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6일 수요일

"등급제는 변형된 기여입학제" 파문

 
윤근혁
 
▲ 한국교육개발원이 낸 보고서 표지.
ⓒ2004 한국교육개발원PDF
국책연구기관이 고교등급제와 관련, '일부 사립대학의 서울 강남지역 우대는 변형된 기여입학제'란 내용의 분석자료를 내놨다. 이에 대해 고교등급제 적용 사실이 드러난 연세대가 '어이없는 억측'이라고 반박하고 나서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원장 이종재)은 25일 낸 '고교등급제의 실상, 문제점과 해결방안'이란 제목의 보고서(Position Paper)에서 "(고교등급제를 적용한) 대학의 강남학생 선호는 부유층 자녀 확보를 통한 대학의 발전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면서 "기여입학제를 변형, 적용한 흔적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보고서는 "문제가 된 사립대학이 수시모집에서 해당 대학의 정시 모집 학생구성비, 서울대 등의 지역학생 비율과는 달리 강남지역 편중현상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올 1학기 수시모집에서 고교등급제 적용 사실이 드러난 이화여대와 연세대의 강남지역(서울 강남·서초·송파구) 합격생 비율은 각각 36.1%와 35.5%였다. 이 수치는 2004학년도에 정시입학한 서울대의 강남 입학생 비율(12. 3%)에 견줘 갑절 이상이다. 현재 전국 고교생 가운데 강남 학생은 4.9%를 차지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고교간 학력격차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대다수 선진국은 교육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지역과 인종을 배려하는 역차별의 근거로 학력 격차에 대한 자료를 활용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우리나라 고교등급제는 불리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배제하고 좋은 배경을 가진 학생들에게 더 유리한 대우를 해주려는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고교등급제 도입 주장은 개별 학생의 잠재적 가능성을 배제하는 한편, 대학교육이 수행해야 할 다양한 사회적 책무성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것으로 여겨진다"고 비판했다.

보고서를 쓴 한국교육개발원의 강영혜 연구위원은 27일 전화통화에서 "고교등급제는 빈곤의 대물림이나 학력격차를 오히려 심화시킬 위험성이 크다"면서 "언론과 정치인들이 교육문제를 학술적 판단이 아닌 이해관계에 따라 파당적 시각을 나타내고 있어 큰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문제에 대해 학자로서 객관적으로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어 연구보고서를 내게 됐다"고 덧붙였다.

▲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부유층을 위한 제도'라면서 고교등급제 반대 운동을 펼쳐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 13일 교육부 앞 집회 모습.
ⓒ2004 교육희망 안옥수

연세대 "근거박약...어이없는 억측" 반박
교육시민단체, 28일 기자회견에서 추가 거론


이 보고서 내용이 알려지자 연세대 등이 반박 의견을 나타낸 데 반해, 고교등급제를 반대하는 교육시민단체들은 28일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를 공식 거론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고교등급제 불똥이 기여입학제 논란으로 옮겨 붙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연세대 입학관리처 관계자는 이날 전화통화에서 "한국교육개발원의 연구보고서 내용은 한마디로 어이가 없는 얘기"라면서 "올 수시 1학기 강남 합격생의 데이터만 갖고 기여입학제를 거론한 것 자체가 근거가 박약한 억측"이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우리 대학은 고교별 학력 차이를 반영한 적은 있지만 경제 계급적 판단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한만중 정책실장은 사립 대학들의 재단 전입금이 거의 없는 현실을 꼬집으며, "이 때문에 고교등급제가 기여입학금제와 연동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교등급제를 반대하는 전교조, 학벌없는사회, 참교육학부모회 등 대표자회의 소속 단체들은 28일 기자회견에서 '고교등급제를 통한 기여입학제 의혹'에 대한 신상발언을 계획하고 있다.

영·미 대학입시, '출신학교 NO' '개인소질 YES'
교육개발원 보고서가 밝힌 '학력차 문제 대하는 외국 사례'

한국교육개발원이 펴낸 '고교등급제의 실상, 문제점과 해결방안'이란 제목의 보고서(Position Paper)는 '고교간 학력차 문제를 대하는 외국 사례 분석' 내용을 자세히 싣고 있다.

보고서는 이 자료에서 "외국의 대학은 출신학교가 아닌 학생 개인의 소질과 전공적성, 성취도 등을 중심으로 선발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보고서를 쓴 강영혜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처럼 학력이 높은 아이들을 뽑기 위한 고교등급제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 보고서가 소개한 외국 사례를 요약한 내용이다.

▲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학은 출신학교가 아닌 학생 개인의 소질과 적성과 성취도 등을 중심으로 선발함.

▲ 대학학사관리가 매우 엄격한 영국 대학들의 조사연구 결과, 비슷한 수능성적을 얻어 입학한 학생들의 대학 졸업 성적에서 사립학교(중상류층 자녀 중심의 학교) 출신 학생들보다 공립학교 출신들의 대학성적이 더 나은 것으로 확인됨.

- 사립학교의 경우 일종의 '과외효과'가 대학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음.

▲ 영국 2003 고등교육개혁 백서의 의미

- 중등학생의 7%에 불과한 사립출신이 명문대 입학의 40%를 넘게 차지하고 전체 인구 대비 가난한 하층 자녀의 대학진학률이 매우 낮은 현상을 타개하여 고등교육 수혜대상을 확대하고자 함.

- 각 대학별로 공립 출신 수용목표를 설정하여 그 달성도에 따라 추가재정 지원을 하는 형태로 고등교육의 기회 확대를 정책적으로 추진함.

▲ 보상적 조치를 통한 사회적 형평성의 적극적 실현

- 미국의 주립대학은 물론 명문 사립대들도 지역할당제, 여성이나 소수민족 출신자 할당제 등 다양한 차별철폐조치를 30년 넘게 유지해 왔음.

- 영국의 의과대학은 대입수능 고득점자 위주로 선발하는 의과대학의 학생 구성이 소수민족이나 가난한 지역의 문화와 필요에 부응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 하에 낙후지역의 공립학교 출신자들을 특별 전형함.

▲ 공공의식에 기초한 대학의 자율적인 학생선발

- 외국에서 학생선발 시 지역할당제나 사회적 약자 배려 정책을 쓰는 이면에는 고등교육 기회의 형평성 추구라는 사회적 목적과 더불어, 입시전문가에 의해 '가공된 성적 우수자' 대신 대학에서 연마되어야 할 '가능성의 소유자'를 찾아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장기적 고려가 작용함. / 윤근혁 기자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2004년 10월 28일치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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