수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회장 이군현, 한국교총)의 산하조직이다.

오전 9시 30분 1229평 규모의 컨벤션센터 탐라홀 문을 열고 들어서자 3, 4, 5층을 터서 만든 이 홀이 5000여명의 교장들로 가득차 있었다. 전국 초등학교는 모두 5400여개다. 무대 위 현수막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써 있었다.

"한국초등교장협의회 하계 연수회 주제 : 시대변화에 앞서가는 학교경영, 후원: 제주도교육청,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회사를 하려고 연단에 선 이승원(서울대방초 교장) 회장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연설 내용의 80% 정도를 전교조를 비난하는 데 할애했다.


이 회장 "온정주의에 젖으면 공격받는다"

▲ (위) 현관에 걸린 현수막. (아래) 교장협이 나눠준 자료들. 교총소식과 교육공동체연합 입회원서가 보인다.
ⓒ2003 윤근혁
"강성 집행부임을 과시하며 투쟁일변도로 나오고 있는 교원노조의 끝이 보이고 있지만, 이들과 학교 경영자 사이엔 보이지 않는 전선이 구축되고 있다. …저들은 온정주의에 젖어 아량을 베풀거나 혼자 겉도는 관리자를 표적으로 집중 공격하고 있다."

이 회장의 대회사가 끝나자 장내에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는 이날 나눠준 연설문에 없는 내용을 덧붙여 가며 전교조를 겨냥했다.

"전교조 이후 출세하려는 자들이 교육감과 교육위원으로 진출해서 학교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전교조는 교장들의 하계 연수를 관광연수로 만들어 모든 일간지에 실었다. 지금도 숨어서 녹화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교장들이) 전교조를 포용해 왔지만 이제는 온정주의로 나가면 갈등이 증폭된다."

그는 연설 끝부분에 "당초 인쇄된 대회사엔 없지만 몇 가지를 더 말하겠다"면서 미리 준비된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한국교총은 유일한 전문직 합법단체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밀어줍시다. 교육공동체시민연합이 왜 창립됐냐. 안티 전교조를 외치며 창립한 것이다. 우리 교장들도 모두 회원으로 가입하고 양심 있는 학부모는 모두 참여시킵시다."

"정치활동 나서 정년연장 불씨를..." 정치활동 선언

그는 연설의 결론을 '교장의 정치활동'을 역설하는 것으로 끝맺었다.

"교육장관과 국회의원을 세우는 작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자. 내년 총선에 우리의 대변인을 국회에 보내는 데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여성 교장을 입후보시켜 대대적으로 당선시키자. 이를 통해 교원 정년연장의 불씨를 살리자."

순간 장내는 술렁거렸다. 돌출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전남 장흥유치초등 김청길(61·장흥군 교장협의회 회장) 교장이 무대 앞으로 뛰어나와 고함을 지른 것.

"네놈들이 교장 대표 맞나. 회장이 이걸 연설이라고 진행하고 있냐. 정치놀음하자는 것이냐."

사회자는 장내방송을 통해 "조용히 해!"라며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뱉았다. 이 기세에 눌렸는지 김 교장은 "더러운 X들"이란 혼잣말을 한 뒤 행사장을 떠났다.

"우리가 잘하면 되지 왜 맨날 전교조 욕입니까.
[인터뷰] 행사장서 교장협 탈퇴 선언한 장흥 교장회 김청길 회장

▲ 김청길 교장
ⓒ윤근혁
"즈그들 정치할려고 상놈의 ××들. 저것들도 교장단 대표라고. 참 나. 정치적인 냄새가 나서 고함 치고 그냥 나와버렸어요."

이날 이승원 교장협 회장의 연설 도중 무대 앞에서 고함을 친 김청길 전남 장흥 교장회 회장(유치초 교장 61). 그는 행사장 밖으로 나온 직후 연신 숨을 몰아 쉬었다.

"우리가 잘하면 되지 무슨 전교조 욕입니까. 지들은 잘못하면서 맨날 전교조, 전교조만 해요. 나는 전교조 나쁘다고 안 해요. 전교조 생기고 수직적인 교육이 민주적으로 됐잖아요."

그는 "수업 열심히 하는 전교조 교사들이 얼마나 많냐"면서 "전남 장흥고는 전교조 교사가 다인데 수업 잘해서 좋은 대학 얼마나 많이 가는 지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흘러내리는 땀을 손으로 닦았다. 이 때 교장협 간부인 듯한 이가 다가왔다. 김 교장이 쏘아붙였다.

"교원정년 1년 연장하는 걸 얘기해야지. 왜 정치 참여나 전교조 얘기만 하는 거야. 정년 연장은 우리 자존심의 문젠데…."

그한테 교장협의 학교 돈 전용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그는 "이것도 언젠가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 행사하면서 학교 돈을 빼오는 것 떳떳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기자에게 교장협 탈퇴 의사를 밝혔다.

"나 학교 가면 초등교장단 탈퇴해 버릴 겁니다. 결의문 내용도 그렇고 어디 우리 의견이 민주적으로 수렴되는 조직이 아니에요. 밤낮 정치적인 냄새나 풍기고 교육적이지도 않지요."

그는 "자신의 말이 많은 사람한테 알려졌으면 좋겠다"면서 "<오마이뉴스>에서 정당한 내 말을 잘 보도하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 윤근혁 기자


돌출 사태 발생, 한 교장의 항변 "교장 대표 맞나"

이어 이군현 한국교총 회장의 축사가 진행됐다. 그는 교육부와 전교조를 묶어서 비판한 뒤 다음과 같이 말을 맺었다.

"(교장선생님들이) 비빌 언덕은 교총입니다. 교장선생님들이 세 확대를 위해 노력해주셔야 합니다."

이날 준비된 강연은 모두 2개. 이상주 교육공동체시민연합 대표(전 교육부총리)의 '시대변화에 앞서가는 학교경영'이란 기조강연과 김정숙 한나라당 의원의 특별강연이 바로 그것.

이 대표는 강연 1시간의 절반 가량을 전교조를 비판하는 데 썼다. 이 대표는 전교조를 놓고 "패륜적인", "의식화 친북 교육", "학생 선동", "마르크스의 계급투쟁론" "증오심에 넘치는 투사"와 같은 발언을 그대로 토해냈다.

강연 도중 16번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교장들은 "그렇다, 맞다"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주 대표는 이에 힘을 얻었는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이상주 전 장관 "교장선출제 반대, 감옥 가도 감수하겠다"

▲ 이상주 교육공동체시민연합 대표의 강연 모습.
ⓒ2003 윤근혁
"전교조는 이미 우리가 고발 조치했다. 교장선출보직제가 되면 제가 앞장 서서 싸우겠다고 언론에 공언했다. 그러다가 감옥에 가게되면 감수하겠다."

그의 마지막 인사말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교장하기 좋을 때 평교사로 있다가 평교사하기 좋을 때 교장하고 있는 여러분! 제가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 회원 가입해주시고 준비위원들이 (학교로) 찾아가면 도와주십시오. 전 인구의 0.1%인 5만명만 가입하면 여러분을 위해서 뛰겠습니다."

김정숙 의원은 특강에서 "교원정년 단축을 무 자르듯이 자르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면서 "정년환원을 해서 여러분의 자존심을 세울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날 12시 20분, 참석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학교 안 불법 행위 단호 대처 △교장선출보직제와 교원 지방직화 반대 △교사회, 학부모회 법제화 반대 △교원정년 원상회복 운동 전개 △민주시민 양성과 자유 민주주의 토대 구축 등을 외쳤다.

초등학생 공연에 발길 돌린 교장단, 객석 '텅텅'

▲ 참석자들은 결의문을 발표하고 '교장선출제와 교사회 학부모회 법제화'를 반대했다.
ⓒ2003 윤근혁
행사 마지막 차례로 제주남광초 학생 60여 명이 공연을 준비했다. 이 학생들은 50분 전인 11시 35분부터 무대 양쪽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지도교사는 연신 검지를 입에 대며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하지만 결의문을 채택한 교장들은 하나둘 짐을 챙겨 일어나더니 공연이 시작되자 자리가 텅 비었다. 초롱한 눈망울을 빛내던 이 학교 합창단원들의 노래 <만남>이 끝나고 <사랑해 당신을>이 이어졌다.

"교장선생님들 일어나셔서 악수하고 어깨를 걸어주세요"란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지만 이상주 대표와 김정숙 의원의 연설에 객석을 꽉 메운 채 환호하던 교장들은 이미 자리에 없었다.

▲ 이날 12시 29분 아이들 60명이 마지막 노래 <사랑해 당신을>을 부를 즈음 5천명의 참석자들은 죄다 빠져나가고 20여 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003 윤근혁
이날 12시 29분 아이들 60명이 마지막 노래 <사랑해 당신을>을 부를 즈음 5천 명의 참석자들은 죄다 빠져나가고 20여 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이들의 노랫소리는 점점 작게 들렸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행사를 마친 참석자들은 '교육현장 답사'란 이름으로 제주도 관광여행을 떠났다. 이번 교장협과 시도 교장단의 전체 일정은 대부분 2박3일. 이 같은 행사를 위해 5000여개 학교별 출장비 30만원씩, 모두 15억원의 돈이 아이들한테 써야 할 학교예산에서 빠져 나갔다.

결의문

21세기는 창의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지식기반 사회로서,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지적 자산의 양과 질에 의해 국력이 결정된다.
따라서 학교는 지식 기반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교육의 틀을 만들어 나가는 소임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학교교육을 선도해 나가는 학교장으로서 교육력의 극대화를 위해 부단한 자기 혁신과 함께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결집시킬 것을 다짐하면서 오늘날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 우리는 날로 심화, 증폭되고 있는 교직사회 내의 대립과 반목으로 인한 갈등이, 법과 규정을 엄격히 집행하지 못한 정부에 큰 책임이 있다고 보고, 앞으로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각종 불법행위에 단호히 대처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1. 학교경영의 부실과 교육현장의 극심한 혼란을 초래할 교장선출보직제 및 교원의 지방직화를 강력히 반대한다.

1. 학교는 학교공동체 구성원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학교장의 책임경영 하에 자율적, 창의적,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므로, 불필요한 교육현장의 갈등을 조장하는 교사회, 학부모회의 법제화를 단호히 반대한다.

1. 교육현장에 직접적이고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교원단체와의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 체결 시에는 반드시 학교장과 학부모들의 의견을 널리 수렴, 반영하여야 한다.

1. 우리 초등교장 일동은 무너진 교원의 자존심을 다시 세우기 위해, 앞으로도 교원정년 원상회복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을 천명한다.

1. 우리 교장들은 단위학교 현장에서의 상호신뢰와 존경의 풍토를 조성하여 민주시민 양성에 진력하며 자유 민주주의 토대를 굳건히 해나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을 굳게 다짐한다.

2003년 7월 29일
한국초등교장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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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7월 30일치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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